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고종실록 34권, 고종 33년 9월 20일 양력 1번째기사 1896년 대한 건양(建陽) 1년

감독한 대신 이하를 소견하다

감동(監董)한 대신(大臣) 이하 【특진관(特進官) 정범조(鄭範朝),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 이재순(李載純), 장례원 경(掌禮院卿) 민종묵(閔種默), 영선사장(營繕司長) 강건(姜湕)이다.】 를 소견(召見)하였다. 창릉(昌陵)에 사초(莎草)를 고쳐 입히는 일을 감독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상(上)이 이르기를,

"진전(眞殿)을 즉조당(卽阼堂)에 옮겼는데 간가(間架)가 낮고 좁아서 죽 펴지 못하였으니 매우 미안하다. 또 오늘 응당 진전을 돌아보아야 되겠는데 옷차림에 구애되어 비서원 경(祕書院卿)을 시켜 돌아보게 하였다."

하니, 정범조가 아뢰기를,

"어진(御眞)을 잠시 말아둔 것은 임시 예법을 따른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오늘 폐하의 사모하는 생각은 매우 깊은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오늘 내린 비는 사초를 고쳐 입힌 뒤에 매우 적합하다."

하니, 정범조가 아뢰기를,

"정말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매우 기쁘고 다행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전 규례로는 호조(戶曹)에서 하면서 모화관(慕華館)의 사초를 실어다 썼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하였는가?"

하니, 정범조가 아뢰기를,

"요즘에는 지방관(地方官)이 바치고 있는데 이번에는 부근의 마을들에서 넉넉히 실어다 바치도록 하였더니 오히려 쓰고 남은 것이 많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요즘 대신이 공적인 일로 나갈 때 지방관이 나와서 기다리며 치다꺼리 하는 절차가 없었는가?"

하니, 정범조가 아뢰기를,

"새 법이 나온 이후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떻게 갔다가 왔는가?"

하니, 정범조가 아뢰기를,

"궁내부(宮內府)에서 반비(盤費)를 등급을 갈라서 내주었습니다. 그전에는 접대하는 폐해가 결국 백성들에게 돌아갔지만 이제는 이미 폐지하였으니 충분히 백성들을 편안히 살 수 있게 하는 한 가지 일로 됩니다. 그러나 요즈음 중외 백성들의 형편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 안의 백성들이 생업으로 삼는 것은 바로 공물을 바치는 것과 장사하는 일, 등짐 장사 뿐인데 전부 폐지한 후로는 장사하는 이익이 고스란히 외국 장사치들에게 돌아가고 거의 다 생업을 잃어 살아 나갈 길이 없습니다. 굶주려 경황이 없고 참상이 스산하므로 불쌍하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새 법이 백성들을 편안히 하는 것이라고 하더니 이제 도리어 편안치 못하게 만드니 매우 답답하다. 매우 답답하다."

하였다.


  • 【원본】 38책 34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97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二十日。 召見監董大臣以下 【特進官鄭範朝、宮內府大臣李載純、掌禮院卿閔種默、營繕司長姜建】昌陵改莎監董後入來也。 上曰: "眞殿奉安于卽阼堂, 而間架低狹, 未克展奉, 極爲未安。 且今日眞殿當爲奉審, 而拘於服色, 使祕書卿奉審矣。" 範朝曰: "暫時捲奉, 從權之禮。 而伏想今日, 聖慕冞深矣。" 上曰: "今日之雨, 甚適於改莎之後也。" 範朝曰: "誠不偶然。 甚爲喜幸矣。" 上曰: "往例則自戶曹擧行, 而以慕華館莎草輸用矣, 今番則何以爲之乎?" 範朝曰: "近日則以地方官進排, 而今番令附近洞, 優數輸納, 猶多用餘矣。" 上曰: "近日大臣因公之行, 地方官無出待供億之節乎?" 範朝曰: "新式後, 皆廢止矣。" 上曰: "何以往返乎?" 範朝曰: "自宮內府, 有盤費之分等撥下者也。 往日廚傳之弊, 害終歸民, 今旣廢止, 足爲安民之一端。 而近日中外民情, 去益艱棘。 且都下民生之資以爲業者, 卽貢市與任役而已。 一自全廢之後, 商賈之利, 全歸外國之興販, 擧皆失業, 無以聊生。 頷顑遑汲, 景色愁慘。 不勝矜悶矣。" 上曰: "新法謂其安民, 而今乃返致不安, 甚悶甚悶。"


  • 【원본】 38책 34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97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