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와 사도의 백성들에게 하유하다
팔도(八道)와 사도(四都)의 늙은이들과 백성들에게 하유(下諭)하기를,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부덕한 내가 외람되게 왕위에 오른 지 19년 동안에 덕을 밝히지 못하여 정사는 그릇되었고 백성들은 흩어졌으며, 위로는 죄가 쌓이고 몸에는 재앙이 모여들었다. 이것은 나로 말미암아 불러들인 것이니 아무리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이래로 토목공사를 크게 벌였고 백성들의 재물을 억지로 긁어 들여 가난한 사람이나 잘 사는 사람이나 다같이 곤궁하게 만들었으니 이것은 나의 죄이다. 자주 화폐를 고치고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인 것도 나의 죄이다. 사당과 서원(書院)을 허물고 철폐하여 충현(忠賢)에게 제사지내지 않은 것도 나의 죄이며, 기호품을 구하고 상 내리기를 절도 없이 한 것도 나의 죄이다. 신명에게 복을 내려주기를 비는 제사를 지나치게 믿고 내탕고(內帑庫)의 제물을 허비한 것도 나의 죄이다. 사람을 널리 등용하지 못하고 종친(宗親)과 척신(戚臣)을 높인 것도 나의 죄이다. 대궐에 대한 단속이 엄하지 못하여 궁녀(宮女)와 내시(內侍)들이 은택을 바라게만 한 것도 나의 죄이다. 뇌물이 공공연히 성행하며, 탐오하는 자들이 징계 받지 않고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정상이 위에 보고 되지 않은 것도 나의 죄이다. 저축이 오랫동안 텅 비었으며 군사와 아전(衙前)들을 먹여주지 못하고, 공가(貢價)를 오랫동안 주지 못하여 시정(市井)이 폐업한 것도 나의 죄이다. 여러 나라들과 우호관계를 가지는 것은 바로 시세(時勢)의 요구인데 조치가 방도를 잃어 한갓 백성들의 의혹만 더하게 하였으니 이것도 나의 죄이다. 이뿐만 아니라 귀신이 노하고 사람이 원망하여 온갖 변고가 쏟아져 나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재변이 육친(六親)에까지 미치게 됨으로써, 멀리 중국에까지 근심을 끼쳤고 아래로는 만백성들을 소란스럽게 만들었으며 이웃 나라에 신의를 잃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 또한 나의 죄인 것이다.
아! 나의 죄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무슨 면목으로 온 나라의 신민(臣民)들을 다시 대하겠는가? 슬프고 부끄럽고 두려워서 실로 임금 노릇하는 즐거움이 없다. 너희 대소 인민(大小人民)들은 내가 종전의 과오를 버리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을 허락하려는가? 내 이제 마음을 깨끗이 씻고 전날의 교훈을 살려 앞으로는 조심하겠다. 백성들에게 불편했던 종전의 정령(政令)들은 다 없애버리고 어진 관리들을 골라 백성들을 다스리게 할 것이며, 실효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 온 나라 사람들과 함께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너희들도 마땅히 제각기 노력할 것이며 훌륭한 계책을 많이 고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의견이 설사 부합되지 않더라도 호되게 책망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약 종전의 과오를 고치고 함께 나라의 기초를 지킨다면 종사(宗社)의 다행이 될 것이다.
이번에 난(亂)을 일으킨 역도(逆徒)들을 토벌함에 있어서 극단적인 무력을 행사하지 않고 나머지 무리들을 용서하였으며, 이제 대사령(大赦令)을 나라에 실시하여 다함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과오를 뉘우치고 있는 형편에 무슨 여가로 남을 책망하겠는가? 아! 나라가 흥하는 것도 언제나 여기에 있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언제나 여기에 있다. 안위(安危)의 기미는 터럭 하나처럼 작은 데 있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마음을 터놓고 고하는 바이니 잘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였다.
- 【원본】 23책 19권 4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건설-토목(土木) / 사법-행형(行刑)
二十日。 諭八道、四都耆老、人民等。
若曰: 嗚呼! 予以否德, 猥託民上, 十有九年, 不明厥德, 政失民散, 罪積于上, 殃集于躬。 由予所召, 雖悔曷追? 粤自嗣服以來, 大興土木, 勒斂民財, 使貧富俱困, 是予之罪也。 屢改錢幣, 多殺無辜, 是予之罪也。 毁撤祠院, 忠賢不祀, 是予之罪也。 玩好是求, 賞賜無節, 是予之罪也。 過信祈禳之事, 虛糜帑藏, 是予之罪也。 用人不廣, 宗戚是崇, 是予之罪也。 宮闈不肅, 婦寺干澤, 是予之罪也。 賄賂公行, 貪墨不懲, 窮民愁苦之狀, 莫達于上, 是予之罪也。 儲胥久虛, 軍吏失哺, 貢價積欠, 市井廢業, 是予之罪也。 聯好各國, 乃是時宜, 施措乖方, 徒滋民疑, 是予之罪也。 止竟神怒人怨, 變故百出, 下凌其上, 災及六親, 遠貽中國之憂, 下擾萬民之生, 失信於隣國, 取笑於天下, 此又予之罪也。 嗚呼! 予罪至此, 尙以何面目, 復對一國臣民乎? 悲遑愧懼, 實無南面之樂。 惟爾大小人民, 其肯棄予, 前過許予自新乎? 予將洗心滌慮, 懲前毖後。 政令之從前不便於民者, 悉令除之, 擇循良之吏, 以牧群生, 講究實效, 思與一國更始。 爾等亦宜各懋乃績, 告以嘉謨。 言雖不合, 必無苛責之理。 庶幾補綴前過, 共守丕基, 則宗社之幸也。 今玆亂逆斯討, 不極厥武, 宥其餘黨, 行將大赦國中, 咸與維新。 予方悔過, 何暇責人? 嗚呼! 興國恒於是, 亡國恒於是。 安危之機, 澟如一髮, 尙可不戒之哉? 玆以敷心以告, 想宜知悉。
- 【원본】 23책 19권 4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건설-토목(土木)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