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21권, 고종 21년 3월 6일 신사 5번째기사
1884년 조선 개국(開國) 493년
의정부에서 강화영의 군량미에 관하여 아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지금 충청 감사(忠淸監司) 박제관(朴齊寬)의 보고를 보니, 충주 목사(忠州牧使) 민응식(閔應植)이 아뢰기를, ‘본 고을에 획정된 강화(江華)의 포량미(砲糧米) 6,000섬을 형편상 장차 도내 각 고을에서 획급하여 가져와야 하는데, 실어오기가 곤란하니 제때에 지출하지 못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본 고을에서 거둔 대동미(大同米), 전세미(田稅米), 결작미(結作米) 가운데 6,000섬을 포량으로 제때에 수용(需用)하고, 원래 포량으로 바칠 것을 바꾸어 바치게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운수하기 곤란한 것이 과연 도신(道臣)이 보고한 것과 같으니 고을에서 받은 것을 가지고 편리한 대로 포량으로 나누어 쓰고, 포량으로 거두어들인 것은 그 수량만큼 계산하여 바꾸어 바치는 것이 참으로 편리한 방법이니 이대로 시행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 【원본】 25책 21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38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