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 3권, 고종 3년 10월 7일 임진 2번째기사
1866년 청 동치(同治) 5년
강화도에 모신 어진은 남전의 해당한 실에다 봉안하도록 하다
또 전교하기를,
"강화도(江華島) 한 섬은 두 선대 임금이 슬기로운 계책을 남긴 곳임에도 불구하고 누각과 성이 불행하게 양이(洋夷)의 침입을 받아 어진(御眞)을 이봉(移奉)하는 조치까지 취하게 되었다. 아프고 몹시 슬픈 마음은 어찌 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 장강(長江)과 천연 요새지도 더는 의지할 수 없게 되었으며 또 전우(殿宇)도 불에 타 없어졌으니 도로 제자리에 어진(御眞)을 모셔가는 의식을 매우 신중하게 잘해야 할 것이다.
삼가 국조(國朝)에서 이미 시행한 전례를 따라 장녕전(長寧殿)을 중건하여 이봉할 필요는 없으며 그냥 남전(南殿)의 해당한 실에 봉안(奉安)하라."
하였다.
- 【원본】 7책 3권 7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43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예술-미술(美術)
又敎曰: "沁都一區, 兩聖朝睿算攸在。 而樓櫓城池, 不幸爲洋匪所侵據。 至有御眞移奉之擧, 傷痛震迫。 安所止屆? 今其長江天塹, 有不足恃。 且殿宇亦入灰燼, 則還奉之禮, 極爲審愼。 謹遵國朝已行之例, 長寧殿不必重建, 移奉本仍爲奉安於南殿當室。"
- 【원본】 7책 3권 7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4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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