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지방에 세운 척양비를 모두 뽑아버리라고 명하다
전교하기를,
"‘지난번에 군민(軍民)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이라는 내용으로 방(榜)을 붙여 유시(諭示)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듣자니 난(亂)의 괴수 중에 여전히 법망을 빠져나간 자가 있고, 나머지 잔당들은 아직도 겁에 질려 있으며, 도망친 자들은 돌아오지 않고 고향을 떠난 유민(流民)들은 아직 모여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찌 몇몇 사람의 죄 때문에 죄 없는 군민들로 하여금 이런 고통에 시달리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너희들에게 유시하니, 만일 난의 괴수를 체포해 들이는 자가 있으면 1인(人)당 상으로 100금(金)을 주고 따로 포장(褒獎)하는 은전(恩典)이 있을 것이다. 그 나머지 협박에 못 이겨 추종한 무리들은 결단코 죄를 추궁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다시는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속히 고향으로 돌아와 안주하라.’는 내용으로 의정부(議政府)로 하여금 게시(揭示)하게 하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우리 동방(東方)은 바다의 한 쪽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일찍이 외국과 교섭한 적이 없으므로 견문이 넓지 못한 채 삼가고 스스로 단속하여 지키면서 500년을 내려왔다.
근년 이래로 천하의 대세는 옛날과 판이하게 되었다. 영국·프랑스·미국·러시아 같은 구미(歐美) 여러 나라에서는 정교하고 이로운 기계를 새로 만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사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배나 수레를 타고 지구를 두루 돌아다니며 만국(萬國)과 조약을 체결하여, 병력(兵力)으로 서로 견제하고 공법(公法)으로 서로 대치하는 것이 마치 춘추 열국(春秋列國)의 시대를 방불케 한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홀로 존귀하다는 중화(中華)도 오히려 평등한 입장에서 조약을 맺고, 척양(斥洋)에 엄격하던 일본(日本)도 결국 수호(修好)를 맺고 통상을 하고 있으니 어찌 까닭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겠는가? 참으로 형편상 부득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병자년(1876) 봄에 거듭 일본과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을 맺고 세 곳의 항구를 열었으며, 이번에 또 미국·영국·독일 등 여러 나라와 새로 화약(和約)을 맺었다.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니 너희 사민(士民)들이 의심하고 비방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교제의 예(禮)는 똑같이 평등함을 원칙으로 하니 의리로 헤아려 볼 때 장애될 것이 없고, 군사를 주둔시키는 의도는 본래 상업 활동을 보호하는 데 있으니, 사세(事勢)를 놓고 참작하더라도 또한 걱정할 것이 없다.
교린(交隣)에 방도가 있다는 것은 경전(經典)에 나타나 있는데, 우활하고 깨치지 못한 유자(儒者)들은 송(宋) 나라 조정에서 화의(和議)를 하였다가 나라를 망친 것만 보고 망령되이 끌어다 비유하면서 번번이 척화(斥和)의 논의에 붙이고 있다. 상대쪽에서 화의를 가지고 왔는데 우리 쪽에서 싸움으로 대한다면 천하가 장차 우리를 어떤 나라라고 할지를 어찌하여 생각하지 않는단 말인가? 도움 받을 곳 없이 고립되어 있으면서 만국과 틈이 생겨 공격의 화살이 집중되면 패망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헤아리면서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면 의리에 있어서도 과연 무엇에 근거한 것이겠는가? 의론하는 자들은 또 서양 나라들과 수호를 맺는 것을 가지고 점점 사교(邪敎)에 물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진실로 사문(斯文)을 위해서나 세교(世敎)를 위해서나 깊이 우려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수호를 맺는 것은 수호를 맺는 것이고 사교를 금하는 것은 사교를 금하는 것이다. 조약을 맺고 통상하는 것은 다만 공법에 의거할 뿐이고, 애초에 내지(內地)에 전교(傳敎)를 허락하지 않고 있으니, 너희들은 평소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익혀왔고 오랫동안 예의(禮義)의 풍속에 젖어 왔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정도(正道)를 버리고 사도(邪道)를 따를 수 있겠는가? 설사 어리석은 백성들이 몰래 서로 전습(傳習)한다 하더라도 나라에 떳떳한 법이 있는 이상 처단하고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숭상하고 물리치는 데에 그 방도가 없다고 근심하겠는가?
그리고 기계를 제조하는 데 조금이라도 서양 것을 본받는 것을 보기만 하면 대뜸 사교에 물든 것으로 지목하는데, 이것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그들의 종교는 사교이므로 마땅히 음탕한 음악이나 미색(美色)처럼 여겨서 멀리하여야겠지만, 그들의 기계는 이로워서 진실로 이용 후생(利用厚生)할 수 있으니 농기구·의약·병기·배·수레 같은 것을 제조하는데 무엇을 꺼려하며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종교는 배척하고, 기계를 본받는 것은 진실로 병행하여도 사리에 어그러지지 않는다. 더구나 강약(强弱)의 형세가 이미 현저한데 만일 저들의 기계를 본받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저들의 침략을 막고 저들이 넘보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안으로 정교(政敎)를 닦고 밖으로 이웃과 수호를 맺어 우리나라의 예의를 지키면서 부강한 각 나라들과 대등하게 하여 너희 사민들과 함께 태평 성세를 누릴 수 있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지난번에 교화하기 어려운 자들을 익히 보고 백성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마침내 6월의 변고가 일어나 이웃 나라에 신의를 잃고 천하에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나라의 형세는 날로 위태로워지고 배상금은 거만(鉅萬)에 이르렀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언제 우리를 학대하고 모욕하며 화의에 어긋난 일을 한 적이 있었는가? 그러나 다만 우리 군민들이 함부로 의심해서 멀리하고 오랫동안 분노를 품고서 이렇게 까닭 없이 먼저 범하는 행동이 있게 되었다. 그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너희들은 생각해 보라.
이번에 다행스럽게도 일처리가 대강 이루어져서 옛날의 우호관계를 다시 펴게 되었고, 영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이 또 뒤이어 와서 조약을 맺고 통상하게 되었다. 이는 세계 만국의 통례(通例)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니, 결코 경악할 일이 아니다. 너희들은 각기 두려움 없이 편안히 지내면서 선비들은 부지런히 공부하고 백성들은 편안히 농사를 지으며, 다시는 ‘양(洋)’이니 ‘왜(倭)’니 하면서 근거 없는 말을 퍼뜨려 인심을 소란하게 하지 말라. 각 항구와 가까운 곳에서는 비록 외국인이 한가로이 다니는 경우가 있더라도 마땅히 일상적인 일로 보아 넘기고 먼저 시비거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일 저들이 능멸하거나 학대하는 일이 있다면 응당 조약에 따라 처벌하여 결단코 우리 백성들을 억누르고 외국인을 보호하는 일이 없게 할 것이다.
아! 어리석으면서 제멋대로 하는 것은 성인(聖人)이 경계한 바이고,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비방하면 왕법(王法)에 주벌하는 데 해당한다. 가르쳐주지도 않고 처형하는 것은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이 되므로 이와 같이 나열하여 명백히 유시한다. 그리고 이미 서양과 수호를 맺은 이상 서울과 지방에 세워놓은 척양에 관한 비문들은 시대가 달라졌으니 모두 뽑아버리도록 하라. 너희 사민들은 각기 이 뜻을 잘 알라.’는 내용으로 의정부로 하여금 게시하고 팔도(八道)와 사도(四都)에 행회(行會)하게 하라."
하였다.
- 【원본】 23책 19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0면
- 【분류】외교-영국(英) / 외교-독일[德] / 외교-미국(美) / 왕실-국왕(國王) / 외교-일본(日本) / 외교-러시아[露]
敎曰: "向以招輯軍民之意, 有所榜諭。 而近聞亂魁, 尙有漏網, 餘黨猶懷怵迫。 逃者未歸, 流者未集。 何可以若干人之罪, 俾無辜軍民罹此若也? 今諭爾衆, 如有捕納亂魁者, 每人當賞賚百金, 而別有褒奬之典。 其餘脅從之輩, 決無追究之理, 勿復危疑, 斯速還集之意, 令議政府揭示。" 又敎曰:
惟我東方, 僻在海隅, 未曾與外國交涉。 故見聞不廣, 謹約自守, 垂五百年。 挽近以來, 宇內大勢, 逈異前古。 歐米諸國, 如英如法如美如俄, 創其精利之器, 極其富强之業, 舟車遍于地毬, 條約聯于萬國, 以兵力相衡, 以公法相持, 有似乎春秋列國之世。 故以中華之獨尊天下, 而猶然平等立約, 以日本之嚴於斥洋, 而終亦交好通商, 是豈無自而然哉? 誠以勢不得已也。 肆我國, 亦於丙子之春, 重講日本之好, 許開三處之港, 今又與美、英、德諸國, 新定和約。 事係創有, 無怪乎爾士民之疑且謗也。 然交際之禮, 均係平等, 則揆以義理, 無所礙也。 留駐之意, 本在護商, 則參以事勢, 亦無虞也。 交隣有道, 揭在經典。 而迂滯之儒, 徒見宋朝和議之誤國, 妄爲援譬, 輒附斥和之論。 何不思人以和來, 我以戰待, 則天下其將謂何如國也? 孤立無援, 生衅萬國, 致衆鏃之交集, 自分敗亡, 而不少悔恨, 於義果何據也? 議者又以聯好西國, 謂將漸染邪敎。 此固爲斯文爲世敎深長慮也。 然聯好自聯好, 禁敎自禁敎。 立約通商, 只據公法而已。 初不許傳敎內地, 則爾等素習孔、孟之訓, 久沐禮義之俗, 豈或一朝捨正而趨邪乎? 設有愚夫蚩氓, 潛相傳習, 則邦有常憲, 誅殛不赦, 何憂乎崇闢之無其術也? 且見器械製造之稍效西法, 則輒以染邪目之, 此又不諒之甚也。 其敎則邪, 當如淫聲美色而遠之, 其器則利, 苟可以利用厚生, 則農桑、醫藥、甲兵、舟車之製, 何憚而不爲也? 斥其敎而效其器, 固可以竝行不悖也。 況强弱之形, 旣相懸絶, 苟不效彼之器, 何以禦彼之侮而防其覬覦乎? 誠能內修政敎, 外結隣好, 守我邦之禮義, 侔各國之富强, 與爾士民, 共享昇平, 則豈不休哉? 乃者習見難化, 民志靡定, 遂有六月之變, 失信隣國, 貽笑天下。 國勢日以岌嶪, 賠款至於鉅萬, 寧不寒心? 日人之入我國, 何曾虐我侮我, 有乖和好? 而特以軍民之妄生疑阻, 積懷忿怒, 有此無故而先犯。 爾等思之, 其失在誰? 今幸辨理粗究, 舊好更申, 而英、美諸國, 又將踵至, 立約通商。 此乃萬國通例, 非創行於我國, 則決非可驚可愕之事。 爾等其各帖然無恐, 士勤工課, 民安稼穡, 勿復以曰洋曰倭, 胥動騷訛也。 各港近地, 雖有外國人閒行, 宜各恬視爲常, 無或先犯。 倘如彼有凌虐, 自當按約懲辦, 決不屈我民而護外人也。 嗚呼! 愚而自用, 聖人攸戒, 在下訕上, 王法當誅。 不敎而刑, 是爲罔民。 故玆以臚述洞諭。 且旣與西國修好, 則京外所立斥洋碑刻, 時措有異, 故竝行拔去。 爾等士民, 各悉此意事。 令議政府揭示, 行會于八道、四都。
- 【원본】 23책 19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0면
- 【분류】외교-영국(英) / 외교-독일[德] / 외교-미국(美) / 왕실-국왕(國王) / 외교-일본(日本) / 외교-러시아[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