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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16권, 고종 16년 1월 4일 무신 1번째기사 1879년 조선 개국(開國) 488년

대왕대비전에 대한 가상 존호 책보를 관리를 시켜 올리게 하다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에 대한 가상 존호(加上尊號)의 책보(冊寶)를 관리를 대신 시켜 올리게 하였다.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서 축하를 받고 사령(赦令)을 반포하였는데 교문(敎文)에,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덕과 공이 크고 문무가 뛰어난 조상들을 종묘(宗廟)에 모시니 덕업과 공적을 기림이며, 왕실의 엄숙한 어머니와 며느리에 대해 옥책과 옥보를 올리니 지난날은 슬펐으나 지금은 기쁘다. 귀신의 도리나 사람의 심정으로 보아 모두 만족해하고 관리들도 백성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다.

가만히 생각건대 우리 순조 대왕(純祖大王)은 선대 임금의 왕업을 이어받고 공자(孔子)·주자(朱子)의 심법(心法)을 전수받은 분이시다. 경술년(1790)에 성인이 태어남에 영조(英祖)·정조(正祖)의 남긴 뜻을 계술하였고, 신유년(1801)에 왕위를 계승하셨다. 해마다 세수(歲首)에 윤음(綸音)을 내려 보내니, 온 집안과 온 나라는 어진 정사에 감동되어 일어나고, 내수사(內需司)의 노비 대장을 불사르니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살 길을 얻게 되었다. 도적의 괴수를 소탕한 결과 나쁜 놈들도 이미 순한 백성으로 변하였고, 서양을 배척하고 이단(異端)을 물리치니 다시는 한낮의 요사스런 기운이 없어졌다. 큰 소리도 치지 않고 하루하루 복잡한 정사를 조심스럽게 처리하였고 소박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 34년 동안의 태평 성대를 이룩하였으니, 비유하면 하늘과 땅같이 관대하고 해와 달같이 밝았기 때문에 종묘에서 제사를 받고 자손도 보전하게 되었다.

생각건대 돌아가신 할머니 순원 왕후(純元王后)는 실로 훌륭한 왕후의 모범이 되실 분이셨다. 가정에서의 가르침은 문정공(文正公 : 김상헌(金尙憲))의 학문과 덕행을 이어받았고, 금원(禁園)을 꿈꿔 금슬이 좋으리라는 것을 점쳐 임금의 배필이 되어서는 얌전한 품성의 요조숙녀였다. 돋아나는 싹과 미미한 벌레까지도 다 살려주려고 하였으며 바람과 비, 눈과 서리를 이야기할 때면 그것이 하늘의 현상이라고 하면서 다 공경하였다. 명덕 마황후(明德馬皇后)처럼 누인 치마를 입으면서 성조(聖祖)의 검소한 옷차림을 본받았으며 원우(元祐) 때의 선인 태후(宣仁太后)처럼 수렴청정(垂簾聽政)하여 새로 들어선 임금을 도왔다. 어머니로서 정사에 임하여 나라를 태산 반석에 올려놓았고 곤궁한 백성들을 자식처럼 보살펴 주었으니 지극한 덕이 땅처럼 두터웠다. 우리 후대들을 다 바른 길로 인도하였으므로 백성들은 지극한 선(善)을 이야기하면서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또한 거룩한 익종(翼宗)은 실로 우리 동방의 대성인(大聖人)이셨다. 세자(世子)로서 정사를 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되자 구경(九經)과 〈사물잠(四勿箴)〉을 전해 주었고 나라에 도(道)를 갖춘 장자(長子)를 인도하였기에 한 집안에 세 성인이 일어났다. 일곱 사당에 대리로 제사를 엄숙하게 지내니 그 모습이 보이는 듯,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양전(兩殿)에 축하의 술잔을 올리면서 공경스럽게 대하고 즐겁게 봉양하였다. 세상이 변한 것을 슬퍼하며 황단(皇壇)에 비밀 기록을 보관해 두었고 왕업(王業)을 이룬 곳에 자손들이 면면히 이어져온 것을 생각하여 옛 사적이 있는 곳에 비석을 세우셨다. 감사(監司)와 수령(守令)을 접견하기만 하면 백성들의 고통부터 물었고 어진 사대부들을 접견할 때가 많았기에 상서로운 별에 대한 노래가 울려나왔다. 이는 바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이고 털끝만치도 더 칭찬한 것이 아니다.

아! 지금 대왕대비의 탁월한 자품으로 능히 남산(南山)과 같은 장수를 이루셨다. 선행을 쌓은 집안에 경사가 많아 사록(沙麓)에서 태음(太陰)의 정기를 길렀고 왕가에 시집온 후로는 임금의 다스림과 덕행을 도우셨다. 잠자리와 음식이 찬가 더운가를 살피면서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였고 사직(社稷)이 마침내 의뢰하여 장구해지니 훌륭한 세자를 두게 되었다. 좋은 운수가 돌아옴에 겹겹이 둘러싸인 나라의 위험을 바로잡았고 나라가 큰 곤란에 빠지자 4년 동안이나 검소한 옷차림으로 정사에 임하셨다. 수렴청정을 곧 거두셨으나 젖먹여 기른 은공이 남아 있고 자손들을 도와준 결과 손자들의 재롱을 보면서 즐거운 노년을 보내게 되셨다. 하늘은 순한 사람을 도와주고 사람들은 미더운 사람을 도와주기에 덕이 더욱 높아지고 장수를 누리시는 것을 모두 다 칭송하고 있다. 회갑을 맞으시던 때에는 장수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였고, 일흔이 되셔서 아홉 잔의 술을 올릴 때부터는 늘 장수를 기뻐하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생각했었다. 결혼할 때 아홉 가지 열 가지 의식을 치렀던 해가 돌아오니 500년 만에 처음 있는 경사이다. 읍(揖)을 하고 수레의 끈을 잡은 후에 합환주를 마셨던 영고(寧考)의 친영(親迎)을 생각하고, 폐백을 갖추어 당(堂)에 올랐던 당일에 기뻐하시던 문조(文祖)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이해에 깊은 사랑 다함이 없으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장수하시기를 축원드리고, 경사스러운 오늘을 맞이하여 먼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은 더한층 간절하여 지금 마치 다시 뵙는 듯하다. 이런 좋은 때를 만나니 슬픔과 기쁨이 함께 생기어 의식을 헤아려서 부모를 높이는 의식을 갖추는 바이다.

주 문왕(周文王)위수(渭水)가 배다리에서 후비(后妃)를 친영한 영광이 다시 드러나니 금과 옥에 새기는 것이 마땅하거니와 은(殷)나라 사당에서 덕을 볼 수 있으니 이를 표현하기는 해와 하늘을 그리기는 것보다도 어렵다. 그러나 이 행사는 인정과 법에 맞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이미 있는 제도이다. 대왕대비의 지극한 덕에 보답하려고 하지만 어떻게 조금이라도 잘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선조의 큰 공적을 추존하는 일은 영원토록 의심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올해 정월 초사흗날에 삼가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받들어 순조 연덕 현도 경인 순희 체성 응명 흠광 석경 계천 배극 융원 돈휴 의행 소륜 희화 준열 대중 지정 홍훈 철모 건시 태형 창운 홍기 고명 박후 강건 수정 문안 무정 영경 성효 대왕(純祖淵德顯道景仁純禧體聖凝命欽光錫慶繼天配極隆元敦休懿行昭倫熙化峻烈大中至正洪勳哲謨乾始泰亨昌運弘基高明博厚剛健粹精文安武靖英敬成孝大王)에게 ‘계통 수력 건공 유범(啓統垂曆建功裕範)’이라는 존호를 추상하고, 명경 문인 광성 융희 정열 선휘 영덕 자헌 현륜 홍화 신운 예성 홍정 순원 왕후(明敬文仁光聖隆禧正烈宣徽英德慈獻顯倫洪化神運睿成弘定純元王后)에게 ‘수목(粹穆)’이라는 존호를 추상하며, 체원 찬화 석극 정명 성헌 영철 예성 연경 융덕 순공 독휴 홍경 홍운 성렬 선광 준상 요흠 순공 우근 탕정 계천 건통 신훈 숙모 건대 곤후 광업 영조 돈문 현무 인의 효명 대왕(體元贊化錫極定命聖憲英哲睿誠淵敬隆德純功篤休弘慶洪運盛烈宣光濬祥堯欽舜恭禹勤湯正啓天建統神勳肅謨乾大坤厚廣業永祚敦文顯武仁懿孝明大王)에게 ‘장의 창륜 행건 배녕(莊義彰倫行健配寧)’이라는 존호를 추상하고, 계속하여 초나흗날에 효유 헌성 선경 정인 자혜 홍덕 순화 문광 원성 숙렬 명수 협천 융목 수녕 희강 대왕대비 전하(孝裕獻聖宣敬正仁慈惠弘德純化文光元成肅烈明粹協天隆穆壽寧禧康大王大妃殿下)에게 ‘현정(顯定)’이라는 존호를 가상(加上)하였다.

새 봄을 맞이하여 종묘에 고하고 진하(陳賀)를 받고서 조정에 선포하였다. 경사를 계기로 죄인들을 용서해 주니 하늘과 땅처럼 아름답고, 예절에 맞게 제사를 올리니 선대 임금도 다같이 빛난다. 봄철에 명령을 내리니 변방 사람들까지 기뻐하고 북을 치면서 사령(赦令)을 내리니 감옥이 다 비게 되었다.

이달 초나흗날 새벽 이전까지의 잡범으로서 사형죄 이하는 모두 용서해 주어라.

아! 우리와 태평을 함께 누리면서 법칙을 준수하라. 초목들도 다 즐거워하는 것은 살기에 편안한 땅을 얻었기 때문이며 소나무들도 잎이 계속 돋지 않음이 없으니 〈천보(天保)〉의 구여(九如)를 송축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교시(敎示)하니 잘 알도록 하라."

하였다.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김재현(金在顯)이 지었다.】


  • 【원본】 20책 1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88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사법-치안(治安)

初四日。 攝上大王大妃, 加上尊號冊寶。 御仁政殿, 受賀, 頒赦。 敎文若曰: "文顯謨、武承烈, 象廟瑟而宗德祖功, 任思齊姒嗣徽, 蕆牒寶而昔愴今忭。 在神理人情而俱愜, 亦卿士庶民之大同。 竊念我純祖大王誕受列聖朝洪業, 傳心法於孔子朱子, 應庚戌降聖、生賢; 述志事於元陵健陵, 自辛酉踐位、行禮。 歲首之綸每降, 一家一國興於仁; 宣頭之案特焚, 匹夫匹婦得其所。 掃潢兵而殲厥巨, 已化赤子龍蛇; 斥洋書而闢異端, 無復白日螮蝀。 聲色不以大兢兢, 一二日萬機; 敦朴示爲先熙熙, 三十有四載。 譬如天地、觀也日月明也, 所以宗廟饗之、子孫保之。 追惟皇祖妣純元, 實邁古哲后懿範。 趨庭佩襟帨之訓, 自文正而詩禮忠貞; 夢園占琴鐘之諧, 配聖人而幽閑窈窕。 至微如句萌肖蝡, 愛物而欲竝生; 凡語及風雨雪霜, 奉天而無不敬。 明德之練裙常御, 體聖祖之卑衣; 元祐之簾帷再宣, 翊嗣王之新服。 母儀臨政, 措諸泰山不動聲; 子惠困窮, 至哉坤元載厚德。 佑我後咸正罔缺; 道至善沒世不忘。 亦粤丕顯考翼宗, 允矣我東方大聖。 春宮荷代理之責, 《九經》 《四勿》以是傳; 啓有道之長, 一堂三聖於斯盛。 七廟之圭瓚攝祼, 僾然有見、肅然有聞; 兩殿之瑤觴屢稱, 居則致敬、養則致樂。 洌泉愾苞稂之浸弆, 祕錄於皇壇; 漆沮溯瓜瓞之綿勒, 貞珉於王迹。 刺史守相輒親問, 祈寒暑雨之民曰咨; 賢士大夫接時多, 景星卿雲之歌而和。 惟毫末不加之善, 卽耳目所逮之詳; 猗今東朝卓越之姿, 克躋南山與齊之壽。 積善家有餘慶, 沙麓毓太陰之精, 乃及王維德行, 嬀汭贊重華之協。 寢膳必視寒暖, 盡婦道於朝三; 社稷終賴靈長, 有元良於貞萬。 熙運屬上元之甲, 整九圍之綴旒; 景命迓大橫之庚, 抗四載之裘冕。 鸞司之儀旋撤, 功留哺乳之恩; 燕翼之謨以貽, 歡供含飴之弄。 肆致天助順而人助信, 咸頌德彌卲而年彌高。 粤誕辰一甲之周, 倍切祈耉於愛日; 自稀齡九爵之晉, 常願飾喜於知年。 屬回九十儀親結之期, 尤仰五百年初有之慶。 揖綏輪而共卺, 緬初載寧考之禮迎; 贄棗脩而上堂, 想當日文祖之嘉悅。 深愛無窮於是歲, 祝岡陵而莫不增; 遠慕罙新於今休, 寓羹墻而如將見。 遇嘉會而旣竝愴喜, 稽彝典而以備尊親。 光復顯於周梁, 宜其笵金鏤玉, 德可觀於廟, 曷以畫日摹天? 顧是禮允合情文, 矧我家自有制度。 慈聖之至德欲報, 敢云一分之善形? 祖禰之丕烈追揚, 庶幾百世之不惑。 乃於本年正月初三日, 謹奉冊寶, 追上純祖淵德顯道景仁純禧體聖凝命欽光錫慶繼天配極隆元敦休懿行昭倫熙化峻烈大中至正洪勳哲謨乾始泰亨昌運弘基高明博厚剛健粹精文安武靖英敬成孝大王淵德顯道景仁純禧體聖凝命欽光錫慶繼天配極隆元敦休懿行昭倫熙化峻烈大中至正洪勳哲謨乾始泰亨昌運弘基高明博厚剛健粹精文安武靖英敬成孝大王, 尊號曰: ‘啓統垂曆建功裕範。’ ; 追上明敬文仁光聖隆禧正烈宣徽英德慈獻顯倫洪化神運睿成弘定純元王后, 尊號曰‘粹穆。’ ; 追上翼宗體元贊化錫極定命聖憲英哲睿誠淵敬隆德純功篤休弘慶洪運盛烈宣光濬祥堯欽舜恭禹勤湯正啓天建統神勳肅謨乾大坤厚廣業永祚敦文顯武仁懿孝明大王體元贊化錫極定命聖憲英哲睿誠淵敬隆德純功篤休弘慶洪運盛烈宣光濬祥堯欽舜恭禹勤湯正啓天建統神勳肅謨乾大坤厚廣業永祚敦文顯武仁懿孝明大王, 尊號曰: ‘莊義彰倫行健配寧。’ 仍於初四日, 加上孝裕獻聖宣敬正仁慈惠弘德純化文光元成肅烈明粹協天隆穆壽寧禧康大王大妃殿下, 尊號曰: ‘顯定。’ 値春祠而祗告太室, 受朝賀而播修昕庭。 慶則致洗淟之誠, 侔兩儀而闡美; 禮以洽烝畀之享, 媲一體而揚徽。 駕蒼龍而布和, 陬澨胥聳; 聽金鷄而蕩垢, 囹圄遂空。 自本月初四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同我太平, 錫汝保極。 草木皆有以自樂, 逌一得於地寧; 松栢無不爾或承, 頌九如於天保。 故玆敎示, 想宜知悉。" 【藝文提學金在顯製】


  • 【원본】 20책 1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88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