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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3권, 고종 3년 8월 3일 기축 1번째기사 1866년 청 동치(同治) 5년

척사 윤음을 내리다

척사 윤음(斥邪綸音)에,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앙과 지방의 신하들과 백성들은 모두 나의 말을 들으라.

생각하건대, 우리나라는 훌륭한 임금들이 계승해 내려오면서 유교를 숭상하고 도를 중히 여겨서 예의와 풍속이 찬연히 빛났다. 그리하여 군자들은 어진 사람들의 가르침을 익혔고, 부인들은 지조와 믿음이 있다는 명예를 떨칠 수 있었다. 올바른 도를 점점 익혀 모두가 바른 학문을 밝히고 떳떳한 윤리를 펴 나가 이것으로 기강을 정하고 기준을 세우는 근본으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밝고 융성한 교화는 중국과 견줄 수 있게 되어 마침내 천하에서 가장 문명한 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70, 80년 사이에 이른바 서양학(西洋學)이라는 것이 신해년(1791)에 처음으로 생겨서 신유년(1801)에는 온 나라에 널리 퍼졌으며 많은 백성들이 그에 물들어 가서 더는 바로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정묘(正廟)순묘(純廟) 두 임금 때에 이르러 결연히 용단을 내려 크게 처단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오래 전부터 오염되어 있던 더러운 풍속이 또한 거의 다 혁신되었다.

그런데 음흉하고 지독한 잔당들이 남아 있어 고약하게 악습을 퍼뜨렸던 것이다. 기해년(1839)의 옥사는 대부분이 신유년(1801)의 잔당들로부터 말미암은 것이었으며, 올해 봄에 있었던 변고는 기해년(1839)의 흉악한 무리보다 더욱 참혹한 것이었다.

요사이 포도청(捕盜廳)에 갇혀 있던 여러 죄인들이 스스로 제 죽음을 재촉하였으니, 또 어찌하여 완악하게 그칠 줄을 모르며 전혀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가?

대체로 그들은 패역한 책들을 전해가며 익히고 은밀히 서로 깨우쳐주면서, 딴 나라 무리들을 불러들여 마치 신명(神明)처럼 떠받들었던 것이다.

결탁한 지 오래되어 그들의 속임수는 나날이 널리 퍼졌고, 사람들을 깊이 물들이며 그 도가 한 나라를 바꾸어 놓으리라 생각했다. 요원의 불길처럼 천지에 번져 가는 듯한 화는 기세가 충만하여 당장 눈앞에 닥쳐 있는 듯하다. 무슨 이치에 닿는 것이 있기에 진실을 어지럽히는 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시키고 행동을 어리석게 만들어 이토록 극심한 지경에 이르게 하는가?

그들이 말하기를, ‘천주학(天主學)이라는 것은 하늘을 위주로 하는 학문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하기를, ‘하늘은 스스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하늘이 하늘로 되는 것은 만물이 스스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과 같으며, 만물이 만물로 되는 것은 반드시 그것을 만들어주는 자가 있은 다음에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주는 만물을 만들어 낸 시초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천당을 만든 것은 천주를 잘 섬긴 자들의 영혼에게 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지옥을 만든 것은 천주를 잘 섬기지 않는 자들의 영혼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사람 중에 죄를 지어서 응당 지옥에 들어간 자는 야소(耶蘇)의 앞에서 자기 잘못을 슬프게 뉘우치며, 모두 야소의 어머니에게 기도를 드려 천주에게 전달되도록 하면, 곧 그 사람의 죄는 용서받게 되고 영혼도 천당으로 올라갈 수 있다.’라고 하였다.

아! 천당이나 지옥의 설은 곧 불교의 황당한 설로서 이미 선유(先儒)들에 의하여 여지없이 깨뜨려졌으므로 지금 다시 분변할 여지조차 없다.

그런데 저들이 말하는 하늘을 만들어냈다는 천주란 과연 무슨 물건인가? 《주역(周易)》의 전(傳)에서는 형체를 ‘천(天)’이라고 하였고,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을 ‘상제(上帝)’라고 말하였는데, ‘천’이라 하고 ‘상제’라 하면서 이름을 달리 부르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 산을 영마루라고 하고 수직으로 보는 사람들은 산봉우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천 외에 다시 상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옛날 선비들의 말을 반대로 인용하여, ‘상제에게서 운수를 받고, 하늘은 세상에 명령을 주고 복을 준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문왕(文王)은 위에 있어 하늘에서 명을 받았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하늘에 죄를 지으면 도망칠 곳이 없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교외에 제사를 지내는 예법은 상제를 섬기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하늘을 즐거워하고, 하늘을 두려워하고, 하늘을 섬기는 것은 어느 것이나 다 천주학의 미묘한 법의 뜻이 아닌 것이 없다. 중국의 종교는 천주학을 먼저 내세우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아! 몹시 슬픈 일이다. 우리 유교(儒敎)에서 이른바 하늘이요, 상제라고 말하는 것들이 어찌 저들이 말하는 하늘을 만들어낸 상제이겠는가? 생각하건대 ‘인(仁)’과 ‘의(義)’는 곧 우리 사람들이 지닌 떳떳한 성품인데 배우는 과정에서 서로 차이가 있게 되어, 심지어 묵자(墨子)의 겸애(兼愛)로 자기 아버지까지 무시하는 교리와 양주(楊朱)의 자기만을 위하는 것에다가 임금도 무시하는 교리까지 생겨난 것이다.

양주나 묵자(墨子)의 ‘자기만을 위하라’와 ‘모두 사랑하라’라고 하는 교리가 어찌 일찍부터 아버지를 무시하며 임금을 무시하려는 마음에서 나왔겠는가? 잘못 오인된 화로 말미암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윤리와 도덕을 파괴하는 데 들어서고, 오랑캐나 짐승처럼 되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근심이 있게 된 것이다.

더구나 저들이 말하는 천주교(天主敎)는 본래 하늘과 상제의 이름과 지위가 어떠한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둘로 갈라놓고 겉으로는 하늘을 존중하고 하늘을 공경하는 것을 빙자하고, 속으로는 하늘을 무시하고 하늘을 더럽히는 행동을 감행하면서 원칙에 어긋나고 사리에 어그러지게 행동하였으니, 지혜가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능히 식별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왕왕 그 교리를 깊이 믿으면서 미혹되어 돌아올 줄을 모르니, 이 어찌 총명한 자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때문에 그 근본을 깨뜨려버리고 거듭거듭 말해주면 오히려 혹 놀라고 두렵게 생각하면서 자기의 그릇된 생각을 선뜻 고치는 사람이 있는 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심지어 일반 백성들과 어리석고 우둔한 무리들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니, 하늘과 상제가 어떤 모양과 이름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견진성사(堅振聖事)나 영세(領洗)와 여러 가지 의식을 달게 여기며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며, 정신없이 보루나 어루만지고 있는 군사나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자기의 본성을 잃고도 죽을 때까지 그것을 뉘우치지 않으니, 이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이는 재물과 여색으로 그들을 유혹하고,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말로 어리석게 만들었기 때문이니 또한 가엾을 뿐이다.

자기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는 어린 아이들도 잘 알고 있는데, 살아 있을 때는 봉양하지 않고 죽은 다음에는 제사도 지내주지 않으니, 이는 까마귀나 표범, 수달만도 못한 인간이다. 남녀간의 구별은 부부간을 이루는 첫 시초인데, 한 욕조에서 같이 목욕하거나 한 방안에서 같이 잔다면 이는 개돼지나 짐승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 또한 무슨 마음으로 그러는 것인가?

《상서(尙書)》에 이르기를, ‘착하지 못하고 도리에 어그러지며 공경스럽지 못하고 공손하지 못한 자들은 남김없이 죽여버린다.’라고 하였으니, 간악한 자들을 나라의 법에서 더는 용납할 수 없다.

옛글에 이르기를, ‘가르쳐주지 않고 죽이는 것을 포악한 정사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가르쳐주고 일러주는 것은 나라의 정사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위엄으로 독려하고 복으로 경계하는 것은 모두 선왕(先王)께서 가르쳐주신 원칙으로써, 이는 또한 성인들이 모든 사람들을 다같이 살게 하려는 뜻이다.

아! 선왕(先王)의 길은 대로(大路)와 같이 넓고 평탄하며, 성인의 학문은 해처럼 밝은데 이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는다면 오솔길에 들어서 더듬거리며, 보려 하는데도 보이지 않는다면 캄캄한 거리에 대야를 뒤집어쓰고 나선 것처럼 앞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그물에 걸려들어 함정 속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어 좋은 집에서 다같이 잘 살도록 하려고 하니, 죽은 사람은 애초에 더 논할 나위 없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이야 능히 자기 마음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수천 리 강토 안에서 생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나의 자식이 아닌 사람이 없다. 백성의 부모된 사람으로서 차마 어린 아기가 우물 속에 빠져들어 가는 것을 보고 손을 뻗쳐 건져내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나이 젊은 사람으로서 형벌 대신에 말로써 어리석은 이들을 일깨워 밝은 데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보여 주었으니, 너희 신하들과 백성들은 기꺼이 따르도록 하라.

나쁜 무리들에게 끌려들어 죄의 구렁텅이에 빠졌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자들은 은혜로운 명령을 생각하여 마음을 고칠 것이며,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착한 자들은 서로 훈계하고 서로 잘못을 가르쳐주며 서로 돕고 사랑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익히고 연마하도록 하여,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극진히 하라.

군자들은 책을 읽고 이치를 밝히며 신기한 말들을 찾지 말 것이며, 소인들은 자기의 본분을 지키고 생업에 편안하여 법을 어기는 죄를 짓지 않는다면 어찌 훌륭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에 몹시 개탄하는 바가 있다. 맹자가 말하기를, ‘양주(楊朱)묵적(墨翟)의 도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공자(孔子)의 도가 밝혀질 수 없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나는 이것을 두렵게 여겨 옛 성인들의 도를 보위하며, 양주묵적의 방탕하고 음란한 설들을 막고 몰아낸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불순한 교리가 제멋대로 퍼지고 있는 것은 실로 올바른 학문이 밝혀지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다. 예수교〔耶蘇〕로 인한 화단은 양주묵적의 교리보다도 더 심하니, 성인의 도가 또한 거의 다 소멸되게 될 것이다. 어찌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실로 능히 나를 닦고 남을 다스리는 요점을 강구하여 밝히고, 덕을 밝히고, 백성들을 새롭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여서 이 세상을 바른길로 이끄는 일은 순수하게 오로지 바르게 하는 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사람마다 정자(程子)주자(朱子)의 책을 외고 선비마다 공자(孔子)맹자(孟子)의 교훈에 심복하며, 간사한 무리들과 편당을 짓는 무리들이 의탁할 곳이 없게 하고, 요사스런 말과 난폭한 행동이 일어날 수 없게 한다면, 우리 유교의 도는 밝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밝게 될 것이며, 이단의 학문은 배척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배척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내가 깊은 대궐 안에서 새롭게 분발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것이다.

《상서》에 이르기를, ‘백성들에게 허물이 있는 것은 나 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자신을 돌이켜보고 스스로 반성하면서 마치 자기의 아픔처럼 여겨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번에 속마음을 툭 털어 놓고 타이르는 것은 모두 내가 애통하게 여기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은 내가 은혜스럽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그리하여 이와 같이 길게 타이르는 것이다."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 신석희(申錫禧)가 지었다.】

하였다.


  • 【원본】 7책 3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27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어문학-문학(文學) / 사상-서학(西學)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사상-기타(其他)

    初三日。 斥邪綸音。

    若曰: 咨爾中外臣僚、庶民! 咸聽予一人誥。 惟我國家, 聖神相承, 崇儒重道, 禮俗彬蔚。 君子習仁賢之化, 婦人著貞信之譽, 齊道漸磿, 罔不以明正學、敍彝倫爲修紀立極之本。 故聲明峻茂之敎, 媲侔中華, 遂稱天下文明之國。 不幸七八十年之間, 有所謂西洋學者, 濫觴於辛亥, 滋蔓於辛酉, 民興胥漸, 罔克胥匡。 以至我正廟純廟兩聖朝, 廓揮乾斷, 大行天討, 舊染汚俗, 亦幾乎咸與維新。 而梟獍遺育, 狼貙易種, 己亥之獄, 多由於辛酉餘黨。 今春之變, 尤憯於己亥凶徒。 近日捕廳諸囚之自速典刑, 又何頑不知戢、暋不畏法也? 蓋其傳習悖書, 潛相告諭, 招引異類, 奉若神明。 糾結年久, 誑誘日廣, 浸潤薰染, 思以其道易一國, 燎原滔天之禍, 澟澟乎若在朝夕。 未知有何近理亂眞之說, 蠱惑其心志、繆迷其作爲, 至此極也? 其曰, "天主學者, 非以天爲主之學也。" 故其言曰: "天不能自成。 其爲天, 如萬有之不能自成; 其爲萬有, 必有造之者而後成。 天主爲萬有之初有。" 又曰: "造天堂, 以福事天主者之靈魂; 造地獄, 以苦不事天主者之靈魂。 人有罪應入地獄者, 哀悔於耶蘇之前, 竝祈耶蘇之母, 以轉達於天主, 卽赦其人之罪, 靈魂亦得升於天堂。" 噫! 堂獄之說, 卽佛家不經之說。 而已經先儒勘破, 今無容更辨。 彼所謂造天之天主, 果何物也? 在《易》之傳, 以形體謂之‘天’, 以主宰謂之‘帝’。 曰‘天’曰‘帝’之異其稱者, 譬如橫看、竪看之成嶺、成峯, 而非天外更有帝也。 彼反引儒者之言, 曰"昭受上帝, 天其申命用休。" 曰"文王在上, 於昭于天。" 曰"獲罪于天, 無所逃也。" 曰"郊祀之禮, 所以事上帝。" 曰"樂天、畏天、事天, 莫非天學之微言法意。 中國之敎, 無不先天學者。" 噫嘻甚矣! 吾儒所謂天與帝, 豈彼所謂造天之帝乎? 惟仁與義, 卽吾人秉彝之性。 而學而差者, 至有墨氏之兼愛而無父, 楊氏之爲我而無君。 之爲我、兼愛, 曷嘗有無父、無君之心? 而誤認之禍, 不自知其入於斁倫、敗常, 夷狄而禽獸而有人將相食之憂。 何況彼所謂天主之敎, 本不知天與帝之名位何如, 而分而二之, 陽託尊天、敬天之名, 陰濟慢天、褻天之行, 違經悖理, 不待智者而可卞。 往往有篤信其說, 迷不知返者, 此豈非聰明者之過歟? 予是以劈破原頭, 重言復言, 尙或有澟然驚懼, 幡然改圖者乎? 至若匹庶蚩蠢之類, 目不識丁, 都不曉天與帝之爲何樣名目, 而尙此甘心於堅振領洗等種種作法, 如酲如狂, 如摩壘之兵, 如迷藏之戲, 失其本性, 之死靡悔, 抑又何故也? 此不過財色以誘之, 堂獄以愚之, 吁亦可哀也已。 父母之愛, 童孩之良知, 而生不養而歿不祭, 則曾烏鳥、豺獺之不若也。 男女之別, 夫婦之造端。 而浴同湢而寢同堂, 則與狗彘禽犢之同歸, 亦何心哉? 《書》曰: "不吉不迪, 顚越不恭, 劓殄滅之, 無遺育", 憝戛者, 王法之所不容。 《語》曰: "不敎而殺, 謂之虐", 敎誥者, 王政之所先務也。 董之用威、戒之用休, 卽先王無非敎之義, 亦聖人欲竝生之意也。 嗚呼! 先王之道, 坦若大路; 聖人之學, 煥乎中天。 舍而不由, 曲逕擿埴; 視而不見, 昏衢覆盆。 今欲拯濟於(罟獲陷穽)〔罟擭陷穽〕 之中, 同囿於帡幪廈屋之下。 死者固不足論, 生者訖可以變。 環東土數千里, 戴髮含齒, 圓顱方趾者, 罔非吾赤子耳。 爲民父母, 忍見其匍匐入井, 而不思所以援之以手乎? 肆予沖人, 以口舌代斧鉞, 開示其牖迷向明之路。 惟爾臣僚、庶民, 尙克時欽! 其有沈蠱詿誤, 陷溺而不自知者, 亟懷好音, 革心、革面。 其良善不頗僻者, 胥訓誥、胥敎誨、胥保惠, 群居講磨, 敦行孝悌。 君子讀書明理, 不求新奇之說; 小人守分安業, 毋底刑憲之科, 豈不美哉? 予於是深有所慨歎者。 孟子曰: "之道不息, 孔子之道不著。" 又曰: "吾爲此懼, 閑先聖之道, 距, 放淫辭。" 以此推之, 邪敎之肆行, 實由於正學之不明。 耶蘇之禍, 有甚於, 則聖人之道, 亦幾乎泯矣。 寧不大可懼哉? 苟能講明於修己、治人之要, 用究其明德、新民之效, 導迪斯世, 粹然一出於正, 人誦之書, 士服之訓, 淫朋比德無所依, 邪說暴行無由作, 吾道不期明而自明, 異學不期斥而自斥, 此予所以奮發蹈厲於燕蠖之中者也。 《書》曰: "百姓有過, 在予一人, 反躬自省, 若恫在己。" 今玆敷心之諭, 悉暴予哀痛之意。 凡厥臣庶, 毋遑曰予不惠。 若玆多誥。 【弘文提學申錫禧製】


    • 【원본】 7책 3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27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어문학-문학(文學) / 사상-서학(西學)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사상-기타(其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