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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23권, 고종 23년 7월 29일 경신 3번째기사 1886년 조선 개국(開國) 495년

원세개가 조선 정세를 논함이란 글을 써서 의정부에 보내다

원세개(袁世凱)가 ‘조선 정세를 논함〔朝鮮大局論〕’이라는 글을 써서 의정부(議政府)에 보냈다.

그 글의 내용에,

"조선은 동쪽 모퉁이에 치우쳐 있는 나라로서 영토는 3,000리(里)에 불과하고 인구는 1,000만 명도 못되며 거두어들이는 부세도 200만 석(石)이 못되고, 군사도 수천 명에 불과하니 모든 나라들 중에서도 가장 빈약한 나라입니다.

지금 강대한 이웃 나라들이 조여들고 있는 때에 사람들은 안일만 탐내고 있습니다. 역량을 타산해보면 약점만 나타나서 자주 국가로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강국의 보호도 받는 데가 없기 때문에 결코 자기 스스로 보존하기 어려운 것은 자연적인 이치로서 천하가 다 아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부유하고 강대한 나라들이 구주(歐洲)에 많이 있으니 영국(英國)과 프랑스〔法國〕를 끌어들여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라고 말하므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다. 영국과 프랑스는 남의 나라를 망치고 남의 영토를 탐내므로 호랑이를 방안에 끌어들인 것처럼 필경은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다른 나라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있어 그 힘이 동시에 미치기 어려우므로 채찍이 길다 해도 말에 닿을 수 없는 것과 같은 형편이다.’라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이 ‘영국과 프랑스를 믿을 수 없다면 독일〔德國〕과 미국(美國)은 어떠한가?’라고 하므로, 대답하기를, ‘독일은 병력이 강대하고 미국은 나라가 부유하지만 사건을 발생시키기를 좋아하지 않고 남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잘하지만 먼 나라에는 뜻을 두지 않으므로 함께 도모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그렇다면 서로 인접하고 있는 러시아〔俄國〕에 의지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므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진짜로 문을 열고 도적을 불러들이는 것으로서 나라의 존망에 대해 생각할 줄 모르는 것이다. 대체로 러시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아주(亞洲)를 욕심내어 항구를 점령하고 계속 수사(水師)를 주둔시켜 병탄(幷呑)할 뜻을 이루려고 하는데 만일 조선을 먹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를 먹겠는가? 끌어들이지 않아도 곧 올 것인데 불러들일 것이 있는가?

그런데 지금 곧 오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을 바로 서북 일대의 배치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블라디보스톡〔海參葳〕 항구가 겨울이 오면 얼어붙어 길이 막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겸하여 국내의 내란이 끝나지 않았으며 재정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수사가 영국만 못한 데다가 영국이 서쪽에서 경계하면서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고, 육지로는 터어키〔土耳其〕를 막아야 할 형편인데, 터어키가 정말 뒤로부터 공격해 온다면 러시아는 군사를 동원하는 데 수개 월이 걸려야 할 것이다.

한 번 남보다 뒤떨어지게 되면 이전의 공적도 다 헛일로 될 것이므로 러시아가 경솔히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러시아가 결국 한 번은 야욕을 채우려고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실정에서 자체 방어도 못하겠는데 어떻게 남을 원조해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또, ‘구주에서 원조를 받을 계책이 없다면 아주의 일본밖에 없지 않는가?’라고 하므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더욱 저속한 논의이다. 일본은 영토가 조선과 비슷한 나라인데, 서법(西法)을 적용하여 공리(功利)만 강조함으로써 겉으로는 강한 것 같지만 안은 비었으며, 당쟁이 번갈아 일어나 자기 자신도 돌볼 겨를이 없는데 어느 틈에 남을 돕겠는가? 뿐만 아니라 본성이 교활하여 이익만을 노리므로 그와 화친 관계는 맺을 수 있어도 의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또, ‘만약에 조선중국(中國)과 관계를 버린다면 앞으로 나라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므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조선은 본래 중국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 중국을 버리고 다른 데로 향하려 한다면 이것은 어린아이가 자기 부모에게서 떨어져서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조선중국에 의지하면 유리한 점이 여섯 가지가 있다.

중(中) 한(韓)은 인접하여 있고 수륙(水陸)이 서로 잇닿아 있으므로 천진(天津)·연대(烟臺)·여순(旅順)·오송(吳淞)의 군함이 하루 이틀이면 각 항구에 와 닿을 수 있으며, 봉천(奉天)·길림(吉林)·훈춘(琿春)의 육군들은 10일이면 한성(漢城)에 와 닿을 수 있다. 아침에 떠나 저녁에 와 닿을 수 있으므로 유사시에 마음대로 통할 수 있으니 그 역량을 믿을 만하다. 이것이 첫째로 유리한 점이다.

중국은 천하를 한 집안처럼 여기고 변방의 나라들을 한몸처럼 대하기 때문에 한 번 변란이 생기면 즉시로 평정한다. 장수를 임명하고 군사를 출동시키는 데 군사 비용을 아끼지 않으며 물자 공급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임오년(1882)과 갑신년(1884)에 이미 실천한 사실이 있으니 그 은혜를 믿을 수 있다. 이것이 둘째로 유리한 점이다.

중국은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보살핌에 있어서 지극히 어질게 대하고 의리를 다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를 중국의 군현(郡縣)으로 만들지 않고 그 지역에서 조세로 받지 않으며, 다만 입술과 이의 관계를 든든히 하여 인민이 편안하기만 바랄 뿐이다. 겉으로는 복속된다는 명색을 띠지만, 안으로는 실제 영토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자자손손이 무궁토록 보전될 것이니 그 심정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셋째로 유리한 점이다.

중국조선을 돌보아준 지 이미 수백 년이 되었으므로 상하(上下)가 다같이 의뢰하고 신하와 백성들이 기꺼이 따른다. 만일 구장(舊章)을 성심으로 따른다면 온 나라가 편안히 지내게 되고 정령(政令)도 쉽게 시행될 것이니 그 혜택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넷째로 유리한 점이다.

강대한 이웃 나라들이 주위에서 염탐하면서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고 노리고 있지만 만약에 중국조선이 굳게 결합되어 틈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보며, 조선은 오직 중국에 의지해 있고 중국은 곧 조선을 돕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호랑이와 같은 야망도 저절로 사그라질 것이며, 누에처럼 먹어 들어가려는 마음도 없어질 것이니 그 위력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다섯째로 유리한 점이다.

중국조선을 믿어 의심하지 않으며 조선중국을 굳게 믿게 된다면 내란도 일어나지 않고 외부의 침략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니, 이런 때에 정령을 바로잡고 어질고 능력있는 사람들을 등용하여 생각을 가다듬어 정사를 잘하게 되면 나라의 부강을 점차 이룩할 것이니 그 계기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여섯째로 유리한 점이다.

조선중국을 배반하면 네 가지 해로운 점이 있다.

옛날부터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면 친하던 사람은 점차 멀어질 것이며 멀어지면 반드시 의심을 사게 되는 것이며 멀어진 사람을 친하려고 하면 반드시 의심을 사게 되는 것이다. 멀어진 사람을 친하려고 하면 친하려 할수록 더욱 꺼려하게 되는 것이다. 의심과 꺼림이 생기면 화가 즉시에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첫째로 해로운 점이다.

중국을 배반하고 자주(自主)를 하자면, 형세로 보아 반드시 구주의 나라들을 끌어들여다 원조를 받게 될 것인데, 구주의 나라들의 본성이 잔인하여 남을 침략할 것을 꾀하므로 많은 선물과 달콤한 말로 백방으로 회유하여 틈을 타서 들어와서는 반드시 먼저 그 이권을 빼앗고 그 다음에는 중요한 지역을 점령할 것이다. 이것이 둘째로 해로운 점이다.

중국조선과 아주 가까이 있는데 조선이 하루아침에 다른 나라의 소유로 된다면 결코 좋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륙으로 동시에 진출하여 재빨리 남보다 먼저 상륙하여 잠깐 사이에 대병력이 경내를 뒤덮으며 비록 구주에 구원해 줄 군사가 있다 하더라도 사태가 급하게 되어 그것을 기다릴 사이도 없이 조선은 벌써 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셋째로 해로운 점이다.

조선에서 지금 붕당(朋黨)이 일어나고 있고 반란도 계속되고 있는데, 만약에 한 번 중국을 배반하게 되면 상하가 서로 의심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이탈하고 배반하여 중국에서 군사를 일으켜 죄상을 따지기도 전에 내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이 넷째로 해로운 점이다.

유리한 점은 저렇고 해로운 점이 이러하니 굳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러나 중국의 강대성은 구주(歐洲)만 못하니 조선이 구주를 끌어들여다 자기를 보위한다 해도 중국에서는 기필코 따지지는 못할 것이다. 월남(越南)과 버마〔緬甸〕에서 있었던 사실을 보지 않았는가?’라고 말하므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월남과 버마는 먼 바닷가에 외따로 있지만 조선중국의 바로 옆에 있다. 북쪽으로는 발상지인 성경(盛京)001) 과 아주 가깝고 서쪽으로는 천진(天津)연대(烟臺)의 요충지로 견제하고 있어서 조선이 없으면 동쪽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므로 중국으로서는 군사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마에 대해서는 허용하고 월남에 대해서는 좀 늦출 수 있었지만 조선은 결코 놓칠 수 없다.

조선이 만일 중국을 배반한다면 중국은 필연코 재빨리 군사를 동원하여 신속히 와서 점령하는 것을 상책으로 삼을 것이다. 그 때 가서 구주에서도 군사를 동원하여 승부를 다투게 될는지 꼭 알 수는 없지만 나그네와 주인의 형세는 이미 결정되었으므로 중국은 편안히 앉아 멀리서 오는 피로한 적들과 맞닥치게 될 것이며, 또 구주가 어떻게 군사를 모두 긁어가지고 동쪽으로 오면서 그 배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국의 병력이 구주만 못하지만 정병이 30만이고 전선(戰船)도 100여 척(隻)이 되며 해마다 들어오는 수입도 6,000만 석(石)이나 되므로 만약 일부 부대를 출동시켜 조선을 점령하려고 한다면 돌로 달걀을 깨듯이 쉬울 것이다.’ 라고 하니,

어떤 사람이 비웃으면서, ‘공의 말과 같다면 이것은 조선중국를 몹시 두려워한다는 말인데 중국조선중국를 두려워하듯이 오히려 구주를 두려워하는데 어떻게 구주를 방비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므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그렇지 않다. 중국은 영토가 넓고 백성들이 많으며 나라 안은 태평하다. 그래서 군사를 모두 동원하여 사람들을 죽여 들판에 차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진 사람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지 구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프랑스와의 전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중국을 두려워하는 것은 옳지만 구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조선이 병든 나라이므로 서인(西人)이 전력을 다하여 차지하려고 꾀하지만, 중국이 반드시 대병력으로 도와줄 것이니 그들이 군사를 오래도록 동원하고 군량을 소비한데도 얻는 것으로는 잃는 것을 보상할 수 없을 것이며 더구나 꼭 얻을 수도 없지 않는가?

조선이 만약에 밖으로 예의를 다하여 외교하고 안으로 중국의 원조를 받는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함부로 속이고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해마다 있는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모두 중국 사람들이 스스로 손을 쓴 것이지 어찌 다른 사람들이 억지로 시켜서 한 것이겠는가?’라고 하니, 어떤 사람이, ‘만약 그렇다면 조선은 끝내 자주(自主)를 할 가망이 없겠구나.’ 라고 말하므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웬 말인가? 조선은 자기 나라를 자체로 통치하고 자기 백성들을 자체로 거느리며 각 나라들과 조약을 맺어 자주국(自主國)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만 중국의 관할을 받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만일 남의 신하로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자주라고 한다면 이것은 문자상의 체면이나 유지하는 것이지 나라가 망하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헛된 이름을 취하려다가 실화를 당하게 될 것이며 아침에는 황제라고 부르다가 저녁에는 벌써 파면될 것이니 어느 것이 성공하고 실패하겠는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가령 조선의 백성들이 많고 나라가 부유하며 정병(精兵)이 수십 만이 되어 아주에서 강대한 나라라고 불리면서 자립을 도모하려고 한다면 혹시 기대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상하가 단합되지 않았으며 나라는 쇠약하고 백성들은 빈곤하다. 만약 아주 가깝고도 강대하며 아주 어질고도 공정한 하나의 나라를 찾아서 비호를 받으려 한다면 중국을 제쳐놓고 어느 나라를 따르겠는가?

중국에 의지하여 스스로 보존할 것을 도모한다 해도 오히려 다른 걱정이 있을텐데 더구나 다른 나라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라고 하니, 어떤 사람이 이 말을 다 듣고 나서 훤히 깨닫고,

‘공의 말은 참으로 눈을 틔워주고 귀를 열어주었으니 약도 침도 이만은 못하다.’"

하였다.

원세 개(袁世凱)가 또 주상전하(主上殿下)에게 상소를 올렸는데,

"생각건대 제가 조선에서 사업한 지 이제 5년이 되었습니다.

임오년(1882) 가을과 겨울부터 이미 전하가 생각을 가다듬어 정사를 잘하여 나라의 부강을 이룩하는 데 뜻을 두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애쓰며 몹시 고심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하가 단합되지 않고 나라는 쇠약하며 백성들은 가난하므로 변고가 계속 일어나서 위태롭기가 마치 달걀을 쌓아놓은 것과 같으니 정사를 잘해보자는 전하의 애초의 마음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것입니다.

만일 전하가 자신에게서 그 잘못을 찾는다면 온 나라 사람들이 타당하지 않다고 할 것이며, 정신(廷臣)들이 자신이 그 잘못을 책임진다면 공정한 논의가 또한 그렇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 까닭을 찾아본다면 대개 위에서 정사를 잘하려는 생각이 있지만 소인들이 그만 그르치기 때문입니다.

만일 진짜로 정사를 잘하자고 한다는 것을 인정받자고 하게 되면 지난 몇 해 동안에 시행하여 성과를 거두지 못한 계책들을 응당 모두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전대로 해나간다면 정사를 잘하려고 해도 성과는 없고 변란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갑신년(1884)의 변란을 살펴보건대, 김옥균(金玉均) 등은 자체로 노력하여 나라를 튼튼하게 할 계책을 극구 진술하고 자주(自主)를 할 방침을 은밀히 제기하여 전하의 생각을 유혹시키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좀 쓰게 되자 대신들을 죽이고 전하를 협박하여 거의 뒤집어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제기한 말을 한 번 생각해보면, 그들의 심보나 행사(行事)와는 근본적으로 서로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소인들이 임금의 생각을 혼란시켜 권세와 이익을 얻으려고 하여 겉으로는 외부의 원조를 끌어들여 나라를 강하게 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외부의 원조를 이용하여 국정을 혼란시키는 것이므로 그들의 모략이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전하가 10월 17일 이전에 그들의 마음을 살피고 행사를 헤아려 의심을 하고 막았더라면 이러한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 간계(奸計)가 그대로 실현되어 헤아릴 수 없는 변란이 생겼더라면 전하는 천백 년이 지나도 씻을 수 없는 원한을 어떻게 발명(發明)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적신(賊臣)들이 처단되어 위태로운 것이 안정 상태로 전환되었습니다.

저는 소인들의 음모가 이제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전날의 실패는 오히려 교훈으로 될 것이니, 이것을 역시 조선이 잘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워지거나 하는 하나의 커다란 전환의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휴가를 받아 고향에 돌아가서 두어 달 집에 있다가 지난겨울에 다시 와서 일을 하면서 가만히 정세를 보니, 앞으로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밤낮으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수다스런 말로 여러 신하들을 타일러 전하를 존중하고 종사(宗社)를 영원히 공고히 하여 신민을 보전하도록 했으나 생각과는 달리 힘이 약하고 재능이 적어 빈말로 되어 도움이 되지 못해 마침내는 금년 7월의 사변이 있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소인들은 모두 지위가 낮고 명망이 보잘 것 없으며 품은 뜻이 비루하여 부귀와 이권(利權)을 탐내는 것입니다. 지위가 낮고 명망이 보잘 것 없으면 반드시 그럴듯한 말로 전하의 귀를 솔깃하게 하여 믿어주게 하고, 품은 뜻이 비루하면 반드시 아첨을 들어주게 하여 전하가 가까이 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가까이 하고 믿는 것이 오래된 다음에는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는 말을 조작하고 신기한 이론을 만들어서 전하를 유혹시키는데 한 번 그 술책에 빠지면 구원할 길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전하도 때를 보아 변혁을 한다면 자강(自强)할 수 있지만 소인들이 오로지 이것을 빙자하여 조정(朝政)을 개혁하고 대신들을 죽여 자기 한몸의 부귀와 권력과 이익을 위한 계책으로 삼고, 나라를 망치는 화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수 있으니, 김옥균(金玉均)의 전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인들이 감언(甘言)과 휼계(譎計)는 아주 쉽사리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하는 김옥균 등이 평소에 제기한 말들을 사람을 시켜 책에다 죄다 써서 곁에 두시고 수시로 봄으로써 명백한 교훈으로 삼기 바랍니다. 만일 소인들의 계(啓)가 이들의 말과 부합되는 것이 있으면 그들을 김옥균과 같이 보고 계속하여 그들의 심보와 행사하는 것을 살핀다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비근하고 지극히 평이한 명백한 증거이니 전하를 위한 염려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소인들은 자기가 등용되기만 하면 반드시 부국강병(富國强兵)할 계책이 있다고 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직권을 줄 것을 요청하는데 정사를 어지럽히고 나라를 그르치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 자가 드뭅니다. 원세개(袁世凱)가 여기서 일한 5년 동안에 전하를 도운 것이 몇 차례 되는데 마음 속에 늘 잊을 수 없으니 어떻게 차마 전복될 위험을 가만히 앉아서 보면서 구원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는 때때로 좋은 약이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이롭다는 것을 생각하여 원세개가 눈물겹게 속만 태우는 일이 없게 해준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삼가 비유하는 말 네 가지와 당면한 일 열 가지를 제기하려고 하니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1. 나라를 세우는 것은 집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조선중국과 서로 인접한 가까운 이웃입니다. 동쪽의 이웃집이 무너지면 서쪽의 이웃뜰과 마루도 반드시 쉽사리 밖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저는 서쪽의 이웃집 사람입니다. 동쪽의 이웃집이 기울어져가는 것을 보고 매일 동쪽의 이웃집 문 앞에서 외치기를 ‘집을 급히 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무너진다.’라고 하면 똑똑한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그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응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보고도 멍하게 있으면서 도리어 동쪽의 이웃집이 기울어지는 것이 서쪽 집에 무슨 상관인가라고 하면서 매일 태연히 지내면서 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하찮게 여길 것입니다.

이리하여 마음이 몹시 상한 사람은 그 후부터 반드시 문을 닫고 들어앉아 기둥이 넘어지고 대들보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도 형편을 물어보지도 않지만 동정심이 많은 사람은 계속 수고와 나무람도 마다하지 않고 때때로 애를 쓰면서 이웃집이 무너질까봐 염려합니다. 더구나 제가 여러 차례 수리까지 대신해주었는데 조선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 조선은 못쓰게 된 배와 같습니다. 재목은 다 썩고 돛은 다 떨어져 나가버렸으니 나무와 돛을 바꾸어 튼튼하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보는 사람이 다시 수리할 힘이 없다 하더라도 수시로 물이 새는 곳을 조사해 보고 방도를 세워 메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같은 배에 나쁜 놈이 있게 되면 배 안에 있는 돈을 가지려고 물이 새는 곳을 메우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를 일부러 요동시켜서 침몰시킨 다음에 돈을 가지고 도망칠 것입니다.

저는 주장(舟匠) 같이 여러 차례나 대신 수리했습니다. 전하와 여러 신하 및 백성들은 모두 배를 탄 사람들인데 만일 배를 요동시키는 대로 내버려두고, 주장(舟匠)이 잠깐이라도 소홀히 여기고 미처 수리하지 못하면 배 안의 사람들은 떠내려가다 어디서 빠져 죽을지 모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지난겨울부터 오늘까지 10달도 못되었는데 처음에는 뮐렌도르프〔穆麟德 : Möllendorf, Paul George von〕의 사건이 있었고, 계속하여 김옥균(金玉均)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금년 7월 사건이 있었으니 벌써 배를 요동시켜 침몰될 뻔한 적이 3차례나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배 만드는 주장의 임무를 담당했으니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 치국(治國)은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선의 병은 골수에 든 병입니다. 훌륭한 의사는 반드시 좋은 약을 보내줍니다. 그러나 좋은 약은 입에 씁니다. 앓는 사람은 그것이 병에 이롭다는 것을 모르고 싫증을 내며 거절합니다.

이런 때 달콤한 맛이 있는 것을 권하는 사람이 있으면 병자는 그것이 입에 맞는다고 기뻐하면서 먹습니다. 한 번 먹으면 병이 더해지고 두 번 먹으면 병이 아주 심해져서 구원할 수 없게 되어서야 달콤한 맛이 있는 것을 권한 사람의 해독을 알게 되지만 사실은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4. 나라는 사람의 몸과 같습니다. 몸에 비록 화려한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집안이 거덜이 나서 아무런 먹을 것도 없다면 무엇으로 살아나가겠습니까?

치국자(治國者)는 우선 내정(內政)을 닦고 그 다음에 바깥 정사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비유해 말하건대 오늘 배가 부르다면 의복은 남루해도 손상될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고 굶주림을 참지 못할 형편이라면 아무리 날마다 비단옷을 입은들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당면한 일 열 가지에 대한 의견을 올리려고 합니다.

1. 대신 임명에 대한 문제〔任大臣〕

대신이란 다 국은(國恩)을 입은 사람으로서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벼슬이 높아지고 녹봉이 많아진 이상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국가를 편안히 하고 종사(宗社)를 보존하는 영원한 계책을 세우는 것입니다. 국가가 영원해지면 곧 그들의 녹위(祿位)도 영원하고 종묘와 사직도 영원할 것이며, 그들의 공훈도 명예도 영원해질 것입니다.

더구나 여러 대신들 가운데는 일을 많이 겪어보고 대의(大義)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특출한 공로를 세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역시 대사를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니 그들을 믿고 일을 맡긴다면 백성들은 따르고 나라가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니, 반드시 관리로 등용했다면 의심하지 말아야 하며 의심스러우면 반드시 등용하지 말아야 일이 잘 이루어질 것입니다.

2. 간사한 신하들을 멀리 하는 문제〔屛細臣〕

세신(細臣)은 자기 한 몸의 명리(名利)에만 급급한 나머지 국가의 안위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한 번 벼슬자리를 얻게 되면 자그마한 충성과 믿음으로 남의 마음을 안정시키며 자그마한 좋은 일과 선심으로 남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달콤한 말과 교묘한 계책을 백방으로 쓰다가 심하게 되면 매국(賣國)하고 영예를 구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게 될 것이니, 그 해독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소인들도 쓸만한 잔재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단지 각 관청에 소속시켜서 그의 장점을 나타내게 하면 되는 것이고, 날마다 임금의 곁에 있게 하여도 안되며 국정에 함께 참가시켜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가령 김옥균(金玉均)홍영식(洪英植) 등에게도 처음부터 전하를 가까이하는 권한을 주지 않고 각 관청의 밑에만 돌게 했더라면 갑신년(1884)의 변란이 일어날 리가 있겠습니까?

3. 여러 관청을 이용하는 문제〔用庶司〕

한 사람의 총명과 재능으로는 결코 이러저러한 복잡한 정사를 다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요(堯) 순(舜)같은 성인에게도 번거로운 사무를 맡아서 하지 말라고 경계한 신하가 있었던 것입니다.

크고 작은 일을 다 위에서 처리하는 것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는 법입니다. 신하들을 멀리하면 소인이 이 틈을 타서 나라의 권력을 몰래 틀어쥐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겉으로는 권력이 위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벌써 아래로 옮겨가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폐단으로서 오늘 만국에는 없는 일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여러 관청에 분임(分任)하고 전하는 그 큰 줄기만 틀어쥐고 잘잘못을 가려서 상벌을 분명하게 적용한다면 수고하지 않고도 제대로 다스려질 것이며 떠들 것도 없이 일이 제대로 되어갈 것입니다.

4. 민심을 얻는 문제〔收民心〕

지금 민심이 흩어졌으니 시급히 돌아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민심은 나라의 근본입니다. 근본이 흔들리고서야 지엽(枝葉)이 무성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민심을 얻는다는 것은 자그마한 은혜를 베푸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마다 큰물과 가뭄, 전염병으로 백성들의 곤궁이 극도에 이르렀으니 만일 한두 가지의 가장 나쁜 정사를 제거하기 위하여 힘을 쓰고, 다시 각사 대신들과 의논하여 어진 수령을 등용하고 백성들과 함께 이로운 일을 장려하고 해로운 일은 제거하게 하며 임기를 길게 하여 그들의 업적을 전최(殿最)한다면 백성들은 모두 선뜻 감화되어 메아리가 울리듯 형체에 따라 그림자가 비추듯이 될 것입니다.

5. 시기심과 의심을 푸는 문제〔釋猜疑〕

이때까지 상하가 서로 의심을 품으며 사람마다 자기 몸만 생각했는데 바로 이 때문에 모든 일이 날마다 잘못되어 가서 진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하가 침체된 것을 추켜세우고 의심을 깨뜨리며 결단하여, 의심스러운 사람은 파면시키고 믿을 만한 사람을 임명하여 사람마다 각기 자기의 장점을 다 힘써 나타내도록 하며 시기하고 의심하던 것을 얼음이 풀리듯이 싹 풀리게 한다면 신하들이 분발하여 당면한 곤란한 문제들을 함께 타개할 것이며, 정치가 날로 잘 되어 나갈 것입니다.

6. 재정을 절약하는 문제〔節財用〕

수입을 타산해서 지출하는 것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다같이 그러한 것입니다.

근래에 창고의 저축이 줄어들고 국채(國債)가 늘어났으나 사실을 놓고 말하면 한 가지도 효과 있게 쓰이지 못하고 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이용되었으며, 소인들은 한갓 나라의 부강을 도모한다는 명색 밑에 저들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전환국(典圜局)·제약국(製藥局)·기기국(機器局)을 설치하며 윤선(輪船)을 사오는 등과 같은 문제들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조선의 형편을 놓고 논한다면 이런 것부터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내정을 바로잡아 재물을 마련할 길을 열고 절약하는 일에 힘써서 나라의 재정이 넉넉해지고 집집마다 사람마다 풍족하게 되었다는 것이 인정된 다음에 차례로 시행해서 부강을 서서히 도모해야 합니다.

만일 재정의 출입을 타산하지 않고 단지 겉치레만 많이 한다면 앞으로 성과는 없고 낭비만 날로 더해질 것이며 재정은 고갈되어 더욱 빈약해질 것이니 지금 고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7. 신하들의 말을 신중히 듣는 문제〔愼聽問〕

인군(人君)이란 한 나라의 원수입니다. 슬기있는 신하이건 어리석은 신하이건 모두 다 임금이 자기 의견을 채택해 줄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보면 매우 나쁜 놈들이 사변을 꾸며내어 재화를 다행으로 여기면서 그 속에서 이득을 얻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속이는 것입니다. 임금의 의도를 타산해가지고 이익으로 유혹시키되 임금의 마음에 들고 귀에 솔깃한 소리를 하기도 하며 혹은 당장 큰일이 날 것 같은 말을 하여 두려워하기만 바랍니다. 이런 잡류배들을 죄를 줄 것이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자들입니다.

신하들의 말을 들을 때는 우선 그 말이 이치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따져보며 계속해서 그 말이 과연 진실한가, 진실하지 않는가를 살펴보고 조금이라도 속이는 데가 있으면 먼 지방으로 내쫓음으로써 의견을 제기하는 길을 깨끗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명확히 알고도 그대로 쓴다면 이것은 곪은 곳을 짜버리지 않고 근심을 남겨두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첨하는 말을 하는 자들은 날로 많아지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날로 적어질 것이니 나라의 복으로 될 수 없습니다.

바른 말을 받아들이고 아첨하는 말을 거절하는 것은 은탕(殷湯)주무왕(周武王)이 흥성하게 된 까닭이며 아첨하는 말을 받아들이고 바른말을 거절하는 것은 하걸(夏桀)은주(殷紂)가 망하게 된 까닭이었습니다. 지난 시기의 교훈이 먼 옛날의 일이 아니니 어찌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8. 상과 벌을 정확히 주는 문제〔明賞罰〕

대체로 상벌은 정령의 근본이며, 인심에 관계된 문제입니다. 상은 반드시 신의가 있게 하고 벌은 어김없이 집행해야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신하들을 통제도 하고 처벌도 할 수 있습니다.

법사(法司)에서 처결을 공정하게 하고 출척(黜陟)을 엄격히 하여 털끝만치도 사견(私見)을 가지지 않는다면 상벌이 명백해지고 정사에 대한 명령이 집행되며 사람들의 마음도 다 밝은 데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9. 친할 사람을 가까이 하는 문제〔親所親〕

중국조선은 서로 의지한 지 수백 년이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굳게 결합되어 온 것도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며 아침에 떠나면 저녁에 당도할 수 있게 잇닿아 있으니 위급한 일을 함께 타개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친밀하게 서로 의지한다면 외인(外人)이 자연히 이간질을 할 수 없고 떠도는 말도 저절로 없어져서 인심이 그 덕에 안정되고 종사(宗社)가 그 덕에 영원히 굳건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른바 친밀하게 지낸다는 것은 겉치레나 하는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서로 성의를 다해 관계하며 두 나라가 한마음이 되어 피차간에 서로 믿으면 어떤 일이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중국이 성원하면 외부의 침입이 생길 수 없으므로 얼마든지 생각을 가다듬어 정사를 잘하여 나라의 부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데 무슨 이롭지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10. 외교를 조심하는 문제〔審外交〕

외교란 만국의 이목이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서 또한 나라의 중요한 일이니 외서(外署)들이 성실하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밖으로는 예의를 다하고 안으로는 믿음을 보여야 우의(友誼)를 오랫동안 두텁게 하여 각기 서로 편안히 지내게 됩니다.

만일 명령이 한결같지 않고 정사도 여러 갈래로 나온다면 각국의 웃음거리로 될 뿐 아니라 앞으로 외인에 의심을 사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측한 심보를 가진 나쁜 놈들이 사단을 빙자하여 우롱해서 집어삼킬 흉악한 계책을 실현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난리를 초래하는 길이 됩니다. 만약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할 것 없이 꼭 대신들과 공동으로 의논하여 처리한다면 어떻게 음모가 있을 수 있고 어떻게 은밀히 해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며 어떻게 갑신년의 변란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이상의 좁은 소견과 사리에 맞지 않는 논의는 오랫동안 쌓여있던 저의 생각으로서 다른 신하들도 능히 말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제 와서 비로소 전하에게 진술하는 것은 이 저의 계사에 대해 반드시 헐뜯는 사람들이 나타나 뒷전에서 말하기를, ‘원아무개가 우리의 내정에 간섭하려 하니 그 심보를 알 수 없으므로 말을 믿을 수 없다.’라고 할 것 같고 저는 그렇게 아뢰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하에게 아뢰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앞서 여러 신하들이 말했을 때에도 틀림없이 헐뜯는 사람이 있어 뒷전에서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보신(保身)할 것만 알았지 큰 계책에는 밝지 못하다.’ 라고 하면서, 모함하여 함정에 빠뜨려서 간교한 모략을 굳혔을 것입니다. 이래서 여러 신하들은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감히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헐뜯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건대, 어느 것이건 사람들을 모조리 사기를 잃고 패망하게 하여 거기에서 이득을 보려는 것이었으니, 이들이 김옥균 등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제가 늘 아뢰기를, ‘김옥균일본에서 찾아내려고 할 필요가 없으며 조선 안에서 생겨나는 김옥균을 막아야 한다.’ 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요즘에 듣자니 전하가 명철한 결단으로 전날의 잘못을 힘써 고치려 한다고 하기 때문에 감히 한두 가지 의견을 적극 제기하는 것입니다.

저의 본성이 고지식하므로 기탄없이 말했으니 잘 살펴주면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총리(總理) 원세개(袁世凱)에게 회답하기를,

"어제 보낸 편지를 보았는데 충고가 극진했습니다. 어리석은 이 몸을 가르칠 수 없다고 여기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타일러 주었는데 글자마다 약석(藥石)이 되어 글을 읽으면서 감격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천조(天朝)를 섬겨온 지 200여 년이 되므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황은(皇恩)을 입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근래에 와서 시국이 일변하면서 외교 관계가 더욱 넓어져가나, 이 나라는 문을 닫고 스스로 지키면서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홀로 지냈습니다. 이런 때에 천조에서 이끌어주고 일깨워주며 친목을 도모하고 협약을 토의 체결하여 서로 의지하게 했으니, 여기에서 천지가 만물을 덮어주듯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임오년과 갑신년의 변란이 생겨서 종사가 몹시 위태롭게 되고 사람들이 도탄에 빠졌는데 제때에 천조에서 군사를 출동시키고 재물을 쓴 덕으로 난리를 평정하고 위험에서 구원되게 되었습니다.

외인이 틈을 타서 책동할 우려가 있으면 그때마다 난리를 수습하기 위하여 번개처럼 빨리 와서 종사를 다시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여 나라가 다시 이전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또 계속 은혜롭게 보살펴 주었으니 이는 자신의 이익을 생각지 않고 도운 성대한 덕과 크나큰 은혜입니다.

필부필부(匹夫匹婦) 조차도 한 술의 밥을 얻어먹은 은혜에 대해서 갚을 생각을 하는데, 더구나 이전에는 섬겨온 의리가 있고 뒤에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은혜를 입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니, 그 은혜가 온몸에 사무치고 있는 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설사 잠시라도 잊으려 한들 천지(天地)와 같은 은혜를 어떻게 잊으며 신명(神明)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른 나라들이 외교 관계를 맺은 이래로 외진 나라에서 아는 것이 적고 근본이 공고하지 못한 데다가, 나이 젊고 경박한 무리들이 낡은 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해서 거짓말을 만들어 의혹되게 하는데 이것이 암둔한 나의 두통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옛글에는, ‘높은 태산(泰山)도 개미 구멍 때문에 무너진다.’ 라고 했습니다. 이 무리들을 두려워할 것은 못되지만, 혹 이 때문에 그릇된 말이 다시 많아질 것 같아서 엄하게 더 막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요언(謠言)이 여러 갈래로 생겨서 막자고 해도 이루 다 막을 수 없습니다. 이는 부모 형제간에서는 남들이 이간하는 말을 한다 해도 속으로 반성하면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족하(足下)는 우리 나라에 온 5년 동안에 좋은 일 궂은 일을 함께 치루었고, 환난도 같이 겪어서 나의 마음속을 족하가 다 알고 호응하기 때문에 위급할 때에 오직 족하에게 의거했으며, 족하 역시 이험(異驗)을 가리지 않고 남들의 말도 탓함이 없이 한결같은 정성으로 이 변방 나라를 보호함으로써 밤낮으로 이 나라를 생각하는 황제의 근심를 푸는 데 몸과 마음을 다하기를 하늘의 해가 비추듯이 하였으니, 우리 나라의 높고 낮은 사람들치고 그 누가 족하의 의리를 흠모하고 감격의 칭송을 하지 않을 것입니까?

근래에 이 나라의 정령이 하나도 집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 암둔한 내가 똑똑치 못해서 일처리를 잘하지 못하고 안팎의 여러 신하들은 우물쭈물하면서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족하만은 간곡하게 일깨워주며 시폐(時弊)를 명확하게 논하여 황제까지 보도록 했으니, 이것은 암둔한 나를 도와서 스스로 날로 새롭게 하는 성과를 거두게 해주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히 마음과 뜻을 깨끗하게 씻고 신정(新政)을 도모함으로써 고심어린 족하의 기대에 부합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족하는 두터운 우의를 아끼지 말고 때때로 교훈적인 말을 해줌으로써 나의 마음을 확 트이게 하여 언제나 막히지 않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삼가 회답을 보냅니다. 복을 받기를 빕니다."

하였다.


  • 【원본】 27책 23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43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외교-일본(日本) / 인물(人物)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 / 변란-정변(政變) / 교통-수운(水運) / 인사-관리(管理) / 재정-국용(國用) / 외교-청(淸)

袁世凱朝鮮大局論, 送于政府。 其論曰: "朝鮮僻處東隅, 幅員不過三千里; 丁口不及千萬; 徵賦不及二百萬; 兵不過數千人, 萬國中最貧弱之國也。 當玆强隣逼處, 人務偸安。 量力比權, 不惟孱弱, 徒形不能自主, 且無强國庇蔭, 斷難自存者, 自然之理, 天下所共知也。 或者曰: ‘富强之國, 多在歐洲, 是非引保護, 不可’, 曰: ‘未也。 亡人國家、利人土地, 如引虎入室, 必無噍類矣。 況越國隔遠, 力難兼顧, 有鞭長莫及之勢’。 或曰: ‘或不可恃, 何如?’ 曰: ‘雖兵强, 雖國富, 然不喜生事, 不欲助人, 自保有餘, 遠志則未, 未可與謀。’ 或曰: ‘然則求相與接壤之可乎?’ 曰: ‘是眞開門揖盜, 不知存亡之計也。 夫人, 久欲亞洲, 占據海口, 比住水師, 以遂其鯨呑之心, 如不取諸於, 將焉取之? 不引卽來, 乃招之乎? 此時之不卽至者何耶? 誠以西北一帶布置, 猶未周察, 海蔘威一口, 冬來氷堅, 無論阻滯, 兼之國中, 內患未已, 財政亦絀。 外而水師不及吉利, 忌于西而牽制之, 陸路宜防土耳其, 誠其後而襲躡之, 興兵當須數月。 一落人後, 前功盡棄, 之不敢輕動者勢也。 然之終欲一逞者, 亦情也。 此則防之不及, 尙何爲援之有?’ 或曰: ‘歐洲, 旣無可以爲援計, 惟有亞洲日本乎?’ 曰: ‘此更下愈沈之論。 日本疆域, 與等, 徒以致用西法, 侈言功利, 外强、中乾, 黨禍迭起, 自謀不暇, 何暇助人? 且性挍黠, 惟利是視, 此可與連和, 不可爲依賴也。’ 或曰: ‘若是乎朝鮮, 苟捨中國, 抑將無以爲國也’。 曰: ‘朝鮮本屬中國, 今欲去而之他, 是惟孺子自離其父母, 而求他人之顧復也。 且朝鮮而依中國, 其利有六。 毗連, 水陸相屬, 天津烟臺旅順吳淞之兵輪, 一二日可達各口; 奉天吉林琿春之旌旗, 十數日可抵漢城。 朝發夕至, 緩急能通, 其勢可恃。 此利一也。 中國視天下爲一家, 待藩封以一體, 一有變亂, 立矛削平。 命將出師, 不愛兵費, 不責供給, 壬午、甲申已歷行之前事俱在, 其惠可恃。 此利二也。 中國以大字小, 仁至、義盡, 不郡縣其國, 不租稅其地, 但期唇齒相固, 人民相安。 外託附庸之名, 內有土地之實, 子子孫孫, 永保無疆, 其心可恃。 此利三也。 中國撫恤朝鮮, 已數百年, 上下依賴, 臣民悅從。 若率由舊章, 誠心服事, 則朝野安堵, 政令易行, 其澤可恃。 此利四也。 强隣環伺, 耽耽其欲, 苟見固結, 無隙可乘, 知惟依, 必助, 自消其虎視之氣, 而泯其蠶食之心, 其威可恃。 此利五也。 而不疑, 而爲固, 內亂不作, 外侮無恐, 及是時修明政令, 任用賢能, 圖治勵精, 富强徐致, 其機可恃。 此利六也。 朝鮮中國, 其害有四。 不思舊好而結新交, 是親者漸疎, 疎則必疑。 疎者欲親, 親而愈忌, 疑忌互生, 禍不旋踵。 其害一也。 背中國而自主, 勢必引歐洲以爲援, 歐洲殘忍成性, 呑噬爲計, 幣重言甘, 百般欺誘, 得間而入, 必先奪其吾利之權而後, 據其土地之要。 其害二也。 中國密近朝鮮, 一朝爲他人有, 必不甘心, 水陸竝進, 捷足先登, 指顧之間, 大兵壓境, 縱歐洲有援救之師, 而已迫不及待, 朝鮮已亡。 其害三也。 朝鮮朋黨方興, 內憂不解, 倘一背, 則上下交疑, 人心離畔, 不待中國興師問罪, 而內亂已作。 其害四也。 以利如彼, 以害如此, 不待智者決也’。 或曰: ‘雖然, 中國之强, 不如歐洲, 歐洲自衛, 中國必不敢問。 不觀之已事乎?’ 曰: ‘否否。 , 僻處海荒, 朝鮮近在肘腋。 北則咫尺根本盛京之地, 西則控扼咽喉之衝, 無朝鮮, 是無東壁, 王者不得已而用兵。 故緬甸可容, 越南可緩, 而朝鮮斷不可失。 如背, 必飛師迅至, 據而有之, 以爲上策。 卽歐洲起而與爭, 勝負雖未可必, 而客主立勢已形, 以逸待勞, 歐洲豈能悉兵東來, 不顧其後哉? 中國兵力, 雖不及歐洲, 然精兵亦三十萬, 戰船亦有百餘艘, 歲入亦有六千萬, 如有出偏師, 以有朝鮮, 猶以石投卵。’ 或哂然曰: ‘如公所言, 是朝鮮之畏中國實甚, 中國尙畏歐洲, 如朝鮮之畏中國, 其何以待歐洲耶?’ 曰: ‘是又不然。 中國土廣、民衆, 海內淸平, 不肯黷武窮兵, 殺人盈野。 此仁人之用心, 欲安百姓而非畏歐洲也。 法郞西之役可鑑也。 若朝鮮則畏中國卽可, 不畏歐洲何也? 朝鮮疾苦之區, 西人卽用全力以圖之, 中國必有大兵相助, 老師糜餉, 得不償失, 矧未必能得乎? 朝鮮苟外交盡禮, 內有中國之援, 他人必不敢妄施欺凌, 試觀連年之事, 皆人之自引, 豈他人强爲之哉?’ 或曰: ‘若然, 則朝鮮終無自主之望矣。’ 曰: ‘是何言也? 朝鮮自君其國, 自子其民, 與各國立約, 互稱以爲自主, 不過受轄於中國耳。 如以不臣于人, 爲自主, 是徒取文字之體面, 而不顧宗社淪亡。 賈虛名受實禍, 朝稱帝夕已破滅, 得失之計, 判然可知矣。 假使朝鮮, 民殷、國富, 精兵數十萬, 稱强亞洲, 欲圖自立, 或可希冀, 方今上下解體, 國弱民貧。 如求一至近、至大、至仁、至公之國, 以庇蔭之, 舍中國其誰與歸? 謹依中國, 以圖自存, 猶有他慮, 況他國乎?’ 或者聞言, 恍然而悟曰: ‘公言眞發蒙、振隤, 藥石不如也’。" 又上書于主上殿下曰: "竊惟世凱, 于役邦, 迄今五載。 自壬午秋冬, 已見殿下有心于勵精圖治, 期趁富强, 昕夕勤勞, 意慮良苦。 而至今上下解體, 國弊、民貧, 變故迭生, 危如累卵, 於殿下求治之初心, 實有大相逕庭者。 如殿下自引其咎, 則朝野竊有未安; 廷臣自當其咎, 則淸議亦爲非是。 求其所以然之故, 蓋上有求治之心, 而小人因以誤之也。 如欲認眞求治, 則前數年已行無驗之謀, 劃應悉改。 如依前行之, 恐求治無功, 而變亂將起。 査甲申之變, 金玉均等, 侈陳自强之計, 密獻自主之謀, 蠱惑尊聽, 無所不至。 迨其稍有藉手, 而誅戮大臣, 脅迫殿下, 幾至一傾, 不可收拾。 試思其進言與居心行事, 夫固大不相合矣。 可知小人之辯亂君心, 希圖權利, 陽引外援以强國實, 陰著外援以亂國政, 其造謀非淺尠也。 設使殿下於十月十七日以前, 察其居心, 揣其行事, 而疑之防之, 當不至於此。 倘今日奸計遂生, 變生不測, 殿千百年不白之冤, 其將何以發明耶? 幸而賊臣誅戮, 轉危爲安。 世凱以爲, 小人之陰謀, 必不復熾, 前日之傾覆, 尙可引鑑, 是亦朝鮮治亂之一大轉機也。 迨世凱請暇歸省, 數月家居, 去冬復來從事, 而竊睹時勢, 又將有不堪期想也。 是以日夜呶呶, 舌弊唇焦, 勸戒諸臣, 期重殿下, 永固宗社, 以保臣民, 不謂力薄、才疏, 空言無補, 卒有今年七月之事。 夫小人者, 無罪地望疏微, 處心卑汙, 欲圖富貴而羡利權。 疎微則必以利口動聽, 而使殿下信之; 卑汙則必以諂諛爲聽, 而令殿下親之。 殆親信之旣久而後, 曲爲富强之說, 創爲新奇之論以惑之, 一入術中, 不知救止。 殿下亦爲因時變革, 庶可自强, 而不知小人, 特欲藉而改革朝政, 誅戮大臣, 爲一己富貴權利之計, 而不恤亡國破家之禍, 金玉均之古轍可思也。 然而小人甘言詭計, 最易察覺。 伏願殿下, 將玉均輩素日所進之言, 使人歷書于冊, 置之左右, 以時觀覽, 以爲炯鑑。 如有小人陳說, 與此符合者, 則以玉均視之, 繼察其居心行事, 當不爽矣。 此至近、至易之明證也, 爲殿下慮, 莫先於此。 如小人自謂可用, 必有富國强兵之術, 請因假以事權, 鮮不至變亂朝政、誤人家國者。 世凱從事於斯者五年, 匡輔者數次, 中懷熲熲, 豈忍坐觀顚危, 不思拯救? 所望殿下, 時思良藥苦口之利, 無令世凱, 徒勤涕泣之情, 則幸甚矣。 謹擬諭言四條, 時事至務十款, 乞採納焉。 一曰: ‘立國如室。 朝鮮中國, 東西比隣也, 東隣之室傾覆, 西隣之庭堂, 亦必易露於外。 世凱西隣人也, 見東隣之室將攲, 每日叫呼東隣之門前曰: 「家室宜急修理。 不然必傾。」 其智者聞之, 知其之不謬, 忻然應之, 其愚者視之, 漠然反以爲東隣室攲, 於西隣何干, 每日恬恬於斯, 不惟不應, 且甚恝恝。 於是, 傷心者, 必從此閉門, 聽其棟撓樑折, 不相問聞, 其多情者, 仍復不辭勞怨時時勤苦, 惟恐隣室之傾覆。 況世凱代修數次, 能不關心?’ 二曰: ‘朝鮮如破舟。 木已朽腐, 篷已零落, 必易木、換篷, 以求其固。 縱觀者無力重修, 亦當隨時査看漏處, 設法彌縫。 不謂同舟有小人, 希圖舟中金幣, 不惟不肯彌縫, 且故意搖撞, 使舟沈溺而後, 可携金幣而逃。 世凱充如舟匠, 以代修數次。 殿下及諸臣民, 皆舟中人, 如舟任其搖撞, 倘舟匠一時疎忽, 修理未及, 舟中之人, 不知漂沒何所矣。 世凱來此, 去冬至今, 不及十月, 始有穆麟德事, 繼以金玉均事。 況又今年七月事, 已撞其舟將沈者三。 世凱充當舟匠, 豈不歎哉?’ 三曰: ‘治國如醫病。 朝鮮病入膏肓, 善醫必送良藥, 然良藥苦口, 病者不知利於病, 遂惡而絶之。 於是, 有以甘美之味進者, 病者喜其適口而食之。 一食之病劇, 再食之病革, 其於不可救而後, 知進美味者之害, 而實則已晩矣。’ 四曰: ‘一國如一身。 身雖華麗其服, 而室如懸罄, 無飮無食, 何以能救? 治國者宜先修內政, 後務外規。 譬今日果腹充腸, 雖衣服簡陋, 亦無所損。 不然飢餓不堪, 卽日衣紋繡, 何以生? 此必然之理也’。 謹擬時事至務十款附呈。 一曰: ‘任大臣。 大臣者, 皆受國恩, 與同休戚者也。 其爵已顯, 其祿已榮, 所謀者無非安國家、保宗社永遠之計。 國家永遠, 則其祿位永遠也, 宗社永遠, 則其勳名永遠也; 況諸大臣中, 有閱歷多知大義。 縱不能建奇功, 亦不知僨大事, 信而任之, 民服國安, 亦須用立必不疑, 疑則必不用, 方能有濟’。 二曰: ‘屛細臣。 細臣急於一己之名利, 不顧國家之安危。 一得進幸, 能以小忠、小信, 固人之心, 小善、小惠, 悅人之意。 始則甘言巧計, 無所不至, 甚者賣國求榮, 何所不爲, 其爲禍可勝道哉? 夫小人者, 非無小才之可用。 然只可分隷各司, 效其從長, 而不可日親君側, 不可與同國政。 設使玉均 英植等, 初無親信之權, 只奔走於各司之下, 豈有甲申之禍?’ 三曰: ‘用庶司。 一人之聰明才力, 斷難勝萬機之紛紜, 故聖如, 尙有叢脞之戒者。 事無巨細, 必斷於上, 積久弊生。 疎之則小人因以隱竊政柄, 外若權歸於上, 其實已移於下。 此從古之弊, 而萬國之所無也。 將庶事分任於庶司, 殿下綜核其大綱領, 計其得失, 明其賞罰, 則不勞而自治, 不擾而自成。’ 四曰: ‘收民心。 此時民心渙散, 急須挽回。 民心爲邦本, 未有本動而枝葉能盛者。 然所謂收民心者, 非小恩、小惠之謂也。 連年水旱、疾疫, 民困已極, 如除一二極弊之政, 實力去之, 再由各司大臣, 議擧賢守令, 與民興利去害而久任之, 以課其殿最, 則民無非飜然而化, 如響斯應, 如影隨形者也。’ 五曰: ‘釋猜疑。 前者之上下交疑, 人盡謀身, 此事之所以日廢, 而不能振作也。 爲殿下振靡、起衰, 破疑乾斷, 可疑者退之, 可信者任之, 使人各盡其所長, 猜疑之間, 渙然氷釋, 則臣下感奮, 共濟時艱, 政治無不烝烝日進也。’ 六曰: ‘節財用。 量入爲出, 古今皆然。 近來庫儲支絀, 國債積累, 求諸事實, 則所爲無一成效, 皆急於不急之務, 小人徒藉富强爲名, 而自求利益。 如典圜局、製藥局、機器局輪船等事, 豈非善擧? 然以朝鮮時勢論之, 則不宜及此, 宜先修內政開財之源, 而認其力行節用之事, 國幣裕如, 家給人足, 然後次第擧行爲之, 徐圖富强。 如不量財賦之出入, 而只務外規之侈大, 將成效無而糜費日益, 財用竭而貧弱愈甚, 失今不治, 不可爲矣。’ 七曰: ‘愼聽問。 君人者, 一國之元首, 臣下賢愚, 皆賴君上採擇。 每有不肖群小, 希圖事變, 幸災樂禍, 於中取利, 欺罔之弊, 百計叢生, 揣摩上意, 因以利誘之, 或甘心悅耳, 或聳辭危語, 只冀恐動。 此乃雜類輩可罪而不可近者也。 聽言須先審其言之能否近理, 繼察其言果否屬實, 稍有欺罔, 則屛棄遠方, 以淸進言之路。 倘明知而姑用, 是養癱而遺患。 將讒言者日見其多, 正言者日見其少, 非國家之福也。 引正去讒, 之所以興; 引讒去正, 之所以亡。 殷鑑不遠, 可不愼諸?’ 八曰: ‘明賞罰。 夫賞罰者, 政令之本, 而人心之所係也。 賞必信、罰必行而後, 可以治國, 臣下或恐、或罪。 使有司論斷, 一秉公正, 嚴其黜陟, 不存一毫私見, 賞罰明而政令行, 人心亦洽然歸明矣。’ 九曰: ‘親所親。 相依, 數百年矣。 人心固結, 亦非一日, 朝發夕至, 緩急可共。 眞能親密相依, 則外人自不能間, 訛謠亦自息, 人心賴以奠安, 宗社賴以水固。 然所謂親密者, 非外面之文具也。 必推試相與, 兩國一心, 彼此相信, 無事不濟。 況有中國之聲援, 外侮不作, 正可勵精圖治, 力謀富强, 亦何不利之有?’ 十曰: ‘審外交。 外交者, 萬國之耳目所係, 而亦爲國之要務也。 宜責任外署, 認眞周旋, 外則盡禮, 內示以信, 方可久敦友誼, 各自相安。 如號令不一, 政出多門, 不但取笑於各國, 竝將見疑於外人。 且有不肖輩之居心叵測, 藉端愚弄, 以自逞其狡惡鯨呑之計, 取亂之道也。 如事無巨細, 必由大臣公議處之, 何至有陰謀, 何至有隱害, 何至有甲申之變?’ 以上管見、迂論, 以下忱之所久蓄積, 而皆諸臣之所能言也。 今乃始陳於殿下者, 如世凱言之, 必有讒人議其後曰: ‘袁某將干豫我內政, 居心叵測, 不可聽信’, 世凱明知其無益, 故不心仰瀆聰聽也。 前此諸臣言之, 必有讒人議其後曰: ‘此人只知保身, 不明大計’, 構誣坑陷, 以固奸謀, 此諸臣明知其無益而不敢出也。 揣諸讒人之心, 無非欲人盡解體, 聽其敗亡, 而以自取利, 此與金玉均等何異? 世凱每曰: ‘不必於日本玉均, 須防于朝鮮內生玉均’, 良以此也。 近聞殿下聰明決斷, 力去前非, 故敢有昧陳其一二。 素性戇直, 語無顧忌, 尙乞亮察是幸。" 上賜答袁總理書曰: "昨接來圅, 忠告偲切。 不以寡昧爲不足敎, 悉心規勉, 字字藥石, 薇讀之餘, 不勝感佩。 今弊邦, 服事天朝, 二百餘年, 頂踵毛髮, 無非皇恩。 近日時局一變, 外交滋廣, 弊邦閉門自守, 寂若無聞。 寔賴天朝開導勸誨, 講信修睦, 俾得商立妥約, 互相維持, 此可以見天地覆燾至公無私之心。 繼以邦運不幸, 有壬午、甲申之變, 宗社危如綴旒, 人心陷於塗炭, 輒賴天朝勞師費財, 靖難扶危。 或恐外人乘衅, 而動輒救亂赴急, 疾如影形, 使我宗社再奠, 人民安堵, 封履如舊。 且又恩庇勤育, 不言所利之盛德大惠也。 匹夫匹婦, 雖受一飯之惠, 尙思圖報, 況前有服事之義, 後蒙再造之恩, 非一非再, 浹骨淪肌? 雖欲暫忘, 其如天地何, 如神明何? 但自通外交以來, 偏邦寡識, 根本不固, 年少輕淺之徒, 或厭舊喜新, 譸張爲幻, 此寡昧之所疾痛者也。 語云: ‘泰山之高, 決於垤壤’, 此輩雖不足畏, 或恐因此而訛誤更多, 嚴加防範, 猶是謠言多岐, 防不勝防。 猶父母兄弟之間, 人雖間言, 內省慙慄, 不知攸措。 足下來東五載, 甘苦與同, 患難與共, 不佞之肺腑肝膈, 惟足下是悉, 呼應緩急, 惟足下是依, 足下亦不憚夷險, 不恤人言, 斷斷爲保護藩邦, 以紓宵旰東顧之憂, 一片赤心, 天日照臨, 東方大小民人, 孰不慕足下之義, 而欽佩感誦哉? 邇來弊邦政令, 一不修擧, 實緣寡昧不明, 處置迷方。 內外諸臣, 媕婀不言。 足下獨懇懇示誨, 洞論時弊, 至徹聖鑑, 蓋欲玉成寡昧, 修其自新之效也。 敢不洗心滌意圖惟新政, 以副足下責望之苦心乎? 惟願足下勿吝金石, 時賜言箴, 使豁蹊茅不常之塞焉。 肅此備覆。 順頌日祉。"


  • 【원본】 27책 23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43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외교-일본(日本) / 인물(人物)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 / 변란-정변(政變) / 교통-수운(水運) / 인사-관리(管理) / 재정-국용(國用) / 외교-청(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