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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16권, 고종 16년 7월 9일 신사 1번째기사 1879년 조선 개국(開國) 488년

이유원과 북양 대신 이홍장이 주고받은 편지

중국 북양 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이 우리나라에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과 통상하여 일본을 견제하고 러시아 사람들이 엿보는 것을 방지할 것을 권하였는데, 이때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유원(李裕元)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에,

【"2월경에 객(客)이 도착하여 작년 섣달 보름에 보낸 혜서(惠書)를 받았습니다. 외교 문제를 가지고 이득과 손실에 대해 구명하고 정세에 대한 분석을 되풀이 해가면서 설명한 것은 충성스러운 시책과 커다란 계획으로써 감복하는 마음이 한량없습니다. 요사이 많은 나이에 건강하게 지내고 나랏일도 잘 처리하여 국토를 보전하고 외적을 방어하는 조처가 모두 합당하니 매우 칭송하고 뜻을 받들게 됩니다. 일본이 귀국과 교섭하는 여러 가지 절차에 대해서는, 왜인(倭人)의 성정이 포학하고 탐욕스러운 까닭에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내디디려는 계책을 쓰는 것을 귀국이 그때마다 응수하기란 틀림없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에 왜국에 주재한 공사(公使) 하시독(何侍讀)이 글을 보내왔는데, 왜인들이 소개해 줄 것을 청하면서 귀국과 진심으로 친하게 지내고 서로 속이지 말기를 바란다고 여러 차례 말하였습니다. 제가 또 생각하기에 자고로 교린(交隣)의 도는 진실로 타당하다면 구적(仇敵)이 원조자가 되고 진실로 타당하지 않다면 원조자가 구적이 될 것입니다. 왜인의 말이 비록 반드시 마음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직은 기회를 맞아서 잘 유도하여 그들의 트집을 막고 영원토록 화목하기를 바랍니다. 이 때문에 일찍이 편지를 부쳐서 먼저 의심을 보여서 구실이 되도록 하지는 말라고 권고하였던 것입니다. 최근에 살펴보면 일본의 처사가 잘못되고 행동이 망측하므로 미리 방어해야 하므로 감히 은밀히 그 개요를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은 근래 서양 제도를 숭상하여 허다한 것을 새로 만들면서 벌써 부강해질 방도를 얻었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창고의 저축은 텅 비고 국채(國債)는 쌓이고 쌓여서 도처에서 말썽을 일으키면서 널리 땅을 개척하여 그 비용을 보상하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강토가 서로 바라보이는 곳이 북쪽으로는 귀국이고 남쪽으로는 중국의 대만(臺灣)이니 더욱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유구(流球)도 역시 수백 년의 오랜 나라이고 모두 일본에 죄를 지었다고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 올봄에 갑자기 병선(兵船)을 출동시켜 그 나라 임금을 폐위하고 강토를 병탄하였습니다. 중국과 귀국에 대해서도 장차 틈을 엿보아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으리라고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은 병력과 군량이 일본의 10배나 되기 때문에 스스로 견뎌낼 수 있겠지만 귀국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은밀히 무비(武備)를 닦고 군량도 마련하고 군사도 훈련시키는 동시에 방어를 튼튼히 하면서 기색을 나타내지 말고 그들을 잘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이웃 나라 왕의 정상적인 관계로는 조약을 성실하게 지키어 그들에게 이용될 단서를 주지 않는 것이며, 하루아침에 사건이 발생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그르고 우리가 옳으면 승부는 그것에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귀국은 이전부터 문화를 숭상하는 나라로는 불리었지만 반면에 경제력은 대단히 약하기 때문에 즉시 명령을 내려 신속히 도모하여 한다 해도 짧은 시일에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일본이 ‘봉상호(鳳翔號)’, ‘일진호(日進號)’ 두 척의 군함을 파견하여 오랫동안 부산포(釜山浦) 밖에 정박시키고 대포 사격 훈련을 하고 있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사태가 엄중하여지면 중국이 힘을 다해 돕겠지만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제 시간에 미치지 못할까봐 우려됩니다. 더욱이 걱정되는 것은 일본이 서양 사람들을 널리 초빙 해다가 해군과 육군의 병법을 훈련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대포와 군함이 우수한 면에서는 서양 사람들에 만 분의 일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귀국으로서는 대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군다나 일본이 서양의 여러 나라들에 아첨하면서 그들의 세력을 빌려서 이웃 나라를 침략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적이 없습니다. 작년에 서양 사람들이 귀국에 가서 통상을 하자고 하다가 거절당하고 갔으니 그들의 마음은 종시 석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일본이 뒤에서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여러 나라들과 결탁하여 개항에 대한 이득을 가지고 유혹시키거나 혹은 북쪽으로 러시아와 결탁하여 영토 확장의 음모로 유인한다면 귀국은 고립되는 형세가 될 것이니 은근한 걱정이 큽니다. 시무(時務)를 알고 있는 중국 사람들은 모두 의논하기를,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 뒤늦게 가서 구원하는 것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다른 대책을 생각해보는 것만 못하다.’라고 합니다. 말썽도 없게 하고 사람도 편안하게 하는 도리로써 과연 능히 시종일관 문을 닫아걸고 자체로 지켜낼 수 있다면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서양 사람들은 가볍고 편리하고 예리한 자기들의 무기를 믿고 지구상의 여러 나라를 왕래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사실 천지개벽 이후에 없었던 판국이며 자연적인 추세이니 사람의 힘으로는 막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귀국이 이미 할 수 없이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고 통상을 한다는 사실이 벌써 그 시초를 연 것이니, 여러 나라들도 반드시 이로부터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일본도 도리어 이것을 좋은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지금의 형편으로는 독(毒)으로 독을 치고 적을 끌어 적을 제압하는 계책을 써서 이 기회에 서양의 여러 나라와도 차례로 조약을 체결하고 이렇게 해서 일본을 견제해야 할 것입니다. 저 일본이 사기와 폭력을 믿고 고래처럼 들이키고 잠식(蠶食)할 것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유구를 멸망시킨 한 가지의 사실에서 단서를 드러내놓은 것입니다. 귀국에서도 어떻게 진실로 방비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데, 일본이 겁을 내고 있는 것이 서양입니다. 조선의 힘만으로 일본을 제압하기에는 부족하겠지만 서양과 통상하면서 일본을 견제한다면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서양의 일반 관례로는 이유 없이 남의 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합니다. 대체로 각 나라들이 서로 통상을 하면 그 사이에 공법(公法)이 자연히 실행되게 됩니다. 작년에 터키가 러시아의 침범을 당하여 사태가 매우 위험하였을 때에 영국, 이탈리아와 같은 여러 나라에서 나서서 쟁론(爭論)하자 비로소 러시아는 군사를 거느리고 물러났습니다. 저번에 터키가 고립무원(孤立無援)이었다면 러시아인들이 벌써 제 욕심을 채우고 말았을 것입니다. 또 구라파의 벨기에와 덴마크도 다 아주 작은 나라이지만 자체로 여러 나라들과 조약을 체결하자 함부로 침략하는 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모두 강자와 약자가 서로 견제하면서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또한 남의 나라를 뛰어넘어서 먼 곳을 치려 하는 것은 옛사람들도 어려운 일로 여겼습니다. 서양의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은 귀국과 수만리 떨어져 있고 본래 다른 요구가 없으며 그 목적은 통상을 하자는 것뿐이고 귀국의 경내를 지나다니는 배들을 보호하자는 것뿐입니다.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고엽도(庫葉島), 수분하(綏芬河), 도문강(圖們江) 일대는 다 귀국의 접경이어서 형세가 서로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귀국에서 먼저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과 관계를 가진다면 비단 일본만 견제될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이 엿보는 것까지 아울러 막아낼 수 있습니다. 러시아도 반드시 뒤따라서 강화를 하고 통상을 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 기회를 타서 계책을 빨리 고치고 변통할 도리를 생각할 것이지 따로 항구를 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일본이 통상하고 있는 지역에 몇 개 나라의 상인이 더 오겠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무역을 나누어갈 뿐이지 귀국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관세(關稅)를 정하면 나라의 경비에 적으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으며 상업에 익숙하면 무기 구입도 어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조약을 체결한 나라들에 때때로 관리들을 파견하여 서로 빙문(聘問)하고 정의(情誼)를 맺어둘 것입니다. 평상시에 연계를 맺어둔다면 설사 한 나라에서 침략해 오는 것과 맞닥트려도 조약을 체결한 나라들을 모두 요청하여 공동으로 그 나라의 잘못을 논의하여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 일본도 감히 함부로 날뛰지 못할 것이며 귀국에서도 먼 지방의 사람들을 접대하는 방도로서도 옳을 것입니다. 사건마다 강구(講求)하여 강유(剛柔)를 적절하게 하는 것을 힘쓰고 모두 협력하도록 조종한다면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방도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이 없으며, 왜인을 방어할 수 있는 계책으로서도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요즘 각 국의 공사들이 우리 총리 아문(總理衙門)에다 자주 귀국과의 상무(商務)에 대해 말해오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귀국은 정사와 법령을 모두 자체로 주관해 오고 있으니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간섭하겠습니까? 단지 중국과 귀국은 한집안이나 같으며 우리나라의 동삼성(東三省)을 병풍처럼 막아주고 있으니 어찌 입술과 이가 서로 의존하는 그런 정도뿐이겠습니까? 귀국의 근심이 곧 중국의 근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넘은 줄 알면서도 귀국을 위한 대책을 대신 생각하여 진정으로 솔직히 제기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곧 귀국 임금에게 올려서 정신(廷臣)들을 널리 모아서 심사원려(深思遠慮)하여 가부(可否)를 비밀리에 토의하기 바랍니다. 만일 변변치 못한 말이지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먼저 그 대강을 알려주기 바랍니다. 우리 총리 아문에서도 그런 내용을 서로 알고 있어야 여러 나라들이 이 문제를 언급할 때에 기회를 보아가며 말을 하여 국면이 전환되어 가고 있다는 뜻을 서서히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종전에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중국 내부가 어수선한 틈을 타서 힘을 합쳐 압력을 가하려고 하였으며 조약을 체결할 때에도 옥백(玉帛)으로 하지 않고 무력을 썼던 것입니다. 그런 조약을 오랫동안 이행해 오면서 제재를 받았던 것이 매우 많았다는 것은 원근에서 다 충분히 들어서 아는 바입니다. 귀국에서 만약 무사할 때에 조약을 체결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저들은 뜻밖의 일에 기뻐하여 당치않은 요구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편을 판매한다든가 내지(內地)에 선교(宣敎)하는 여러 큰 폐단들에 대해서 엄하게 금지시켜도 아마 저들은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로서 만약 다른 견해가 있게 되면 또한 수시로 한두 가지 적당히 참작해서 충고의 의견을 올려 전반적 국면에서는 잘못된 것이 없게 할 것입니다. 대개 정사하는 데서는 때맞게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그렇게 해야 정사가 오래 유지되는 것입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하여 이해(利害)를 잘 도모하는 것이 병가(兵家)에서 중하게 여기는 것이니 오직 집사(執事)만이 실제로 도모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선교사 드게트〔崔鎭勝 : V.M.Deguette〕가 귀국에 나금(拿禁)되어 있는데 북경(北京)에서는 해국(該國)의 사신이 우리나라의 예부(禮部)에 공문을 보내 석방시키도록 청해 달라고 간곡히 요구하였습니다. 사실은 이 사건을 조정해서 말썽을 없애려는 생각이었는데, 아마 이미 조사해서 시행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편지를 받는 족족 이웃 나라를 사귀는 도리에 대하여 친절히 말해주는데 어찌 번거롭다고 해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털어놓지 않겠습니까? 문안을 드립니다. 글로는 간곡한 뜻을 다하지 못합니다."】

하였다. 이유원(李裕元)의 회답 편지에,

【"이중당(李中堂) 문화전(文華殿) 태학사(太學士) 숙의백야작(肅毅伯爺爵)께 올립니다. 그동안 헌서 계관(憲書啓官) 이용숙(李容肅)의 편에 삼가 글을 써서 부치면서 유 태수(游太守)에게 부탁해서 가져다 전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10월 20일 경에 이용숙의 수본(手本)을 받았습니다. 이미 그 글이 전달되었으리라고 짐작되지만 자세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궁금한 생각이 맺혀 있습니다. 이제 공문을 바치러 가는 사신 편에 외람되게 마음속에 품고 있던 바를 고백하면서 꼭 전달될 것을 바랍니다. 올해 7월 9일에 보내준 편지를 8월 그믐 경에 받아 읽었으나 그 후 또 이럭저럭하다가 지금까지 회답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비록 예사 소식을 알린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처럼 태만해서는 안 될 것인데, 더구나 거듭 말한 사연이 순전히 우리나라의 기밀에 속하는 것을 깨우쳐준 것인데도 멍청히 듣지도 알지도 못한 것처럼 있자니 저로서도 제 자신의 변변치 못한 죄과를 얼마나 책망하게 되겠습니까? 이제 외람되게 심정을 털어놓으며 더욱 시간을 재촉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양해하여 줄 수 있겠습니까?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에서 일본과 화친하고 조약도 맺고 통상도 하는 것은 사실상 어찌할 수 없어서 하는 일이지만 그들과의 접촉에서 부디 의심하는 뜻을 보이지 말라고 한 높은 가르침은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참으면서 겉으로 유순하게 대하는 것은 사나운 체하는 성기(性氣)를 꺾자는 것인데 그들의 언동에는 엉뚱한 요구가 없지 않습니다. 규정한 이외의 딴 항구를 지적하여 개방해 달라는데 어디나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두 시간이나 승강이한 뒤에 원산진(元山津)으로 승낙해 주었습니다. 인천(仁川)은 수도 부근에 속하기 때문에 마침내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더니 어느 정도 불평을 품게는 되었으나 교제가 파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탐욕스럽고 교활한 수작으로 말하면 순전히 고래처럼 들이키고 잠식하자는 것입니다. 올봄에 유구국(流球國)을 멸망시킨 것이라든지 요즘 대포와 군함을 연습한 일들은 이렇게 비밀리에 기별해서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눈과 귀를 다 막고 앉아 있는 우리로서 어디서 얻어 듣겠습니까? 당신이 어진 덕으로 작은 우리나라를 돌보아준 지는 매우 오래 전부터이지만 우리를 대신해서 이렇게 위험이 닥치거나 환난이 일어나기 전에 방지할 대책까지 강구해 주는 것이 이런 정도에까지 이를 줄이야 어떻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오늘 서양 사람들의 판국은 사실상 자연적인 기운입니다. 우선 환난(患難)을 방어해야 할 중요성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또 독으로 독을 치고 적을 끌어 적을 제압하는 계책에 대해서 찬찬히 보여주니, 아무리 볼품없는 인물로 소견이 암둔하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자세히 설명하는 데야 어찌 환히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서양 각 국과 먼저 통상을 맺기만 하면 일본이 저절로 견제될 것이며, 일본이 견제되기만 하면 러시아가 틈을 엿보는 것도 걱정 없을 것이라는 것은 바로 당신의 편지의 기본 내용입니다. 이 밖에 관세를 정하는 데 대한 문제, 장사 형편을 알았다가 적용하는 데 대한 문제, 각종 폐단을 엄격히 금지할 데 대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대책이 그리도 세밀합니까? 참으로 황송하고 감사합니다. 어찌 감히 그 말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스스로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한쪽 모퉁이에 외따로 있으면서 옛 법을 지키고 문약(文弱)함에 편안히 거처하며 나라 안이나 스스로 다스렸지 외교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서양의 예수교는 오도(吾道)와 달라 사실 인간의 윤리를 그르치는 것으로서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맹렬히 타오르는 불처럼 두려워하고 독한 화살처럼 피하고 귀신을 대하듯 조심하고 멀리합니다. 요사이 몰래 숨어들어온 프랑스 사람을 체포하였다가 자문을 받고 해송(解送)하였지만,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예수교에 물든 자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보아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편을 판다든지 예수교를 퍼뜨린다든지 해도 바로 약하고 순한 우리의 힘으로는 성난 짐승처럼 덤벼드는 저들을 당해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밝게 알 수 있습니다. 옛날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먼 나라와 교류하고 가까운 나라를 친다.’라고 하였고, 또 ‘오랑캐를 끌어 들여 오랑캐를 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적을 끌어 적을 막는 계책인 것입니다. 그러나 목전의 형편은 옛날과 달라서 아무리 강성하여 힘 있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아침에는 외교, 저녁에는 무력 두 방면에서 상대하다가는 장차 분주한 통에 힘이 다하여 자기부터 먼저 패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처럼 문약한 나라가 어떻게 옛일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실로 할 수 없는 것이지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신농씨(神農氏)는 백 가지 풀을 맛보다가 독을 만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나 신농씨가 아닌 사람이 그대로 본받아 했다가는 한번 독을 만나 죽으면 그만이지 다시 살아날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적을 제어한다는 노릇이 먼저 적의 공격을 받게 되고 독을 치려는 노릇이 먼저 독에 중독 될 것입니다. 은근히 걱정되는 것은 한번 독에 걸리면 다시 일어날 수 없으니 어느 겨를에 적을 제어하겠습니까? 당신의 위엄과 명망이 천하에 떨치고 계교와 책략이 내외의 정세에 들어맞아 저 강대한 러시아나 복잡한 서양 나라들이나 변덕이 많은 일본 사람들도 진심으로 굽혀들어 무릎 꿇지 않는 자가 없으니, 일본 사람들이 대만(臺灣)을 노린다고 하여도 해를 입을 턱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오랫동안 당신의 덕을 입어왔고 지금도 믿고 있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공법(公法)은 이미 이유 없이 남의 나라를 빼앗거나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러시아와 같은 강국도 귀국에서 군대를 철수하였으니, 혹시 우리나라가 죄 없이 남의 침략을 당하는 경우에도 여러 나라에서 공동으로 규탄하여 나서겠습니까? 한 가지 어리둥절하여 의심이 가면서 석연치 않는 점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유구왕(流球王)을 폐하고 그 강토를 병탄한 것은 바로 못된 송(宋) 나라 강왕(康王)의 행동이었습니다. 구라파의 다른 나라들 중에서는 응당 제(齊) 나라 환공(桓公)처럼 군사를 일으켜 형(邢) 나라를 옮겨놓고 위(魏) 나라를 보호하거나, 혹은 일본을 의리로 타이르기를 정(鄭) 나라 장공(莊公)이 허(許) 나라의 임금을 그대로 두게 한 것처럼 하는 나라가 있음직한데 귀를 기울이고 들어봐도 들리는 말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터키를 멸망의 위기에서 건져준 것으로 보아서는 공법이 믿을 만한데, 멸망한 유구국을 일으켜 세우는 데는 공법이 그 무슨 실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일본 사람들이 횡포하고 교활하여 여러 나라들을 우습게보면서 방자하게 제멋대로 행동해서 공법을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까? 벨기에와 덴마크는 사마귀만 한 작은 나라로서 여러 큰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지만 강자와 약자가 서로 견제함으로써 지탱되는데 유구왕은 수 백 년의 오랜 나라로서 그대로 지탱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지역이 따로 떨어져 있고 여러 나라들과 격리되어 있어서 공법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까? 우리나라는 기구하게도 지구의 맨 끄트머리에 놓여 있어 터키, 유구국, 벨기에, 덴마크와 같은 작은 나라들보다도 더 가난하고 약소합니다. 게다가 서양과의 거리도 아주 멀어 무력으로 대항한다는 것은 더욱 어림없는 일이고 옥백으로 주선하려고 하여도 자체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 일본 사람들은 통상에 경험이 있고 영업에 재능이 있어서 부강하게 되는 방도를 다 알고 있지만 오히려 저축이 거덜 나고 빚만 쌓이게 된 것을 탄식한답니다. 설령 우리나라가 정책을 고쳐서 항구를 널리 열어 가까운 나라들과 통상하고 기술을 다 배운다고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들과 교제하고 거래하다가 결국 창고를 몽땅 털리고 말 것입니다. 저축이 거덜 나고 빚이 쌓이는 것이 어찌 일본 사람의 정도에만 그치겠습니까? 하물며 우리나라는 토산물도 보잘것없고 물품의 질이 낮다는 것은 세상이 익히 아는 바입니다. 각국에서 멀리 무역하러 온다 하여도 몇 집끼리 운영하는 시장과 같아서 천리 밖에서 온 큰 장사를 받아주기는 어려우니, 주인이나 손님이나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자체로 어떻게 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 그러한 것입니다. 절름발이로서 먼 길을 갈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외교란 말을 하지 말고 앉아서 제 나라나 지키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대체로 중국의 규모는 비유하면 하늘과 땅처럼 광대하기 때문에 크건 작건 한 풀무로 불어치우고 곱건 밉건 한 모양으로 만들어 기린이건 봉황이건 뱀이건 용이건 모두 다 포함하여 그때그때의 형편에 부합시켜도 태산반석에 올려지고 따라서 모든 나라가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섣불리 본받으려고 한다면 이것은 하루살이가 큰 새처럼 날아보려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진심으로 타일러주어 되도록 우리를 잘되게 하고 해를 면하게 하려는 생각이 간절하고 진지하니 부형이 자제에게 대한 생각인들 어찌 이보다 더하겠습니까? 그러나 형편이 허락지 않아 그대로 받들어 실행하지 못하니, ‘워낙 어리석은 사람은 종신토록 깨닫지 못한다.’고 한 말이 바로 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제딴에 의탁하고 믿는 것으로 말하면 서양 나라들과 일본도 당신의 위엄 아래에서는 감히 방자하게 놀지 못하는 만큼 우리나라가 길이 당신의 덕을 입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지도를 받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밤낮으로 바라는 소원입니다. 생각이 궁하고 말이 모자라 더 쓸 바를 모르니 어리석은 사람을 가엾이 여기어 그 죄를 용서하기 바랍니다. 다 쓰지 못하니 살펴주기 바랍니다."】

하였다.


  • 【원본】 20책 16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99면
  • 【분류】
    외교-러시아[露] / 외교-미국(美) / 외교-독일[德] / 외교-영국(英) / 외교-야(野)

初九日。 中國北洋大臣李鴻章, 勸我國與、通商, 欲爲牽制日本, 防止人窺伺。 際此, 致書於領府事李裕元。 其文曰:

【二月間, 接到客臘望日惠書。 反覆於邦交一事, 推究得失, 剖(析) 〔晰〕情勢, 忠謨碩劃, 傾佩無涯。 比諗頤養, 脩斷平章, 大政保疆, 禦侮措注, 咸宜至爲, 頂頌承示。 日本與貴國效涉各節, 人性情桀驁, 貪校爲得步進前之計, 貴國隨時應時, 正自不易。 客歲, 駐公使何侍讀來書屢稱: "人倩爲介紹, 願與貴國, 誠心和好, 兩無虞詐。" 鄙人且念, 自古交隣之道, 固應得其宜, 則仇敵可爲外援, 固應未得其宜, 則外援可爲仇敵。 人之言, 雖未必由中, 尙冀迎機善導, 杜彼爭端, 永相輯睦。 是以曾寄書, 奉勸勿先示以猜嫌, 致令藉爲口實也。 近察日本行事乖謬, 居止叵測, 宜早爲之防, 有不敢不密陳梗槪者。 日本比年以來, 宗尙西法, 營造百端, 自謂已得富强之術。 然因此, 庫藏空虛, 國儥累累, 不得不有事四方, 冀拓雄圖, 以償所費。 其疆宇相望之處, 北則貴國, 南則中國臺灣, 尤所注意。 琉球亦數百年舊國, 竝未開罪於日本。 今春忽發兵船, 刦廢其王, 呑其疆土。 其於中國與貴國, 難保將來, 不伺隙以逞。 中國兵力、餉力, 十倍日本, 自恃尙可勉支。 唯當代貴國, 審度躊躇似宜。 及此時, 密修武備, 籌餉鍊兵, 愼固封守, 仍當不動聲色, 善爲牢籠。 凡交隣事, 宜恪守條約, 勿予以可乘之端。 一朝有事, 則彼曲我直, 勝負攸分。 第思貴國, 向稱右文之邦, 財力非甚充裕, 卽令迅圖整頓, 非朝夕所能見功。 現間日本派鳳翔、日進兩艦, 久住釜山浦外, 操鍊巨礮, 不知何意。 設有反覆, 中國宜竭力相助, 而道里遼遠, 終恐緩不及事, 尤可慮者。 日本廣聘西人, 敎鍊水陸兵法。 其船礮之堅利, 雖萬不逮西人, 恐貴國尙難爲敵。 況日本諂事泰西各國, 未嘗不思藉其勢力, 侵侮隣邦。 往歲, 西人欲往貴國通商, 雖見拒而去, 其意終未釋然。 萬一日本陰結諸邦, 誘以開阜之利, 抑或北與俄羅斯句合, 導以拓土之謀, 則貴國勢成孤注, 隱憂方大。 中國識時務者, 僉議以爲"與其緩救於事後, 不如代籌於事前。" 夫論息事、寧人之道, 果能始終閉關自守, 豈不甚善? 無如西人恃其僄銳, 地球諸國無不往來, 實開闢以來, 未有之局面、自然之氣運, 非人力所能禁遏。 貴國旣不得已而與日本, 立約通商之事, 已開其端, 各國必將從以生心, 日本轉若視爲奇貨。 爲今之計, 似宜以毒攻毒、以敵制敵之策, 乘機, 次第亦與泰西各國立約, 藉以牽制日本。 彼日本恃其詐力, 以鯨呑蠶食爲謀, 廢滅琉球一事, 顯露端倪。 貴國固不可無以備之。 然日本之所畏服者, 泰西也。 以朝鮮之力, 制日本, 或虞其不足; 以統與泰西通商, 制日本, 則綽乎有餘。 泰西通例, 不得無故, 奪滅人國。 蓋各國互相, 通商而公法行乎其間。 去歲土耳其所伐, 勢幾岌岌。 諸國, 出而爭論。 始領兵而退。 向使土國孤立無援, 人已獨亨其利。 又歐洲之比利時丹馬, 皆極小之國, 自與各與立約, 遂無敢妄肆侵陵者。 此皆强弱相維之明證也。 且越人圖遠, 古人所難。 西洋諸邦, 距貴國數萬里, 本無他求。 其志不過欲通商耳, 保護過境船隻耳。 至俄國所踞之庫葉島綏芬河圖們江一帶, 皆爲貴國接壤, 形勢相逼。 若貴國先與交通, 不但牽制日本, 竝可杜人窺伺。 而亦必隨卽講和通商矣。 誠及此時, 幡然改圖, 量爲變通, 不必別開口岸。 但就日本通商之處, 多來數國商人。 其所分者, 日本之貿易於貴國, 無甚出入。 若定其關稅, 則餉項不無少裨; 熟其商情, 則軍火不難購辦。 更隨時派員分往有約之國, 通聘問、聯情誼。 平時旣休戚相關, 倘遇一國有侵, 佔無禮之事, 儘可邀集有約各國, 公議其非鳴鼓而攻之。 庶日本不敢悍然無忌。 貴國亦宜於交接遠人之道。 逐事講求務使剛柔得中, 操縱悉協, 則所以鈐制日本之術, 莫善於此, 卽所以備禦人之策, 亦莫善於此矣。 近日各國公使在我總理衙門, 屢以貴國商務爲言。 因思貴國政敎禁令, 悉由自主。 此等大事, 豈我輩所可干預? 惟是中國與貴國, 誼同一家, 必爲我東三省屛蔽, 奚啻唇齒相依? 貴國之憂, 卽中國之憂也。 所以不憚越俎, 代謀直紓衷曲。 望卽轉呈貴國王, 廣集廷臣, 深思遠慮, 密議可否。 如鄙言不謬, 希先示覆大略。 我總理衙門, 亦欲以此意相達, 俟各國議及之時, 或可相機措詞, 徐示以轉圜之意。 從前泰西各國, 乘中國多故, 倂力要挾, 立約之時, 不以玉帛而以兵戎所以行之。 旣久掣肘頗多想, 亦遠近所稔知。 貴國若於無事時, 許以立約。 彼喜出望外, 自不致格外要求。 如販賣鴉片煙、傳敎內地, 諸大弊懸爲厲禁, 彼必無詞弊處。 如有所見, 亦當隨時參酌一二, 以陳忠告之義, 總期於大局, 無所虧損。 夫政貴因時治期可久, 知己知彼, 利害宜謀, 兵家所尙, 惟執事實圖之。 法國敎士崔鎭勝經貴國, 拿禁。 該國使臣在京, 婉求我禮部, 行文轉請釋放。 實爲調停息事起見想, 已査照施行。 緣送奉來函, 諄諄於交隣之道, 用敢不憚覶縷, 密布腹心。 候起居。 書不盡意。】

李裕元答書。 其文曰:

【李中堂文華殿太學士肅毅伯爺爵前。 間因憲書啓官李容肅謹裁上函, 屬游太守轉呈, 卽於十月念間, 獲見李容肅手本, 縱知書緘似經勻鑑, 未得其詳, 下懷結轖。 今於年貢使行, 冒白衷曲, 庸冀付達焉。 本年七月九日所賜下, 伏仗奉於八月晦間, 拜手盥讀伊後, 便使蹉違至今, 謝忱未申。 雖尋常奠儀, 尙不宜逋慢如是。 矧承諄複辭旨耑爲鄙邦, 機密事布喩。 而曚然若罔聞知者, 不敏之咎, 內訟曷已? 猥玆進籲, 所以愈急, 切於錫辰。 庶蒙矜察否? 邇年弊邦之與日本交好立約通商, 固出於萬不得已。 而其接應之宜, 寔遵前後勻敎, 勿示猜嫌之意。 所以含容巽順, 要挫其桀驁性氣。 而惟彼言動, 不無逕庭干請矣。 在科外指開別港, 無非重地。 相持兩時而後, 以元山津施許。 仁川係是畿甸竟, 不得副其求, 則其去也, 頗懷怏怏。 而其諧際, 幸不至相失。 若其貪狡之志, 專在於鯨呑蠶食。 今春廢滅球國、近日操演礮艦等事, 苟非此密諭開示, 顧玆聾瞽, 那由得知? 我爵前之仁德, 庇護我小邦, 厥惟久矣。 而乃玆䘏患于未危、未亂, 爲之代籌, 何圖至此之極? 今日西人之局面, 寔由自然之氣運。 旣是至訓, 以防患之要, 又有以毒攻毒、以敵制敵之策, 縷縷下示者焉。 雖以款啓昧晦, 細細蘊繹, 詎無灑然而有省者乎? 泰西各國先與交通, 則日本自可牽制, 日本旣已牢制, 則俄國窺伺, 亦無可憂。 斯如勻敎綱領。 而以至定關稅也, 襲商情也, 諸弊之禁厲也, 又何其處分之詳密也? 誠惶誠感, 敢不聞命。 而第自念弊邦, 僻在一隅, 謹守規度, 恬居文弱。 自治方內, 未暇外交。 而況泰西之學, 有異吾道, 實乖民彝, 則嘗畏之如烈火, 避之如毒矢, 駭而遠之如鬼神。 近拏法國人潛踪者, 雖奉咨解送, 而鄙邦人染敎駭者, 罔或肆赦。 推此庶有以洞諒。 而販煙行敎, 卽其羸豕之孚, 恐非豶牙之攸制, 亦庶可以燭照矣。 古昔謀國者, 有曰: "遠交而近攻", 有曰: "以蠻而攻蠻", 斯乃以敵制敵之術也。 而目下局面, 與昔頓異。 雖武强自力者, 朝幣夕弋, 待於二境, 將疲於奔命, 我先取敗而已。 豈文弱如鄙邦者, 而可以效古昔乎? 寔不能也, 非不爲也。 神皇之嘗百草, 遇毒而死, 死而復起。 非神皇效爲, 則一遇毒而能起者鮮矣。 今要制敵而我先受敵, 要攻毒而先中毒。 竊恐一遇毒而不復起也。 奚暇以制敵乎? 惟我爵前威望震於陬澨, 謨畫協於中外, 以彼俄國之强禦、泰西之虎雜、日人之反覆, 靡不折心焉, 屈膝焉, 則日人之耽視臺灣, 無足爲害。 而弊邦久沐仁覆, 亦尙恃而不恐。 且泰西公法, 旣不復無故奪滅人國, 以俄之强, 亦斂兵於大國, 則弊邦之無辜, 或遇呑噬之毒, 亦庶幾諸國之所共禁乎? 惟獨有懜懂懷疑, 而不釋然者。 日人之廢琉王、呑其疆卽桀、宋之行耳。 歐洲別邦, 似宜有齊 桓興師遷邢封衛之擧, 或義喩日本, 俾護置許君, 如鄭莊之所爲而側耳, 無聞何也? 救土國於垂亡, 則公法可仗, 而興琉邦於已滅, 則公法有難行歟? 抑日人之桀點輕視各國, 雖縱恣專制, 而公法莫能行歟? 利時、丹馬以痣小之國, 介於諸大國, 賴以强弱相維。 而琉王以累百年舊國, 不能相維者, 以其所處孤另, 與各國隔絶, 而公法有不及行而然歟? 弊邦則崎嶇在乎地維盡處。 其視土、琉、利、丹諸國, 尤貧儉呰窳。 距泰西, 又踔遠, 莫攀兵戎頡頏尙矣。 勿論玉帛周旋, 亦難自振。 夫日人之慣於通商、巧於營造, 盡得富强之道焉。 尙致枵其藏、累其債之歎, 則設令弊邦改圖, 廣置港阜, 畢通遐邇, 悉學技巧, 必於藉茅承筐, 應酬之際, 竟稛橐蕭然矣。 奚翅藏枵債累蹈, 日人之轍也? 且況偏邦地産之蔑裂、貨物之沽惡, 四方所稔聞耳。 各國之遠來交貿, 恐如三家之市, 難容千里之商。 不亦主客俱無利乎? 其難於自振, 實際然也。 蹙痿而思行遠, 無寧粤交之坐守爲得歟? 蓋上國規模, 譬則天地之大也。 巨細咸宥橐鑰, 媺惡畢就鈲槻, 麟鳳蛇龍, 無適無莫, 時式制宜, 而旋措泰盤, 因萬方所歸極。 而小邦遽欲, 則傚不猶盬雞之學阜鳥乎? 我爵前心腹敷喩, 務欲趨吉避害之念, 惻恤肫摰。 雖父兄之於子弟, 曷以過此? 而形格勢禁, 未由奉承。 ‘大遇終身不靈’, 無乃謂是歟? 然而私自依怙者, 泰西與日本, 旣無敢恣肆於爵前威鎭之下, 則小邦永賴大德, 機事輒荷提命, 是所日夜祈祝之至。 情窮辭迫, 不知攸裁。 伏惟哀其愚, 而宥其罪焉。 不備勻下察。】


  • 【원본】 20책 16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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