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고종실록 22권, 고종 22년 6월 9일 병자 5번째기사 1885년 조선 개국(開國) 494년

경상도에 향교와 서원의 직임을 주지 않는 일에 관해 김진우 등이 상소하다

경상도(慶尙道) 안동(安東)의 유생(儒生) 김진우(金晉祐) 등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작년 가을 경주(慶州) 유생인 진사(進士) 이능모(李能模)가 원통한 사정을 하소연한 것과 관련하여 내린 비지(批旨)에서, ‘억울한 것을 풀어주는 조치가 있어야 하겠으니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자세히 조사하여 조처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도신(道臣) 조강하(趙康夏)가 성상의 비지(批旨)를 받들고 열읍(列邑)에 감결(減結)하여 신칙하기를, ‘내직(內職)으로는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지내고 외직(外職)으로는 병사(兵使)나 수사(水使)를 지내는 사람이 연이으며 심지어 종묘(宗廟)의 제사에는 모두 다 축사(祝司)의 관리로 추천되고 문묘(文廟)의 제사에는 다같이 헌관(獻官)과 집사(執事) 반열에 참가하니 조정에서는 차별이 없고 성균관(成均館)에서도 두루 통한다. 그런데 어째서 경상도(慶尙道) 한 지역에서만 견문이 막히고 제한하는 데에 빠져서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직임을 주지 않고 조상의 제사에서 배척하면서「신유(新儒)와 구유(舊儒)의 차이는 백세(百世)를 가도 고칠 수 없다.」라고 말하니, 이 사람들로 하여금 원통한 마음을 품게 하고 화기(和氣)를 손상시키기에 충분하다. 한번 내린 임금의 말을 어떻게 감히 조금이라도 대양(對揚)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억울함을 풀어주는 조치로는 유임(儒任)을 통행(通行)시키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혹시 구유(舊儒)라고 칭하면서 행패를 부리는 못된 짓을 답습하는 경우에는 이름을 지적하여 치보(馳報)하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조처하라는 내용으로 엄하게 신칙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예안(禮安)의 도산 서원(陶山書院)은 임금의 명에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윤리를 무시하고 상도(常道)를 해치는 변고가 이를 계기로 자주 생기게 되었습니다.

전 참의(前參議) 이만도(李晩燾)와 유학(幼學) 이만응(李晩鷹)은 임금의 명을 거역할 계책을 제창하고 겸해서 개인적인 감정을 푸는 말을 마구 하였습니다. 여러 이씨(李氏)들을 서원 뜰에 많이 모아놓고 그 서자(庶子) 족속의 항렬(行列)이 높은 자 몇 사람을 잡아다가 뜰 아래에 결박하여 꿇어앉히고 장(杖)을 치고 태(笞)를 치며 노예처럼 취급하고는 ‘서자(庶子) 부류를 허락하지 말라.〔勿許庶類〕’라는 네글자의 글을 크게 써서 벽에다 붙였습니다.

그런데 본읍(本邑)의 현감(縣監) 이학연(李鶴淵)은 조정의 명령을 거행할 생각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교지를 받드는 신유(新儒)들을 잡아들이고 형리(刑吏)를 시켜 ‘조령(朝令)’이라는 두 글자를 먹으로 지워버리게 하고는 형장을 세 차례 엄하게 쳐서 몇 달 동안 단단히 가두어 놓고 있으니, 아! 통분할 일입니다.

교화에 저항하고 임금의 명을 거역한 무리들이 예로부터 많았지만 이 무리들처럼 군명(君命)을 어기고 기강을 문란시키는 자들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는 잘 살펴서 헤아려보고 빨리 왕부(王府)로 하여금 명을 거역한 죄를 다스리고, 특별히 엄한 교지(敎旨)를 내려 각도(各道)에 행회(行會)하여 향교·서원·향당(鄕黨)의 여러 직임을 속히 통행(通行)시켜서 사람 축에 낄 수 있게 하고 전하의 혜택을 영원히 칭송하게 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만약 상소의 내용과 같다면 악랄한 습성이 놀랄 만하니 도신으로 하여금 하나하나 자세히 조사하여 등문(登聞)하게 하라."

하였다.


  • 【원본】 26책 22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01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慶尙道 安東儒生金晉祐等疏略: "昨秋慶州儒生進士臣李能模之鳴冤也, 批旨若曰: ‘宜有疏鬱之政, 令道臣詳査措處。’ 道臣趙康夏奉承聖旨, 甘飭列邑曰: ‘內而淸顯歷敭, 外而梱鉞相望, 以至宗廟之享, 竝擬祝司之任, 太學之祀, 同參獻執之列。 無間於朝著, 流通於儒宮。 而夫何嶠南一域, 蔽於見聞, 泥於防限, 校、院之任, 焉而不與之, 祖先之廟, 焉而擯斥之? 名之曰新舊, 百世而不改, 使斯人含冤齎鬱, 適足干和。 一哉王言, 曷敢不對揚萬一? 而措處疏鬱, 莫先於儒任之通行。 如或有稱以舊儒, 襲謬行閙之弊, 指名馳報。’ 以爲別般措處之意嚴飭, 而禮安陶山, 非但不有君命, 蔑倫、敗常之變, 因此層生。 前參議臣李晩燾、幼學臣李晩鷹, 倡爲方命之計, 兼售逞私之說, 大會諸李於院庭, 捉致其庶族之行尊者幾人, 縛跪庭下, 杖之、笞之, 視同奴隸, 大書勿許庶類四字, 揭付壁上。 本邑縣監李鶴淵, 不惟朝令之不思奉行, 乃反捉致奉旨之新儒, 使刑吏墨削朝令二字, 嚴刑三次, 牢囚數月。 噫嘻! 痛矣。 梗化、方命之徒, 從古何限, 而豈有如此輩之違越君命、壞亂人紀者乎? 伏願殿下俯垂鑑諒, 亟令王府, 以正其梗逆成命之罪, 特下嚴旨行會各道, 校院、鄕黨之諸任, 斯速通行, 獲參人類歌詠聖澤, 千萬至祝。" 批曰: "苟如疏辭, 悖習可駭。 令道臣一一詳査登聞。"


  • 【원본】 26책 22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01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