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고종실록3권, 고종 3년 7월 15일 신미 3번째기사 1866년 청 동치(同治) 5년

황해 감사 박승휘가 이양선이 송산리 앞바다에 정박하였다고 보고하다

황해 감사(黃海監司) 박승휘(朴承輝)가 올린 장계(狀啓)에, ‘황주 목사(黃州牧使) 정대식(丁大植)이 올린 보고를 보니,「황주목(黃州牧) 삼전방(三田坊) 밖에 있는 송산리(松山里) 앞바다에 이양선(異樣船)이 와서 정박하였습니다. 8일 인시(寅時)쯤에 곧 이양선(異樣船)이 정박하고 있는 곳까지 가서 형리(刑吏)인 이기로(李耆魯)와 영리(營吏)인 신몽신(辛夢辰) 등으로 하여금 우선 지방관이 사정을 묻는 이유를 말하게 하였더니, 와서 만나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의 배 가까운 곳에 우리 배를 정박시켰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쪽 사람들 수십 명(名)이 각기 총칼을 지니고서 뱃머리에 정렬해 선 다음 비로소 배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들 4명은 혹 기대어 앉거나 혹은 배의 고물에 앉은 후에 우리더러 함께 앉자고 하였습니다.

그 후 우리가 글로 써서 어느 나라 사람이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느냐고 물었더니 서면으로 대답하기를, 『우리들은 서양의 세 나라 사람들입니다. 윗자리에 앉은 토마스〔崔蘭軒 : Thomas, Robert Jermain〕호가스〔何噶特〕는 다같이 영국 사람이며, 프레스톤〔普來屯〕은 미국 사람이며, 뻬지〔巴使〕는 덴마크 사람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거의 모두가 움푹 들어간 눈, 높이 솟은 콧마루, 파란 눈, 노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어, 확실히 서양인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라는 사람은 중국말을 잘 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말도 조금 알고 있었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있어서 의사소통은 전적으로 이팔행(李八行)이라는 사람한테 맡겼는데, 배 안의 일에 대해서는 그가 모두 주관하였습니다.

이른바 이팔행(李八行)조반량(趙半良)은 중국인들로서 영국인이 데려다가 자기 막료로 삼은 사람들이었으며 그 나머지 24명(名)은 혹 태국인이거나 광동(廣東) 상해현(上海縣) 사람들로서 길안내를 하거나 품팔이를 하거나 뱃사람 일을 하거나 하였는데, 모두가 종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물으려고 하니, 『우리 배 안의 일과 관계되는 것이지 당신들과는 관계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덴마크의 위치를 물어보니, 『서양에 있으며, 두 나라와의 거리는 1,500리이다. 세 나라 사람들은 다같이 장사를 하고 있으며, 이번 7월 1일 산동(山東)에서 출발하여 백령도(白翎島), 초도곶(椒島串), 석도(席島)를 거쳐 방향을 바꾸어 평양(平壤)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 배가 모양은 전선(戰船) 같지만 실은 통상(通商)을 하려고 한다. 귀국(歸國)의 종이, 쌀, 금(金), 삼(蔘), 초피(貂皮) 등의 물품을 우리들이 가지고 온 양포(洋布), 기명(器皿)들과 바꾸면 서로 해롭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을 것이다. 물품 교환이 일찍 끝나면 곧 평양에서부터 뱃머리를 돌리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면 비록 서울로 가더라도 통상한 뒤에야 돌아가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묻기를, 『이미 평양에 가서 통상을 하겠다고 하였는데 거기에 가면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그에 호응하여 교역을 하는 자가 있는가?』라고 하니,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또 말하기를, 『먼바다에 와서 정박한다면 혹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들은 남의 나라 앞바다에까지 넘어들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본래부터 국법(國法)으로 금지되어 있는 만큼 앞으로 전진해갈 수 없다.』라고 하였더니, 『누가 감히 우리를 막겠는가? 우리는 곧바로 가려고 한다. 만약 서풍을 만나면 바람을 따라 곧 떠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들의 배에 함께 온 사람들이 있는지 여부를 알고 싶다.』고 하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자세히 말해줄 수 없으며, 또한 이는 우리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랏일과 관계되는 문제이다.』라고 하면서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배의 모양과 규격을 보면, 안은 하얗게 칠하고 밖은 검게 칠하였는데 그 위에 옻칠을 하듯이 기름을 발랐으며 위에는 흰 가루가 있었습니다. 사면을 판자로 만든 집이 두 칸 있었는데, 한 곳에는 관인(官人)들이 거주하고 한 곳은 종복들이 거주하였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판옥 벽면에 창문이 있었는데, 모두 유리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두 개의 돛대는 모두 소나무로 만들었는데, 잘 다듬고 그 위에 기름칠을 하였으며, 배의 위에는 백양목의 네모진 깃발을 달아 세웠고, 돛은 흰 색의 올이 굵은 서양 비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좌우의 두 켠에 각각 대포(大砲) 1문씩을 설치하였으며, 하가(下架)와 목륜(木輪) 위에는 철통을 놓았는데 윗부분은 좁고 밑이 넓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시범적으로 쏘아보였는데, 그 소리가 마치 요란한 천둥이 치는 것과 같아서 사람들의 이목을 몹시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 밖에 또한 밤에 순찰할 때에 메는 장총이 3자루 있었는데, 총구멍 끝머리에 1척(尺)쯤 되는 칼이 꽂혀 있었습니다. 조총은 차고 다니는 자그마한 것과 메고 다니는 큼직한 것 등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환도(環刀)는 서양인 4명이 각각 한 자루씩 찼는데, 모두 번쩍번쩍 빛이 났습니다. 방안에는 책과 그림책, 금(琴)과 종(鍾), 고약(膏藥) 등 잡다한 물건들이 펼쳐져 있었는데, 한 번 죽 훑어보아서는 이루 다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종복들이 거처하는 방을 보려고 하자, 예의상 가서 볼 필요가 없다고 하며 막고서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배 밑에는 작은 배를 매어 놓았는데, 우리나라의 작은 고깃배 모양이었으며 푸른색이었습니다. 거기에 실은 물품들은 양목(洋木) 등 무역할 물품들이라고 말하였으나, 배 안은 보지 못하게 하여 물품을 실은 실태와 그 수량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말을 주고받을 때에 갑자기 『청하건대 당신들이 사람을 보내서 우리에게 대미(大米), 우육(牛肉), 닭, 청채(菁菜), 시목(柴木) 등의 물품을 준다면 양포(洋布)로 답례하겠다.』라고 글로 써서 주었습니다. 만약 중국인이나 각 국의 사람들이 표류하다가 우리나라에 다다른 경우라면 으레 객관(客館)에 데려다 양식을 제공하겠지만 서양인들이 함부로 우리나라 앞바다에까지 넘어들어온 것은 뜻밖의 일이라 또한 아랫사람으로서 마음대로 처리하기에 곤란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이처럼 외진 마을에서 갑자기 그런 물품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고 또 순풍을 기다려서 곧장 출발한다는 것은 더욱 시행하기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토마스는 성안 얼굴빛을 드러내어 『집어 치우시오. 집어 치우시오. 당신들이 만약 주려는 생각만 있다면, 우리 배가 비록 간다고 해도 또한 당신네 나라 땅 가까운 곳이며 강을 따라 가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니 어찌 이곳이냐 저곳이냐에 구애를 받겠는가?』라고 하면서 문정(問情)을 하던 종잇장을 가져다가 접어 품속에 넣고는 이어 떠나가자고 재촉하였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떠나는 배에서 곧 마련해 보내겠다고 대답하였더니, 화를 풀고 기뻐하면서 문정(問情)을 하던 종잇장을 꺼내주고는 다시 『물품을 보내주면 틀림없이 답례하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꼭 답례할 것까지는 없다고 말하고, 대미 1석, 우육 30근, 계자 60알, 청채 20묶음, 시목 20단을 헤아려서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배가 떠나기 전에 앞질러 돌아오기 어렵겠다 싶어 나루터 근처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들의 동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서양인들의 이름, 연령, 거주지, 옷차림과 배의 크기, 여러 가지 기계들과 물건들에 대하여 다 적어서 문서로 만들어 올려 보냅니다.

그런데 배에 올라 문정할 때에는 많은 시간을 지체하여 글로 써서 보고하는 것이 날짜를 경과하게 되었으니 황송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부쳐온 신의 감영의 우후(虞候) 신영한(申永翰)이 보고한 것과 역학(譯學) 이용숙(李容肅)이 보내온 수본(手本)의 내용과 황주 목사(黃州牧使)의 보고는 한 마디도 틀림없이 똑같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황주 목사 정대식(丁大植)이 9일 신시(申時)에 올린 첩보(牒報)의 내용 중 「문정의 경위는 방금 이미 첩보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이 요청한 쌀과 고기 등의 물품은 마련할 때에 약간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날 신시에 그들의 배가 평양으로 떠나갔습니다. 가는 뱃길에 일부러 수리(首吏)로 하여금 쌀과 고기 등 물품을 배에 싣고 그들이 정박해있는 곳까지 따라가게 하고 그들에게 물품을 제공하는 뜻을 신칙하여 보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동정을 탐지하고 살피려는 의도 때문이라 하더라도 고을에서 멋대로 처리하는 하는 것은 매우 타당치 못하다고 봅니다.

대체로 해당 황주목으로 말하면, 본래 해변에 있는 고을이 아닌데다 갑자기 보기 드문 일에 맞닥뜨리니 생소해서 일을 잘못 처리한 것은 혹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의 배가 이미 평안도(平安道) 지방을 향해갔다고 하니 필경 돌아올 때에는 황주 등 고을을 거쳐서 올 것입니다. 때문에 바다와 인접한 각 고을은 감시하고 방어하는 일을 각별히 거행하라는 내용으로 공문을 띄워 엄히 신칙하였습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의 이름과 연령, 용모, 복장, 거주지와 배의 크기, 여러 가지 기계들과 잡다한 물품들에 대해서는 해당 병사(兵使)가 보고한 데 따라 아래에 적어서 함께 치계(馳啓)를 올립니다.’라고 하였다.

토마스는 나이가 36살, 키는 7척(尺) 5촌(寸), 얼굴빛은 검붉고, 머리칼은 노란 곱슬머리이고, 수염은 검다. 옷차림은 회색 모자를 썼고, 검은 색과 흰 색의 반점이 있는 융으로 만든 저고리를 입었으며, 검은 색 가죽 신발(木靴)를 신었다. 허리에 혁대와 자그마한 서양식 총과 환도를 찼다. 그는 문직(文職)의 4품 관리로서 영국인이었다.

호가스는 나이가 37살, 키는 7척, 얼굴빛은 검붉으며, 머리칼은 노랗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났다. 옷차림은 흰 서양 천으로 감싼 모자를 썼으며, 누런색의 견사(繭絲)로 만든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으며, 맨발에 등(藤) 줄기로 만든 신을 신었다. 혁대에 자그마한 서양식 총과 환도를 찼다. 그는 무직(武職)의 1품 관리로서 영국인이었다.

프레스톤은 나이가 48살, 키는 7척 5촌, 얼굴빛은 검붉으며, 머리칼은 노란 곱슬머리였으며, 흰 수염이 길게 났다. 옷차림은 검은색의 모자를 썼고, 흰 빛의 서양 무명으로 만든 저고리를 입었으며, 누런색의 견사로 만든 홑바지를 입고, 색실로 섞어 짜서 만든 신을 신었다. 혁대에는 자그마한 서양식 총과 환도를 찼다. 그는 무직(武職)의 1품 관리로 미국 사람이었다.

뻬지는 나이가 45살, 키는 7척 5촌, 얼굴빛은 검불고, 수염과 머리칼은 노란 곱슬이었다. 옷차림은 검은색 비단으로 감싼 모자를 쓰고, 자주색 융으로 만든 저고리와 흰 무명으로 만든 홑바지를 입었다. 검은색 가죽신을 신고, 혁대에는 자그마한 서양식 총과 환도를 찼다. 그는 덴마크 사람이었다.

이팔행(李八行)의 나이는 30살이었고, 조반량(趙半良)의 나이는 28살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키가 7척이었고, 얼굴빛은 검붉고, 머리는 땋아 올렸고, 수염은 없었다. 옷차림은 흰 무명으로 만든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고, 검푸른 색의 삼승포(三升布)로 만든 신을 신었는데, 그들은 다같이 청나라 사람이었다.

24명의 이름과 나이에 대하여 물어보니 토마스가 하인으로 범칭하면서 자세히 묻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에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얼굴 생김새와 옷차림, 머리칼과 수염은 모두 청나라 사람과 같은 모양이었다.

배의 모양은 길이가 18장(丈), 넓이가 5장, 높이가 3장이었고, 돛대가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높이가 15장, 하나는 높이가 13장이었으며, 굵기는 세 아름 정도 되었다. 두 개의 큰 돛은 흰색이었으며, 돛대의 밧줄에는 또 작은 돛 두 개를 얽어매었는데 역시 흰색이었고, 숙마(熟麻) 줄을 돛대와 돛 좌우에 각각 12줄씩 늘어뜨려 놓았다. 나머지 배에서 사용하는 잡다한 물건들에 대해서 모두 물어봤으나 저들이 글로 써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할 수 없었다. 잡다한 물품들과 기계들, 각 사람들의 소지품 외에도 배 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이 많았으나 보여주지도 않았고 또 자세히 대답해 주지도 않았으므로 그 수량을 맞추어 보기는 어려웠다. 큰 배에 딸려 있는 작은 배는 길이가 3파(把), 넓이는 2파였으며 푸른 색으로 칠하였는데, 돛대와 돛은 없었다.


  • 【원본】 7책 3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24면
  • 【분류】
    외교-영국(英) / 외교-미국(美) / 교통-수운(水運) / 사법-치안(治安) / 의생활-상복(常服) / 군사-군기(軍器) / 외교-청(淸) / 어문학-어학(語學)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구미(歐美)

    黃海監司朴承輝狀啓, 以爲: "卽接黃州牧使丁大植所報則‘黃州牧 三田坊松山里前洋, 異樣船來泊矣。 初八日寅時量, 卽到異樣船所泊處, 使刑吏李耆魯、營吏辛夢辰等先通地方官問情之由, 則答以來見云, 故舟泊於彼船近處。 彼人數十名, 各持銃刀, 排立船頭, 始許登船。 彼四人, 或倚坐或坐梢頭, 仍請同坐後。 書問「何國人? 緣何到此?」 則書答「我等乃是西洋三國之人, 而上座崔蘭軒何噶特, 竝居英吉利, 普來屯美利堅, 巴使但國」云。 擧皆深目高鼻, 碧眼黃髮, 的是西洋人無疑, 而崔蘭軒一人, 非但善爲語, 稍解我國言, 或可辨或不可辨。 至於擧談, 盡委於李八行。 然船中事, 渠皆主張。 所謂李八行趙半良, 係是中國人, 被聘爲幕客。 其餘二十四人, 或暹羅廣東 上海縣人, 爲鄕導、爲雇傭、爲水手, 均是從人云。 而欲問其姓名, 則係我舟中之事, 無關君等。 問但國所在, 則答「在西洋, 距兩國一千五百里, 而三國人同爲行商。 今七月初一日, 自山東離發, 歷白翎椒島串席島, 轉向平壤。 而我舟貌似兵船, 實欲通商貴地。 紙、米、金、蔘、貂皮等物, 換我洋布、器皿, 別無相害之心。 換貨早畢, 直自平壤回舟, 不然, 雖往王京, 通商後歸」云。 故問「旣云往平壤通商, 則有我國人相應交易者乎?」 答「沒有。」 又以「來泊外洋, 容或無怪, 而越入內洋, 我國原有邦禁, 不可前進爲言。」 則答「誰敢攔我, 一直要往, 若値西風, 隨卽發往。」 問儞船有同來與否, 則答「此事, 我等不能細述, 亦非我事, 乃國事耳。」 更無所答。 船制, 則內塗灰外塗墨, 加油如漆, 上有白粉。 四方板屋兩處, 一住官人, 一住從人, 而面面窓孔皆嵌玻瓈。 兩桅俱是松木, 精治塗油。 上竪白洋木方旗, 帆葉以白色洋大綾爲之。 兩傍各設大砲一坐, 下架木輪上安鐵筩, 而上狹下廣。 三次示放, 聲若轟雷, 驚人耳目。 又有巡更長銃三柄, 穴端揷鎗, 刃可一尺許。 鳥銃, 則小佩大掛, 難以枚數。 環刀, 則西洋四人, 各持一柄, 擧皆明晃閃爍。 屋內書冊、畫張、琴、鍾、膏藥等雜貨, 歷觀一遍, 無以盡記。 欲見從人所居, 則謂以禮不必往觀, 防遮不見。 下繫小艇, 如我國小漁舟樣, 其色碧。 裝載, 則云有洋木等通商之貨。 而船底, 則不使之見, 未能明知積置虛實數爻。 而酬酢之際, 忽地書示「請君遣价, 賜我大米、牛肉、鷄子、蔬菜、柴木等物, 以洋布答謝」云云。 而若値中國人與各國人漂到者, 則例致館廩, 而洋人之越入內洋, 事出意外, 且有難自下擅便, 故答「以此等僻村, 猝難辦備, 且候風直發, 尤難施行」云。 則崔蘭軒顯加辭色曰: 「撒謊! 撒謊! 諸君如有欲賜之意, 我舟雖行, 亦近君地, 沿江而走, 亦非難事, 何拘此地彼地乎?」 自撕問情紙, 摺入懷中, 連加催行。 故不得已, 以行船在卽, 歸當備送爲答, 則回嗔作喜, 出給問情紙, 更說「送必答謝」云。 故以「不必答謝」爲言。 大米一石、牛肉三十斤、鷄子六十箇、菁菜二十束、柴木二十丹, 入給計料。 而彼船離發之前, 有難徑歸, 姑留津頭近處, 以觀動靜。 而同洋人姓名、年歲、居住、服著及船隻長廣器械什物, 竝修成冊上送矣。 登船問情之際, 自多遲滯, 以致修報之經日, 不勝惶悚。’ 而一時到付, 臣營虞候申永翰所報及譯學李容肅手本內辭緣, 與牧使所報, 一辭同然。 而鱗次黃州牧吏丁大植, 初九日申時牒報內, ‘問情之由, 纔已牒報。 彼人所請米肉等物, 辦備之際, 少爲遲滯矣。 當日申時, 彼船發向平壤所去水路。 故使首吏, 米肉等物, 載船隨往於止泊處給之之意, 飭送。’ 雖緣伺察動靜之意, 自邑擅便, 極涉未安。 而大扺該牧, 本非沿海之邑也, 猝當罕見之事, 生疎做錯, 容或無怪。 而彼船旣云發向平安道地方, 則畢竟回路, 由黃州等地, 故沿海各邑瞭望防守之節, 各別擧行之意, 發關嚴飭。 而彼人姓名、年歲、容貌、服著、居住及船隻長廣器械什物, 一依該兵使所報, 開錄于後, 竝以馳啓崔蘭軒: ‘年三十六, 長七尺五寸, 面鐵, 頭髮黃, 圈鬚黑。 服色則灰色, 氈帽黑白斑絨, 單衫黑皮靴子。 腰有革帶, 佩小洋銃及環刀。 文職四品, 英吉利人也。’ 何噶特: ‘年三十七, 長七尺, 面鐵髮黃, 鬚鬙鬑。 服色則白, 洋布裹帽, 黃繭單衫袴, 跣足藤鞋。 革帶佩小洋銃及環刀。 武職一品, 英吉利人也。’ 普來屯: ‘年四十八, 長七尺五寸, 面鐵髮黃, 圈鬚白髧。 服色則黑, 氈帽白洋木單衫, 黃繭單袴, 色絲交織鞋。 革帶佩小洋銃及環刀。 武職一品, 美利堅人也。’ 巴使: ‘年四十五, 長七尺五寸, 面鐵鬚髮黃圈。 服色則黑, 緞裏帽紫絨單衫, 白木單袴, 黑皮鞋革帶, 佩小洋銃時表及環刀。 但國人也。’ 李八行, 年三十, 趙半良, 年二十八, 皆長七尺, 面鐵、髮辮、鬚無。 服色則白木單衫袴, 鴉靑三升鞋, 竝大淸人也。 二十四人姓名年記問之, 則崔蘭軒泛稱下人, 不容詳問, 未能的知, 而容貌、服色、頭鬚, 均是大淸人樣也。 船樣: ‘長十八丈, 廣五丈, 高三丈。 兩桅, 一個高十五丈, 一個高十三丈, 大三圍。 二大帆色白, 桅繩又係二小帆, 亦色白。 熟麻乼, 桅帆左右各十二條。 其餘船用雜物, 一體問情, 彼不錄示, 故未得詳錄。 而什物器械各人所持外, 藏在船底者居多, 不使開見, 又不詳答, 實難照數。 而從船, 長三把, 廣二把, 綠漆, 無桅帆’云云。"


    • 【원본】 7책 3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24면
    • 【분류】
      외교-영국(英) / 외교-미국(美) / 교통-수운(水運) / 사법-치안(治安) / 의생활-상복(常服) / 군사-군기(軍器) / 외교-청(淸) / 어문학-어학(語學)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구미(歐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