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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19권, 고종 19년 2월 9일 을축 2번째기사 1882년 조선 개국(開國) 491년

서연관 김낙현이 상소문을 올려 태평을 누리는 도리를 진술하다

서연관(書筵官) 김낙현(金洛鉉)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삼가 듣건대, 춘궁 저하께서 지으신 시에, ‘만수와 태평을 천하가 똑같이 누린다.’고 하였다 합니다. 신이 삼가 생각건대, 황천(皇天)의 조종(祖宗)이 묵묵히 도와서 이 시를 짓게 하여 오늘날 반드시 만수 태평(萬壽太平)의 도를 누리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비록 궁료(宮僚)들과 서로 화답하는 말석에 참석하지는 못하였으나, 기뻐하며 경축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감히 ‘만수 태평’의 도를 가지고 전하께 올림으로써, 화봉인(華封人)의 축원과 맥구인(麥邱人)의 송축을 대신하려 합니다.

신은 듣건대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순 임금은 대효(大孝)이실 것이다. 덕은 성인이 되셨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큰 덕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천수를 누린다.’ 하였으니, 이를 통해서 본다면, 덕을 닦아 성인이 되면 반드시 무강한 천수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제왕으로는 요순과 같은 덕을 지닌 이가 없었고 요순과 같은 수명을 누린 이가 없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성인의 자질로서 성인의 자리에 오르셨으니, 하기만 하신다면 역시 이와 같으실 것입니다. 신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요순의 글을 강구하시고 요순의 덕을 닦으시며 요순의 정치를 행하셔서 요순의 수명을 누리도록 하소서.

신은 또 듣건대, 《시경(詩經)》천보편(天保篇)에 이르기를, ‘길일을 택하여 정결히 술밥 지어, 이것을 효성스럽게 제향(祭享)드리니, 선군께서 너에게 기대한다고 이르시되, 만년토록 장수하여 한이 없는 것으로 해 주시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본다면 옛사람들은 수명과 복을 반드시 묘향(廟享)에서 축원하였습니다. 신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우 임금이 소박한 음식을 즐겼던 도를 법 받으시고, 《대학(大學)》에서의 ‘소비(消費)를 천천히 하는 경사’를 행하셔서 경상적인 재정이 부족하지 않게 하면서 좋은 날을 가려 대향의 제사를 받드신다면, 위로는 복되고, 아래로는 비호를 받아 한 세상을 인수(仁壽)의 지역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태평한 세상을 이루는 도리에 관해서야 지금 멀리 옛날의 사례를 인용할 여유가 없겠거니와, 다만 눈앞의 가장 시급한 일 네 가지만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서 경상적인 비용을 넉넉하게 하는 일입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국가의 경비가 예전에 부족했던 것은 아닌데, 근년 이래로 전결(田結)이 대부분 각 궁방과 내사(內司)에 소속되어 있고, 게다가 조미(漕米)는 뱃사람들에게 도둑맞고 농간당하며 돈이나 무명은 서리들이 가로채어 써 버리는데도 뇌물을 받은 수령이나 포흠한 서리를 마땅한 죄목으로 처벌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조운선을 침몰시킨 뱃사람과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관대한 은전을 입기 때문에 부세(賦稅)가 적체되고 국가의 경비가 점차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근일의 상납은 모두가 새로 설립한 각 아문으로 들어가는데다가, 또 제반의 쓸데없는 비용으로 거의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매번 대향을 받드는 데 필요한 물자나 정공(正供)의 세입이 부족한 걱정이 있게 되며, 백관들의 녹봉과 각 영문(營門)이나 각사의 군인, 서리들의 월급도 역시 많이 빠뜨리고 있습니다. 또한 공인(貢人)이나 전인(廛人)들의 경우는 아래 위에서 이들에게 재용을 의지하고 있는 바이며, 성 안의 백성들도 역시 이들을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매번 먼저 납부하게 하고는 본 가격을 지불해 주지 않고 있으니, 끝내는 반드시 재물이 고갈되고 백성들은 흩어져서 징수하고 빌릴 곳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신은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군인과 백성이 흩어져 떠나고 도성에 재물과 곡식이 없게 되면 어떻게 태평한 세상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신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음사(陰祀)를 금지하고 영선(營繕)을 정지시키며, 사치를 억제하고 상사(賞賜)를 절제하소서. 각 고을에서 납부하는 전곡과 포목은 반드시 먼저 대향(大享)과 정공(正供) 및 군졸들과 서리들의 월급으로 쓰게 하고, 공인이나 전인들이 먼저 올린 것은 역시 모두 가격을 지급해 주고 나서야 비로소 태평 만세의 도리를 의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공(公)을 드높이고 사(私)를 억제하는 일입니다. 신은 듣건대, 주자(朱子)의 봉사(封事)에 이르기를, ‘하늘은 사사로이 덮어 주지 않고, 땅은 사사로이 실어 주지 않으며, 해와 달은 사사로이 비춰 주지 않는다.’ 고 하였습니다. 왕이 된 자가 이 세 가지 사사로움이 없는 것을 받들어서 열심히 천하에 펼친다면 세상 사람을 널리 사랑하는 것이 매우 공평하게 되어 기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대저 이 땅 위에는 전하의 신하와 백성이 아닌 자가 없으니, 진실로 마땅히 한결같이 보고 똑같이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가까운 친척을 편애하면서 오래된 신하는 멀리하며, 좌우의 가까운 복종(僕從)에게는 은혜가 치우치면서 사방 만백성들에게는 미치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물며 군졸이나 서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굳이 오래된 자는 버리고 새로운 자를 취하며, 가까이 있는 자는 친하게 여기고 멀리 있는 자는 잊는단 말입니까. 또 어찌 굳이 옛 법을 바꾸고 새로운 제도를 만든단 말입니까. 신이 삼가 오늘날 백성들의 궁핍과 재정의 부족함을 보건대, 고을마다 공납(公納)의 잘못이 있는데도 탐악을 징벌하였다는 정치에 대해서는 듣지 못하였으며, 비록 가볍게 처벌하였다가도 오래지 않아서 갑자기 서용을 하곤 합니다. 곳곳의 도적들이 대낮에도 공공연히 활보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거주할 수가 없고 장사꾼들은 다닐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심지어는 공납하는 돈과 포목까지도 역시 간혹 겁탈을 당하고 있는데, 때로는 기포(譏捕)하는 자에게 체포되었다가도 존귀하고 가까운 이에게 사사로이 청탁을 하여 탈출하기도 합니다. 또 혹은 탐오한 수령이 양민을 무고하여 재물을 토색질하는가 하면, 간악한 장교는 도적을 잡는다는 핑계로 포악한 짓을 행합니다. 또 혹은 탐오한 수령이 양민을 무고하여 재물을 토색질하는가 하면, 간악한 장교는 도적을 잡는다는 핑계로 포악한 짓을 행합니다. 이는 모두가 공보다는 사를 앞세우고 그 적임자를 임용하지 않아서 생기는 폐단입니다. 신이 호남 고을에서 벼슬할 때에 뱃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니, ‘위로 대내(大內)의 상공(上供)으로부터 아래로는 성 안 억만 백성들이 먹는 곡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강(京江) 선박의 운송에 의지하고 있다. 그런대 근래로 공납에 관련된 뇌물이 해마다 늘어나고 달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또한 선주(船主)라고 불리기만 하면 역시 불법적인 침해를 수없이 당하고 있기 때문에, 강인(江人)들이 다시는 배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부유하다는 이름을 피하고 있다. 오직 궁예(宮隷)의 족속이나 존귀한 벼슬아치의 하인들이 단지 체문(帖文)을 도모하여 간혹 배를 빌리거나 임대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싣고 떠날 때에 간혹 다른 고을의 묵은 포흠곡이라고 보고 하기도 하고, 아니면 혹은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는 데 쓰기도 하고, 다른 여러 가지 잡비로 써서 이미 축난 것이 많으면 고의로 배가 침몰한 척하기도 한다. 때로는 배가 낡아도 고치지 않고 침몰시키는 자도 있고, 혹은 배가 패선했다고 칭탁하지만 실제로는 귀속되는 자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와 가짜가 섞였는데도 존귀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인연하여 끝내는 죄와 벌을 면하게 된다.’고 합니다. 막중한 공적인 곡식을 이미 이 무리들이 가로채고, 또 탐악한 관리와 교활한 서리들이 꾀를 부려 농락하니, 국가의 재용을 장차 다시 어떻게 하겠으며, 도성의 백성들 역시 무엇을 의지하며 생활하겠습니까. 전하께서 신료들의 공론을 채택하지 않고 사람들이 사사로움을 부려도 살피시지 않기 때문에, 종친 외척과 근신과 좌우의 설어(褻御) 들이 각기 그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각기 친한 바에 사사롭게 하는 것이니, 일찍이 차제(差祭)나 죄벌이 합당한지의 여부와 백성과 나라의 이로움과 병폐에 관계되는지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는 바로 옛사람이 말한, ‘조정의 신하들이 각기 자신과 자신의 집안을 위한 계책을 도모하더라도, 인군은 한 집안만을 위한 계책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건강(乾剛)을 분발하시고 사사로운 일로 알현하는 것을 엄중하게 억제하소서. 먼저 탐악을 징계하는 정치를 행하시어 종척이나 인척들이라도 조금도 너그럽게 용서하지 마소서. 도적을 금지시키는 영을 엄하게 하시고 배를 침몰시키는 죄를 다시 엄하게 다스리셔서 혹시라도 좌우의 가까운 신하의 말을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역시 태평한 시대를 만드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수령을 신중하게 가려서 너무 자주 바꾸지 않도록 하소서.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이르기를, ‘3년마다 관리의 성적을 심사하고 세 번 심사하여〔三考〕 어리석은 사람은 내치고 현명한 사람은 승진시켰다.’ 하였습니다. 한(漢) 나라의 장리(長吏)들은 대부분 구임(久任)되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편안하고 국가가 부유하여 재용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0고(考)를 하여 임기를 채우는 법은 역시 옛날의 법을 모방한 것입니다. 그런데 근년 이래로 간혹 1, 2년 만에, 혹은 1년에 3, 4회씩 바꾸는가 하면, 간혹 한 사람이 4, 5년 사이에 6, 7개 고을을 옮겨 가며 역임하고 있으니, 비록 공수(龔遂)황패(黃覇)와 같이 유능한 관리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더라도 어느 여가에 백성을 다스리고, 어느 여가에 정치를 이루겠으며, 또 어느 여가에 부세를 독촉하겠습니까. 하물며 맞이하고 송별하는 비용을 매번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여 백성들이 괴롭고 피곤해하며, 심지어는 관속들의 왕래에 필요한 잡비를 반드시 백성들에게서 얻어 내고도 역시 공납(公納)을 범하는 것이겠습니까. 새로 관리가 된 자가 경사(京司)에 관례로 바치거나 행하(行下)로 내려주는 금품도 모두 보고하기 어려운데, 간혹 파직이나 이직(移職)으로 인해 서리들이 자의로 포채(浦債)를 행하거나, 혹은 공납을 횡령하고, 혹은 백성의 결전(結錢)을 추가로 징수하는 등 결국은 백성과 국가의 커다란 폐막이 되고 있습니다. 신이 삼가 근일의 전조(銓曹)의 정목(政目)을 보건대 외직(外職)이 사람들에게 가장 선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달마다 바꾸고 해마다 옮기는 것은 오로지 눈앞의 사사로운 정을 따르기 때문일 뿐인데, 어찌 일찍이 백성과 나라의 폐단을 논하겠습니까. 심한 경우는 간혹 감사가 관리의 고과를 전(殿)으로 매겨도 모두 구애하지 않고, 혹은 원래 전혀 이력(履歷)이 없어 관리의 다스림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도 단지 작은 노고만을 이유로 갑자기 제수하기도 하니, 이미 신중히 간택되는 도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역시 장차의 폐단을 만드는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러한 폐단을 깊이 생각하시어 사사로운 은혜에 구애하지 마소서. 무릇 방백과 수령을 반드시 신중하게 선택하여 갑자기 제수하거나 자주 교체하지 마시어, 실제로 명성과 실적이 있는 경우에는 구임하게 하여 바꾸지 마소서. 만약 탐오하고 혼약(昏弱)한 자라면 일체 죄를 주고 도태시켜서 백성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고 공납(公納)에 지체됨이 없도록 하신다면 역시 태평한 시대를 여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네 번째, 외교는 반드시 먼저 안을 닦아야 합니다. 신은 듣건대, 익(益)순(舜) 임금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경계하면 근심이 없을 것이니 법도를 잃지 마소서.’ 하였고, 끝에 이르기를, ‘나태하지도 말고 황폐하지도 말아야 사방의 오랑캐들도 와서 붙좇는다.’ 하였습니다. 주왕(周王)도 역시 ‘천보시(天保詩) 이상의 것으로는 안으로 다스리고, 채미시(采薇詩) 이하를 가지고는 밖을 다스린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통해 본다면 옛날의 성왕들은 반드시 먼저 법도를 잃지 않고 제사를 올려서 복을 받으며, 군졸들의 원망이 없은 다음에야 외적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 말하는 자들은 단지 교린(交隣)을 밝혀야만 한다고 하면서 안을 닦은 일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수 임금과 주왕의 도이겠습니까.

대저 우리나라의 재물과 곡식은 단지 국내에서만 쓸 만하고, 나라 안의 군졸들의 기예는 밖으로는 둔한 듯하나 안으로는 실로 쓸 만합니다. 오늘날에는 한갓 진기하고 사치스러운 다른 나라 물건만을 귀하게 여겨 우리나라의 재물이 날마다 수없이 허비되고 있는 것은 돌아보지도 않고 있으며, 한갓 다른 기예만을 신기하다고 교묘하다고 말하면서 우리나라 사람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재주와 기예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령 저들의 기물이나 재주와 기예 가운데 혹시 취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굶주리거나 추위에 떨지 않고 모두 윗사람을 친히 여기고 나이 많은 이를 섬기게 되고 난 다음에야 다른 기예에 대해서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저들의 물건이 모두 부질없고 화려하기만 하여 아무런 실속이 없으며, 저들의 기예가 모두 올바른 방도가 아닌 경우이겠습니까. 옛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것은 온 세상이 다 그렇게 쏠리지 않음이 없습니다. 저들이 줄을 이어 들어와서 우리나라의 재정은 날로 소모되고 있는데, 재물과 곡식과 포목을 또한 장리나 간악한 서리, 궁액이나 존귀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농간을 부려 횡령을 하게 된다면, 백성은 궁핍하고 군졸들은 굶주리게 될 것이니, 또한 교린을 하려고 하더라도 어떻게 교린을 하겠습니까.

신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순 임금과 주왕의 법을 강명하시어 화려한 먼 지방의 물건을 엄금하시고, 다시 가까운 신하들이 사사로운 일로 알현하는 것을 물리치도록 하시며, 대향(大享)과 정공(正供)에 구차한 어려움이 업도록 하시고, 군졸이나 서리들의 녹봉을 주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한 다음에 비로소 교린하는 방도를 강명하신다면, 진실로 만수와 태평의 세상을 온 천하와 같이한다고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여러 차례 돈독하게 불렀으나 끝내 그대를 이르게 하지 못하여 부끄러움이 절실하였는데, 방금 상소를 보고 나서는 더욱더 나 자신도 모르게 망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러나 진술한 여러 가지 조목은 경전을 인용하고 의리에 입각하여 시대를 구제하고 풍속을 제도하는 데 어느 것 하나 절실하고 지극한 논의가 아닌 것이 없었다. 진실로 깊이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도리를 살피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더욱 충성스럽고 사랑스런 마음을 볼 수 있겠다. 내가 마음 속으로 그대를 반드시 오도록 해서 아침저녁으로 좌우에서 보필하고 계옥(啓沃)하는 책임을 다하게 하고자 하는 생각을 어찌 늦출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이제 봄 해가 점차 길어져 강연과 서연을 장차 열려고 하니, 그대는 즉시 분연히 일어나 나의 갈망에 부응하도록 하라. 실함(實銜)은 그 사이에 이미 변통하였다. 내려준 물건은 이미 전례가 있는 것이니 이처럼 사양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안심하고 받도록 하라."

하였다.


  • 【원본】 23책 19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8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書筵官金洛鉉疏略:

竊伏聞春宮邸下睿製詩曰: "萬壽太平, 天下同。" 臣竊念皇天、祖宗默佑而爲此詩, 使今日必爲萬壽太平之道也。 臣雖不得進參於宮僚賡和之末, 而不勝歡忭慶祝之忱, 敢以萬壽太平之道, 爲殿下陳之, 以代封、麥邱之祝焉。 臣聞《中庸》曰: "其大孝也歟。 德爲聖人,"又曰: "大德必得其壽。" 由此觀之, 則修德而至於聖人, 必得無疆之壽。 故自古帝王, 德莫如而壽莫如也。 今殿下以聖人之姿, 莅聖人之位, 有爲則亦若是。 臣願殿下講之書, 修之德, 行之政而享之壽也。 臣又聞《天保》詩曰: "吉蠲爲糦, 是用孝享。 君曰卜爾, 萬壽無疆。" 由此觀之, 則古人壽福, 必祝於廟享也。 臣願殿下法大禹菲飮食之道, 行傳用之舒之之政, 經用無匱, 大享吉蠲, 則上福、下庇, 可躋一世於仁壽之域也。 至於致太平之道, 今不暇遠引古道, 只擧目下最急者四條。 其一, 曰減冗費以贍經用。 臣伏見國家經用, 昔非不足。 挽近以來, 田結多屬各宮與內司, 加之漕米爲船人之偸弄, 錢布爲吏胥之犯逋, 未聞有賤守、逋胥之罰, 當其罪者。 若乃臭載之船人, 多蒙寬典。 故賦稅由是而積滯, 經用由是而漸絀也。 況近日上納, 皆入於新設各衙門, 又幾盡於諸般冗費。 故大享之需, 正供之入, 每患窘乏, 百官之祿, 各營、各司軍人胥隷之月給, 亦多闕焉。 且貢人、廛人者, 上下財用之所賴, 而都民亦資以生也。 今每使先納, 不給本價, 則終必至於財竭、民散, 徵貸無處矣。 臣未敢知軍民離散, 都下無財穀, 則何以致太平也乎? 臣願殿下淵然深思, 禁淫祀而停營繕, 抑奢侈而節賞賜。 各邑所納錢穀木布, 必先用於大享正供與軍卒胥徒之月給, 而貢廛人先進者, 亦皆出給, 然後始可論太平萬歲之道也。 其二, 曰抗公而抑私。 臣聞朱子封事曰: "天無私覆, 地無私載, 日月無私照。" 王者奉三無私以勞天下, 則博愛、大公而人莫不悅服。 夫率土莫非殿下臣民, 則固當一視而同仁, 何可私近戚而疎遠臣, 惠偏於左右僕從而不及於四方萬民也乎? 又況軍卒、胥徒一也, 何必捨舊而取新, 狃近而忘遠? 又何必變舊典而創新制乎? 臣伏見今日民窮財絀, 公納邑邑愆滯, 而未聞有懲貪之政。 雖或薄勘而不久旋敍, 處處盜賊, 白晝公行, 居民不能安, 商旅不能行。 以至公納錢木, 亦或刦奪, 而或入於譏捕者, 私囑貴近而脫出。 或貪守誣良民而討財, 悍校藉捕盜而行暴, 此皆以私勝任非其人之害也。 臣待罪湖邑之時, 聞船人之言曰: "上有大內上供, 下至者民億萬命所食之穀, 皆賴京江船運矣。" 挽近以來, 公納情費, 歲增月加。 且名以船主, 則亦多橫侵, 故江人不復造船, 以避富名。 惟宮隷族屬、貴宰傔從, 只圖帖文, 或借船或貰船, 及其載去也, 或報他邑舊逋, 或用酒博雜費, 犯縮已多, 則故爲船敗之樣。 或有船弊不改而臭載者, 或假托破船而實有歸屬者。 故混合眞假, 因緣貴近, 竟免罪罰。 莫重公穀, 旣爲此輩之乾沒, 又爲貪官、猾吏之幻弄, 國用將復何如? 都民亦何賴而生乎? 殿下不採臣僚之公論, 不察各人之用私, 故宗戚、近臣, 左右褻御, 各利其身, 各私所親而已。 何曾慮及於差除、罪罰之當否、民國利病之所關也哉? 此正古人所稱朝臣各爲身家之計, 而君上不爲家國之計者也。 臣願殿下奮發乾剛, 痛抑私謁, 先行懲貪之政, 無少寬貸於宗戚、姻婭之人。 更嚴戢盜之令與臭載之罪, 無或容恕於左右近習之言, 則亦可爲致太平之道也。 其三, 曰愼擇守令而無數易。 《舜典》曰: "三載考績, 三考黜陟幽明。" 之長吏, 擧皆久任, 故民安國富, 財用無絀。 我朝十考滿瓜, 亦倣古典矣。 挽近以來, 或一二年或一年三四易, 又或以一人而四五年間, 歷遷六七邑。 雖當之, 民何暇治而政何暇成, 又何暇督賦稅乎? 況迎送之費, 每每斂民, 民益困瘁。 至於官屬之往來雜費, 必貸於民, 亦犯公納。 新官之京司例債與行下者, 未暇盡報, 而或罷或移, 自爲由吏之逋債, 或乾沒公納, 或加徵於民結, 遂爲民國之大痼瘼也。 臣伏見近日銓曹政目, 外職最爲耀人。 故月改歲遷, 惟爲目下之私情而已, 何曾論民國之弊也哉? 甚或繡論考殿, 竝無拘礙, 或元無履歷, 不知吏治者, 但以微勞遽授, 旣非愼擇之道, 亦將爲生弊之端。 切願殿下深軫此弊, 勿拘私恩。 凡方伯、守令, 必愼必擇, 而無遽授、無數易, 實有聲績則久任勿改。 若貪饕昏弱者, 一切罪汰, 使民生安居、公納無滯, 則亦可爲致太平之道也。 其四, 曰外交必先內修。" 臣聞之戒曰: "儆戒無虞, 罔失法度,"終之曰: "無怠無荒, 四夷來王。" 王亦以《天保》以上治內, 《采薇》以下治外。 由此觀之, 古昔聖王, 必先法度無失, 享祀受福而軍卒無怨, 然後可以禦外也。 今之言者, 只講交隣而不及於內修, 是豈虞舜王之道哉? 夫我國之財穀, 只可用於國中, 軍卒技藝, 外似鈍而內實可用。 今徒貴他物之珍異、奢侈而不顧我財之日歸尾閭, 徒謂他技之新奇、捷巧而不思我人之自有才技。 假使彼之器物、材技, 或有可取, 猶待我人之不飢、不寒, 皆能親上、事長, 然後可論他技也。 況彼物皆浮華無實, 彼技皆非正道也哉? 厭舊喜新, 擧世靡然, 彼人之來相續, 我國之財日耗。 而財穀木布, 又爲贓吏、猾胥、宮掖、貴近之人所幻弄乾沒, 則民窮、卒飢, 亦何以交隣乎? 臣願殿下講虞舜王之法, 嚴禁遠物之靡財, 更杜近習之私謁, 使大享、正供無苟艱, 軍卒、胥徒之廩祿無闕, 然後始講交隣之道, 則眞可謂萬壽太平天下同也。

批曰: "累有敦召, 竟不能致, 愧恨方切, 卽見巽章, 尤不覺惘然失圖也。 然所陳諸條, 引經據義, 救時濟俗, 無往非切至之論。 苟非深邃於修齊治平之道, 其何以如是? 於此尤可見忠愛之忱。 予心之必欲致爾, 朝夕左右, 以盡其匡輔、啓沃之責, 烏可緩也? 況今春晷漸長, 講筵與書筵將開, 爾其卽爲賁然, 副此渴望。 實銜間已變通。 至於賜與之物, 已有往例, 不必如是爲辭。 爾其安心領受。"


  • 【원본】 23책 19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8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