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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22권, 고종 22년 12월 26일 경인 1번째기사 1885년 조선 개국(開國) 494년

경우궁을 인왕동에 이건하도록 하다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을 인견(引見)하였다. 【영의정(領議政) 심순택(沈舜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홍집(金弘集)·김병시(金炳始)이다.】 하교하기를,

"경우궁(景祐宮)이 얼마나 엄숙하고 공경스러운 곳인가? 그런데 한번 역적 무리들이 침범해서 더럽힌 뒤부터 너무도 놀랍고 두려워서 어느 하루도 마음속에서 잠시나마 잊은 적이 없었다. 사당(祠堂)을 옮겨 짓는 문제는 체모로 볼 때 아주 신중히 하여야 할 문제일 뿐 아니라 또한 일을 크게 벌이는 것에 관계되기 때문에 오늘에야 비로소 경(卿) 등을 소견(召見)하여 토의하는 것이다."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옮겨 짓는 문제에 대해서 지금 명령을 받았는데 신(臣) 등이 늘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던 차이니 어찌 우러러 흠앙하는 마음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일은 지극히 중대하고 신중히 해야 할 일인 만큼 먼저 가장 좋은 터를 선정한 다음에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육상궁(毓祥宮) 근처의 인왕동(仁王洞)이 좋을 것 같다. 그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을사년(1845)에 순원 왕후(純元王后)께서 늘 이곳에 대하여 말하였으며 이번에 대왕대비(大王大妃)께서도 이곳이 합당하다고 하교하셨다. 내가 사당을 옮기려고 생각한 지 오래지만 더없이 중대한 일이므로 감히 문득 정하지 못하였다."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신은 풍수에 대해 본래 어둡기 때문에 감히 망령되게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전하의 명령에 이미 순원 왕후께서 평소에 말씀하신 것을 들었으며 또 대왕대비의 하교도 들었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이른바 하늘과 땅이 아끼고 감추었다가 오늘을 기다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 터는 이미 육상궁과 가까운 데다 또 시어소(時御所)와도 가까우므로 신명의 이치로 보나 사람의 정리로 보나 거의 서로 멀지 않습니다. 속히 명령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육상궁을 옮겨지을 때에는 도감(都監)을 설치하지 않고 단지 감동(監董)이라고만 불렀다."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체면상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그때의 감동이 바로 김 판부사(金判府事)의 종조부(從祖父)가 아닌가?"

하니, 김홍집이 아뢰기를,

"경우궁을 지을 때 신의 종조부가 감동 대신(監董大臣)으로 있었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옮겨짓는 문제는 새로 짓는 것과 다른데 도감과 감동 중 어느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는가?"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감동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김홍집이 아뢰기를,

"이제 전하의 명령을 받드니 궁묘(宮廟)를 옮겨짓는 것이 공경하고 조심하는 도리에 부합됩니다. 신은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하고, 김병시가 아뢰기를,

"공경하고 조심하는 입장으로서는 과연 타당하지 못하지만 대왕대비께서 하교하셨으니 신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저경궁(儲慶宮)육상궁을 옮겨지을 때에 모두 도감을 설치한 전례가 없었으니 이번에도 이대로 진행하라."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이미 전례가 있으니, 그 전례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오늘이 바로 경우궁의 기신제(忌辰祭) 정일(正日)이기 때문에 경 등과 의논해서 진행하고자 한 것이다."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오늘 하문하신 것으로써 전하의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일체 영조(英祖) 갑진년 등록(甲辰年謄錄)대로 진행하라."

하였다.


  • 【원본】 26책 22권 73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23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건설-건축(建築) / 왕실-종사(宗社) / 주생활-택지(宅地) / 왕실-비빈(妃嬪)

二十六日。 引見時原任大臣 【領議政沈舜澤、判府事金弘集·金炳始】 。 敎曰: "景祐宮是何等肅敬之地? 而一自逆徒犯汙之後, 萬萬驚悚, 未嘗一日暫忘于中。 然至於祠宇移建, 事體極宜審愼, 節次亦涉張大, 至今日, 始召見卿等而詢議矣。" 舜澤曰: "以移建事, 今承下敎, 臣等常所憧憧之餘, 曷勝欽仰? 而此事至重大、極難愼, 先定無上吉地然後, 可以行之矣。" 敎曰: "毓祥宮近處仁王洞似好。 而嘗聞乙巳年間, 純元王后常言此處, 今東朝亦以‘此處可合’爲敎, 予之經營者久矣。 而事係莫重、莫大, 不敢遽定矣。" 舜澤曰: "臣於堪輿家事, 素甚茫昧, 未敢妄論。 而今此聖敎, 旣聞純元聖后平日所嘗言者, 又有所承聆於慈聖下敎者, 此所謂‘天慳地祕, 以待今日’者也。 況其地, 旣近於毓祥宮, 又近於時御所, 神理人情, 庶不相遠。 伏願亟降成命焉。" 敎曰: "毓祥宮移建時, 不設都監, 只稱監董矣。" 舜澤曰: "事體似然矣。" 敎曰: "其時監董, 卽金判府之從祖耶?" 弘集曰: "景祐宮營建時, 臣之從祖, 爲監董大臣矣。" 敎曰: "移建節次, 異於營建節次, 都監與監董之稱, 何以則可乎?" 舜澤曰: "以監董稱之, 似好矣。" 弘集曰: "今承聖敎, 宮廟移建, 允合敬謹之道, 臣無容他見矣。" 炳始曰: "敬謹之地, 果是未安, 而又有慈聖下敎, 臣無容更達矣。" 敎曰: "儲慶宮毓祥宮移建之時, 皆無設都監之例, 今亦可以依此行之矣。" 舜澤曰: "旣有往例, 援而行之, 恐好矣。" 敎曰: "今日卽景祐宮忌辰正日, 故欲與卿等相議而行之矣。" 舜澤曰: "今日下詢, 尤光聖慕矣。" 敎曰: "一依英廟甲辰謄錄行之也。"


  • 【원본】 26책 22권 73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23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건설-건축(建築) / 왕실-종사(宗社) / 주생활-택지(宅地)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