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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3권, 고종 32년 8월 22일 경인 1번째기사 1895년 대한 개국(開國) 505년

왕후 민씨를 서인으로 강등시키다

조령을 내리기를,

"짐(朕)이 보위(寶位)에 오른 지 32년에 정사와 교화가 널리 펴지지 못하고 있는 중에 왕후(王后) 민씨(閔氏)가 자기의 가까운 무리들을 끌어들여 짐의 주위에 배치하고 짐의 총명을 가리며 백성을 착취하고 짐의 정령(政令)을 어지럽히며 벼슬을 팔아 탐욕과 포악이 지방에 퍼지니 도적이 사방에서 일어나서 종묘 사직(宗廟社稷)이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워졌다.

짐이 그 죄악이 극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벌하지 못한 것은 짐이 밝지 못하기 때문이기는 하나 역시 그 패거리를 꺼려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짐이 이것을 억누르기 위하여 지난해 12월에 종묘(宗廟)에 맹세하기를, ‘후빈(后嬪)과 종척(宗戚)이 나라 정사에 간섭함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여 민씨가 뉘우치기를 바랐다. 그러나 민씨는 오래된 악을 고치지 않고 그 패거리와 보잘것없는 무리를 몰래 끌어들여 짐의 동정을 살피고 국무 대신(國務大臣)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며 또한 짐의 나라의 군사를 해산한다고 짐의 명령을 위조하여 변란을 격발시켰다. 사변이 터지자 짐을 떠나고 그 몸을 피하여 임오년(1882)의 지나간 일을 답습하였으며 찾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왕후의 작위와 덕에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죄악이 가득차 선왕(先王)들의 종묘를 받들 수 없는 것이다. 짐이 할 수 없이 짐의 가문의 고사(故事)를 삼가 본받아 왕후 민씨를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는다."

하였다. 【이때 탁지부 대신(度支部大臣) 심상훈(沈相薰)이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갔으며 내부 대신(內部大臣) 박정양(朴定陽)은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 【원본】 37책 33권 7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7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인물(人物)

二十二日。 詔曰: "朕이 臨御지 三十二年에 治化가 普洽지 못 中에 王后閔氏가 其親黨을 援引야 朕의 左右에 布置고 朕의 聰明을 雍蔽야 人民을 剝割며 朕의 政令을 濁亂야 官爵을 鬻賣야 貪虐이 地方에 遍 盜賊이 四起야 宗社岌岌히 危殆니 朕이 其惡의 極을 知흐 是 罰치 못은 朕의 不明이나 亦其黨與 顧忌이러니 朕이 是 壓抑기 爲야 上年十二月에 宗廟에 誓告야 曰后嬪宗戚이 國政에 干涉을 許치 아니다 야 閔氏의 改悟을 冀호 閔氏가 舊惡을 悛치 아니고 其黨與及群小輩 潛相引進야 朕의 動靜을 察고 國務大臣의 引接을 防遏며 又朕의 國兵을 解散다 朕의 旨 矯야 亂을 激起고 事變이 出 朕을 離고 其身을 避야 壬午往事 蹈襲고 訪求야도 出現치 아니니 是 王后의 爵德에 稱치 못할 더러 其罪惡이 貫盈야 可히 先王、宗廟 承치 못지라 朕이 得已치 못야 朕家故事를 謹倣야 王后閔氏 廢야 庶人을 삼노라。" 【時, 度支大臣沈相薰, 棄官下鄕; 內部大臣朴定陽, 不與會議。】


  • 【원본】 37책 33권 7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7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