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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21권, 고종 21년 윤5월 27일 경오 1번째기사 1884년 조선 개국(開國) 493년

의복 제도를 반대하여 대신들이 차자를 올리다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이 올린 연명 차자의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홍순목(洪淳穆), 영의정(領議政) 김병국(金炳國), 우의정(右議政) 김병덕(金炳德)이다.】 대략에,

"우리 왕조의 공복(公服)과 사복(私服)은 모두 명(明) 나라의 제도를 따른 것으로서 왕제(王制)로 된 만큼 오늘날 변통시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상의 하교 중에 ‘홍단령(紅團領)을 《대전통편(大典通編)》의 원전(原典)의 예에 따라 착용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신들은 어리석어 원전에 착용하지 말라는 문구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또한 반령착수(盤領窄袖)에 대해 말한다면, 이것은 공복 제도가 아닙니다. 심지어 사복은 단지 착수의(窄袖衣)나 전복(戰服)을 착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말하면 또한 원전에 실려 있는 예가 아닌데, 어디에서 취하여 갑자기 이런 신식(新式)을 내리셨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경서(經書)에 이르기를, ‘선왕의 법복(法服)이 아니면 감히 입지 못한다.’ 하였는데, 만약 한결같이 간편한 것만 가지고 말한다면 문장(文章)과 위의(威儀)를 어디에서 징험할 수 있으며, 또한 어찌 중국의 문물을 쓰는 듯이 되겠습니까?

요즘 병정들의 복제를 다른 제도로 고쳐 착용한 것도 이미 놀랍고 의혹스러운 일입니다. 이번에는 진신(縉紳)과 사민(士民)의 복제까지 아울러 하루아침에 고쳤으니, 이것이 어찌 후세에 법이 될 수 있겠으며 이웃 나라에 알려지게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성명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아 빨리 이전에 내린 교지를 거두시어 옛 제도를 보존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홍단령은 바로 《대전통편》 원전에 실려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이것은 착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상복(常服) 흑단령은 바로 선조조(宣祖朝) 때에 전교하여 규례로 정해서 행한 것이니, 어찌 옛 제도가 아니겠는가? 조참(朝參)과 상참(常參) 등의 때에 반드시 검은 옷을 착용하도록 한 것은 대개 검은 색을 중요하게 여기서이니, 이제 가벼운 것을 버리고 중요한 것을 따르려는 것이다.

반령착수에 대해서 말한다면, 일찍이 남전(南殿)의 1실(室)과 2실에 있는 어진본(御眞本)을 우러러 보았고 또 《대명회전(大明會典)》에서 상고할 수 있다. 홍색과 녹색의 공복(公服)은 본래 상복과 같지 않으므로 공복에는 복두(幞頭)와 야대(也帶)를 착용하고, 상복에는 사모(紗帽)와 품대(品帶)를 착용하는 것이니 합하여 논할 수 없을 듯하다. 사복(私服)은 비록 원전에 실려 있는 것이 없으나, 착수의, 전복(戰服), 사대(絲帶)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으레 착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생략하고 간편한 것을 취한 것일 뿐이지 애초에 신식을 만들어 행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변통한 상복과 사복은 《대전통편》《대명회전》을 원용하여 비추어보고 그대로 따른 것이니, 본래 으레 착용하는 옷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들어온 차자의 문구 중에 ‘법복이 아니면 입지 못하는데, 또한 어찌 중국의 문물을 쓰는 뜻이었겠습니까?’고 한 것은 전혀 들어맞지 않은 말이니, 매우 개탄할 노릇이다.

만일 혹 위로 조종(祖宗)의 법을 어기고 아래로 평민의 심정을 언짢게 한다면 내가 비록 지식이 얕고 사리에 어둡지만 어찌 이렇게 단연히 행하겠는가? 또한 병정들의 복장으로 말한다면, 적은 날랜데 우리 군사는 둔하므로 때에 따라 적의하게 한 것이니, 처음에는 철릭을 착용하게 하다가 변하여 군복이 된 것으로써 원래 일정하게 고수해야 할 규례는 없는 것이다. 화의(花衣)와 채고(綵袴)도 일찍이 무예(武藝)의 복장이 있었으니, 지금의 신제(新製)가 어찌 놀랄 만하고 의혹이 생길 만한 제도이겠는가? 지금 나라의 형세가 문약(文弱)하고 군사 제도가 해이하여 모두 구차하게 편안히 지낼 생각을 품고 모든 일을 하기 싫어한 결과 위의 명령이 아래에서 시행되지 않고 아래의 사정이 위에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때에 어찌 옛 습관에 물젖어 나태하게 지내면서 진흥시킬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들은 이해하라."

하였다.


  • 【원본】 25책 21권 4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57면
  • 【분류】
    의생활-관복(官服) / 의생활-상복(常服)

    二十七日。 時原任大臣聯箚 【領府事洪淳穆、領議政金炳國、右議政金炳德。】 略: "我朝公私衣服, 悉遵皇明制度, 著爲一王之制, 有非今日所可變改者也。 聖敎中有曰: ‘紅團領依《通編》原典例, 勿用。’ 臣等愚陋, 未聞有原典之勿用句語也。 且以盤領窄袖言之, 此非公服之制。 至若私服之只着窄袖衣戰服, 亦非原典所載之例, 未敢知奚所取而遽有此新式也。 經曰: ‘非先王之法服, 不敢服。’ 若一以簡便爲言, 則文章威儀, 於何可徵? 而亦豈用夏之義也? 近者兵丁服裝之變用異制, 已是駭惑。 今焉竝與縉紳士民, 一朝改易, 是豈爲法於後世而使聞於隣國乎? 惟聖明穆然遠覽, 亟收前旨, 以存舊異焉。" 批曰: "紅團領乃《通編》原典之所不載, 則是爲勿用常服。 黑團領乃宣祖朝, 傳敎定式而行之者, 則豈非古制乎? 朝參、常參等時, 必用黑衣者, 蓋以黑爲重, 故今欲捨輕從重。 而至於盤領窄袖, 嘗仰瞻南殿一二室御眞, 本且有《大明會典》之可稽者矣。 公服之紅色、綠色, 本與常服不同。 故公服則用幞頭也, 帶常服則用紗帽品帶, 恐不可合而論之。 私服雖無原典所載, 而窄袖衣、戰服、絲帶, 乃我國例着者, 故取其省略簡便而已, 初非創行新式。 然則今此變通之常服、私服, 援照《通編》《會典》, 仍用本有例着之服。 而來箚句語, ‘非法不服’, ‘亦豈用夏’云者, 大非襯當, 甚庸慨歎。 如或上違祖宗之典, 下咈衆庶之情, 予雖寡昧, 豈有此斷然行之乎? 且以兵丁之服言之, 彼銳我鈍, 因時適宜。 始也帖襄, 轉爲軍服, 本無一定膠守之規也。 花衣、綵袴, 曾有武藝之服, 則今之新製, 有何異制之可駭可惑者乎? 顧今國勢文弱, 兵制靡弛, 擧懷苟安, 全事顧忌, 上令不行於下, 下情不違於上, 迨此時也, 豈可因循偸惰, 不思所以振興之乎? 卿等其諒之。"


    • 【원본】 25책 21권 4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57면
    • 【분류】
      의생활-관복(官服) / 의생활-상복(常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