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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10권, 고종 10년 8월 29일 을사 1번째기사 1873년 조선 개국(開國) 482년

《오례편고》의 도표를 개정하게 하다

진강(進講)을 마쳤다. 하교하기를,

"《오례편고도식(五禮便考圖式)》이 이제야 비로소 초안이 나왔는데, 이것은 단지 상고해보기 위한 것이다."

하고, 이어 책자 5권을 내려주라고 명하였다. 강관(講官) 김세균(金世均)이 무릎을 꿇고 받았다. 하교하기를,

"이것은 《오례의(五禮儀)》, 《속오례의(續五禮儀)》, 《오례편고(五禮便考)》 등 여러 책들 속의 것을 참고한 것이다. 그리고 또 옛날 도식(圖式)한 책이 내시부에 보관되어 있는데 전적으로 그 책을 본따서 그린 것이다. 그런데 도설(圖說) 부분은 글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곳이 많고 또 내전(內殿)의 복색(服色)은 외전(外殿)과 달라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언문(諺文)으로 써놓은 곳이 있다."

하니, 김세균이 아뢰기를,

"도설 가운데 언문으로 쓴 것은 아마도 부득이한 일인 것 같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옛날 도식은 세월이 오래되어서 좀이 먹었기 때문에 고증하기 어렵다. 그러나 군복(軍服)에 대한 도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정묘조(正廟朝) 이전에 그린 것인 듯하다."

하니, 김세균이 아뢰기를,

"효묘조(孝廟朝)에 가교(駕轎)를 탈 때의 복색을 정하였는데, 하교하기를, ‘일찍이 《대명회전(大明會典)》을 보니 무사(武士)의 옷소매는 팔이 겨우 들어갈 정도였는데, 그것은 군복이란 가볍고 날렵한 쪽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철릭〔帖裏〕과 사립(絲笠)은 동작에 구속을 준다.’라고 하고는 이어 익선관(翼善冠)과 곤룡포(袞龍布) 차림은 남여를 탈 때나 교자를 탈 때나 구분을 두지 말라고 명하였습니다. 군복에 이르러서는 정묘조에 화성(華城)으로 행행할 때에 입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녕전(華寧殿)에 모신 어진(御眞)의 옷차림은 바로 군복 차림입니다. 그 후 헌종조(憲宗朝) 병오년(1846) 이전까지는 단지 화성으로 행행할 때에만 군복 차림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고, 김세균이 아뢰기를,

"일찍이 듣건대, 능으로 행차할 때의 복색을 화성에 행차할 때의 전례대로 하라는 명이 있으면 으레 군복 차림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내전의 관제(冠制)는 틀림없이 명나라의 제도일 것이다."

하니, 김세균이 아뢰기를,

"그런 것 같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머리 장식을 하는 데에서 화려한 장식을 한 것은 친영(親迎)할 때에 쓴 것이다."

하니, 김세균이 아뢰기를,

"화려한 장식을 한 제도는 이번에 처음 보는 것입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큰 다리〔大髢〕와 둥근 다리〔圍髢〕 두 가지 장식은 모사(模寫)하기 어려워서 그 이름만 도서(圖序)에 기록하였는데, 대체로 외전(外殿)의 익선관(翼善冠)과 같다. 만일 원삼(圓衫)을 갖추어 입을 경우에는 반드시 이 장식을 하여야 한다. 당고의(唐古衣)는 내전이 문안을 올리거나 진전(眞殿)에 참배할 때에 입는다."

하였다. 김세균이 아뢰기를,

"상의원(尙衣院)의 문적(文蹟)에는 두수(頭鬚)에 대한 제도가 있는데, 도식(圖式)에 포함시켰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아마도 예복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머리 장식에는 명칭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과 지금 부르는 명칭이 서로 다른 듯하며, 옛날 도식에는 간혹 채색을 넣기도 하였다."

하였다. 김세균이 아뢰기를,

"이 책을 판각한다면 채색을 넣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내(大內)에 별도로 비치할 책은 옛 규례대로 채색을 넣어 고증하는 데 대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옛날 제도에서 흉배(胸背)의 둥근 용 그림은, 임금인 경우에는 용의 발톱이 5개, 세자는 발톱이 4개, 세손은 발톱이 3개로 된 것을 사용하였다."

하니, 김세균이 아뢰기를,

"과연 그렇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망룡의(蟒龍衣)의 소매는 요즘의 작은 두루마기 모양처럼 좁은데, 다만 소매의 가운데가 좀 넓게 되었다. 그 전에 효종께서 입으셨던 한 벌이 진전(眞殿) 이안청(移安廳)에 보관되어 있다."

하니, 김세균이 아뢰기를,

"이것은 명나라에서 하사한 것이며 지금까지 보관되어 오는 것입니다."

하였다.


  • 【원본】 14책 10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17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의생활-예복(禮服) / 의생활-장신구(裝身具)

    二十九日。 進講訖, 敎曰: "《五禮便攷圖式》, 今纔出草, 第爲考閱也。" 仍命下冊子五卷。 講官金世均跪受。 敎曰: "此是《五禮儀》《續五禮儀》《五禮便攷》諸冊中參考者。 而又有古圖式一本, 藏在內府, 摹畫一依此本。 圖說, 多有文意未暢處, 且內殿服色, 異於外殿, 有難詳言。 故不得不有以俗稱書之者矣。" 世均曰: "圖說中書以俗稱, 恐不得不然矣。" 敎曰: "古圖年久蠹傷, 難爲考證。 而第無軍服之圖, 似是正廟朝以前所圖者也。" 世均曰: "孝廟朝定御駕轎時服色, 敎曰: ‘曾見《大明會典》, 武士衣袖, 僅容其臂, 所以戎服取輕捷也。 我國帖裏、絲笠, 拘束動作, 仍命翼善冠、袞龍袍, 無分於輿、轎。’ 至於軍服, 正廟華城幸行時所御, 故華寧殿御眞所御, 乃軍服矣。 其後憲宗朝丙午以前, 只以華城幸行時, 用軍服矣。" 世均曰: "曾伏聞陵幸時服色, 以幸例有命, 則例用軍服矣。" 敎曰: "內殿冠制, 必是大明之制也。" 世均曰: "似然矣。" 敎曰: "首飾中廣飾, 則親迎時用之矣。" 世均曰: "廣飾之制, 今始奉見矣。" 敎曰: "大髢、圍髢兩飾, 難便於模寫, 只錄其名於圖序, 而蓋如外殿之翼善冠。 若具圓衫則必加是飾也。 唐古衣, 內殿問安及眞殿參拜時用之矣。" 世均曰: "尙衣院文蹟, 有頭鬚之制, 或入於圖式乎?" 敎曰: "似非法服。 且首飾多有稱號, 則似是古今異稱者矣, 而古圖則或以彩施之矣。" 世均曰: "此本當鋟梓, 則難以施彩。 而自內別置本, 則依古規設彩, 以備考證, 恐好矣。" 敎曰: "古制胸褙圓龍, 御用五爪, 世子用四爪, 世孫用三爪矣。" 世均曰: "誠然矣。" 敎曰: "蟒龍衣袖狹, 如近日小周衣樣。 但袖之中間稍廣。 而曾有孝廟所御一件, 奉置眞殿, 移安廳矣。" 世均曰: "此是皇明所賜而至今奉藏矣。"


    • 【원본】 14책 10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17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의생활-예복(禮服) / 의생활-장신구(裝身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