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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13권, 고종 13년 1월 20일 임자 2번째기사 1876년 조선 개국(開國) 485년

일본이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 일에 관하여 대신들과 논의하다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및 의정부(議政府)의 당상(堂上)을 소견(召見)하였다. 하교하기를,

"일본과 300년 동안이나 좋은 관계를 맺어왔는데, 지금 서계(書契)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여러 날 서로 버티고 있으니 정말 모를 일이다. 의정부에서 미리 의논하여 적당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니, 영부사(領府事) 이유원(李裕元)이 아뢰기를,

"신들이 날마다 의정부에 모여서 의논한 지 오래지만, 지금 저 사람들의 정상을 보면 귀순(歸順)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였다.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김병학(金炳學)이 아뢰기를,

"저 사람들이 좋은 관계를 맺으러 왔다고 말은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것이 아니라 불화를 일으키려는 것입니다. 끝내는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신들은 지금 날마다 모여서 의논하고 있습니다."

하니,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순목(洪淳穆)이 아뢰기를,

"적국의 외환(外患)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습니까만, 조정이 옳게 처리하고 백성들의 마음이 굳건하다면 저절로 귀순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판중추부사 박규수(朴珪壽)가 아뢰기를,

"일본이 좋은 관계를 맺자고 하면서도 병선(兵船)을 끌고 오니 그 속셈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삼천리 강토가 안으로는 정사를 잘하고 밖으로는 외적의 침입을 막는 방도를 다하여 부국강병(富國强兵)해지는 성과를 얻는다면 어찌 감히 함부로 수도 부근에 와서 엿보며 마음대로 위협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분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니, 영의정(領議政) 이최응(李最應)이 아뢰기를,

"신들이 등문(登聞)한 장계(狀啓)를 보니 저 사람들의 속셈은 매우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날마다 의정부에 모여서 처리할 방도를 의논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우의정(右議政) 김병국(金炳國)이 아뢰기를,

"저들의 정상이 과연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내려간 대관(大官)이 여러 날 그들을 만나고 있으니 그의 보고를 기다려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오늘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들을 입시(入侍)하게 한 것이 바로 이 일 때문이다. 여러 대신들은 충분히 의논하고 적당한 대책을 잘 세우도록 하라."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지금 심도(沁都)에서 온 장계(狀啓)를 보면, 저 사람들이 조약 13건이 있다고 하였는데 아직 보고가 오지 않았다. 아직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첫째 관(館)을 개설하여 통상하자는 것은 이미 동래부(東萊府) 왜관(倭館)에서 설치하고 시장을 열고 있는데 무엇을 또다시 설치하겠는가?"

하니, 김병국이 아뢰기를,

"지금의 우환을 보면 어느 때가 지금과 같았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사전에 대처하는 방도는 오직 재정 뿐입니다. 그러나 공납(公納)은 기일을 지체시키면서 이럭저럭 날을 보내고, 중앙과 지방의 저축은 도처에서 고갈되었으나 위급한 상황에 따르는 대책을 세울 길이 없습니다. 공적이건 사적이건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실로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항산(恒産)도 없고 항심(恒心)도 없는 자들이 이런 일이 있는 때를 타서 작게는 도적질을 하고 크게는 강도질을 하여 수도로부터 시골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소란하여 형세는 위급해지고, 가난한 사람이건 부유한 사람이건 모두 곤경에 빠져 엎치락뒤치락하니 이것은 다 기강이 서지 않아 두려울 게 없기 때문입니다. 무릇 기강이란 저절로 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세우는 사람이 있어야 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쁜 사람은 내쫓고 좋은 사람을 등용하여 조정의 기강을 세우며, 표창과 책벌을 정확히 적용하여 온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것은 전하가 한 번 변경하기에 달려있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힘쓰소서. 힘쓰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여러 가지 예비책은 묘당(廟堂)에서 잘 의논하여 조처하기에 달렸지만, 지금 이처럼 힘쓸 것을 당부하니 어찌 감히 명심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 【원본】 17책 13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17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관방(關防) / 외교-일본(日本) / 사법-법제(法制) / 무역(貿易) / 상업-시장(市場)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군사-군기(軍器) / 사법-치안(治安)

召見時原任大臣、政府堂上。 敎曰: "與日本三百年修好之地, 今以書契事, 有此多日相持, 甚可叵測。 自政府, 豫爲講究, 以爲停當之策, 似好矣。" 領府事李裕元曰: "臣等日日來會政府, 商確久矣。 而見今彼人之情狀, 似不歸順矣。" 領敦寧金炳學曰: "彼人雖云修好而來, 許多情狀, 非修好, 卽搆釁也。 未知竟當如何, 而臣等方日會商確矣。" 判府事洪淳穆曰: "敵國外患, 何代無之? 苟是朝廷處置得宜, 衆心成城, 自然歸順矣。" 判府事朴珪壽曰: "日本稱以修好, 而帶來兵船, 其情叵測矣。 第念三千里封疆, 如果盡內修外攘之方, 致國富兵强之效, 則豈敢來窺畿甸, 恣行恐嚇? 誠不勝憤惋矣。" 領議政李最應曰: "臣等見狀啓之登聞者, 而彼人情狀, 極爲叵測。 日會政府, 商確措處之方矣。" 右議政金炳國曰: "彼人情狀, 果其修好而然乎? 下去大官, 連日相接, 待其所報, 當有講究之策矣。" 敎曰: "今日時原任大臣入侍者, 卽爲此事而然也。 諸大臣爛加商議, 善爲停當。" 又敎曰: "今見沁都狀啓, 則‘彼人有約條十三件’云矣, 而姑未來報。 雖未的知, 第一設館通商者, 旣有館之開市, 則有何更設乎?" 炳國曰: "見今憂虞之會, 莫此時若也。 第其備豫之方, 惟財用是矣。 而公納愆滯, 玩日愒月, 中外儲蓄, 到處罄竭, 凡係緩急, 策應無路。 公私事計, 莫知攸屆, 誠亦岌岌乎殆矣。 且無恒産、無恒心者, 因此有事之際, 小而穿窬, 大而刦掠, 自京師遠至鄕鄙, 在在騷擾, 景色危悖, 貧富俱困, 顚連在前, 都是紀綱不立, 無所顧畏故耳。 夫紀綱不能自立, 必有所繫而立。 黜幽陟明, 立朝廷之紀綱, 信賞必罰, 立四方之紀綱, 此在殿下一轉移間事也。 伏願懋哉! 懋哉!" 敎曰: "諸般豫備之策, 惟在廟堂之商確措處, 而今此勉戒, 又如是切摯, 敢不服膺。"


  • 【원본】 17책 13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17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관방(關防) / 외교-일본(日本) / 사법-법제(法制) / 무역(貿易) / 상업-시장(市場)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군사-군기(軍器) /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