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한 등 6인의 재판 조율안을 가지고 아뢰다
법부(法部)에서 김복한(金福漢) 등 6인(人)의 재판 조율안(裁判照律案)을 가지고 아뢰기를,
"피고(被告) 김복한은 개국(開國) 504년 8월 20일의 사변이 만고에 없는 것이니 의병(義兵)을 일으켜 복수하는 것을 결코 그만둘 수 없다고 하면서 본년(本年) 1월 16일에 같은 무리들을 불러모아가지고 홍주부(洪州府)에 쳐들어가서는 관찰사(觀察使)를 위협하고 참서관(參書官)을 협박하여 쫓아냈으며 경무관(警務官)을 묶어 놓고 때렸습니다. 각군(各郡)에 통문(通文)을 보냈는데 그가 제일 먼저 쓰고 홍건(洪楗)·이상린(李相麟)·송병직(宋秉稷)·안병찬(安炳瓚)이 공모하여 호응하였습니다. 이설(李偰)은 애당초 항의하는 상소를 올려 역적을 치려다가 하지 못하였고, 김복한이 공모하자고 청하였으나 또다시 거절하였습니다.
이상 피고들의 공사(供辭)와 홍주부에서 전후하여 올린 보고서는 명백합니다. 김복한은 관리를 협박한 데 관한 법조문에 적용시킨 다음 참작하여 2등을 감해서 유형(流刑) 10년에 처하고, 홍건·이상린·송병직·안병찬은 추종한 죄로 징역 3년에 처하되 취역(就役)은 면제하며, 이설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였는데 사리에 있어 중한 것에 관한 법조문에 비추어 태형(笞刑) 80대에 처할 것입니다."
하니, 제칙을 내리기를,
"김복한·이설·홍건·송병직·이상린·안병찬 등은 때와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관리를 협박하고 백성들을 선동해서 부(府)와 군(郡)을 소란스럽게 하였으니 어찌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뜻은 복수하자는 것이었고 그 계책은 역적을 치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 일이 본년 2월 11일과 18일 조칙(詔勅)이 있기 전에 있었으니, 이는 요즘 의리를 빙자하면서 난을 일으키는 것과는 같을 수 없다. 일체의 의논을 중단하고 모두 특별히 풀어줌으로써 관대히 용서해 주는 뜻을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 【원본】 38책 34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84면
- 【분류】군사-특수군(特殊軍) / 사법-행형(行刑)
九日。 法部以"金福漢等六人裁判照律案: "被告金福漢, 以開國五百四年八月二十日事變, 亙古所無, 倡義復讎, 斷不可已。 本年一月十六日, 招集同黨, 攔入洪州府, 脅制觀察使, 迫逐參書官, 縛打警務官。 發文各郡, 渠自首書而洪楗、李相麟、宋秉稷、安炳瓚同謀相應。 李偰, 初欲抗章討賊而未果, 福漢請與同謀而又不應。 以上被告等供辭及洪州府前後報告書, 明白矣。 金福漢, 照脅制官吏者律, 酌減二等, 處流十年, 洪楗、李相麟、宋秉稷、安炳瓚, 爲從罪, 處懲役三年免就役, 李偰, 照不應得爲事理重者律, 處笞八十"之意上奏。 制曰: "金福漢、李偰、洪楗、宋秉稷、李相麟、安炳瓚等不能度時量力, 脅制官吏, 煽動民衆, 以致府君繹騷, 烏可曰無罪? 而其志則復讎也, 其計則討逆也。 況事在本年二月十一日及十八日詔勅以前, 則此不可與近日藉義造亂者。 一切論斷, 竝爲特放, 以示寬宥之意。"
- 【원본】 38책 34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84면
- 【분류】군사-특수군(特殊軍)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