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가 백관을 거느리고 근정전에 나아가 정청하여 아뢰다
왕세자가 백관(百官)을 거느리고서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 정청(庭請)하여 아뢰기를,
"삼가 아룁니다. 하늘은 지극히 크고 땅은 대단히 넓으니, 넓고 커서 무어라 명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름이라는 것은 그 사실을 명명한 것이니 그러한 사실이 있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칭호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희(伏羲)가 《역(易)》을 만들 때 하늘의 굳셈을 상징하여 ‘건(乾)’이라고 이름하였고 땅의 두터움을 상징하여 ‘곤(坤)’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대체로 하늘은 크고 땅은 넓은데도 오히려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오로지 그 굳건하고 그 두터운 것이 모두 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름을 붙이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겸양하신 요(堯) 임금과 공순하신 순(舜) 임금의 덕으로도 방훈(放勳)과 중화(重華)라는 칭호에 대하여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는 내용이 역사책 어디에 보입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훌륭한 임금과 명철한 왕후의 도리는 오직 하늘과 땅을 본받고 요순을 본받는 것뿐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사람 관계가 가깝기로는 아비와 자식 사이보다 더한 사이가 없으니 그 간절한 소망은 지극하고 절실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며, 의리로는 임금과 신하 사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그 말은 모두가 똑같은 논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과 아비의 지극히 자애롭고 인자한 마음으로 또한 그 심정을 헤아려 논의를 따라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신이 하소연한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윤허가 언제 내려질지 아득하기만 하니, 온 마음이 답답하여 목욕재계하고 간절히 호소합니다. 굽어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생각건대 우리 전하께서 뛰어난 상성(上聖)의 자질로 거듭 빛나는 국운을 이으셨으니, 보위에 오를 점괘에 합치된 것은 문제(文帝)가 한 나라의 왕업을 넓힌 것과 같고 몸소 경외(敬畏)를 실천하신 것은 고종(高宗)이 은(殷) 나라의 왕도(王道)를 부흥시킨 것과 같습니다. 대왕대비께는 효성으로 섬기는 정성을 다 바쳐 금박 옥책(玉冊)을 올렸고, 익종(翼宗)의 사당에는 대대로 제사 지내는 예를 정하여 아름다운 제사 그릇에 향기가 넘치도록 하였습니다. 선대 임금을 거울삼아 법을 준수했으며, 백성들을 화목하게 하여 천명(天命)이 영원하기를 기원했습니다. 하루 세 번 경론하고 접견하시면서는 그 크신 위용이 해와 달처럼 빛났고, 모든 정사를 총괄하시면서는 밤낮 근심으로 전전긍긍하셨습니다. 문교(文敎)를 펴시니 흘러넘치는 교화가 강물처럼 성대하였고, 형정(刑政)을 신중히 하시니 인자하고 자애로운 성품이 마치 봄날의 햇빛처럼 따사로웠습니다. 백성들이 혹 굶주리기라도 하면 곡식을 실어다가 먹이고, 한 번이라도 수해나 가뭄의 재난이 생기면 내탕전(內帑錢)으로 구제하시니, 따뜻한 은택이 아래에까지 미쳐 온 나라가 평온하였고 아름다운 복이 위에서 빛나 여러 해 동안 풍년이 들었습니다. 전하의 훌륭한 무예로 재앙을 두 번이나 쓸어 버렸고 신묘한 계책으로 군사의 위용이 일신(日新)되었습니다. 보위에 오르신 뒤로 25년 동안 예악(禮樂)을 밝혀 다스린 훌륭한 정치는 온 나라를 적셔 한 세대 동안 삼대(三代)의 태평세월을 누렸으니 모든 임금들보다도 뛰어나십니다. 아! 훌륭합니다.
또한 우리 중궁 전하는 성인의 배필이 되는 덕을 지니시니 〖《시경(詩經)》〗의 〈갈담장(葛覃章)〉에 어울리고, 국모(國母)의 지위에서 자손을 번성하게 하는 상서로운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지극한 다스림을 도와서 교화가 온 나라에 실현되었으니 당(唐) 나라 임금의 어진 배필도 말할 것이 못되고, 훌륭한 옥음(玉音)을 내려 칭송하는 소리가 후궁(後宮)에 떠들썩하니 주(周) 나라 왕실의 어진 왕비가 오늘 다시 살아난 것 같습니다. 지난날 나쁜 운수가 지나가고 태평스럽게 된 것은 하늘이 도와주신 덕이고, 위기가 전환되어 안정을 되찾으니 왕실의 운수(運數)가 길어졌습니다. 이는 실로 종묘사직의 더없이 큰 경사로서 역사에도 없는 성대한 일입니다.
생각건대 우리 두 분 전하의 지극히 인자하고 성대한 덕이 이와 같이 밝게 빛나니, 존호를 올리는 떳떳한 의식에 대해 또한 이렇게 칭술(稱述)하는 것은 바로 백성들의 양심과 만물의 법칙에 당연한 이치입니다. 더구나 열성조(列聖朝)께서 이미 거행하여 우리 왕가의 예법에 있으니, 아래에서 청하고 위에서 따르는 것이 어찌 그것을 계승하는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신이 여러 차례 간청한 것은 신의 사적인 말이 아니라 온 조정의 모든 관료들이 한 목소리로 호소하고 온 나라의 백성들이 손을 모아 축원하는 일입니다. 비록 우리 전하께서 성인으로 자처하지 않고 겸양하고 또 겸양하시지만 어떻게 온 나라 사람들의 한결같은 심정을 끝내 막을 수 있겠습니까? 두려움을 생각지 않고 감히 번거롭게 상소를 올리니, 바라건대, 성상께서 마음을 돌려 흔쾌히 윤허함으로써 성덕(聖德)을 빛내고 사람들의 축원에 부합되도록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네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서 이런 일을 하니, 의젓하게 성장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일을 허락하지 못하고 아직도 이렇게 주저하는 것이 또한 어찌 참작하는 것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겠는가?"
하였다.
- 【원본】 29책 25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8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왕실-비빈(妃嬪)
初四日。 王世子率百官, 詣勤政殿庭請啓: "伏以惟天至大、惟地至博, 蕩蕩乎無能名焉。 而名者, 名其實也, 有其實則不得不有其名。 是以包犧作《易》, 象天之健而名之曰‘乾’、象地之厚而名之曰‘坤’。 蓋天地之大且博焉, 而猶得以名之者, 亶以其健、其厚, 皆其實也, 其所以名之, 容可已乎? 故雖堯讓舜恭之德, 其於勳華之稱, 曷嘗有謙而不居之文, 見於丌上之冊也哉? 臣竊謂聖主、哲后之道, 惟體天地而法堯、舜而已。 且親莫如父子, 而其懇由至切之情; 義莫如君臣, 而其言出大同之論, 則以君父止慈、止仁之心, 亦庶諒其情而循其論。 今臣陳籲歷日, 兪音邈然, 滿心齎鬱, 繼以悶隘, 齋沐申控, 以冀垂察焉。 洪惟我殿下, 挺上聖之姿、拊重熙之運, 兆叶庚橫, 文帝之恢漢業也, 躬行寅畏, 高宗之興殷道也。 長樂盡尊奉之誠, 而煥爛乎金泥瑤牒; 禰室定世獻之禮, 而苾芬乎雕纂玉豆。 監先王而成憲是遵, 諴小民而永命是祈。 三畫講對, 巍巍日月之光明; 萬機總攬, 兢兢宵旰之憂勤。 敷文敎則洋溢之化, 沛然若江河; 欽刑政則仁愛之性, 藹然如陽春。 匹夫匹婦之或飢, 則船粟以哺之; 一水一旱之爲災, 則帑金以賑之。 闓澤究於下而九宇謐, 嘉休昭于上而屢歲穰。 聖武所加, 廓氛祲之再掃; 神算所運, 壯軍容之日新。 自御極以來二十有五載, 禮樂聲明之治, 薰膄浸釀, 囿一世躋之春臺, 郅隆三代、卓越百王, 猗其盛矣! 亦惟我坤聖殿下, 德配聖人, 琴鐘諧《葛覃》之章, 位尊國母, 璋芾啓瓞綿之祥。 贊至治而化行八域, 唐宗之良佐, 不足道也; 闡徽音而頌騰六宮, 周室之賢妃, 今復作矣。 若夫頃年否往而泰, 蒼穹垂佑, 危轉而安, 璇闈延籙, 寔宗社莫大之慶、史牒未有之盛也。 惟我兩聖深仁、盛德, 有如是熙洽, 則顯號彝章, 亦如是稱述, 卽民彝、物則當然底理。 而伏況列聖朝已行、我家禮自有, 則下之所以請之、上之所以從之, 豈不爲繼述之美事乎? 且臣之屢懇, 非臣之私言也。 滿庭百僚, 齊聲而籲; 率土群生, 攢手而祝。 縱我殿下, 聖不自聖, 謙而又謙, 其何可終遏擧國之同情也哉? 不揆嚴畏, 敢此冒瀆。 伏願聖上勉回宸聽, 快賜允可, 以光聖德、以副輿頌焉。" 批曰: "爾之有此心爲此擧, 可喜其儼然夙就。 而惟此事之不能勉許, 猶此靳持者, 亦豈無斟量而然也?"
- 【원본】 29책 25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8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