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목 등이 성상의 이변과 대동미 횡령 등의 문제에 관하여 아뢰다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영의정(領議政) 홍순목(洪淳穆)이 아뢰기를,
"요즘 성상(星象)이 경계를 보이니, 매우 두렵습니다. 하늘과 사람은 하나의 이치로 관통되어 그 반응이 형체에 대한 그림자나 소리에 대한 메아리보다도 더 빠릅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에서 진실로 잘못이 없다면 하늘에서 어찌 꾸짖는 경고가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연속되는 소란스러운 사변을 겪은 뒤부터는 오직 근심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밤낮 잘못이 없는 속에서 독실하게 잘못을 찾으며 바른말을 듣기 좋아하였고 사람들의 좋은 점을 취하여 마치 막혔던 강물을 터놓듯이 하려고 생각하였으니, 옛날 어진 임금들의 훌륭한 정사인들 어찌 이보다 능가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훌륭한 임금은 있으나 훌륭한 신하가 없는 탓으로 그 도리를 도와주지 못하여 위로는 큰 교화가 펴지지 못하고 아래로는 지극한 혜택이 미치지 못하게 되어 정사가 뜻대로 되지 못한 결과 이런 재변이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재변을 없애는 방도로는 어진 신하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없습니다. 신처럼 재능이 없으면서 자리만 차지한 자는 마땅히 속히 내쳐서 벼슬자리가 비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정령(政令)에 관련된 것은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도와주며 원대한 계책을 세우는 데 힘쓰고 대궐과 관청이 한 몸이 되어 동요하지도 말며 태산 반석같이 사물을 휘어잡아 사람들의 마음이 성을 이루듯 단합시킨다면, 기강이 절로 서고 풍속이 순박한 곳으로 돌아설 것이며 화기(和氣)가 사방에 들이차 하나로 화합될 것이니, 어찌 형혹성(熒惑星)이 삼사(三舍)만 물러가는 정도에 그치겠습니까? 경성(景星)과 경사스러운 구름이 나타나 재앙을 상서로운 것으로 전환시키게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찰하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재변을 막는 방도는 실제 행동으로 응하는 데 있다. 오늘 진달한 의견은 자신을 반성하는 요점이 아닌 것이 없으니, 어찌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근래 외읍(外邑)의 세정(稅政)이 전혀 법과 기강이 없습니다. 세곡(稅穀)을 경강 선주(京江船主)에게 넘겨주고 확인 문건만 받으면 해당 고을에서는 이미 바친 것이라고 하면서 다시는 더 살펴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해유(解由)를 낼 때를 당해서는 이미 확인 문건을 받은 것으로 해사(該司)에 정장(呈狀)하며 아무 구애하는 바가 없으니, 당초의 법의가 본디 이러했겠습니까? 이런 결과로 하여 선주(船主)들의 농간이 해마다 더 심해져서 이 고을의 곡식을 끌어다가 저 고을의 상납에 채워 넣습니다. 이에 횡령한 것이 산처럼 많아도 그 당장에서는 우선 죄를 면하게 됩니다. 이렇듯 존엄성이 없고 꺼리는 바가 없으니 어찌 몹시 증오스럽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드러나는 대로 법조문을 적용하여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수령(守令)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전날의 그릇된 버릇을 답습하지 않게 하고, 반드시 수량대로 해사에 바치고 확인 문건을 받아서 본도(本道)의 감사(監司)에게 확인하여 돌려보낸 뒤에야 비로소 지장이 없게 해유에 대한 승인 문건을 내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조세를 바치는 고을에 공문으로 신칙하도록 호남(湖南)과 호서(湖西)의 도신(道臣)에게 분부(分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먼저 확인문건을 받은 다음에 자문(尺文)을 확인하는 것은 바로 세정(稅政)의 중요한 규정이다. 진달한 대로 집행하여 꼭 실제 효과가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경기 감사(京畿監司) 홍우창(洪祐昌)의 보고를 보니, ‘죽산(竹山)과 양지(陽智)의 결세(結稅)가 점점 체납되고 각종 상납도 모두 포흠(逋欠)이 되었습니다. 신사년(1881) 몫부터 조세와 대동미(大同米)는 4년 동안을 기한하여 상정가(詳定價)로 대납(代納)하게 하되 매해 나눠서 포흠을 보충하게 하고, 전후하여 포흠낸 수괴(首魁)들은 응당 법조문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달포 전에 이 고을 경계를 지날 때 이 두 고을의 지탱하기 어려운 형편에 대해서 대체로 들었습니다. 그전부터 쌓인 포흠을 청산할 방도가 없어 쇠잔한 형편에서 이리저리 끌어다 메워나가다 보니 고을은 고을의 꼴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공(公)에 아무런 도움도 없는 빈 장부만 안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가벼운 쪽을 따라 마감(磨勘)하여 백성들을 돌보아줄 수 있는 방도가 있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요청한 대로 4년 동안을 기한하여 상정가로 쳐서 대납하게 하되, 매해 나눠서 바치도록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그러운 조치가 취해진 조건에서는 포흠을 낸 놈들은 도신으로 하여금 엄히 조사하여 형률을 시행하게 하여 뒷날의 폐단을 징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상정가로 대납하게 하되 매해 나눠서 바치게 할 것에 대한 문제는 아뢴 대로 하라. 포흠을 낸 놈들을 엄하게 조사하여 형률을 시행하는 것은 절대로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
하였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경기 감사(京畿監司)가 또 보고하기를, ‘장단(長湍)과 파주(坡州)의 허결(虛結)을 특별히 10년 동안 조세를 중지하는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미 기한이 찼으나 환기(還起)한 곳은 없고 몇 해째 홍수가 나서 도리어 사태(沙汰)가 나 백지(白地)가 더 많아졌기에 차마 책징(責徵)할 수 없습니다. 장단부(長湍府)에서 그전에 사태가 난 답결(畓結) 79결(結) 45부(負) 6속(束)과 새로 사태가 난 답결 9결 65부 6속, 파주목(坡州牧)의 답결 86결 1부 5속에 대해서 모두 10년 동안 더 기한을 늘려 조세를 바치는 것을 중지해 주소서.’ 하였습니다.
지금 이 두 고을의 진결(陳結)에서 생판으로 조세를 징수하는 것이 백성들에게 있어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되었기 때문에 10년 동안을 기한하여 조세를 중지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한은 이미 다 찼지만 아직 개흙땅이 생긴 곳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다시 요청하는 것이니, 이는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백성들의 숨은 고통과 관계되므로 돌보아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계(狀啓)의 요청대로 다시 5년 동안 더 연기하여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강원 감사(江原監司) 남정익(南廷益)의 등보(謄報)에, ‘고성(高城)에 있는 유점사(楡岾寺) 3,000여 간(間)이 몽땅 화재를 당하였으니 공명첩(空名帖)을 전례대로 만들어 주어 수리하는 데 비용에 보태 쓰도록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해 주소서.’ 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천년의 고찰로서 역내(域內)의 아름다운 명산인데 갑자기 화재를 입어 타버린 칸 수가 이렇게도 많습니다. 그런데 중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공사는 방대하고 재력은 딸리는 것만큼 응당 돌보아주는 은전(恩典)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공명첩을 500장으로 한정하여 건봉사(乾鳳寺)의 예에 따라 만들어 줌으로써 개건하는데 드는 비용에 보태 쓰게 하는 동시에 본 도에서도 따로 돌보아주어 많은 중들이 흩어져가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무기고에서 관할하고 있는 월별 과제로 들어온 총약(銃藥)을 삼남(三南)과 서북(西北) 지방에 나누어 보내는 것이 연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각 해도(該道)에서 미처 찾아가지 못한 것들은 창고에 저축하여 두었던 것인데 지난번 서울의 소요로 몽땅 바닥이 났습니다. 지금의 힘으로서는 마련할 방도가 없으니, 우선은 모두 중지하였다가 내년까지 몫이 들어오기를 기다려 받아가도록 도신에게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전 감역(前監役) 김병창(金炳昌)·전우(田愚)·유도성(柳道性)·이상필(李象弼)·안종덕(安鍾悳)·유진태(兪鎭泰)는 자신을 수양했으니 등용하는데 적합할 만 합니다. 우선 6품직에 조용(調用)하도록 전조(銓曹)에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좌의정(左議政) 김병국(金炳國)이 아뢰기를,
"신이 오늘 이 벼슬에 다시 등용되어 병을 무릅쓰고 이 연석(宴席)에 나오게 된 것에 대하여 비단 듣는 자들이 괴이하게 여기고 보는 자들이 놀라워할 뿐만 아니라 신 또한 어떻게 깊은 대궐에 달려 나와 전하의 앞에 꿇어앉아 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지나친 대우에 감격하고 의리와 명분으로 놓고 보아 겁이 났던 나머지, 이 직책은 전혀 감당할 수 없고 이 병은 참으로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저 단 하루라도 남다른 우대에 보답을 하고 단 하루라도 의리와 명분을 지키려고 한 데서부터 기인하였을 것입니다. 또 어지신 전하께서 이와 같이 놀랍고 괴이해 하는 것을 환히 살펴서 가엽게 여기고 안타까워하면서 하루도 채 지나가기 전에 체직시키리라 기대하였습니다. 임금을 도울 만한 재능도 없고 시국 형편을 바로잡고 수습해 나갈 재능도 없다는 것에 있어서는 도리어 자임(自任)하는 자처럼 보일 수 있기에 감히 누누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삼가 살려 주시는 은택을 바랄 뿐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몹시 기다리던 끝에 선뜻 마음을 바꿔 조정에 나오니, 나의 마음이 흡족하다. 병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합(閤)에 누워서 일을 보면서 몸조심을 하면 점차 회복될 것이다. 영의정(領議政)과 함께 마음과 힘을 합하여 나 한 사람을 도와 현행 난관을 타개해 나가는 것이 바로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하니, 김병국이 아뢰기를,
"일전에 신에게 내린 유시(諭示)에, ‘백성들이 고통을 겪고 하늘이 재앙으로 경고를 보이고 있다.’는 말씀이 더할 나위 없이 간곡하였으니, 충분히 백성들을 감동시키고 나아가서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었으므로 신은 참으로 천만번 우러러 마지않았습니다. 그런데 백성은 아득한 아래에 있고 하늘은 높디높은 위에 있어서 서로 관계가 없는 듯하지만, 오직 성스러운 임금만은 백성을 하늘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상서(尙書)》에, ‘하늘은 우리 백성들이 보는 데 따라 보고, 우리 백성들이 듣는 데 따라 듣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현재 백성들이 많은 곤경을 겪고 있는 것은 필시 그들이 안주하지 못한 데서 말미암은 것이며, 하늘이 재앙으로 경고를 보이는 것도 필시 절기의 순차가 불안한 것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상서(尙書)》에 또, ‘백성들은 별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이 백성들에게 경고를 보이는 것은 반드시 별들을 통하여 보여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전하께서는 침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몹시 걱정하고 두려워하시고 간절한 윤음을 거듭 내리고는 재변을 없앨 방책을 듣고자 하는데 그러한 방책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아, 백성들이 안정되지 못한 지 오래입니다. 지금은 극도에 이르러 근거 없이 소요스러운 소문에 점점 더 빨리 술렁대어 고장을 뜨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응당 위로하며 불러들이고 구원하여 제대로 생활하게 함으로써 한 사람도 안착하지 못한 사람이 없게 하여야 합니다. 백성들이 안정한 생활을 하면 나라도 편안해지고, 나라가 편안해지면 반드시 형혹성(熒惑星)은 사라지고 도리어 경성(景星)이 나타나는 상서로운 징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신이 지금 사임을 청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어찌 망령되이 딴 문제를 진달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것은 재변을 당하였을 때 서둘러야 할 급선무와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재변을 당하여 수성(修省)하는 것은 백성을 안주하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지금 아뢴 의견이 이와 같이 간곡하고 정성스러우니, 가슴에 새겨두고 스스로 힘쓰겠다."
하였다.
- 【원본】 23책 19권 63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과학-천기(天氣) / 교통-수운(水運)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사법-탄핵(彈劾)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군사-군기(軍器)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
初十日。 次對。 領議政洪淳穆曰: "邇來星象告警, 甚可懼也。 天人一理, 捷於影響。 人事苟無所失, 天道豈有其讁乎? 惟我殿下, 自經澒洞之擾, 憂危一念, 夙夜慥慥, 求過於無過之中, 樂聞昌言, 取人以爲善, 思欲若決江河, 雖古聖王隆盛之治, 曷以過此? 特有君無臣, 贊襄不得其道, 大化未敷於上, 至澤莫究於下, 治不徯志, 致此災咎爲。 今消弭之術, 莫先於與賢共國。 如臣之匪才冒據, 宜亟斥黜, 俾天工無曠。 而凡係一政一令, 明良相須, 務要遠者大者, 宮府一體, 勿撓勿動, 鎭物如泰山盤石, 衆心成城, 則紀綱自立, 風俗回淳, 和氣周遍, 薰蒸融液, 奚止於三舍之退? 將見景星慶雲, 轉災爲祥。 伏願穆然澄省焉。" 敎曰: "弭災之道, 在於應之以實。 今此所陳, 無非修省之要, 可不佩服也?" 淳穆曰: "近來外邑稅政, 蕩無法紀矣。 交付稅穀於京船主, 纔受勘合, 則該邑便謂已納, 更不省察。 及當解由之出, 以已受勘合, 呈狀該司, 無所爲拘, 當初法意, 固如是乎? 所以船主輩幻弄, 歲滋月增, 引此郡之穀, 充彼州之納。 雖逋負如山, 姑幸目下免罪。 無嚴無憚, 寧不痛惡哉? 自今隨現用律, 莫越成法, 而爲守宰地, 亦毋蹈如前謬習, 必準納該司, 受尺文考, 還于本道伯然後, 始可無礙於解由。 以此關顀飭稅納邑之意, 分付兩湖道臣何如?" 敎曰: "先捧勘合, 後考尺文, 乃稅政之要法。 依所奏方之, 期有實效可也。" 淳穆曰: "京畿監司洪祐昌報, 以‘竹山、陽智兩邑結稅, 駸駸積欠, 各樣上納, 盡成逋藪。 自辛巳, 條稅大同, 限四年詳定代納, 使之排年充逋, 前後逋魁, 從當按法處之’爲辭矣。 臣於月前過境時, 槪聞此兩巴難支之事勢也。 流來積逋, 淸刷無術。 殘局牽補, 殆至邑不爲邑。 與其徒擁虛簿, 無所些益於公, 不若從輕磨勘, 俾有懷保之方。 依所請, 限四年詳, 代排納。 而旣有此寬典, 則負逋諸漢, 令道臣嚴査施律, 以懲後弊何如?" 敎曰: "詳代排納, 依所奏爲之。 犯逋諸漢, 嚴査施律, 斷不可已也。" 淳穆曰: "畿伯又以‘長湍、坡州兩邑虛結, 特蒙限十年停稅之澤。 而今已限滿, 還起無處, 年來潦漲, 反添汰落, 白地責徵, 在所不忍。 長湍府舊汰落畓結七十九結四十五負六束, 新汰洛畓結九結六十五負六束, 坡州牧畓結八十六結一負五束。 竝加限十年停稅’爲辭矣。 今此兩陳結之虛徵, 旣係民間切骨之瘼, 限十年停稅者。 而雖已限滿, 未有泥生處。 故如是更請, 蓋出於不得已也。 民隱攸關, 不可不顧恤。 依狀請復展五年之限何如?" 允之。 又曰: "江原監司南廷益謄報以‘高城 楡岾寺三千餘間, 盡入回祿, 空名帖依已例成給, 以爲修葺事, 請令廟堂稟處’矣。 此乃千年古刹, 而域內名山眉目也, 忽被回祿蕩燼間架, 若是夥多。 而係是不得不重建, 則事鉅力綿, 合施存恤。 空名帖限五百張, 依乾鳳例成給, 以補修葺之資, 而亦自本道, 另加顧助, 俾許多緇徒, 不至渙散何如?" 允之。 又曰: "武庫所管月課銃藥, 頒送於三南、西北, 年例也。 而各該道之未及推去者, 向來騷擾, 庫儲盡被蕩失。 顧今事力, 無以措辦, 竝姑停止, 待明年條受去之意, 分付道臣何如?" 允之。 又曰: "前監役金炳昌、田愚、柳道性、李象弼、安鍾悳、兪鎭泰, 飭躬修行, 可合進用。 爲先六品職調用事, 分付銓曹何如?" 允之。 左議政金炳國曰: "臣於是日, 復以是職是病, 冒登是筵, 非第聞者怪而見者駭。 臣亦自怪自駭, 自不知何以能趨詣於九重之深。 跪敷於咫尺之前, 蓋由乎感激殊遇, 怵畏義分, 遂忘是職之萬不堪, 是病之萬難强, 只欲報殊遇於一日, 伸義分於一日也。 且欲望仁覆之天, 監燭若是駭怪, 矜之悶之, 必不俟終日鞶褫也。 至若承弼之非其才, 匡濟之無其術, 反涉自任者然, 有不敢覶縷。 惟伏冀生成之澤而已。" 敎曰: "企竚之餘, 幡然簉朝, 子心充然。 愼節非不奉慮。 而臥閤將攝, 自當漸次康復。 惟曁元輔, 協心同力, 佑予一人, 以濟時艱, 是所區區之望也。" 炳國曰: "日前下臣之諭, 以民生困瘁, 天災示警, 辭旨懇懇, 有足以感動于民, 孚格于天, 臣誠欽仰萬萬。 而蓋民者, 蚩蚩在下, 天者, 高高在上, 有若不相與焉。 惟聖王, 以民爲天。 故書曰: ‘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目下生靈之多困, 其必由不安其堵而然也, 乾緯之告異, 亦必由不安其次而然也。 書又曰: ‘庶民惟星。’ 此所以有警於民, 則必示於星也。 我聖上丙枕靡安, 憧憧焉恐懼, 而荐降惻怛之綸, 思聞消弭之策, 其策匪在於他, 只在於安民而已。 噫! 民之不安者久矣, 今到于極, 駸駸然騷訛胥動, 流離相續, 正宜勞徠之撫恤之, 拯諸溝壑, 置諸衽席, 無使一夫, 不得其安也。 民安則邦亦寧矣。 邦寧則必將見熒惑之徒, 而反爲景星之瑞矣。 臣方丐免之不暇, 何敢妄有陳贅? 而此係遇災急先之務, 殿下念哉。" 敎曰: "遇災條省, 莫過於安民。 今此所奏, 如是懇摯, 當服膺而自勉矣。"
- 【원본】 23책 19권 63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과학-천기(天氣) / 교통-수운(水運)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사법-탄핵(彈劾)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군사-군기(軍器)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