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외국 서적을 수집하고 연구시킬 것에 관하여 지석영이 상소하다
유학(幼學) 지석영(池錫永)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현재의 대정(大政)으로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보다 더 우선할 것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는 바다 한쪽에 치우쳐 있어서 이제까지 외교(外交)라곤 해본 적이 없기에 견문이 넓지 못하여 시국(時局)에 어둡습니다. 나아가서 교린(交隣)하거나 연약(聯約)하는 것이 모두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외무(外務)에 마음을 쓰는 자를 보기만 하면 대뜸 사교(邪敎)에 물들었다고 지목하며 비방하고 침을 뱉으며 욕합니다. 백성들이 서로 동요하면서 의심하고 시기하는 것은 시세(時勢)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안주하지 못한다면 나라가 어떻게 잘 다스려질 수 있겠습니까?
다만 삼가 생각건대, 각국(各國)의 인사들이 저작한 《만국공법(萬國公法)》, 《조선책략(朝鮮策略)》, 《보법전기(普法戰紀)》, 《박물신편(博物新編)》, 《격물입문(格物入門)》, 《격치휘편(格致彙編)》 등의 책 및 우리나라 교리(校理) 김옥균(金玉均)이 편집한 《기화근사(箕和近事)》, 전 승지(前承旨) 박영교(朴泳敎)가 편찬한 《지구도경(地球圖經)》, 진사(進士) 안종수(安宗洙)가 번역한 《농정신편(農政新編)》, 전 현령(前縣令) 김경수(金景遂)가 기록한 《공보초략(公報抄略)》 등의 책은 모두 막힌 소견을 열어주고 시무(時務)를 환히 알 수 있게 하는 책들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원(院)을 하나 설치하여 이상의 책들을 수집하고 또 근래 각국의 수차(水車), 농기(農器), 직조기(織組機), 화륜기(火輪機), 병기(兵器) 등을 구매하여 쌓아놓게 하소서. 이어 각도(各道)의 고을마다 관문(關文)을 보내도록 명하여 한 고을에서 학문과 명망이 남달리 뛰어난 사람들 중에서 유생과 관리를 각각 1명씩 뽑아 해원(該院)에 보내서 그로 하여금 그 서적들을 보고 그 기계들을 익히 다루게 하소서. 그리고 원에 머무는 기간은 2개월로 하여 기한이 차면 다시 한 사람을 교체시켜 보내게 하고, 관(館)에 머물러있는 동안의 비용은 해읍(該邑)에서 헤아려 지급하게 하소서. 서적들을 정밀히 연구하여 세무(世務)를 깊이 알거나, 기계를 본떠서 만들어 그 깊고 신비한 기술을 모두 터득한 자가 있으면, 그 재능을 평가하여 수용(收用)하소서. 또 기계를 만드는 자는 전매권(專賣權)을 허가하고 책을 간행하는 자는 번각(飜刻)을 금하게 한다면 모든 원에 들어간 자들은 우선적으로 기계의 이치를 이해하고 시국의 적절한 대응책을 깊이 연구하지 않으려는 자가 없어 너나없이 빠른 시일 안에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한번 깨우치면 이 사람의 아들이나 손자 및 이웃으로서 평소 그를 존경하여 심복하던 자들도 따라서 모두 바람에 쏠리듯이 교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는 첩경(捷徑)이 아니겠으며, 이용 후생(利用厚生)하기 위한 좋은 법이 아니겠습니까? 백성들이 의혹을 풀고 안주하게 되면 나라의 힘을 강화하고 적을 막아내는 대책에 대해서는 모두 중국 사람의 저서인 《이언(易言)》 1부(部)에 실려 있으니, 신은 감히 덧붙여 진언(進言)하지 않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그대가 시무에 대해 말한 것이 명료하게 조리가 있어 일에 적용할 수 있으니,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긴다. 상소의 내용을 의정부(議政府)에 내려 보내서 재품(裁稟)하여 시행하게 하겠다."
하였다.
- 【국편영인본】 23책 19권 58장 B면【원본】 2책 6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서학(西學) / 출판-서책(書冊)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상업-상업일반(商業一般)
幼學池錫永疏略:
目下大政, 莫先於安民心。 何則, 我國僻在海左, 從來不曾外交。 故見聞不廣, 昧於時局。 交隣聯約, 俱不知爲何物。 見稍用意於外務者, 則動輒目之以染邪, 誹謗之唾辱之。 凡民之胥動而疑忌者, 不識時勢故也。 民若不安, 國安得治乎? 第伏念各國人士所著《萬國公法》、《朝鮮策略》、《普法戰紀》、《博物新編》、《格物入門》、《格致彙編》等書及我國校理臣金玉均所輯《箕和近事》、前承旨臣朴泳敎所撰《地球圖經》、進士臣安宗洙所譯《農政新編》、前縣令臣金景遂所錄《公報抄略》等書, 皆足以開發拘曲, 瞭解時務者也。 伏願設置一院, 搜集上項諸書, 又購近日各國水車、農器、織組機、火輪機、兵器等貯之, 仍命行關各道每邑, 選文學聞望之爲一邑翹楚者, 儒吏各一人, 送赴該院, 使之觀其書籍, 玩其器械。 而留院以兩箇月爲期, 期滿又遞送一人。 留館之費, 令該邑量給, 有能精硏書籍, 深知世務, 有能倣樣造器, 盡其奧妙者, 銓其才能而收用。 又造器者, 許其專賣, 刊書者, 禁其飜刻, 則凡入院者, 無不欲先解器械之理, 深究時局之宜, 而莫不飜然而悟矣。 此人一悟, 則凡此人之子若孫及隣黨之素所敬服者, 率皆從風而化之矣。 玆豈非化民成俗之捷徑, 利用厚生之良法乎? 民旣解惑而安奠, 則凡自强禦侮之策, 具載於中國人所著《易言》一部書, 臣不敢贅進焉。
批曰: "爾言時務, 瞭然有條理。 可以措之於事, 予甚嘉之。 疏辭下議政府, 裁稟施行。"
- 【국편영인본】 23책 19권 58장 B면【원본】 2책 6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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