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 홍시형이 최익현을 지지하는 상소문을 올리다
장령(掌令) 홍시형(洪時衡)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전 승지(承旨) 최익현(崔益鉉)의 상소에 대한 비답을 읽어 보니, ‘매우 가상하다.’ 하셨는데, 그 상소를 읽어 보니 과연 정직하여 봉황이 아침 햇살을 받아 우는 것과 같았습니다. 대성인이 직언을 포용함으로써 바른 말이 들어오는 길을 열어놓는 뜻을 알 수 있었으므로 흠송(欽誦)해 마지않았습니다. 이런 시기에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에 제수하는 전지가 신의 몸에 더해졌는데, 신은 이 직책을 일찍이 감당하지 못하였던 까닭에 일 만들기 좋아한다는 비방을 피하려 한다는 기롱까지 받았으니, 스스로 죄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턱없이 그냥 이 벼슬자리를 차지할 수 없으니, 속히 직명을 체차하여 주소서. 신이 면직을 비는 소장에서 다른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사리에 마땅치 않습니다만, 대체로 오늘날의 급선무는 《춘추(春秋)》를 밝히고, 명분을 바로잡으며, 거두어들이는 일을 금지하고, 호전(胡錢)의 사용을 폐지하고, 재이(災異)을 경계하고, 상벌을 신중히 하며, 차함(借銜)을 막는 것 등 일곱 가지입니다.
정통에 대한 《춘추》대일통(大一統)의 큰 의리에 대해서는 천하 후세의 혈기(血氣) 있는 무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태조 강헌 대왕(太祖康獻大王)은 명나라 태조 황제(太祖皇帝)와 같은 시기에 창업하여 임금과 신하의 의리를 정하였는데 거의 300년 동안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임진년(1592)의 변란을 당하였는데 다행히 신종 황제(神宗皇帝)의 재조(再造)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그 은혜에 감격하여 보답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였습니다. 그 뒤 병자년(1636)과 정축년(1637) 이후에 와서 우리 열성(列聖)께서 ‘인통함원 박부득이(忍痛含冤 迫不得已)’ 여덟 자를 성충(聖衷)에 새겨두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움직이셨습니다.
선정신(先正臣)인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은 봉사(封事)에서, ‘군부의 원수와는 한 하늘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원망이 쌓일수록 금폐(金幣) 가운데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뜻이 더욱 간절합니다.’ 하였고, 뒤이어 문순공(文純公) 권상하(權尙夏), 문충공(文忠公) 김수항(金壽恒), 문충공(文忠公) 민정중(閔鼎重)이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만동묘(萬東廟)를 세워 외로이 충성을 다하는 뜻을 붙였습니다. 이는 한퇴지(韓退之)가 한 칸짜리 초막을 짓고 소왕(昭王)을 제사지낸 것과 장남헌(張南軒)이 우제(虞帝)의 사당을 세우고 제사지낸 의리를 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미 황폐해져 한 부(部)의 《춘추》를 읽을 만한 곳이 없습니다. 만일에 《춘추》의 의리에 밝지 못하면 삼강이 쇠락하고 모든 법이 썩어 아들은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신하는 임금이 있다는 것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춘추》의 의리를 밝혀 사당과 서원을 복구하소서. 이것이 그 첫째입니다.
명분을 바로 세운다는 말에 대하여 말한다면, 근래에 호포가 한 번 나오면서 등급이 문란해져 벼슬아치나, 선비, 하인들이 똑같이 취급되고 상하의 구별이 없어졌으니, 한탄스러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단지 황구(黃口)나 백골(白骨)만을 불쌍히 여겨서 귀천에 관계없이 균배(均排)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명분이 한 번 무너지면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다스리겠습니까? 부디 호포를 혁파하여 명분을 바로잡으며 군액(軍額)을 바르게 하여 뜻하지 않는 사변에 대처하소서. 이것이 그 둘째입니다.
거두어들이는 것을 금하라는 말에 대해서는, 우리 전하께서 즉위한 이후로 정전(正殿)을 재건하고 무기들을 정비하였는데 재정이 모자라자 백성들의 힘을 빌어 그것들을 완공함으로써 모든 법도가 새로워졌습니다. 취렴하는 것과 관계되는 모든 것들을 거의 혁파해버리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의 소망이었는데, 과연 일전에 각 문과 비궁(閟宮)에서 받아들이던 세금법을 혁파하시니, 온 나라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원납전과 결렴(結斂)도 차제에 틀림없이 폐지할 것이라고 하며 마치 심한 가뭄에 비구름을 바라듯 하고 있습니다. 부세는 나라의 큰 정사이기에 토지의 등급을 매기고 조세를 바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로 변하였거나 묵힌 땅에 대해서도 현재 경작하는 토지와 혼동하여 조세를 마구 받아들이거나 지나치게 거두어들이는 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는 바로 옛날의 성인들이 경계한 바로서 위가 소홀히 하여 아래가 잔약해지는 것입니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백성들의 고혈을 말리는 것은 모두 용도를 절제하지 않는 데서 기인되며, 지난날의 교훈이 명백한 바와 같이 하걸(夏桀), 상주(商紂), 진시황(秦始皇)도 이 때문에 어지러워져 망하였던 것입니다. 부디 취렴(聚斂)을 금하고 재용(財用)을 절제하여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소서. 이것이 그 셋째입니다.
호전을 혁파하라는 것에 대하여 말하면, 이른바 호전의 폐해는 당백전(當百錢)보다 심합니다. 물가는 몇 곱절 뛰어오르고 여러 차례 풍년이 들던 기상이 날로 점점 스산해져 갑니다. 영남(嶺南)과 서북에서 의심을 사고 사용하지 않으며 원망이 대단합니다. 부디 호전을 혁파하고 우리나라 돈을 씀으로써 물가를 고정시키고 인심을 진정시키소서. 이것이 그 넷째입니다.
재이(災異)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말한다면, 폭우가 쏟아지고 심한 가뭄이 들며. 겨울에 우레가 치고 낮이 어두워지며, 우역(牛疫)이 해마다 크게 치성하여 사람이 대신 밭을 갑니다. 범에 의한 환란이 북쪽에서부터 동쪽에 이르기까지 이르러 죽는 사람이 연속하여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참으로 작은 사고가 아니며 역시 대변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인자한 하늘이 재이를 내려 경계를 보이니, 부디 전하께서는 조심스럽게 수양하고 반성함으로써 화를 전환시켜 복이 되도록 하소서. 이것이 그 다섯째입니다.
상벌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면, 지난날 각 능을 적간한 뒤에 이어 상벌을 명확하게 하도록 하라는 명이 없었으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신은 수십 년 동안 능원의 제관으로 차임되어 거의 멀고 가까운 곳 없이 다녀보았는데, 예전과 같이 아름다운 제기(祭器)가 지금은 드물게 되었으니, 이것이 과연 국역(國役)에 다 써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명을 받든 사신의 행차에 주전(廚傳)하는 즈음 절도 없이 토색질을 하기 때문에 능속(陵屬)에 대해 지방(支放)을 할 수가 없으니, 도리어 처음부터 이런 일이 없는 것보다도 못합니다. 부디 회계(回啓)를 잘 살피고 변별하여 상을 줄 사람은 상을 주고 벌을 줄 사람은 벌을 주소서. 이것이 그 여섯째입니다.
차함(借銜)을 막을 것에 대하여 말한다면, 모든 벼슬을 명예 벼슬로 차함하는 것이 오늘과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시골의 천한 사람이 외람되게 차지하였다가 탄로나면 전관(銓官)들이 책벌을 받고 삭직되는 일이 있긴 합니다만, 도목 정사(都目政事)의 규정을 놓고 따져볼 때 오히려 한 나라 무제(武帝)가 무공에 관한 벼슬을 임시로 둔 것보다 못합니다. 그 재주를 고르지 않고 문벌도 묻지 않으며 한 번의 정사에서 혹은 둘 셋에까지 이르는가 하면 1년 동안에 혹 수백 명에 달하기도 하니, 이것이 어찌 공기(公器)를 중히 여기는 뜻이겠습니까? 부디 차함을 막음으로써 공기를 중하게 하소서. 이것이 그 일곱째입니다.
또 오늘날 조정에는 안기영(安驥泳)과 허원식(許元栻)의 무리들이 연이어 일어나서 전하의 성총(聖聰)을 가리고 착한 사람들을 모해하고 있는데 만일 전하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들의 시기심을 꿰뚫어보고 귀양을 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이로부터 나라에서는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소인을 물리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길은 오직 강학(講學)에 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강학(講學)과 소대(召對)를 시행하고 거두는 것이 일정하지 않으니, 어떻게 의리의 옳고 그른 것과 치란의 시비(是非)를 알 수 있겠습니까? 바야흐로 춘추(春秋)가 한창이시니 비록 복잡한 정사가 있기는 하지만 어진 선비들을 불러들여 강론(講論)을 하고 은거하고 있는 문학의 선비들을 찾아내어 뽑아서 관리로 임명함으로서 덕을 보강하신다면 나라를 중흥하여 계통을 드리워 국운이 후세에 길이 무궁할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그대의 상소 내용은 구절마다 진달한 것이 선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매우 가상하다. 마음에 새겨두겠다. 그리고 그대는 바른 말을 올리는 직책에 둘 만하니, 부수찬(副修撰)으로 제수한다. 만동묘(萬東廟)에 대한 일은 이미 동조(東朝)의 염교(廉敎)로 철폐한 것인데, 오늘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일의 체모가 달려 있으니,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다시는 이 문제를 가지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 【원본】 14책 10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2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군사-군역(軍役) / 군사-군정(軍政) / 재정-국용(國用) / 재정-잡세(雜稅) / 역사-고사(故事) / 금융-화폐(貨幣) / 과학-생물(生物) / 인사-관리(管理) /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二十九日。 掌令洪時衡疏略:
臣伏讀前承旨崔益鉉疏批, 有曰‘極爲嘉尙。’ 及見其疏, 則果是正直, 鳳鳴朝陽也。 可知大聖人包容直言, 以開言路欽, 誦萬萬矣。 際玆掌憲除旨, 加於臣身。 臣於是職, 曾旣不勝, 以至取譏於好事之謗, 自知有罪, 不宜仍冒, 亟遞所帶之職名焉。 臣於丐免之章, 不宜贅他, 而蓋今日急務, 卽明《春秋》, 正名分, 禁聚斂, 罷彼錢, 警災異, 愼賞罰, 杜借銜七者, 是也。 夫《春秋》大一統之義, 天下後世血氣之類, 莫不知之耳。 惟我太祖康獻大王與明太祖皇帝, 同時創業, 定君臣之義, 殆三百年不替矣。 後値壬辰之變, 幸賴神宗皇帝再造之恩, 其所感恩圖報, 靡不用極。 而逮夫丙丁之後, 惟我列聖, 常以忍痛含冤迫不得已八字, 存諸聖衷, 運之於冥冥之中。 先正文正公臣宋時烈封事有曰‘君父之讎, 不共戴天。 蓄憾積冤, 金弊之中, 薪膽愈切。’ 繼以文純公臣權尙夏、文忠公臣金壽恒、文忠公臣閔鼎重, 同心協力, 立萬東廟, 以寓孤忠, 取據於韓退之一間茅屋祭昭王及張南軒立虞帝祠而祭之之義也。 今焉已墟, 一部《春秋》, 無地可讀。 苟或《春秋》不明, 三綱淪, 九法斁, 子焉而不知有父, 臣焉而不知有君。 伏願克明《春秋》, 設廟復院。 此其一也。 至於正名分之說, 則近來戶布一出, 等級紊亂, 縉紳章甫, 隷臺下賤, 同歸一轍, 無分上下, 可勝歎哉? 特不過悶其黃口、白骨, 而無貴賤均排之意也。 名分一壞, 國將何爲? 伏願罷戶布以正名分, 正軍額以備不虞。 此其二也。 至於禁聚斂之說, 則惟我殿下臨御以來, 重建正衙, 繕修軍器, 經用不足, 籍力於民, 告厥成功, 百度改觀。 凡係聚斂之庶幾革罷, 惟今望之, 果於日前, 撤罷各門及閟宮收稅。 擧國群情皆曰: ‘願納與結斂, 亦次第必罷’, 若大旱之望雲霓也。 賦稅, 有國大政, 故定其田等而貢稅矣。 今也不然, 成川陳荒, 混同時作, 橫賦濫斂, 千百其端, 卽古聖所戒上慢而下殘者也。 推此觀之, 竭民膏澤, 都出於不節用, 前鑑昭然, 桀、紂、秦皇, 以此亂亡。 伏願禁聚斂, 節財用, 以固邦本。 此其三也。 至於罷彼錢之說, 則所謂彼錢之害, 甚於當百。 物價倍蓰, 屢豐氣像, 日漸蕭索。 嶺南西北, 疑惑不用, 皇皇嗷嗷。 伏願罷彼錢, 用我錢, 平物價, 鎭人心。 此其四也。 至於警災異之說, 則暴雨亢旱, 冬雷畫陰。 牛疫年年大熾, 人代其耕。 虎患自北至東, 死者相續。 誠非細故, 亦關大變, 仁愛之天, 降災示警。 伏願恐懼修省, 轉禍爲福。 此其五也。 至於愼賞罰之說, 則向者各陵摘奸之後, 仍無賞罰之明命, 何也? 臣於數十年之間, 差祭陵園, 殆無遠近。 前之鬱美, 今焉稀疎, 是果盡用於國役而然乎? 奉命之行, 廚傳之際, 討索無節, 陵屬無以支保, 反不如初無是事之爲愈。 伏願審辨乎回啓, 賞則賞, 罰則罰。 此其六也。 至於杜借銜之說, 則庶官借銜, 莫今時若。 鄕賤濫叨, 以至綻露, 縱有銓官譴削之擧。 揆以政格, 反不如漢 武武功爵之權設也。 不擇其才, 不問地閥, 一政之內, 或至二三, 一年之內, 或至數百, 是豈重公器之意乎? 伏願防借銜, 以重公器。 此其七也。 且今朝廷之上, 安驥泳、許元栻之輩, 接踵而起, 壅蔽聖聰, 戕害善類。 若非聖明, 何能辨其媢疾而放流之哉? 從此可以進賢退小, 國其庶幾乎! 人主正心之道, 惟在講學。 今殿下之進講、召對, 作撤無常, 何以知義理當否, 治亂是非乎? 方今春秋鼎盛, 雖有萬機之繁, 招賢開講采探, 巖穴文學之士, 抄選除官, 以補允德, 則有以中興統垂邦籙無疆矣云云。
批曰: "爾之疏辭, 節節句句, 無不陳善, 甚庸嘉尙, 當體念。 而爾則可置啓沃之任, 副修撰除授。 至於萬東廟事, 旣有東朝簾敎停撤, 則今爲擧論, 事體所在, 豈可如是? 更勿以此煩瀆。"
- 【원본】 14책 10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2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군사-군역(軍役) / 군사-군정(軍政) / 재정-국용(國用) / 재정-잡세(雜稅) / 역사-고사(故事) / 금융-화폐(貨幣) / 과학-생물(生物) / 인사-관리(管理) /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