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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9권, 고종 9년 5월 4일 정해 2번째기사 1872년 조선 개국(開國) 481년

태원전에서 전작례를 행하고 낡은 어진의 처리 문제에 대하여 의논하다

태원전(泰元殿)에 나아가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나서 재전(齋殿)에 가서 재숙(齋宿)하였다.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이하 관리들을 인견(引見)하였다. 하교하기를,

"우리 태조 대왕(太祖大王)이 왕조를 창건한 거룩한 공적을 세운 것과 원종 대왕(元宗大王)이 훌륭한 법을 뒤이어 융성시킨 것이 이 해와 같은 임신년이었고, 두 성조(聖朝)의 어진(御眞)을 옮겨서 모사한 것도 역시 같은 임신년(1872)인 이 해이니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제는 벌써 태평세월을 이루게 되었으니 만만번 경축할 일이다.

신본(新本) 어진을 모시게 되면 구본(舊本)을 궤봉(櫃奉)하는 것은 사체(事體)로 보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어 정본(幀本)이 벌써 희미해진데다가 또 오랜 세월을 지나면 좀이 슬까 걱정되니 이것이 매우 송구스럽다. 우리 왕조의 고사(故事)에 전례가 있었고 또 자전의 하교도 받은 만큼 구본은 영희전(永禧殿)에 받들고 가서 세초(洗綃)하여 북쪽 섬돌 가에 매안(埋安)하며, 경기전(慶基殿)의 구본은 신본을 모신 후에 배진(陪進)하는 대신(大臣) 이하 관리들이 모셔다가 세초하여 본 전각의 북쪽 섬돌 가에 매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하니,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유원(李裕元)이 아뢰기를,

"어진(御眞)구본(舊本)을 궤봉(櫃奉)하기도 하고 혹 세초(洗綃)하여 매안(埋安)하기도 하는 것은 다같이 본 왕조의 규례에 있는 행사입니다. 이번에 하문하신 것은 실로 먼 앞날을 위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니 신들이 무슨 딴 의견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경기전의 구본으로 말하면 본 왕조 초기에 그린 것입니다. 500년 동안 모셔오던 어진을 세초하여 매안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신중히 해야 할 일이며 또 모셔갈 날짜도 아직은 멀었으니 연석(筵席)에 나오지 못한 대신들에게 널리 문의해 보고 처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고, 영의정(領議政) 김병학(金炳學)이 아뢰기를,

"이번의 이 하교로 말하면 바로 우리 순원 성모(純元聖母)께서 진전(眞殿)을 늘리지 않으신 훌륭한 뜻과 그 의리가 꼭 같으며 먼 앞날을 위한 계책에 부합됩니다.

그리고 옛날 명종(明宗) 때 종부시 제조(宗簿寺提調) 홍섬(洪暹)이 아뢰기를, ‘선원전(璿源殿)에 모신 태조의 어진 26개 두루마리에는 시중(侍中)으로 있을 때의 어진도 있습니다. 태종(太宗), 세종(世宗), 세조(世祖)도 모두 어진이 있으며 덕종(德宗), 성종(成宗), 중종(中宗)의 어진도 모두 추후에 그렸는데 다 전각 안에 모셨습니다. 좀이 슬고 먼지가 앉아 어지럽게 되면 만대를 지나간 후에 뒤섞일 폐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초본(初本)과 부본(副本)은 좋은 자리를 택하여 매안(埋安) 하소서.’라고 하였는데, 특별히 그 의견을 따랐습니다.

우리 왕조에서 이미 시행하여온 예(禮)도 이러하고 경기전에 신본을 모실 날도 아직은 멀었으니 이 대신이 아뢴 바대로 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경기전의 구본과 영희전 제1실과 제3실에 있는 구본과 정본(幀本)을 세초하는 절차에 대하여, 예조(禮曹)의 당상(堂上)을 보내어 연석에 나오지 못한 대신들에게 물어보고 오게 하라고 명하였다.


  • 【원본】 13책 9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92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예술-미술(美術) / 왕실-종사(宗社)

泰元殿, 行酌獻禮, 仍詣齋殿, 齋宿。 引見時原任大臣以下。 敎曰: "我太祖大王創垂聖功、我元宗大王追隆懿典, 在於是年, 而兩聖朝御眞移摹, 亦在是年, 事非偶然。 今已太平竣完, 萬萬慶祝。 新本將展奉, 則舊本之櫃奉, 事體當然。 而年久, 幀本已是熹微, 又經幾多年, 恐有魚褪之慮, 是甚惶悚。 旣有我朝故事, 且承慈旨, 舊本奉詣永禧殿, 洗綃埋安于北階上。 慶基殿舊本, 則新本展奉後, 陪進大臣以下, 敬奉洗綃, 埋安于本殿北階上, 恐好。 大臣之意何如?" 判府事李裕元曰: "御眞舊本之或櫃奉, 或洗綃埋安, 俱有國朝典禮。 今此下詢, 實出於經遠之慮, 臣等有何他見? 而至於慶基殿舊本, 國初圖寫本也。 五百年敬奉之餘, 洗綃埋安, 尤爲難愼, 且奉詣日字尙遠, 博詢未登筵大臣處之, 恐好。" 領議政金炳學曰: "今此下敎, 卽我純元聖母不增眞殿之聖意, 同一其揆, 允爲經遠之謨。 而昔在明宗朝, 宗簿提調洪暹奏曰: ‘璿源殿所奉太祖影幀二十六軸, 有侍中時寫眞。 太宗世宗世祖, 皆有影幀, 德宗成宗中宗影幀, 皆追寫而竝奉殿內。 魚褪塵垢, 萬代之下, 恐有混淆之弊。 初本、副本, 請擇地埋安。’ 特爲允從。 我朝已行之禮亦如此, 慶基殿新本展奉日字尙遠, 則依此大臣所奏, 亦好矣。" 允之。 "命慶基殿舊本、永禧殿第一室第三室舊本幀本洗綃埋安之節, 遣禮堂, 詢問于未登筵大臣以來。"


  • 【원본】 13책 9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92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예술-미술(美術)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