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원 봉실에서 예를 행하다
북원 봉실(北苑奉室)에서 예를 행하였다. 왕세자도 따라가 예를 행하였다. 예를 마치고 영의정(領議政) 심순택(沈舜澤)이 아뢰기를,
"전주성(全州城)를 어제 회복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전보(電報)를 보니 김제(金堤)에서 또 비적(匪賊)들의 소요가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것은 도망친 잔당들의 짓이니 기어이 다 제거한 다음에야 안정될 수 있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경의 말이 옳다. 초토사(招討使)의 전보 보고를 연이어 보건대 장수와 군사들이 공로를 세워 칭찬한 만한 점이 많으나 싸움터에서 절의를 지켜 죽은 것이 참혹하고 측은하다. 묘당(廟堂)에서 각별히 뜻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하였다. 【3일 미시(未時)쯤 적이 전라 감영(全羅監營)의 서문(西門)과 북문(北門)을 활짝 열어 놓고 누런 빛깔의 큰 깃발을 세운 다음에 5, 6천 명의 군사가 관군과 싸웠는데 적이 크게 패하여 목을 베거나 사로잡은 숫자가 1,000여 명이었다. 적의 괴수 김순명(金順明), 어린 장사 이복용(李福用), 참모(參謀) 선판길(宣判吉), 이른바 곽(郭) 장군, 박장사, 정(鄭) 장군이라는 자들은 모두 죽고 장사(壯士) 전녹두(全祿斗)는 머리뼈가 부서지고 다리를 상하였다. 적은 여전히 성(城) 안에 웅거하여 줄곧 굳게 지켰는데 관군은 더욱 사기를 높여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에 김순명의 머리를 적의 깃발 대에 달아매어 효수하니 남은 적이 크게 놀라서 적들은 패하여 돌아갔다. 8일 진시(辰時)쯤 초토사(招討使)가 군사를 정돈하고 성에 들어가니 성 안의 백성으로서 종전대로 살고 있는 남녀노소가 수만여 명이었다. 노획한 무기는 창과 총이 1,000여 자루, 불랑기(佛狼機) 대포 24문〔坐〕, 납탄 5만 8,000여 개, 화약 1,000여 근(斤)이고 그 밖에 활과 화살, 갑옷과 투구, 칼과 도끼 등속이었다. 모두 다 회수하여 대장에 올리고 방을 붙여서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 【원본】 35책 31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8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사상-동학(東學) / 변란-민란(民亂) / 군사-군기(軍器) / 사법-행형(行刑)
初十日。 詣北苑奉室, 行禮。 王世子隨詣, 行禮。 禮畢, 領議政沈舜澤曰: "完府日昨已復城云, 誠爲萬幸。 而俄見電報, 金提又有匪擾, 此是餘黨之逃去者也。 期盡剿除, 然後可以妥安矣。" 敎曰: "卿言是矣。 連見招討使電奏, 將士之立功, 多有可嘉, 而其戰亡死節, 尤極慘惻, 自廟堂各別示意可也。 【初三日未時量, 賊大開完營西北二門, 建黃大旗, 五六千軍, 與官軍戰, 賊徒大潰, 斬獲千有餘。 賊魁金順明、童壯士李福用、謀士宣判吉、所謂郭將軍將軍、朴壯士壯士、鄭將軍將軍者, 竝死。 壯士全祿斗碎顱傷股。 賊尙據城中, 一向堅守, 官軍益勵不怠。 於是梟首金順明, 懸於賊旗, 大警餘賊, 賊黨敗歸。 初八日辰時量, 招討使整軍入城, 城中人民男女老少依舊居住者數萬餘人。 所獲軍器, 鎗與銃千餘柄、佛狼機大砲二十四坐、鉻丸五萬八千箇、火樂千餘斤, 其餘弓箭、甲冑、刀斧等屬, 竝皆收還, 載籍出榜安民】
- 【원본】 35책 31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8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사상-동학(東學) / 변란-민란(民亂) / 군사-군기(軍器)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