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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19권, 고종 19년 6월 14일 무진 3번째기사 1882년 조선 개국(開國) 491년

중궁전의 옥체를 찾을 수 없으므로 옷을 가지고 장사지내도록 하다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이 예조(禮曹)의 당상(堂上)을 데리고 입시(入侍)하였다. 하교하기를,

"곤전(坤殿)의 체백(體魄)을 사방에 찾아보았지만 끝내 그림자도 없으니 더욱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또 그때의 형편에 대해서는 내가 목도한 사람이다. 이런 형편에 이르러서는 입던 옷을 가지고 장사를 지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 문제는 극히 중차대한 일이므로 아래에서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이미 우리 왕조에 인용할 만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내가 말을 꺼내는 바이니 제반 시행 절차는 입던 옷을 가지고 장사지내는 것으로 마련하라."

하였다. 【처음에 반란군이 갑자기 대궐을 침범하였을 때 그 기세가 매우 사나왔으므로 대궐 안이 발칵 뒤집히듯 몹시 놀라 상하(上下)가 들끓듯 하였는데 결국 중궁전(中宮殿)의 소재를 알 수 없었다 한다.】 영의정(領議政) 홍순목(洪淳穆)이 통곡하면서 아뢰기를,

"지금 삼가 전하의 하교를 받고 보니 망극한 중에 더욱 망극하여 기가 막혀 무어라 우러러 아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교는 비록 이러하지만 만일 온갖 찾아낼 방도를 다한다면 신명(神明)이 감격할 것이니, 끝내 흔적을 찾아내지 못할 그럴 이치가 있겠습니까?"

하니,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병국(金炳國)은 통곡하면서 아뢰기를,

"이 하교를 받드니 기가 막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곤전의 옥체를 끝내 재궁(梓宮)에 봉안(奉安)할 수 없다면 망극한 중에 더욱 망극한 일입니다. 다시 더 널리 수소문한다면 신명이 어찌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찾을 방도에 대해 나도 온갖 힘을 다 써보았으나 다시 더해 볼 방법이 없다."

하였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전날 사변은 대궐 안팎의 백 보 정도 지점에서 벌어졌으니 어찌하여 찾아볼 길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끝까지 찾지 않으면 지척간이라도 혹 모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더 널리 찾아봄으로써 며칠이 더 걸린다 해도 당연한 도리를 다하여야 합니다. 권도(權道)를 따라 예를 행하는 것이야 이르건 늦건 간에 무슨 따질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김병국이 아뢰기를,

"위에서 애써 찾는 데에 대하여 신들은 사실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탐문하는 중에서도 더욱더 탐문하여 설사 여러 날 걸린다 하더라도 기어이 종적을 찾아내고야 만다면 이것은 망극한 중에 천만다행이 될 것입니다. 장사 의식이 좀 늦어지는 것쯤은 관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내가 어찌 그럴 마음이 없겠는가? 이제 와서는 정말 더는 찾아볼 방도가 없다."

하였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옛날에 난군(亂軍) 속에서 부모를 잃은 어떤 사람이 한 해가 넘도록 길에서 울부짖다가 마침내 그 유해를 찾아냈습니다. 오늘 신들은 불과 백 보도 벗어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결국 성의를 다하지 못하여 차마 권도를 따르는 하교를 받든다면 이것은 모두 신들의 죄입니다. 오늘 신들이 아뢰는 것은 실로 원통하고 기가 막힌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비록 있는 힘껏 찾아보았다고 하교하셨지만 아직도 미진할 우려가 있을 수 있는 만큼 하교를 받들 수 없어서 이와 같이 눈물을 삼키며 우러러 아룁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이것은 대신들의 죄가 아니다. 형편이 이 지경에 이른 조건에서 어찌하겠는가?"

하였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신들의 원통한 마음으로써는 전혀 하교를 받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모든 방법을 다하여 찾지 않는다면 전하를 몹시 걱정하게 만들 뿐 아니라 앞으로 세자궁(世子宮)께서 평소에 더없이 슬퍼하더라도 우러러 아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니, 김병국이 아뢰기를,

"신들이 만일 정성을 다하여 찾지 않는다면, 세자궁의 지극한 슬픔을 어떻게 위안시키겠습니까?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니 천만번 슬프고 원통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비단 대신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도 이 점을 생각하고 힘을 다했으나 찾아내지 못한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였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이제 만일 이 하교를 받든다면 당대의 죄인이 될 뿐만 아니라 역사책에 기록되어 만대의 죄인이 될 것입니다."

하니, 김병국이 아뢰기를,

"이 하교를 받고 보니 아랫사람들은 더욱 가슴 아픈 마음을 어찌할 수 없으니 더욱더 꼭 널리 찾아보도록 할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이제 와서는 전혀 방도가 없게 되었다."

하였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이렇게 하교하시니 참으로 천만번 가슴 아프고 기가 막힙니다."

하니, 김병국이 아뢰기를,

"더욱더 탐문함으로써 하늘의 이치와 인정을 다하도록 힘쓸 것입니다."

하니,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회정(李會正)이 아뢰기를,

"오늘 하교를 받고 보니 신민의 원통하고 가슴이 무너지듯 아픈 정상을 더욱 우러러 아뢸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 대신들이 정성을 다해서 아뢴 만큼 더 찾아보는 것이 참으로 인정과 도리에 부합할 뿐 아니라 틀림없이 하늘이 감복할 것입니다."

하였다. 이어 얼굴을 가리고 울면서 또 아뢰기를,

"이런 변례(變禮)를 당하여 세자궁의 끝없이 슬픈 마음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이제부터 이끌어주고 돌보아주는 문제에 대해 더욱더 십분 유의하기를 천만번 바랍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오늘 연석(筵席)에서 한 이야기들을 조지(朝紙)에 반포하라."

하였다.


  • 【원본】 23책 19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3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時原任大臣率禮堂, 入侍。 敎曰: "坤殿體魄, 四處搜覓, 終無影形, 尤極罔措。 且其時事狀, 予爲目覩者也。 到此地頭, 只以衣襨葬之外, 更無他道。 此事至重且大, 自下雖不敢言之, 旣有國朝可援之例, 故予爲發言, 諸般擧行, 以衣襨葬磨鍊。" 【初, 亂軍, 猝然犯闕, 其勢甚凶獰, 闕內震驚, 上下鼎沸, 竟不知中宮殿所在云。】 領議政洪淳穆痛哭曰: "今伏承下敎, 罔極之中, 尤爲罔極, 臆塞無以仰達。 而下敎雖如是, 苟其克盡採訪之道, 神明所感格, 終未攀痕跡, 寧有是理乎?" 判府事金炳國痛哭曰: "承此下敎, 不勝臆塞。 而坤殿玉體, 終若未克奉安梓宮, 罔極之中, 尤切罔極。 更爲廣加採問, 則神明豈無所佑助乎?" 敎曰: "採擇之道, 予亦極力, 更無以加之矣。" 淳穆曰: "向日事, 出於闕內外百步之地, 則寧至於無所可採? 而若不到底盡分, 雖咫尺間, 恐或不知。 必更加廣問, 以至幾日, 惟盡當然底道理而已。 至於從權行禮, 早晩何較也?" 炳國曰: "自上採擇之極力, 臣等固當仰揣。 而採問之中, 更加採問, 雖至多日, 期於有所攀痕, 此爲罔極中萬幸。 至於禮節之差遲, 不必有係矣。" 敎曰: "予豈無此心? 到今, 實無更採之道矣。" 淳穆曰: "古人之於亂軍中, 有失父母者, 經年‘呼泣於道路, 終得其遺骸。 今日, 臣等, 不過百步之內, 終未盡誠, 忍承此從權之下敎, 此莫非臣等之罪也。 今日臣等所奏, 寔出於痛冤臆塞。 而殿下雖敎以極力搜訪, 猶有所未盡之慮, 萬無以奉承, 如是飮泣仰陳矣。" 敎曰: "此非大臣之罪也。 事勢至此, 奈何乎?" 淳穆曰: "臣等痛冤之悃, 萬無以奉承。 而今若未克盡其奉探之方, 非徒爲致念於聖衷, 將來世子宮平日至慟掩抑, 無以仰達矣。" 炳國曰: "臣等若不以至誠有所採訪, 其何以仰慰世子宮至慟乎? 言念及此, 萬萬慟冤矣。" 敎曰: "非但大臣之言, 予亦念此而極力, 不可搜覓, 奈何?" 淳穆曰: "今若承此下敎, 非惟當世之罪人, 書之史冊, 抑亦萬世之罪人矣。" 炳國曰: "承此下敎, 下情尤不勝痛迫, 益加期於廣探焉。" 敎曰: "到今萬無奈何矣。" 淳穆曰: "如是下敎, 誠萬萬痛迫, 萬萬臆塞。" 炳國曰: "益加採問, 懋盡於天理人情焉。" 禮曹判書李會正曰: "今伏承下敎, 臣民之痛冤崩迫, 尤無以仰達。 而諸大臣有至誠仰奏, 益爲採尋, 允合情理, 必有天理之孚格矣。" 因又掩泣奏曰: "當此變禮, 世子宮至慟無窮, 當復如何? 從今以往, 保導調護之方, 益加十分留念, 千萬至祝。" 敎曰: "今日筵說, 頒諸朝紙。"


  • 【원본】 23책 19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3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