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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17권, 고종 17년 11월 11일 을해 2번째기사 1880년 조선 개국(開國) 489년

허원식이 나라를 보전하는 데 대하여 상소를 올리다

전 정언(前正言) 허원식(許元栻)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전하(殿下)의 슬기로우신 성품은 요순(堯舜)의 정사를 이룩할 수 있는데도 혜택이 미치지 않고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은 어찌하여 그런 것입니까? 지금 가장 급선무는 백관(白官)의 녹봉(祿俸)이 넉넉하지 못하고 오영(五營) 군량이 넉넉하지 못하며 각사(各司)의 서리(胥吏)가 받아먹을 곳을 잃어 상하(上下)가 빈곤에 허덕이게 된 것입니다. 또 한 나라의 비용은 공시인(貢市人)에게 부담시키지 않는 것이 없는데 먼저 진배(進排)한 뒤에 공가(貢價)를 받지 못하므로 그들이 가산을 탕진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의 경용(經用)도 이처럼 군색하니 만약 몇 년 동안 수재(水災)나 한재(旱災)가 들고 사방에서 전쟁하게 되면 장차 어떻게 구제하겠습니까?

정공(正供)은 한정이 있는데 반사(頒賜)는 절제가 없어 남용하고 허비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무익한 일을 만들어서 유익한 일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전부(田賦)를 10분의 1로 받는 것은 백성과 나라가 모두 만족해지는 법인데 근래에 거둬들이는 신하가 제멋대로 가결(加結)하거나 작전(作錢)하는 그릇된 규례를 만들어서 1결의 값을 3, 4십 냥(兩)으로 함부로 징수하기까지 하였고, 진주(晉州)에서 100여 냥을 거두는 것 또한 더욱 심한 학정이었습니다. 또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것이 모조리 나라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오히려 차마 백성의 재물을 약탈할 수 없는데, 더구나 위로는 나라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있지 않으며 중간에서 횡령하는 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또 전(錢)은 경보(輕寶)입니다. 간사한 아전(衙前)이 축내고 탐욕스런 관리가 부정하게 챙기며, 조운(漕運)할 때 선주(船主)가 모두 삼켜버리고는 배가 파선되었다고 핑계 대는 일이 자주 일어나니, 저 선주 또한 권세에 붙어서 꺼리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결과 작전하는 일은 빨리 금단시키고 반드시 농사지어 나온 쌀로 상납하게 하며, 조선(漕船)은 경강선(京江船)을 쓰지 말고 지토선(地土船)으로 운반하게 한 연후에야 백성들에게 두 번 세 번 징수하는 폐단이 없어질 것입니다. 또 더 내보낸 서리(胥吏)가 매우 많아서 인정(人情)의 잡비가 전보다 10배나 되고 선주와 색리(色吏)가 모두 포흠해서 피해가 또 백성들에게 미칩니다. 지금부터 정식대로 준행하라는 뜻으로 엄하게 신칙(申飭)하는 일을 결단코 그만두어서는 안 됩니다.

옛날의 성왕(聖王)들은 하루 동안의 복잡한 정사를 조심조심 처리하되 언제나 힘을 기울이지 않는 일이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선을 행한 분은 순(舜) 임금이요, 새벽에 덕을 밝혀 앉아서 아침을 기다린 분은 탕(湯) 임금입니다. 《시경(詩經)》 〈계명편(鷄鳴篇)〉에 ‘동방이 밝았다.’ 한 것과 〈정료편(庭燎篇)〉에 ‘밤이 얼마나 멀었는가?’ 한 것으로 말하면 모두 아침 일찍 조회에 참석하는 것을 찬미하는 뜻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돌아보소서.

500년 동안 예의의 나라가 된 것은 실로 성조(聖祖)께서 문치(文治)를 숭상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어찌하여 지금 세상에서는 위에는 인도하는 정사가 없고 아래에는 자포자기한 부류가 많단 말입니까? 못난 자는 패설(稗說)과 이언(里諺)하는 것을 심심풀이로 삼고 능한 자는 마조(馬弔)나 강패(江牌) 같은 노름하는 것을 고상한 운치로 삼고 있습니다. 성현(聖賢)들의 경전(經典)은 울타리 밑에 쓸모없는 듯이 버려두고 과문(科文)과 시부(詩賦) 같은 것은 온통 허투(虛套)를 썼는데도 장원 급제한 자가 왕왕 있으므로 이 때문에 글 읽는 사람들이 지금 거의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단과 요사스런 잡술과 허망하고 괴이한 설이 날로 새로워지고 달로 번성하고 있습니다.

아! 청담(淸談)이 일어나서 오호(五胡)가 중국을 어지럽혔고 불교가 성행하여 6조(六朝)가 사람에게 화를 입혔는데, 지금 사람이 하는 짓은 청담이나 불교보다 심한 점이 있지 않습니까? 속히 참된 선비를 뽑아서 성균관(成均館)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임무를 맡기고, 고시관(考試官)으로는 학문이 깊고 공명정대한 마음을 지닌 자를 잘 선발하여 전적으로 책임지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왕도(王道)가 행해지고 풍속이 바루어질 것입니다.

전하께서 법강(法講)을 그만둔 지 이미 7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교화가 막힌 것은 오로지 성학(聖學)이 빛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날마다 아침, 낮, 저녁으로 세 번의 강연(講筵)을 열어 부지런히 하며 게을리 하지 마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비단 전하의 공부가 날로 새로워질 뿐 아니라 동궁(東宮) 저하께서도 전하의 몸소 가르치시는 교화를 받고 감동되어 학문이 발전할 것이니,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우레의 이변이 소리를 거둔 뒤에 나타나고 겨울에 여름철 기후가 나타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전하께서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정전(正殿)을 피하는 것을 다만 형식적으로 하실 뿐이고 삼사(三司)의 연명 차자(聯名箚子)도 형식적일 뿐입니다. 신이 감히 상제(上帝)를 알지는 못하지만 또한 형식적인 재변이 있겠습니까?

지금 백성과 나라의 위급함이 이와 같은 때가 없었으며 우레의 이변이 또 이러한데도 입을 다문 채로 충직한 말이나 아름다운 계책을 한 마디도 아뢰는 자가 없으니, 전하께서 어떻게 폐단의 근원을 통찰하여 제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속히 간언(諫言)하는 길을 열어놓는다면 다스리는 방도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치한 버릇이 지금 풍속을 이루어 조예(皂隷)들의 평상복이 모두 홍자색(紅紫色)이고 시정잡배(市井雜輩)들의 관건(冠巾)도 모두 금과 옥으로 장식하였기에, 먼 나라의 진귀한 물건들이 저자에 꽉 찼는데 그것을 무역하는 밑천은 모두 우리의 미곡(米穀)과 포백(布帛)입니다. 우리의 명맥이 걸린 보화를 가지고 저 쓸데없는 사치품과 바꾸며 부상(富商)이 곡물을 장사하여 다른 나라에 잠매(潛賣)하는 것도 먼 나라의 물건을 보배롭게 여기는 탓입니다. 급히 엄금시킨 연후에야 백성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유념하시고 또 유념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하였다.


  • 【원본】 21책 17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27면
  • 【분류】
    교통-수운(水運) /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재정-국용(國用) / 군사-부방(赴防) / 재정-공물(貢物) / 과학-천기(天氣) / 재정-전세(田稅) / 금융-화폐(貨幣) / 사상-불교(佛敎)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풍속-풍속(風俗)

    前正言許元栻疏。 略:

    "殿下睿知之性, 可以致之治, 而惠澤未究, 人心嗷嗷, 何爲其然歟?。 方今最急之務, 百官俸祿不贍, 五營兵食未給, 各司胥吏失其仰哺, 上下遑遑。 且國家所用, 莫不責應於貢市之人, 而先則進排, 未受價, 彼輩蕩盡家産。 平時之經用, 若是窘急, 若有數年水旱, 四方師旅, 將何以濟之乎? 惟正之供有限, 而匪頒之賜無節, 濫用虛費不可貲量, 此所謂作無益而害有益也。 田賦什一, 民國俱足之法, 而挽近聚斂之臣恣爲加結、作錢之謬例, 一結之價至有三四十兩之濫徵。 而晉州之百餘兩, 又其尤甚之虐政也。 且其所掊克者, 雖盡入於國, 猶不忍剝割, 況上不在國, 下不在民, 乾沒於中間者乎? 且錢者, 輕寶也。 奸吏逋之, 貪官贓之, 漕運則船主竝呑之, 託以臭載者, 比比有之。 彼船主, 亦有倚勢無憚故耳。 加結及作錢之事, 急速禁斷, 必以田農所出之米上納, 而漕船勿用京江船, 使地土船運致。 然後民無再三徵之弊矣。 且加出吏胥甚多, 人情雜費, 比前十倍, 船主與色吏, 擧皆負逋, 而害又及民。 今以後依定式遵行之意嚴飭, 斷不可已也。 古之聖王, 兢兢乎一日萬幾, 罔或不勤。 故鷄鳴爲善, 也, 昧爽待朝, 也。 至若東方明矣之詩、夜如何其之詠, 皆所以贊美早朝之義也。 願殿下猛省焉。 五百年禮義之邦, 實基於聖祖右文之治矣。 胡今之世上無導率之政, 下多暴棄之類? 拙者, 以稗說里諺, 爲閒情, 能者, 以馬弔江牌, 爲高致。 聖經賢傳, 置之笆籬, 而至於科文詩賦之類, 全用虛套而嵬擢者, 往往有之。 是故讀書種子, 今幾絶矣。 於是乎異端邪術、妄誕妖怪之說, 日新月盛。 噫! 淸談興而五胡亂華, 釋敎盛而六朝禍人。 今人之所爲, 不有甚於淸談、釋敎者乎? 亟宜選眞儒, 委以成均作人之任, 至於考試, 極擇有文學公明之心者, 專責焉, 則王道行而風俗正矣。 殿下之廢法講, 已過七年矣。 目今敎化之壅遏, 職由於聖學之未能緝熙也。 願殿下日開朝晝夕三講筵, 克勤無怠, 則非特聖工之日新, 東宮邸下亦被身敎之化, 觀感而進學矣, 豈不善哉? 雷異之變, 出於收聲之後, 冬行夏令, 非一非再, 而殿下之減膳避殿, 只是文具, 三司之聯箚, 亦是文其。 臣未敢知上帝亦有文具之災異耶? 見今民國之危急, 莫此時若, 震驚之變又如此, 而寥寥無忠言嘉猷之一陳者, 殿下何以洞燭弊源而革去乎? 亟開來諫之路, 治道可得而聞也。 奢侈之習, 今成風俗, 皂隷褻服無非紅紫, 市井冠巾亦皆金玉。 故遠方之珍異, 遍滿市肆, 而其所貿易之資, 皆我米粟布帛也。 以我命脈所係之寶, 換彼玩好無用之物, 富商之販穀潛賣於異國者, 亦由於寶遠物之致也。 急宜嚴禁。然後民可保也, 國可全也。 惟殿下念哉念哉。"

    批曰: "省疏具悉。"


    • 【원본】 21책 17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27면
    • 【분류】
      교통-수운(水運) /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재정-국용(國用) / 군사-부방(赴防) / 재정-공물(貢物) / 과학-천기(天氣) / 재정-전세(田稅) / 금융-화폐(貨幣) / 사상-불교(佛敎)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풍속-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