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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0권, 고종 30년 10월 4일 임자 1번째기사 1893년 조선 개국(開國) 502년

경운궁 즉조당에 나아가 전배하고 선조 대왕이 수도에 환궁한 300년을 축하하는 하례를 받고 사면을 반포하다

경운궁(慶運宮)과 즉조당(卽祚堂)에 나아가 전배(展拜)하였는데, 중궁전(中宮殿)도 함께 동가(動駕)하였다. 왕세자와 세자빈궁(世子嬪宮)이 따라가서 예(禮)를 행하였다. 이어 하례(賀禮)를 받고, 중궁전도 하례를 받았다. 사면(赦免)을 반포하였는데, 교문(敎文)에,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해에 감회가 일어나 선조(先祖)의 공렬을 추모하여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고, 모두 옛 법을 따라 성대한 예를 거행하여 경사를 꾸몄다. 그렇더라도 간단한 교서를 반포하여 널리 팔방(八方)에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할 것이다.

생각건대 선조 대왕(宣祖大王)이 다시 회복하신 것은 비로소 양(陽)이 소생하는 계사년(1593) 10월의 일이다. 월산 대군(月山大君)의 고택(古宅)에 임어(臨御)하시어 초매(草昧)를 경륜(經綸)하는 것과 같게 하여 다시 한관(漢官)의 성대한 위의가 드러나도록 하셨으니, 아! 세우신 공이 크고 넓도다. 밝은 명(命)을 바로 잡아 태산(泰山)과 반석(磐石) 같은 세(勢)를 공고히 하셨으니 전보다 오히려 빛남이 있으며, 문덕(文德)을 펴서 후손을 편안하게 하는 계책을 전해 주셨으니 정도(正道)로써 후손을 계도하신 것이다. 역대의 제왕(帝王) 이후로 이렇게 성대함은 없으니 오늘날까지 국가를 보존해 오게 한 것은 누구의 혜택이겠느냐?

지난날 영묘(英廟)께서 옛일에 대한 감회에 젖어 처음 이 궁(宮)에서 욕의(縟儀)를 거행하셨다. 선조를 받드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공경히 펴신 것은 진실로 이 해가 다시 이르렀기 때문이며, 의(義)를 일으키는 의전(懿典)을 비로소 갖춘 것은 실로 열조(列朝)가 겨를을 내지 못했던 것이다. 경사(卿士)와 서민(庶民)이 기쁨을 함께하며 헌축(獻祝)하였고, 정부(政府)와 6부(部)에서 축수(祝壽)의 잔을 받들어 정성을 바쳤다. 잔치를 베풀어 즐기는 것을 어찌 한때의 기쁨을 표시하는 것으로 그치겠는가? 널리 정성을 다해 고해야 길이 만세토록 말이 있게 될 것이다.

이에 내가 무궁한 대력(大歷)을 이어받아 구갑(舊甲)으로 중흥의 바로 그 해가 돌아왔다. 선군(先君)을 생각하는 것으로써 권면하니 어찌 쓸쓸히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겠느냐? 우리 가례(家禮)에도 의당 그런 고사(故事)가 있을 것이다.

옥력(玉曆)으로 살펴 국운(國運)을 어루만진 그 해가 육십갑자(六十甲子)로 다섯 번 돌아왔고, 보감(寶鑑)을 헤아려 경륜을 폈던 이 법이 300년에 다시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이제 상신(相臣)들이 이법(彝法)을 끌어와 아뢰면서 옛날 궁에서 술잔을 올려 축하하는 의식과 같게 하고자 함에 평소에 행하던 법도를 돌아보니 풍성하게 잔치를 베풀고자 갑자기 의논하기는 어려우나, 선왕(先王)의 성헌(成憲)을 본받아 어찌 그에 걸맞게 하기를 늦출 수 있겠는가? 이에 계술(繼述)하는 성의로 마침내 종묘(宗廟)에 고하고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예를 행하게 되었다.

공손히 당우(堂宇)를 바라보노라니 어찌 지난날을 슬퍼하는 마음을 금할 수 있겠는가? 기꺼이 신민들과 더불어 선조의 덕을 계승하는 성대한 거조를 행하는 바이다. 묘사(廟社)의 명인(明禋)을 이미 올려 나라의 예로 공경히 고하였고 전궁에 축수하는 술잔을 올려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밝게 받았다. 이 달 이날에 서로 경사를 함께하는 데서 윤음(綸音)을 반포하고, 또 조야(朝野)에 두루 고하여 마침내 은택을 널리 베푸는 바이다. 묵은 때를 깨끗이 씻어내고 모두 함께 새로워지도록 은혜를 펴고 인(仁)을 미루는 것을 이제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달 4일 새벽 이전의 잡범으로서 사죄(死罪) 이하는 모두 용서한다.

아! 아름다운 본성을 공경히 따라 큰 국운을 크게 열어야 할 것이다. 길이 아름다운 명에 부합되게 하면 하늘도 큰 복을 내릴 것이며, 두루 너의 덕을 행하면 여민(黎民)들도 나와 함께 태평함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교시(敎示)하는 바이니 잘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였다.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윤용선(尹容善)이 지었다.】 예가 끝나고,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들이 문후(問候)하니, 하교하기를,

"이 해 이 날에 이 예를 이 궁에서 행하니 감모(感慕)가 더욱더 커진다. 이 당(堂)은 바로 용만(龍灣)에서 환궁할 때 임어했던 당이다. 그 후 16년간 계속 여기에서 청정(聽政)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간가(間架)가 이렇게 비좁은 것은 흙으로 계단 세 층을 만든다는 뜻이 있었으므로 이번에도 종전대로 수리하였다."

하니, 영의정(領議政) 심순택(沈舜澤)이 아뢰기를,

"성교(聖敎)가 참으로 옳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선조 대왕과 의인 왕후(懿仁王后)는 시종 이 궁에 임어하였는데, 삼가 숙묘(肅廟)가 판에 어제(御製)한 시(詩)를 읽으면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목 대비(仁穆大妃)는 그대로 10여 년간 여기에 임어하였기 때문에 인묘(仁廟) 반정(反正) 때 이 당(堂)에서 즉위(卽位)하였고, 영창 대군(永昌大君)정명 공주(貞明公主)도 모두 이 궁에서 탄생하였다."

하였다. 판부사(判府事) 김홍집(金弘集)이 아뢰기를,

"벽에 건 ‘즉조당’이라는 현판은 영묘의 어필(御筆)입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그렇다. 숙묘조에는 네 차례 이 당(堂)에 왔고, 영묘조에는 모두 여덟 번 왔는데, 계사년(1773)에는 두 번 왔었다."

하였다.


  • 【원본】 34책 30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6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 / 인물(人物) / 예술-미술(美術)

初四日。 詣慶運宮卽阼堂, 展拜。 中宮殿同爲動駕, 王世子、世子嬪宮隨詣, 行禮。 仍受賀, 中宮殿受賀, 頒赦。 敎文若曰: "興感是歲, 追先烈而揚休, 率由舊章, 擧晟禮而飾慶。 頒十行誥, 廣八方恩。 竊惟穆陵重恢, 迺在昭陽。 十月, 臨御月山故第, 同乎草昧之經綸, 復見漢官盛儀。 猗歟, 樹立之宏遠。 釐耿命而鞏泰磐之勢, 于前有光, 敷文德而詒豐芑之謀, 啓後以正。 自歷代帝王以後, 未有盛焉, 至今日國家之存, 伊誰賜也? 昔英廟追感於舊紀, 而縟儀肇擧於是宮。 奉先之孝思祗伸, 亶由玆歲之復屆, 起義之懿典始備, 實是列朝之未遑。 卿士庶民, 同抃鰲而獻祝, 政府六部, 奉壽爵而效誠, 式讌以敖, 豈直一時識喜? 播告用亶, 其永萬世有辭。 肆小子嗣大歷無疆于舊甲, 廻中興太歲。 先君思以勖豈容虛過我家禮? 亦宜厥有古事, 按玉曆而撫運。 其年則六十甲五周, 稽寶鑑而宣綸, 是典也三百載再有。 況今相臣援彝之奏, 若昔舊宮稱兕之儀? 顧惟平日素規, 縱難豐豫之遽議, 監于先王成憲, 詎緩比觀之斯圖, 廼以繼述之誠。 遂行告布之禮, 恭瞻堂宇, 那禁愴昔之微忱? 嘉與臣民, 亟修紹先之晟擧, 廟社之明禋旣薦, 邦禮告虔, 殿宮之康爵竝稱, 天休昭受, 相與慶於是月是日, 載揚渙音。 又徧告於在野在朝, 遂沛解澤, 蕩垢滌瑕, 咸與維新, 敷惠推仁, 自今伊始, 自本月四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懿彝式蹈, 景運丕開, 永孚于休, 蒼穹降以, 遐福徧爲爾德, 黎民同我太平。 故玆敎示, 想宜知悉。" 【藝文提學尹容善製】 禮畢, 時原任大臣問候。 敎曰: "是年是日, 行是禮於是宮, 冞增感慕矣。 此堂卽龍灣回鑾時所御之堂。 其後十六年, 仍爲聽政於此。 而間架如是狹窄, 有土階三等之意, 故今亦仍舊修理矣。" 領議政沈舜澤曰: "聖敎, 誠然矣。" 敎曰: "宣祖大王懿仁王后, 終始臨御是宮, 奉讀肅廟御製板上詩, 可以推知矣。 仁穆大妃, 仍爲十餘年臨御, 故仁廟改玉時, 卽阼在此堂。 而永昌大君貞明公主, 皆誕生於此宮矣。" 判府事金弘集曰: "壁上奉揭卽阼堂懸板, 是英廟御筆乎?" 敎曰: "然矣。 肅廟朝嘗四臨此堂, 英廟朝凡八臨, 而癸巳年則再臨矣。"


  • 【원본】 34책 30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6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 / 인물(人物) / 예술-미술(美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