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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4권, 고종 4년 11월 16일 을축 1번째기사 1867년 조선 개국(開國) 476년

경복궁에 나가 축하를 받고 사면을 반포하다

경복궁(景福宮)에 나아가 근정전(勤政殿)에 앉아서 축하를 받고 사면(赦免)을 반포하였다. 교문(敎文)에,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루에 만년의 터전을 세운 것은 큰 복이 독실하게 도운 것이니 10월에 길이 즐거워할 축하를 받고 밝은 명령을 반포하는 바이다. 온 나라의 백성들은 크게 모여서 모두 나의 명령을 들을 것이다.

듣자니 성인들은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능히 조상의 영구한 계책을 잇는다고 하였다. 고요한 사당을 제때에 보수한 것은 실로 주공(周公)의 손자이자 장공(莊公)의 아들이며, 저 하늘이 만든 험한 기산(岐山)을 저 멀리 태왕(太王)이 다스리고 문왕(文王)이 안정시켰다. 사람들을 두루 복종시켜서 왕업을 창기하고 전통을 물려주어 계승할 수 있게 하였으니, 규모가 크고 원대하여 복을 받고 공을 도모하는 것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이제 나 소자(小子)가 임금의 자리에 오른 초기에 선대의 신령한 임금의 훌륭한 위업을 이어받으니, 나라와 백성, 강토를 부탁하시거늘 왕업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렵고, 나라를 세우고 부지런히 운영하거늘 나라를 생각하면 두렵기만 하다.

옛날에 태조(太祖)는 새로 큰 도읍을 세우고 경복궁(景福宮)이라는 대궐에서 거처하니, 앞에는 남산이고 뒤에는 삼각산(三角山)이라 바로 천지의 중간에 있는 좋은 곳이었고, 먼저 종묘를 짓고 뒤에 거처하는 방을 세우니 전각이 위아래로 취하는 바가 있었다. 상서로운 징조가 이미 나타나서 백 년 동안에 왕업이 흥성하였고, 그 제도는 실로 삼대(三代) 때를 본떴으니 후세에 더할 것이 없었다. 제거사(提擧司)는 관할하는 것을 더없이 엄하게 하여 반드시 궁부에 모든 것을 복종시키고 정도전(鄭道傳)은 잠규(箴規)를 세우고 여러 당들의 이름을 붙였다.

아름답도다! 역대 임금이 서로서로 이어받아 나갔다. 훌륭하도다! 크고 큰 위업을 함께 받아왔다. 훌륭하고 큰 위업이 지극하니 여러 대에 걸쳐 거듭 빛냈고, 돌아볼 때 그 빛이 환하였으니 신과 함께 교화시켰다. 이것은 만대의 신령이 도와준 것이고 한 때의 운수가 관여한 것이다.

물귀신에게 빌고 네 담의 귀신에게 빈 것은 중고(中古) 때에 있었던 일이고, 관리들을 단속하여 대궐에 벌려 세우는 것은 다시 옛날과 같이 할 수 없게 되었다. 잔잔한 물결은 군중의 방패막이의 바람과 구름이 지켜주고, 상림(上林)의 나무가 늙으니 영광전(靈光殿)에 세월이 오래 흘렀다. 오랜 동안 나라 사람들이 슬퍼하였으니, 어찌 하늘의 운행이 다시 오지 않겠는가?

선묘(宣廟)의 피난 행차가 돌아온 이후로 보수하는 공사를 엄두도 내지 못하였는데, 원릉(元陵)이 이에 진하(陳賀)한 데 뒤미처 영혼이 살아 있는 듯하였다. 큰 책임을 생각하여 그의 뒤를 이어나가자고 하였으며, 옛터에 궁전을 세우게 되었다. 죽은 아버지가 평상시에 훌륭한 계책을 남겨주어, 그 뜻을 이어받고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이에 훌륭한 명령을 내려주어 결단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황라(黃羅)가 낙예(洛汭)에 도읍을 세우는 그림과 점친 것을 바치고 창로(倉輅) 초구(楚邱) 땅에 집터를 잡게 되자 아침 일찍 행차할 것을 수레 맡은 사람에게 하교하였다.

온 나라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경사(卿士)들이 크게 호응하여 나섰고, 모든 담들을 쌓으니 조상들과 이어지는 것 같았다. 사치한 것을 억누르고 검소한 것을 숭상하는 것은 선대 임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므로 뒤를 잇는 자리에 상서로운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이 오늘에 있게 되었다. 도우려 나서는 사람들은 큰 공로를 앞에 놓고 기뻐하고, 부르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 찾아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위를 향해 끓어올랐다.

성법(成法)을 지켜 모든 경서들을 상고하고, 좋은 터를 열어 계단을 쌓고 평지를 만들 자리를 찾았다. 여섯 개 침실은 서로 연합하여 관청의 사람과 조사(朝士)들이 맡고, 아홉 개 문을 환하게 밀고서 고문(皐門)과 응문(應門)을 세웠다. 봉질(鳳質)·용장(龍章)·목형(穆衡) 등 궁전이 종묘(宗廟)에 우뚝 서고 계명(鷄鳴)·학가(鶴駕)·난성(爛省) 등 건물이 세자궁(世子宮)에 바다처럼 펼쳐졌다.

오랜 선비들은 응당 깊고 엄한 곳에 있어야 하니, 한(漢) 나라에는 비성(祕省)이 있었고, 당(唐) 나라에는 난액(鑾掖)이 있었다. 거리를 단속하는 것은 반드시 맑고 엄숙한 데 바탕을 두어야 하니, 위(衛) 나라에는 경서(更署)가 있었고, 주(周) 나라에는 구진(鉤陳)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옛 제도대로 비교하여 지금의 형편에 맞게 없애기도 하였으며 보충하기도 하였다.

흥례문(興禮門)의 이름을 고친 것은 그 뜻에 특별한 혐의가 있고, 수정전(修政殿)의 이름을 새로 붙인 것은 잘 다스려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곤명(昆明) 못에 갖가지 신기한 돌들을 차려놓고 원영전(元英殿)에 포뢰(蒲牢)와 홍종(洪鍾)을 벌려놓은 것은 바로 백성들이 모두 다 훌륭하게 힘쓴 것이니, 이에서 임금의 대궐이 다시 찬란하고 웅장해졌다.

이미 우리 왕조의 위업을 높여 놓았으니 응당 역대 임금의 정사한 법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후원에서는 밭을 갈아 농사를 중시하여 근본에 힘쓰고, 서쪽 채에서는 늙은이들을 공양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바른말을 요구하라. 학문을 하는 데서는 물음에 응하는 인재와 홍문관(弘文館)의 관리들이 휴대하고 오는 책에 의거하고, 형벌의 선용(善用)은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을 힘쓰는 것이니 보배로운 신하가 죄인의 정상을 살피리로다. 흠유(欽猷)·간의(簡儀)는 상위(象緯)에 대하여 추보(推步)하려는 것이요, 억계(抑戒)·무일(無逸)의 경계하는 글을 써서 한가하고 조용하게 지내는 곳에 걸어 놓을 것이다. 구방(舊邦)일지라도 천명(天命)이 새로우니 바라는 것을 급히 이루려 하지 않고 옛날의 것을 갱신하여 추모하지 않을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선왕의 부지런한 효성을 따라 행하며, 이제부터 시작하여 기업이 길이 아름다워지게 해야 할 것이다. 태실(太室)에 천제(薦祭)하여 삼가 그 구법(舊法)을 따르고, 큰 뜰에서 받들어 올려 공포하라.

대궐문에 상서로운 구름이 모여들 때, 다섯 전하의 난여(鑾輿)가 왕림하니 붉은 섬돌에 환호하는 소리 우레같이 터져 오르고, 1,000명 관리의 패옥과 칼을 찬 소리 그를 따라서 요란하다. 화락한 기운에 경사가 모여드니 어찌 형벌을 쓰지 않는 데 그치겠는가? 40년 동안 큰 은혜를 베풀어 인자한 것을 보이고 대사령(大赦令)을 내려 하루에 500리(里)를 가게 하는 바이다.

이달 16일 날이 새기 이전에 범한 각종 범죄 가운데서 죽을죄를 제외하고 그 이하는 모두 용서하여 주어라.

아! 태평한 때에 훌륭한 경사를 맞이하니 화락한 혜택이 비를 내리게 하는 순한 바람에 타오른다. 천만에 달하는 집들에 차례로 하늘의 운수와 사람의 복이 열리고, 구주(九疇)와 오복(五福)을 끝없이 임금의 백성들에게 주게 될 것이다. 이에 명령하는 것이니 잘 알 줄로 생각한다."

하였다.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신석희(申錫禧)가 지었다.】


  • 【원본】 8책 4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76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과학-천기(天氣)

十六日。 詣景福宮, 御勤政殿, 受賀, 頒赦。

敎文若曰: 一日建萬年基, 宏休篤棐。 十月受長樂賀, 明命誕敷, 大和會四方民, 咸聽予一人誥。 蓋聞聖人達孝, 克紹祖宗永圖。 有侐之宮時修, 實維周公孫、莊公子; 彼岨之天作, 粤自太王荒、文王康。 歷服靈長, 創業垂統爲可繼; 規模弘遠, 受休圖功曷不終? 在今予小子初元, 嗣有先神后令緖, 付國民越厥疆土, 溯王跡而艱難, 勤垣墉惟其旣茨, 眷丕基而怵惕。 昔聖祖作新大邑, 伊宸居有景福宮, 面引慶而背華山, 天地中間正是好。 先宗廟而後居室, 棟宇上下蓋取諸。 禎祥已兆於百年, 必有王者興也, 制度實倣於三代, 無令後世加之。 提擧司管轄莫嚴, 須一體於宮府, 奉化伯箴規斯寓, 標諸額於堂皇。 猗歟, 聖聖之相承! 休玆, 丕丕之竝受! 盛大之業至矣, 累洽重熙; 顧眄之光燁然, 存神過化。 固萬世神明之所佑, 倘一時氣數之有關。 禳玄冥, 祈四墉, 其在中古, 飭白盛, 列九陛, 無復舊時。 太液波澄, 儲胥之風雲猶護, 上林樹老, 靈光之歲月幾多。 久爲邦人之咨嗟, 豈無天運之來復? 自宣廟旋蹕以後, 繕修之功未遑, 追元陵, 陳賀于玆, 陟降之靈如在。 顧丕責乃肯堂構, 卽舊地俾立室家。 寧考常留睿謨, 其承厥志; 太母爰降懿旨, 惟斷乃成。 黃羅翊沖, 之獻圖及卜; 倉輅相宅, 楚邱之夙駕命倌。 詢一邦而卿士大同, 築百堵而妣祖似續。 抑奢崇儉, 有所受於先君, 儲祉發祥, 式克至於今日。 所助者信, 忭丕烈之篤前, 不召自來, 菀群情之向上。 遵成法而考輪經, 拓嘉址而尋墄平。 六寢交聯, 掌司士, 掌朝士, 九閽洞闢, 立皐門, 立應門。 鳳質、龍章, 穆衡, 斗於原廟; 鷄鳴、鶴駕, 爛星, 海於貳儲。 宿儒當處深嚴, 有祕省, 有鑾掖; 禁街必資澄肅, 以更署, 以鉤陳。 斯爲仍舊而比觀, 抑亦因時而損益。 興禮之改門號, 義在別嫌; 修政之彰殿名, 志切願治。 鎭昆明而蚣蝮老石, 陳元英而蒲牢洪鐘, 嘉乃民力之咸勤, 奐焉帝居之復壯。 旣奠我皇祖基業, 當法乎列聖治謨。 後苑敦耕, 重農務本; 西序養老, 合語乞言。 典學, 資顧問之才, 玉署擕卷; 祥刑, 懋好生之德, 寶臣錄囚。 欽猷簡儀, 緬推步於象緯, 抑戒無逸, 宛書揭於燕婣。 雖舊維新匪棘, 欲遹追來孝, 自今伊始, 曰厥基永孚于休。 薦太室而祗率厥常, 揚大庭而誕告用亶。 湊祥雲於紫闥, 光臨五殿之鑾輿, 動歡雷於彤墀, 聲隨千官之劍珮。 流愷悌而叢慶, 奚止刑措不用? 四十年飛渙汗而推慈, 其令赦書日行五百里。 自本月十六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迓景鑠於恒月升日, 煽闓澤於解雨巽風。 萬戶千門次第開天時人事, 九疇五福用敷錫皇極君民。 故玆敎示, 想宜知悉。

【藝文提學申錫禧製】


  • 【원본】 8책 4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76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