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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21권, 고종 21년 6월 17일 기축 5번째기사 1884년 조선 개국(開國) 493년

친기위의 일 등에 관하여 지현룡이 상소하다

부호군(副護軍) 지현룡(池見龍)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은 함경도(咸鏡道) 변경에서 나서 자랐으니, 함경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두만강(豆滿江) 북쪽과 백두산(白頭山) 아래의 분수령(分水嶺)을 기준으로 동쪽, 남쪽, 서쪽으로 1,000여 리 둘레의 비옥한 땅은 바로 선덕(宣德) 연간에 절제사(節制使) 김종서(金宗瑞)가 강토를 개척하여 목책(木柵)을 세운 지대이며, 지금 경원부(慶源府) 동북쪽 700리와 선춘령(先春嶺) 이남의 2,000여 리 둘레의 땅은 바로 고려(高麗) 때 시중(侍中) 윤관(尹瓘)이 고을을 설치하고 성을 쌓은 지대입니다.

강희(康熙) 계미년(1703)에 오라 총관(烏喇總管) 목극등(穆克登)이 칙지(勅旨)를 받들어 변방을 조사할 때에 돌을 캐어 비석을 세워 ‘서쪽은 압록강(鴨綠江)이고 동쪽은 토문강(土門江)이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에 이것은 실제로 중국에서 경계를 정해서 땅을 갈라놓은 것인데 까닭 없이 그 땅을 상국(上國)에 돌려준 것은 본디 예가 아닙니다. 삼가 바라건대, 상국에 자문(咨文)으로 진달하여 기어코 얻어냄으로써 영토를 넓히기 바랍니다.

또 특별히 농병사(農兵司)를 설치하고 농병(農兵)의 정원은 반드시 토지 차례의 자호(字號)로 대장을 작성한다면 군량은 실어오지 않아도 저절로 축적될 것이며 순차는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 것이니 그 이로움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금(金), 은(銀), 동(銅), 연(鉛), 철(鐵), 석탄은 우리나라에 없는 곳이 없으니 굳이 외국의 금을 이는 기계를 본받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삼태기로 일되 3분의 1은 공세(公稅)로 넘기고 3분의 2는 일꾼들의 몫으로 한다면 나라에서 경비를 들이지 않고도 광산의 일이 제대로 자리잡히게 될 것입니다.

또 이른바 친기위 포군(親騎衛砲軍)이라는 명색은 보고 듣기에 모두 낯설 뿐 아니라 지휘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고 있으니 특별히 외무 교련사(外務敎鍊司)를 설치하여 친기위 포군 중에서 나이 30세 이하의 힘이 세고 건장한 자들을 선발해서 늠료(廩料)를 후하게 지급하고 별기(別技)를 배우게 한다면 1년이 못되어 1,000여 명의 정예병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진달한 여러 조목은 시폐(時弊)를 논한 것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살피지 않아 망령되고 경솔한 말이 많으니 매우 놀랍고 한탄스럽다."

하였다.


  • 【원본】 25책 21권 56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62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병참(兵站) / 군사-지방군(地方軍) / 광업-광산(鑛山) / 정론-정론(政論)

    副護軍池見龍疏略: "臣生長於北邊, 請以北道聞見言之。 豆滿江白頭山下分水嶺東、南、西周回千餘里, 膏沃之土, 卽宣德年間, 節制使臣金宗瑞之拓疆立柵之地也。 今慶源府東北七百里, 先春嶺以南周回二千餘里地, 卽高麗侍中尹瓘建邑築城之地也。 康熙癸未, 烏喇總管穆克登奉旨査邊也, 伐石竪碑爲之記曰, ‘西爲鴨綠, 東爲土門。’ 然則實中國之定界割土也, 無緣而歸之上國, 由非禮也。 伏願咨陳上國, 期於得施, 以廣庭衢焉。 又特設農兵司, 農兵之額, 必以田次第字號成立案簿, 糧餉焉不運而自積, 挨次焉不敎而自明, 其利何如? 又五金、煤、炭無處無之, 不必倣外國之淘金械, 而必以畚溞取要, 三分一屬之公稅, 二分屬之役丁, 則國無經費而礦役就完矣。 又所謂親騎衛砲軍名色者, 耳目俱昧, 不知節制之如何。 特設外務敎鍊司, 以親騎衛砲軍中, 年限三十, 有膂力壯實者, 厚其餼料, 就學別技, 則不一年, 可得千餘精兵矣。" 批曰: "所陳諸條, 雖論時弊, 而句語多有妄率不審。 甚庸駭歎。"


    • 【원본】 25책 21권 56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62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병참(兵站) / 군사-지방군(地方軍) / 광업-광산(鑛山)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