권재형이 상소문을 올려 황제의 존호에 대해 아뢰다
농상공부 협판(農商工部協辦) 권재형(權在衡)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전날 관리들과 유생(儒生)들이 올린 상소의 원본을 보니 칭호를 더 올리자고 한 것이 있었습니다. 신은 거듭 감탄하면서 선견지명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적이 생각하여 보건대 ‘황(皇)’, ‘제(帝)’, ‘왕(王)’이라고 하는 것이 글자는 다르지만 한 개 나라를 주관하고 한 나라가 독립하여 외국에 의존하지 않으며 기준을 세우고 백성들에게 표준을 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세 임금보다 더 높이지 않았고 세 임금이 자처하는 것도 황제보다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후대에 ‘황’의 덕(德)과 ‘제’의 공(功)을 합쳐서 황제의 호칭으로 썼는데 한(漢) 나라, 진(晉) 나라, 수(隋) 나라, 당(唐) 나라, 송(宋) 나라, 원(元) 나라, 명(明) 나라, 청(淸) 나라 이래로 그대로 썼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오늘날 임금들의 가장 높은 존호(尊號)는 오직 ‘황제(皇帝)’라는 것뿐입니다.
오직 우리나라는 기자(箕子) 이래로 자강(自强)하지 못하였으니 대체로 제후국을 면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우리 태조(太祖) 대왕은 영특한 자질로써 문무(文武)의 덕을 겸비하고 천명을 받아 왕업을 열었습니다. 또한 세월이 지난 뒤 우리 인조(仁祖) 대왕과 효종(孝宗) 대왕 같은 훌륭하고 비상한 임금들이 서로 이어서 복록을 베풀게 되었지만 대체로 사대하는 예절은 한결같이 성규(成規)를 따랐으니 주자(朱子)의 이른바 ‘통분을 참으며 원한을 품으면서도 일이 절박하여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운(天運)은 순환하여 한 번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법이 없는데 오직 우리 폐하(陛下)는 하늘이 낸 큰 성인으로서 세상에 드문 큰 위업을 이룩하여 옛날의 수치를 씻고 우리 조상들이 성취하지 못한 뜻있는 일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실로 우리나라가 생겨난 이후에 처음으로 있는 경사스러운 기회이니 억만년 끝없이 이어질 나라의 복이 장차 여기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아! 아름답습니다.
대체로 자식으로서 부모를 공경하고 신하로서 임금을 높이는 것은 사람의 천성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에 폐하(陛下)의 신민(臣民)으로서 누군들 춤추며 기뻐하면서 우리 폐하에게 빛나는 극존(極尊)의 칭호를 올리려 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가 사양하여 즉시 받아들이지 않지만 신은 이 문제를 조금도 늦출 수 없다고 여깁니다. 만약 ‘왕을 황제로 올리는 것이 공법(公法)상 어렵다.’고 하신다면 신은 만국공법(萬國公法)에 근거하여 조목별로 명백히 밝히려고 합니다.
신은 예전에 정위량(丁韙良)이 번역한 《공법회통(公法會通)》을 읽었습니다. 그 제86장에는 ‘임금이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가져야만 제국(帝國)이라고 부르는 나라들과 나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자주(自主)의 왕국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자주의 왕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낡은 견해를 미련스럽게 고집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갑오 경장(甲午更張) 이후로 독립하였다는 명색은 있으나 독립의 실상은 없고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아서 백성들의 의혹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나라의 백성들은 문약(文弱)한 것이 습성이 되고 외국에 의존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멀게는 2,000년, 가깝게는 500년간 중국을 섬겨오면서 그것을 달게 여겨 고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한 번 자주를 가지고 논하는 사람을 보면 대뜸 눈이 휘둥그레져서 혀를 빼물고 깜짝 놀라는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옛날에만 그랬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거리에 모여 이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의 좁은 소견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당장 정사를 바로잡는 방도는 진실로 위의(威儀)를 바로잡고 지위를 높여서, 민심(民心)이 움직여서 추세를 따르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만국공법》85장에는 ‘관할하는 지역이 한 개 나라나 본 국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이 넓은 경우에는 황제로 불러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분수에 넘치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를 통하여 황제의 칭호란 원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겸하여 관할하고 있는 사실로 말하면 영국만한 나라가 없고 영토가 넓은 것으로 말하면 러시아만한 나라가 없는데 이런 나라들을 논함에서도 오히려 황제라고 부르는 것이 혹시 가능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혹시’라고 한 것은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어서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분수에 넘치는 것 같다.’고 하였는데 ‘같다.’라는 것 역시 단정하지 않은 말입니다. 주거나 빼앗는 경우에 모두 정해졌다는 말이 없으니 불러도 좋고 부르지 않아도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터키〔土耳其〕가 황제라고 부르는 것은 영토가 넓어서가 아니며 일본이 황제라고 부르는 것은 원래 유구국(琉球國)을 병합하기 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될 수 있다는 것과 될 수 없다는 것을 단정하지 않은 명백한 증거입니다.
또한 그 제84장에는 ‘여러 나라들이 일률적으로 존칭을 쓸 수 없으며 명분과 실제가 부합되어야 어울릴 수 있다.’고 하였으며 그 주석(註釋)에는 ‘140년 전 러시아의 임금이 황제라고 칭호를 고쳤는데 처음에는 각 나라에서 좋아하지 않았으나 20여 년이 지나서 인정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것으로 미루어서 보건대 각 나라가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하는 것도 따질 것이 못되며 오직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신은 이 몇 장 외에 따로 어떤 공법(公法)이 있어서 이와 다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신의 좁은 소견으로는 공법에는 구애될 만한 내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바라건대 폐하(陛下)는 신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신이 말한 말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마시고 즉시 정부에서 의논하여 빨리 중대한 계책을 결정지어 빨리 최상의 칭호를 올리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신하들이 임금을 높이는 마음에 부합되게 해주며 한편으로는 문약하고 외국에 의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혹을 깨뜨리고 다시 굳은 결의로 앞으로 나아가고 정성을 들여 나랏일이 잘되게 하고 어진 사람을 등용하되 한결같이 하시며 간사한 사람을 제거하되 의혹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래된 나라에서 새로운 천명(天命)을 받아 명분과 실제가 서로 부합되게 한다면 선조의 공덕을 빛내고 후손에게 좋은 덕화를 남겨줄 수 있으며 또 먼 나라와 가까운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말이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어찌 이것을 가지고 논할 때이겠는가? 실로 그것이 합당한 지는 잘 모르겠다."
하였다.
- 【원본】 40책 36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면
- 【분류】외교-러시아[露] / 외교-영국(英)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외교-일본(日本) / 왕실-국왕(國王) / 변란-정변(政變) / 정론-정론(政論) / 사법-법제(法制) / 역사-전사(前史)
農商工部協辦權在衡疏略: "臣於前日, 得見縉紳章甫疏本, 有請加進位號者。 臣未嘗不反復詠歎, 喜其有先得之見也。 竊惟曰皇曰帝曰王, 其字雖殊, 其所以自主一邦獨立不倚, 建其有極, 標準斯民, 一也。 是以三皇五帝, 不曾加尊於三王, 而三王之自視也, 亦不曾有遜於皇若帝矣。 後代合皇德、帝功, 而以皇帝之號稱之。 歷漢、晉、隋、唐、宋、元、明、淸, 而仍用之。 由是觀之, 則今日帝王家極尊之號, 惟皇帝是已。 惟我東方, 自箕聖以來, 不能自强, 其能免夫藩封者幾希。 欽惟我太祖大王, 以英邁之姿, 兼文武之德, 受命于天, 肇其王業。 亦越我仁祖大王曁孝宗大王, 聖神相承, 克迓申休, 而凡事大之節, 一遵成規, 朱子所謂‘忍痛、含冤, 迫不得已’者, 是也。 天運循環, 無往不復, 惟我陛下, 以天縱之大聖, 建不世之偉業, 湔洗舊日之恥, 克成我祖宗未就之志事。 此, 實我東土肇判以後初有之慶會。 而國家萬億年無疆之休, 其將基之於是矣。 於乎! 休哉! 夫爲子而敬其親, 爲臣而尊其君, 彝性爲然。 況乎在今日爲陛下之臣民者, 孰不蹈舞欣忭, 欲進極尊之寶號於我陛下也哉? 縱陛下撝謙而不卽採納之, 臣固知此事之不容少緩也。 若曰‘由王陞帝, 公法難之’云爾, 則臣請得因萬國公法而逐條辦明之。 臣曾讀丁韙良所譯《公法會通》。 其第八十六章曰: ‘國主非必有帝號, 方與稱帝之國平行。’ 此指自主之王國而言也。 在我國不當株守舊見, 何也? 自甲午更張之後, 有獨立之名, 而無獨立之實。 國是靡定, 民疑滿腹。 此曷故焉? 我國之民, 文弱爲性, 依附成習, 遠之二千年, 近之五百年, 服事中土, 恬不知變。 一見人能持自主之論者, 輒張眼吐舌, 愕眙不已。 不惟往昔爲然, 抑亦處今日而尙有巷議者。 其局見偏窄, 無足怪矣。 而目下矯正之方, 亶在乎正威儀尊瞻視, 使民心得以聳動而有所趨向也。 又其第八十五章曰: ‘其所轄, 非止一國及本國, 境地遼闊者, 則稱皇帝或可否則似屬僭妄。’ 臣以爲推此, 可知皇帝之號, 原無定主矣。 兼轄數國, 莫如英, 境地遼闊, 莫如俄。 而論此等之國, 尙曰稱皇帝, 或可之或者, 未定之辭也。 繼而曰‘否則似屬僭妄’之似者, 亦係未定之辭也。 其予其奪, 俱無一定之辭, 則稱之亦可, 不稱亦無不可。 是故土耳其之稱帝, 非以其疆土之加闢也, 日本之稱帝, 原在於未竝琉球之前。 此又其可與不可未定之明驗也。 又其第八十四章曰: ‘邦國不能槪用尊稱, 因名實自應相稱。’ 疏注曰: ‘百四十年前, 俄君改稱皇帝, 始而各國不悅, 越二十餘年, 方認之。’ 臣以爲推此則各國之認與不認, 亦非所計, 惟在我國自行之如何耳。 臣未知數章之外, 別有何樣公法, 與此異同。 然以臣愚見, 在公法似無可拘之文矣。 伏願陛下勿以臣人微而竝與所言而輕之, 卽日詢議于政府。 早定大策, 亟進寶號, 一以副爲臣尊君之輿情, 一以破文弱依附之疑團。 復須決意進前, 勵精圖治, 任賢勿貳, 去邪勿疑, 以期舊邦新命, 名實相當焉。 則旣可以光前裕後, 又可以柔遠能邇矣。" 批曰: "言雖有據, 此豈暇論之時乎? 實未知其可也。"
- 【원본】 40책 36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면
- 【분류】외교-러시아[露] / 외교-영국(英)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외교-일본(日本) / 왕실-국왕(國王) / 변란-정변(政變) / 정론-정론(政論) / 사법-법제(法制)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