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에서 각 도 암행어사의 별단을 아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방금 경기 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 이헌영(李𨯶永)의 별단(別單)을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도내(道內)의 원 대장에 올라 있는 토지 4만 6,450여 결(結)외에 강물에 무너져나가 자갈땅이 된 토지와 공한지를 개간한 토지를 간사한 아전(衙前)들이 오로지 은폐하기만을 일삼아 잔약한 백성들은 토지가 없는데 조세를 물게 되니 토지를 다시 측량하여 총 결수를 파악하도록 특별히 명하는 일입니다. 다시 측량하는 것과 진전(陳田)을 조사하는 영읍(營邑)에서 편리한지의 여부를 충분히 상의하여, 나라의 세납이 줄어들지 않게 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펼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1. 광주부(廣州府)의 북방면(北坊面)과 월곡면(月谷面) 두 면(面)의 환곡(還穀)도 성곶면(聲串面)의 규례에 따라 전과 같이 수원창(水原倉)에서 조적(糶糴)하는 일입니다. 한 면은 편리하고 두 면은 고통스러우니 똑같이 돌보아주는 정사가 아닙니다. 종전대로 조적하도록 허락한다는 뜻으로 해당 수신(守臣)에게 분부해야 할 것입니다.
1. 경기(京畿) 고을의 수령들이 자리를 비우는 것이 곧바로 잘못된 전례가 되었으니, 다른 도(道)의 수재(守宰)의 예에 의하여 나라의 일이나 실지 사고 외에는 말미를 주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하는 일입니다. 다른 도의 규례대로 시행하여 감히 마음대로 자리를 이탈하지 못하도록 명백히 정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1 각 역참(驛站)들이 피폐하게 된 것은 무뢰배(無賴輩)들이 위토(位土)를 강제로 빼앗아 서울 집에서 말을 기르고 있기 때문이니, 마위전(馬位田)을 함부로 차지한 자들을 특별히 조사하여 본래의 집들에게 되돌려주고, 지나치게 짐을 싣거나 함부로 말을 타며 위토를 매매한 자들을 조사하여 엄하게 죄를 주고, 그 사실을 덮어둔 우승(郵丞)도 논하여 처벌하는 일입니다. 역참의 폐단이 극도에 달한 것은 진실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암행어사가 진술한 대로 본도에 관문(關文)을 보내어 고치는 성과가 있도록 할 것입니다.
1. 가평(加平)의 유학(幼學) 김평묵(金平默)과 수원(水原)의 유학(幼學) 이용구(李容耉)의 재주와 행의(行儀) 및 수원의 고(故) 학생(學生) 최성익(崔聖益)과 광주(廣州)의 고(故) 학생 심문주(沈文舟)의 효행을 표창하여 장려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해조(該曹)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강화부(江華府)의 전 경력(前經歷) 민치두(閔致斗)가 전진(戰陣)에서 많은 고생을 하였으나 혼자만이 천거하여 아뢰는 데에서 빠졌으니, 표창하여 상을 주어야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해조로 하여금 각별히 등용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마전(麻田)의 숭의전 참봉(崇義殿參奉)은 고려(高麗) 태조(太祖)의 정파(正派) 자손 가운데 세습(世襲)하는 일입니다. 개성 유수(開城留守)로 하여금 종파가 분명한 자를 판별하게 하여 본직에 임명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또 아뢰기를,
"방금 충청좌도 암행어사(忠淸左道暗行御史) 이승고(李承皐)의 별단(別單)을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충청 좌도에 현재 부치고 있는 논밭이 총 5만 6,000결(結) 남짓인데 지금은 토지를 전부 개간하였으니 토지 대장에 마땅히 첨가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조세는 날로 줄어들고 백성들의 부세(賦稅)는 날로 무거워지니, 이것은 전적으로 경계가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묘당(廟堂)에서 균일한 제도를 정하여 여러 고을에 반포하는 일입니다. 전정(田政)이 도처에서 문란한 것이 오늘날과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토지를 다시 측량하여 바로잡는 것은 먼저 한두 고을부터 시험해보고 점차 이루어나가는 방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1. 충주목(忠州牧)의 총 결수 이외의 토지가 911결 남짓인데 본도(本道)에 관문을 보내어 그것을 총 결수에 넣는 일입니다. 지금 총액 외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법 밖의 것입니다. 도신으로 하여금 샅샅이 조사하도록 할 것입니다.
1. 각 고을의 곡자(斛子)를 한결같이 호조식(戶曹式)대로 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두곡(斗斛)이 균등하지 못한 것은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현재 가난한 민간에서 지탱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창고의 아전들이 많이 받아내고 지나치게 토색질하기 때문이니, 우선 도신과 수령으로 하여금 엄하게 통제하여 성과를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1. 정비(情費)를 상납하는 것은 감히 털끝만치도 더 받지 말게 하고 위반하는 자는 중한 법률로 다스리는 일입니다.
정비가 폐단의 근원이 되고 있는데, 경사(京司)에서는 점퇴(點退)하거나 조종(操縱)하고 지방 고을에서는 거칠고 나쁜 것으로 채워 넣습니다. 샅샅이 규찰하여 주고받은 자를 적발되는 대로 각별히 엄하게 다스리도록 각사와 각도에 아울러 신칙해야 할 것입니다.
1. 청주(淸州)에서 을해년(1875)과 병자년(1876)에 납부하지 못한 두 가지 세(稅)가 10만 4,000여 냥(兩)인데 간혹 가난한 백성에게서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없지 않으나 이것은 모두 아전들이 빌려쓰다가 독차지하였기 때문입니다. 해당 목(牧)에 관문을 보내어 신칙하고 기일을 정하여 징수하도록 독촉하며 횡령한 우두머리는 다 납부하기를 기다렸다가 단연코 원래의 법조문을 적용하는 일입니다. 본 도로 하여금 전말을 상세히 조사하여 법에 따라 처리하게 하고 횡령한 놈들에 대해서 법조문을 적용하는 일은 잘 상의하여 품재(稟裁)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 충주(忠州) 유학(幼學) 조동섭(趙東燮)이 작년의 큰 흉년에 의연금을 내어 사적으로 백성들을 진휼(賑恤)하였으니, 발탁하는 예를 적용하여 거두어 쓰는 일입니다. 해조로 하여금 속히 등용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 천안군(天安郡)의 전 첨사(前僉使) 이주희(李周熙)가 오로지 백성들을 학대하는 것만 일삼아 온 경내가 소란하니, 법을 적용하여 엄하게 처리하는 일입니다. 명색이 조정의 관리로서 패악(悖惡)하기가 이와 같으니 유사(攸司)로 하여금 각별히 엄중하게 처벌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기타 토호(土豪)는 도신으로 하여금 엄하게 탐문하게 하여 일일이 형문(刑問)하고 귀양 보내되, 조정의 관리라면 이름을 지적하여 급히 보고해야 할 일입니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방금 충청우도 암행어사(忠淸右道暗行御史) 이건창(李建昌)의 별단을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충청우도에서는 허결(虛結)에서 억울하게 징수하는 것이 가장 고치기 어려운 폐해인데, 은결(隱結)이 아전들에게 들어간 수가 매우 많아 전 감사(監司) 때에는 조사해내기까지 하였으니, 허결에서 억울하게 징수하는 것을 정확히 조사하여 면세(免稅)시키고 이미 조사해낸 은결(隱結)로 대신 보충하는 일입니다. 억울하게 납부하던 조세는 감면하고 정식 조세는 보충할 수 있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양쪽이 다행한 일이니, 감영과 고을에 관문으로 신칙하여 특별히 조처하여서 성과가 있도록 할 것입니다.
1. 보령(保寧)을 소영(蘇營)에 합치는 것은 불편한 점이 많으니, 수사(水使)가 보령 부사(保寧府使)를 없애며 수우후(水虞候)는 다시 원산(元山)에 머물게 하고 원산 별장(元山別將)은 다른 진(鎭)으로 옮깁니다. 해당 부사는 음관(蔭官)으로 명성과 공적이 있는 사람이나 혹은 문신(文臣)으로 차출하고 해당 수사로 하여금 전적으로 군정(軍政)에만 힘쓰도록 하는 일입니다. 보령읍을 소영에 붙인 것은 대개 변경을 굳건히 지키려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암행어사의 별단을 보면 합치는 것은 불편하고 나누는 것이 편리하다는 사실이 이와 같이 확연히 명백하니, 도신으로 하여금 널리 진계(陳啓)를 채택한 후에 품처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안흥진(安興鎭)을 태안(泰安)에 합치고 부사(府使)가 방어사(防禦使)를 겸임하여 6개월씩 나누어 머물게 하였는데, 체모가 크게 다르고 거행하는 것이 각각 다르며 고을과 진의 아전과 군교(軍校)들의 세력의 강약이 달라서 원망이 쌓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흥은 삼남(三南)이 교차하는 곳인데 빈 성에 잔약한 군졸뿐이니 소홀하기가 막심합니다. 부사가 이미 수군 방어사(水軍防禦使)를 겸하고 있으니, 안흥의 수성 별장(守城別將)을 변지 첨사(邊地僉使)로 명목을 만들어 무관(武官) 경력이 있는 자를 차정하는 일입니다. 이것도 도신에게 관문을 보내어 물어본 후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1. 당진(唐津) 등 연해의 8개 고을에서 어살과 소금가마를 사적으로 설치하고 세금을 지나치게 거두는 것을 많이 없애버렸습니다. 올 봄에 다시 내수사(內需司), 충훈부(忠勳府)에서 새로 설치하고 세금을 거두는데 균역청(均役廳)의 원래 액수에 비하여 세 배나 많고 민폐가 극심하니, 속히 전령(傳令)을 거두고 무거운 세금을 없애도록 하며, 그밖에 각궁(各宮)과 각영(各營)에서 거두는 명분 없는 새로운 세금은 모두 영원히 없애버리도록 하는 일입니다. 본래 균역청에서 관할하니 내수사와 충훈부에서 간섭한다는 것은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아무 관청을 막론하고 이른바 차인(差人)의 명색을 띤 사람은 모두 형장을 가하여 귀양 보내도록 도신에게 분부해야 합니다.
1. 노성(魯城)의 전 참봉 윤상갑(尹相甲)을 학행(學行)으로, 공주(公州) 이창하(李昌夏)의 처 민씨(閔氏)를 열행(烈行)으로 표창하는 일입니다. 모두 해조(該曹)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방금 전라좌도 암행어사(全羅左道暗行御史) 심동신(沈東臣)의 별단(別單)을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1. 토지에 관한 정사에 있어서는 털끝만한 착오나 문란도 용납할 수 없는데, 근래 여러 고을에서 사적으로 세율(稅率)을 정하고 계판(計版)이라는 명목으로 일반 규정 외의 조목을 덧붙인 것이 한이 없고, 가렴(加斂)과 방납(防納) 등의 허다한 폐단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연분 구등(年分九等)의 법과 쌀과 콩을 절가(折價)하는 방식이 대략적인 구별이 있기는 하나 백성들은 모두 알지 못하고 중간에서 사라진 것이 또 한 몇 천만 냥이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도신으로 하여금 각 고을에 행회하게 하여 3, 4년 동안의 회계 장부를 모두 모아 검사하여 바로잡아서 다시는 감히 규정액보다 더 거두지 못하게 하고 혹시라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곧바로 무거운 법을 적용하는 일입니다. 토지에 대한 폐단이 이처럼 극심하게 되었으나 수령들은 오직 서명만 하고 감사는 방임하고 있으니, 아전들의 수법이 더욱 교활해져 진(秦) 나라에서 거두어들이던 것과 거의 같아졌습니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데도 강 건너 불 보듯 하니, 기강에서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통탄스럽습니다. 도신으로 하여금 엄격하고 명백하게 조사하여 속히 바로잡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선 제일 심한 곳의 수령부터 먼저 파직시킨 후에 잡아오도록 하고 아전들은 엄하게 형장을 가하여 먼 곳으로 귀양 보내도록 특별히 신칙하여 행회할 것입니다.
1. 도신에게 관문을 보내어 신칙해서 각 고을의 토지 대장〔結簿〕을 거두어 모아 은결(隱結)과 진결(陳結)을 조사하여 확인하고 피차 서로 대체시키는 일입니다. 이 문제는 종합해서 조사하고 바로잡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으니, 암행어사의 별단대로 신칙해야 할 것입니다.
1. 조적(糶糴)의 법의 뜻이 본래 엄중해야 하는데, 이른바 단대(單代)·입본(立本)·가분(加分)·가류(加留) 등의 명색이 모두 환민(還民)의 뼈에 사무치는 폐해이니, 특별히 도신에게 신칙하여 일체 엄금하는 일입니다. 환곡은 본래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이었으나 도리어 고통을 주는 계제가 되었으니, 지극히 통탄스러워 차라리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규정 조항을 거듭 밝히도록 하여 속히 여러 가지 쌓인 폐단의 단서를 없애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 각 고을의 무기가 습기차고 상해서 하나도 쓸만한 것이 없고 속오군(束伍軍)에 결원을 전혀 보충하지 않으며 봄가을에 모아놓고 점고하는 일을 이유 없이 정지해버렸으니, 특별히 도신과 수신에게 신칙하여 각각 해당 고을에서 무기를 수리하고 속오군의 결원을 보충하며 봄가을에 모아놓고 점고하여 옛날의 법을 거듭 밝히는 일입니다. 미리 준비하는 원칙을 헤아려보면 진실로 외부에 알려지게 할 수 없는 일이니, 관할하는 신하가 철저히 명심하고 수리하는 일에 성의를 다하라는 내용으로 삼군부(三軍府)로 하여금 여러 도의 도신과 수신에게 관문으로 신칙하도록 할 것입니다.
1. 전선(戰船)과 병선(兵船)은 그 제도를 조금 바꾸어 병선(兵船)과 조운선(漕運船)을 겸해서 쓰도록 하는데, 새로 만들 연한이 되기를 기다려서 차례로 변통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도 행회하여 편리한 대로 시행하게 할 것입니다.
1. 민고(民庫)에서 함부로 지출하고 걸핏하면 백성들에게 징수하니, 특별히 도신에게 신칙하여 각 고을의 문부(文簿)를 거두어 모아 철저히 조사하고 조례(條例)를 책으로 펴내어 영원토록 준수하는 일입니다. 민(民)자를 가지고 창고 이름을 지은 것도 역시 백성들을 위한다는 뜻이 들어 있는데 가져다 쓰는 것이 무절제하니, 백성이 무슨 죄입니까? 도신으로 하여금 엄격히 규정을 세우고 함부로 어기는 자를 적발하여 법대로 엄중하게 죄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1. 호적법(戶籍法)이 사실에 맞지 않은 지 오래되니, 계방(稧房)을 없애버리고 누락된 호구(戶口)를 찾아내어 호적법을 엄격히 하는 일입니다. 이른바 계방이라는 명색은 죄를 짓고 도망치는 자들의 하나의 소굴입니다. 특별히 도신과 수령에게 신칙하여 엄하고 명백하게 찾아내어 교활한 아전을 징벌하고 영락된 백성들을 보전하기 위한 방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1. 본도의 각역(各驛)은 곳곳마다 쇠잔하고 피폐되었으니 지금 내버려둔다면 소생할 가망이 없습니다. 특별히 도신에게 신칙하여 각역 가운데의 장시(場市)에 옛 법식을 밝혀 즉시 획급하도록 하고 보인(保人)과 솔정(率丁)은 결원이 나는 대로 또한 곧바로 채워주며 연호미(煙戶米), 환곡(還穀), 호포(戶布)는 전부 면제해주는 일입니다. 암행어사의 별단대로 면제할 것은 면제하고 채워줄 것은 채워주어 각별히 옛 규례를 준수하여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1. 능주(綾州)의 유학 양상정(梁相鼎)과 보성(寶城)의 진사 이지용(李志容)을 등용하는 일과 광주(光州)의 고(故) 사인(士人) 정준(鄭準)과 곡성(谷城)의 고(故) 사인 안제원(安濟遠)과 무주(茂朱)의 고(故) 사인 박붕령(朴鵬齡)의 효행을 표창하여 장려하는 일입니다. 해조로 하여금 품처하게 해 주소서."
하였다. 또 아뢰기를,
"방금 전라우도 암행어사(全羅右道暗行御史) 어윤중(魚允中)의 별단을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전라우도의 정축년(1877) 유망인(流亡人)이 바쳐야 할 환곡 모곡과 나주(羅州)를 비롯한 다섯 고을의 회부곡(會付穀)·별비미(別備米)의 모곡(耗穀) 전량을 탕감하고 사징전(査徵錢) 4만 8,300여 냥으로 경영고(京營庫)에 고을에서 바치는 수량을 채우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주(羅州)·영광(靈光)·부안(扶安)·옥구(沃溝) 등 다섯 고을의 장부에만 올라있는 허위의 환곡이 도합 2만 5,003섬 남짓인데 총량을 줄이게 하고, 모곡을 돈으로 만든 7,500냥 남짓은 무인년(1878) 가을부터 시작하여 기묘년(1879) 봄까지 토지 결수에 따라 배당하여 더 마련하여 바친 몫 중에서 떼어내어 그 수량을 채우고 각 해당 고을에서는 징수하지 않는 일입니다. 도신으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해서 구별하여 계문(啓聞)하게 한 후에 아뢰어 시행하도록 할 것입니다.
1. 나주(羅州)의 지도(智島) 등 여러 섬들은 사복시(司僕寺)에서 절수(折受)해 준 토지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미년(1871)에 누락된 토지라고 하면서 조사해서 얻어낸 586결 남짓을 원장(元帳)에 붙여서 이중으로 조세를 거두기 때문에 섬 백성들이 지탱할 수 없으니, 모두 즉시 면제해 주도록 특별히 허락하는 일입니다. 누락된 토지에서 세를 받는 것은 해당 관청에서 관할하는 일인데 이는 같은 토지에서 두 번 조세를 받는 것입니다. 역시 도신으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하여 논계(論啓)한 후에 결재를 받아 처리하게 할 것입니다.
1. 결역(結役)이 무겁기로는 호남(湖南) 만한 데가 없습니다. 허다하게 쌀을 내는 것이 정식 조세와 같으니 특별히 조사하여 공적인 부세 및 수령과 아록(衙祿 : 수령에게 딸린 식구들에게 주는 식료)의 관수(官需) 외에는 토지에서 쌀을 징수할 수 없으며, 잡역미(雜役米)와 경저리(京邸吏)·영저리(營邸吏)의 역미(役米)와 색락 지수미(色落知數米) 등 명목은 모두 매 석당 5냥씩 호조(戶曹)에서 값을 정한 대로 시행하는 것으로 절목(節目)을 만들어주고 묘당으로 하여금 확실하게 밝혀서 알리게 하는 일입니다. 일반 부세 외에 각종 명목으로 쌀을 징수하는 것은 매우 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발각되는 대로 아뢰어 법대로 살펴서 중하게 죄를 주고, 여러 가지 돈으로 대신 바치는 조목에 대해서는 순영(巡營)에서 철저히 재량하여 공정하게 처리되도록 힘쓸 것입니다.
1. 역로(驛路)가 쇠잔하고 피폐하여 장차 역참이 끊어지게 되었으니, 이후부터는 공적인 행차와 정해진 규정 외에는 역마를 함부로 이용하는 것을 엄금하는 일입니다. 역마를 함부로 이용하는 것은 본래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니, 이런 내용을 본도에 관문으로 신칙할 것입니다.
1. 장성(長城)의 진사 기우만(奇宇萬)과 전주(全州)의 유학 소휘면(蘇輝冕)·송순백(宋淳柏)의 재주와 학문, 그리고 옥구(沃溝)의 고(故) 선비 전양성(田讓聖)과 박연득(朴連得)의 처 김씨(金氏)와 영광(靈光)의 동몽(童蒙) 김영순(金永順)과 함열(咸悅)의 유학 서광표(徐光表)의 효행을 표창하여 장려하는 일입니다. 각각 해조로 하여금 처리하도록 할 것입니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방금 경상좌도 암행어사(慶尙左道暗行御史) 이만직(李萬稙)의 별단(別單)을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1. 본도의 환곡의 폐단은 이무(移貿)하는 데서 더욱 심합니다. 그리고 가을에 환곡을 만들 때 연례적으로 모곡을 대여하는 것이 허가되어 있다고 하면서 응당 만들어야 하는 환곡 외에 더 배정시켜 마구 쓰면서 시일을 끌고, 처음에 이무로 획정한 것을 고을 아전들이 끌어다 써서 마침내 큰 포흠(逋欠)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원곡 72만여 석을 한결같이 각 고을의 결수 총액에 따라 균등하게 배분하여 모곡을 받고 원곡 총량을 침범하지 않으면 환자법이 바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포흠한 환곡을 갑자기 청산하기는 어려우니 이제부터는 많은 것은 깎고 적은 것은 모아 들여서 원래의 모곡을 만드는 것 외에는 다시 더 획급하지 않겠습니다. 작년 포량미(砲糧米)에서 남은 것을 떼어주지 않아 원곡을 침범하여 쓰게 되었으니, 도신으로 하여금 사유를 갖춰 등문하게 하고 좋은 방법으로 처리하게 하는 일을 도신에게 행회하여 강구해서 고치도록 할 것입니다.
1. 동래부(東萊府)의 성첩(城堞)이 무너져서 사징전 2,000냥을 우선 획정하여 지급하고 그 밖의 부족한 것을 고을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은 방대하고 힘은 부쳐서 지체되기 쉬우니, 동래 부사에게 관문으로 신칙하여 조속히 준공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동래부에 관문으로 신칙하여 착실하게 일을 하여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1. 안동(安東)의 유학 강면(姜𨬋)과 대구(大邱)의 진사 박해규(朴海奎)와 예안(禮安)의 진사 이만윤(李晩胤)의 재행(才行) 그리고 대구의 영리(營吏) 이도근(李道根)의 처 서씨(徐氏)의 열녀 행실을 표창하여 장려하는 일입니다. 각각 해조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해 주소서."
하였다. 또 아뢰기를,
"방금 경상우도 암행어사(慶尙右道暗行御史) 이정래(李正來)의 별단을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연해 고을의 각 포구에 감영에서 받는 백일세(百一稅)라는 명색이 있는데 비용이 너무 많아 백성들의 원망이 자자하니 도신에게 관문으로 신칙하여 전부 없애버려야 하는 일입니다. 이미 없애버린 세금을 부당하게 다시 만들었으니, 본도에 관문을 띄워 속히 금지한 후에 그 정황을 등문하도록 하겠습니다.
1. 상주목(尙州牧)의 별포수(別砲手) 100명과 별효사(別驍士) 50명을 읍진(邑鎭)에 나누어 소속시키고서 급료를 주고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게 하는 일로 삼군부(三軍府)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무위소(武衛所)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할 것입니다.
1. 고성(高城)의 마암면(馬巖面)에 소재한 선희궁(宣嬉宮)의 유토결(有土結) 11결은 다시 부세를 내기로 하였다가 절수하여 부세납부는 영구히 시행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내수사에서 본사에 이속시켰다고 하면서 궁결(宮結)의 예에 의하여 바치라고 독촉하여 진실로 해당 백성들의 뼈를 깎는 고통이 되고 있으니 다시는 독촉하여 징수하지 말라는 뜻으로 엄하게 신칙하는 일입니다. 다시는 불법으로 거두지 말라는 뜻으로 내수사에 감결(甘結)로 신칙할 것입니다.
1. 금산(金山)의 직지사(直指寺)는 절의 재정형편이 쇠잔하여 진상(進上)하는 책지(冊紙)를 전혀 마련해낼 길이 없습니다. 정비 또한 400여 냥(兩)이나 되어 서너 명 남아 있는 중들은 각자 흩어질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해당 관사로 하여금 품지하게 하여 분부하는 일입니다. 진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어서 진실로 감히 변통할 수 없으나 정비(情費)와 같은 사안은 구휼하는 정사가 없어서는 안 되니, 이것은 영원히 거론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모두 윤허하였다.
- 【원본】 19책 15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76면
- 【분류】재정-전세(田稅)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 교통-육운(陸運) / 교통-수운(水運) / 농업-개간(開墾) / 호구-호적(戶籍) / 인사-선발(選拔) / 재정-국용(國用) / 군사-군기(軍器)
十九日。 議政府啓: "卽見京畿暗行御史李𨯶永別單, 則‘其一, 道內元帳付, 四萬六千四百五十餘結外, 浦落泥生閒土起墾, 奸吏專事隱匿, 殘民無土責稅, 特令改量執總事也。 改量與査陳, 自營邑爛商便否, 使公賦無縮, 而民隱有紓。 其一, 廣州府 北坊、月谷二面還穀, 亦依聲串面例, 如前糶糴於水原倉事也。 一面便易, 兩面偏苦, 有非一視之政。 許令依前糶糴之意, 分付該守臣處。 其一, 畿邑曠官, 便成謬例, 依他道守宰例, 公役、實故外, 勿許給由事也。 依他道例施行, 毋敢擅離事, 著爲定式。 其一, 各驛凋敗, 由無賴輩勒奪位土, 喂馬京第, 馬位之橫占者, 別般査得, 還給原戶, 濫把、濫騎, 位土賣買者, 査實嚴繩, 掩置之郵丞, 亦爲論勘事也。 驛弊之到劇, 固非今斯今。 依繡衣臚陳, 行關本道, 俾有改觀之效。 其一, 加平幼學金平默、水原幼學李容耉才行及水原故學生崔聖益、廣州故學生沈文舟孝行, 褒奬事也。 此令該曹稟處。 其一, 江華前經歷閔致斗, 積苦戰陣, 而獨漏薦啓, 今施褒賞事也。 令該曹各別調用。 其一, 麻田 崇義殿參奉, 以高麗 太祖正派子孫中, 世襲事也。 令開城留守辨別宗派, 分明者, 請差本職。’" 又啓: "卽見忠淸左道暗行御史李承皐別單, 則‘其一, 湖左時起田畓, 總爲五萬六千結零, 而見今土地盡墾, 版籍宜其有加, 而王稅日縮、民賦日重, 專由於經界之不正。 自廟堂定均一之制, 頒下列邑事也。 田政之到處紊亂, 莫今日若。 釐正改量, 先從一二邑試之, 以爲漸次成就之道。 其一, 忠州牧總外結九百十一結零, 行關本道, 使之執總事也。 今其總外云者, 卽是法外也。 令道臣査櫛。 其一, 各邑斛子, 一依戶曹式事也。 我國斗斛之不均, 誠可寒心。 目今窮蔀之難支者, 卽倉隷之厚捧、濫索也。 先令道臣邑倅嚴加操制, 期圖收效。 其一, 上納情費, 無敢一毫加取, 而違者繩以重律事也。 情費爲弊之源, 則京司之點退操縱, 外邑之苟充麤劣也。 築底糾察與者、受者, 隨其摘發, 各別重繩, 竝飭於各司及各道。 其一, 淸州乙亥丙子未納兩稅, 爲十萬四千餘兩, 或不無窮民處未捧。 而此皆吏屬之加下挪貸, 轉相乾沒。 故關飭該牧, 刻期督徵, 而逋魁待其畢納, 斷用原律事也。 令本道詳覈顚末, 按法處之。 至若逋漢施律, 從當商確稟裁。 其一, 忠州幼學趙東燮, 昨年大歉, 出義私賑, 拔例收用事也。 令該曹斯速調用。 其一, 天安郡前僉使李周熙, 專事侵虐, 闔境繹騷, 按法嚴處事也。 名以朝官, 悖惡若是, 令攸司各別重勘。 外他土豪, 令道臣嚴加探察, 這這刑配, 朝官則指名馳聞事。’" 又啓: "卽見忠淸右道暗行御史李建昌別單, 則‘其一, 湖右虛結、冤徵, 最是難醫之瘼, 而隱結之入於吏賴者, 厥數夥多。 前監司時, 至有査出矣。 虛結、冤徵, 精査免稅, 以已査之隱結代充事也。 冤稅可蠲、正賦可補, 公私兩幸。 關飭營邑, 另行措處, 俾有成效。 其一, 保寧之合付蘇營, 多有不便。 水使之兼保寧府使, 減下水虞候, 還住元山, 元山別將, 移定他鎭, 該府使, 以蔭官之有聲績者, 或以文臣, 差出。 仍令該水使, 專意戎政事也。 是邑之附是營, 蓋出於鞏固邊圉之意, 而今以繡單觀之, 則合之不便、分之爲便。 若是較然明甚, 令道臣博採陳啓後稟處。 其一, 安興鎭合付泰安, 以府使兼防禦使, 六朔分住之餘, 體貌迥別, 擧行各異, 邑鎭吏校, 强弱不同, 積成嫌怨。 且安興, 三南交會之地, 空城殘卒, 疎虞莫甚。 府使旣兼水軍防禦使, 則安興守城別將, 以邊地僉使爲名, 武履歷窠, 差定事也。 此亦關問道臣後處之。 其一, 唐津等沿海八邑, 漁箭、鹽盆, 私設濫稅, 多有蠲革。 而今春更有內需司、忠勳府, 新設收稅, 比均廳元額, 爲三倍之多, 民弊滋甚。 亟令收其傳令, 撤其重稅, 其餘各宮、各營無名新稅, 竝令永革事也。 本有均役廳句管, 則內司、勳府之干涉, 前所未聞。 毋論某司, 所謂差人名色, 一竝刑配事, 分付道臣。 其一, 魯城前參奉尹相甲學行, 公州 李昌夏妻閔氏烈行, 褒奬事也。 竝令該曹稟處。’" 又啓: "卽見全羅左道暗行御史沈東臣別單, 則‘其一, 結政有不容一毫紊錯。 而近來列邑, 私立稅率, 名以計版, 恒典外添出條目, 殆無限節。 加斂與防納等許多弊端, 隨以滋興。 且年分九等之法、米豆準折之式, 雖有槪狀區別, 民皆不知, 中間消融, 又不知爲幾千萬矣。 令道臣行會各邑, 三四年計版, 都聚査括釐正, 更毋敢加斂。 其或踰越者、直用重律事也。 結弊之若是其極, 而守令惟署之、藩司放任之, 吏手愈滑, 殆同秦求, 民膏漸竭, 便若越視, 言念法綱, 不覺痛歎。 令道臣嚴明査剔, 亟行矯整, 而先從其最尤甚者守令, 先罷後拿, 吏屬嚴刑遠配事, 另飭行會。 其一, 關飭道臣, 收聚各邑結簿, 覈隱査陳, 彼此相代事也。 此在綜察釐整之如何, 依繡單申飭。 其一, 糶糴法意, 本自嚴重, 而所謂單代、立本、加分、加留等名色, 俱係還民切骨之瘼, 另飭道臣, 一切嚴禁事也。 還穀本以救民, 而反爲厲階, 痛歎之極, 寧欲無言。 使之申明科條, 亟祛諸般積弊之端。 其一, 各邑器械, 滲濕朽敗, 無一可用。 束伍軍未疤者, 全不充代, 春秋聚點, 無端停擱, 另飭道帥臣, 使各該邑繕修器械, 充疤束伍, 春秋聚點, 申明舊式事也。 揆諸綢繆之備, 誠不可使聞者也。 管轄之臣, 到底惕勤, 克殫修擧之政事。 令三軍府關飭於諸道道帥臣處。 其一, 戰、兵船少變其制, 戰、漕互用, 而待新造年限, 次第變通事也。 此亦行會, 以爲便宜施行。 其一, 民庫濫下, 動輒徵民, 另飭道臣, 收聚各邑文簿, 築底爬櫛, 條例刊冊, 永爲遵行事也。 以民而名其庫, 亦寓爲民之意也。 取用無節, 惟民何辜? 令道臣嚴立科式, 摘發其踰濫者, 依法重勘。 其一, 藉法之不以實久矣。 罷其稧房, 搜其漏戶, 以嚴藉法事也。 其所謂稧房名色, 卽一逋逃之淵藪也。 另飭道臣、邑守, 嚴明搜括, 以爲懲猾吏、保殘民之道。 其一, 本道各驛, 在在凋弊。 今若抛置, 蘇醒無望, 另飭道臣, 各驛中場市則申明舊式, 卽爲劃給。 保率則隨其闕額, 亦卽充給, 煙、還、戶布, 一竝頉給事也。 依繡單, 可頉者頉之、可充者充之, 恪遵舊式, 俾獲安保之地。 其一, 綾州幼學梁相鼎、寶城進士李志容收用事及光州故士人鄭準、谷城故士人安濟遠、茂朱故士人朴鵬齡孝行, 褒奬事也。 請令該曹稟處。’" 又啓: "卽見全羅右道暗行御史魚允中別單, 則‘其一, 右道丁丑流亡還耗及羅州五邑會付穀、別備米、全耗, 蠲蕩, 以査徵錢四萬八千三百餘兩, 俾充京營納邑用之數。 而羅州、靈光、扶安、沃溝等五邑虛還, 合二萬五千三石零, 卽令減總。 耗作錢七千五百兩零, 自戊寅秋作爲始, 以己卯春, 捧結排錢加磨鍊條中, 區劃充數, 勿爲責徵於各該邑事也。 令道臣詳査區別, 啓聞後可以稟施。 其一, 羅州 智島等諸島, 多是司僕寺折受之地, 而辛未年, 稱以漏結, 査得者五百八十六結零, 付於元帳, 疊徵稅納, 島民莫保, 竝卽另許頉免事也。 漏結執稅, 冏寺所管, 則是一土而兩稅也。 亦令道臣詳査論啓後裁處。 其一, 結役之重, 莫如湖南, 許多出米與正稅一般。 故另行査櫛, 公賦稅與守令、衙祿官需外, 不得以米徵結, 雜役米及京·營邸役米、色落知數米等名目, 竝以每石五兩式, 依戶曹作價施行, 成給節目, 令廟堂申明知委事也。 常賦外, 各樣徵米, 甚其違法。 自今以後, 隨現隨啓, 按律重勘。 至於諸條代錢, 自巡營築底裁量, 務從稱停。 其一, 驛路凋弊, 將至絶站。 此後公行、定式外, 嚴禁濫把事也。 濫把本有法禁, 此意關飭於本道。 其一, 長城進士奇宇萬、全州幼學蘇輝冕·宋淳柏才學及沃溝故士人田讓聖·朴連得妻金姓、靈光童蒙金永順、咸悅幼學徐光表孝行, 褒奬事也。 令各該曹稟處。’" 又啓: "卽見慶尙左道暗行御史李萬稙別單, 則‘其一, 本道還弊移貿尤甚。 而且秋作時, 謂以年例, 許貸耗條應作外, 加排爛用, 拖過時月, 始劃移貿, 邑吏引用, 轉成巨逋。 今以元穀七十二萬餘石, 一從各邑結總, 均排取耗, 無犯元總, 則糴法可正。 而年久逋還, 猝難淸帳。 自今刐多裒寡, 元耗作外, 更勿加劃。 昨年砲糧餘剩, 未得劃付, 以致元穀之犯用。 令道臣具由登聞, 從長區處事也。 行會于道臣, 使之講究釐革。 其一, 萊府城堞頹圮, 以査徵錢二千兩, 爲先劃給。 餘外不足, 亦令自邑措處, 而事鉅、力綿, 易致遲滯, 關飭萊伯, 斯速告竣事也。 關飭萊府, 著意垂訖。 其一, 安東幼學姜𨬋、大邱進士朴海奎、禮安進士李晩胤才行及大邱營吏李道根妻徐姓烈行, 褒奬事也。 令各該曹請稟處。’" 又啓: "卽見慶尙右道暗行御史李正來別單, 則‘其一, 沿邑各浦口有監營百一稅名色, 而所用汗漫, 民怨狼藉, 關飭道臣, 一竝革罷事也。 旣革之稅, 不當更創, 行關本道, 亟令禁止後, 形止登聞。 其一, 尙州牧別砲手一百名、別驍士五十名, 分屬邑鎭, 給料、課試事, 令三軍府稟處事也。 此則令武府稟處。 其一, 固城 馬巖面所在宣禧宮有土結十一結, 已爲還出賦稅, 折受永爲勿施。 而年前自內需司, 謂以移屬本司, 依宮結例責捧, 實爲該民切骨之瘼, 更勿責徵之意, 嚴飭事也。 更勿橫徵之意, 甘飭於內需司。 其一, 金山 直指寺, 寺樣凋殘, 進上冊紙, 萬無辦納之路。 情費又爲四百餘兩, 數三殘僧, 各懷渙散。 令該司稟旨分付事也。 進供所重, 則固不敢闊狹, 而若其情費一款, 不可無垂恤之政。 此則永勿擧論何如?’" 竝允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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