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언 오성선의 상소와 박응세의 일 등에 관하여 의정부에서 아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전 정언(前正言) 오성선(吳成善)이 올린 상소에 대한 비지(批旨)에, 묘당(廟堂)에서 품처(稟處)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여기에서 진술한 세 가지 문제는 바로 요즘 조정과 민간에서 다같이 근심하고 있는 것으로서 모두 다 백성들을 해치고 나라를 해치며 법을 파괴하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주장한 말이 과연 조리가 있었고 새로 법을 세우자는 것도 아니니, 이것은 전례를 따르고 법을 지키게 하자는 주장입니다.
지난해 진영(鎭營)을 없앤 것은 원래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만약에 영장(營將)이 제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게 하였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도적의 발호가 갈수록 더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기찰하고 염탐하는 일을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나, 백성을 다스리는 재상이 다시 도적을 다스리는 일을 주관하는 것은 형편상 매우 곤란하여 시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제 한 아문(衙門)을 시켜 오직 그 책임만을 수행하도록 한다면 이것은 진영을 다시 설치하는 방편만 못합니다. 한갓 진영만을 다시 설치하고 적임자를 선발하지 못하면 도리어 설치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일이 관직 제도에 관계되는 만큼 원임 대신(原任大臣)과 전관(銓官) 및 각 영사(營使)에게 물어서 처리하도록 하소서.
나라가 있으면 반드시 조운법(漕運法)이 있으며 법을 경영함에 있어 더없이 엄한 것입니다. 분창(分倉)과 삯을 내고 배를 빌리는 문제와 관련하여 생기는 폐단을 제거하느라고 새 폐단을 만들어내는 데 대하여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한탄하고 애석해하고 있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만약 이미 지나간 일을 구명하고 앞으로의 일을 염려한다면, 옛 제도처럼 삼창(三倉)을 설치하되 그 도차(都差)를 영구히 정하지 못하게 하고 각 고을에서 차례로 돌려가며 임명하게 하며,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있는 대로 제때에 짐을 싣고 떠나며 뱃삯을 일정한 수량대로 물고 정비(情費)를 턱없이 받는 것을 금지시키며, 적임자가 영솔하고 운반하게 한다면 어찌 축나는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일이 매우 정당하고 농간을 부리는 구멍을 막을 수 있으므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충분하게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이 세미(稅米) 운반에 대한 정사에 관계되는 만큼 원임 대신과 호조(戶曹)·선혜청(宣惠廳)의 당상(堂上)에게 물어서 처리하도록 하소서.
흉악한 역적의 집에서 인륜을 무시하고 양자(養子)를 파(罷)하였으며 연좌죄에서 모면한 데 대하여 그 누구인들 놀라 근심하며 탄식하지 않겠습니까? 원래 더없이 엄격한 법이 있으니, 오직 다시 강조하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각 해사(該司)에 특별히 신칙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물어볼 필요 없다.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지금 전라 감사(全羅監司) 윤영신(尹榮信)의 장계(狀啓)를 보니, ‘전주(全州)에 사는 전 가선 대부(前嘉善大夫) 김시풍(金始豐)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멀고 가까운 곳을 두루 다니며 돈과 재물을 마련하는 한편 위험을 무릅쓰고 도적 무리 열여섯 놈을 차례로 체포하였습니다. 응당 특별히 표창하는 은전(恩典)을 시행해야 할 것이니,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체포한 도적 무리들로 말하면 정상과 자취가 끝없이 흉악하고 아주 고약하여 보통 도적에 비할 바가 아닌데, 김시풍이 재물을 마련하고 꾀를 써서 자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도적을 체포함으로써 백성들을 위하여 해를 제거하였으니, 특별히 표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장(領將) 자리가 나는 대로 임명하여 보내어서 조정에서 고무하여 표창하는 뜻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형조(刑曹)에서 박응세(朴應世)의 문제에 대하여 사실을 조사하여 초기(草記)를 올린 데 대하여 묘당에서 품처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천륜(天倫)은 이미 부자(父子) 사이로 정해졌고 나라 법은 나라를 어지럽힌 역적에 대하여 더없이 엄한데, 엄한 법을 피하자는 생각에서 정해진 인륜 관계를 바꿀 것을 청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인간의 도리로서 차마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지난번에 이미 이전 직함으로 상소하여 논한 것과 관련하여 복계(覆啓)한 것이 있었으나, 다시 밝히자는 뜻에서 자연히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 박응세가 거화(擧火)하여 모독한 죄에 대하여 해조(該曹)에서 법조문에 근거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그런데 추조(秋曹)의 보고를 보니, 박정화(朴鼎和)의 첩의 아들 박응학(朴應學)은 바로 박정화가 첩으로 삼은 지 석 달 만에 낳은 자입니다. 제 자식이 아닌데 제 자식이라고 하며 제 핏줄이 아닌데 다른 핏줄을 제 핏줄이라고 속이는 것은 윤리를 문란 시킨 데 크게 관련됩니다. 그러니 이제 단지 공술(供述)에 근거하여 곧바로 처결하도록 의논할 수 없는 만큼 그 문중(門中)으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하여 의심이 없게 한 뒤에 해조에서 품처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 【원본】 26책 22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09면
- 【분류】교통-수운(水運) / 정론-정론(政論) / 사법-법제(法制) / 군사-지방군(地方軍) / 가족-가족(家族) / 인사-관리(管理)
議政府啓: "前正言吳成善上疏批旨, 有令廟堂稟處之命矣。 蓋此三條臚陳, 卽近日朝野所共憂者, 而皆害民、害國與壞防之事也。 其所論說, 果有條理, 不是創新立制也, 是遵舊守經之論也。 向年鎭營革罷, 出自不獲已, 而苟使營將, 能職其職, 安有是也? 竊發愈往愈熾, 譏詗不可不嚴, 而治民之宰, 復管治賊, 勢甚難便, 行有不得。 今欲使一衙門, 得專其責, 則莫如鎭營復設之爲方便。 然徒復其營, 不擇其人, 則反不若不復之爲愈矣。 事係官制, 下詢原任大臣、銓官、各營使處之。 有國必有漕, 經法莫嚴, 及乎分倉, 賃船祛弊生弊, 有識歎惜, 厥惟久矣。 今若究其已然、慮其將然, 三倉之設, 一如舊制, 以其都差, 勿許永定, 使各邑而輪差有序, 按《大典》而裝發趁期, 船價準數, 情費禁濫, 領運有人, 寧憂虧欠? 事面甚正, 奸竇可塞, 雖不大段費力, 庶可十分收效矣。 事係漕政, 下詢原任大臣、戶惠堂處之。 凶逆家罷養之蔑倫、免坐之潰防, 孰不爲之駭惋憂歎? 而自有莫嚴之憲章, 惟在申明之而已。 以此另飭於各該司何如?" 敎曰: "不必詢問, 依所啓爲之。" 又啓: "卽見全羅監司尹榮信狀啓, 則‘全州居前嘉善金始豐, 不分晝夜, 周行遠近, 辦出錢財, 冒危涉險, 賊黨十六漢, 次第捕捉, 合施別般論賞之典。 請令廟堂稟處’矣。 現捉賊徒, 情與跡之窮凶、絶悖, 有非尋常竊盜之可比。 而金始豐辦財設計, 挺身冒險, 夥數捕獲, 爲民祛害, 不容不另加論賞。 營將隨窠差送, 以示朝家奬褒之意何如?" 允之。 又啓: "因刑曹朴應世査實草記, 有令廟堂稟處之命矣。 天倫已定於父子, 國法莫嚴於亂逆, 而圖逭嚴法, 請易定倫, 是豈人道之所忍爲哉? 向日旣因前銜疏論, 有所稟覆者, 其於申明之義, 自在勿施, 朴應世擧火冒瀆之罪, 令該曹照法勘處。 觀於秋啓, 朴鼎和妾子應學, 卽鼎和畜妾三朔而所生者也。 非其子而稱己子, 非其姓而冒他姓, 大關倫常, 瀆亂極矣。 今不可只憑供辭遽議直斷, 使其門中, 覈眞無疑而後, 令該曹稟處何如?" 允之。
- 【원본】 26책 22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09면
- 【분류】교통-수운(水運) / 정론-정론(政論) / 사법-법제(法制) / 군사-지방군(地方軍) / 가족-가족(家族)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