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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권, 고종 3년 4월 4일 임진 1번째기사 1866년 청 동치(同治) 5년

대왕대비, 왕대비, 대비에게 옥책문과 인장을 올리고 대사령을 반포하다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 왕대비전(王大妃殿), 대비전(大妃殿)의 책보(冊寶)를 직접 올리고 이어 진하(陳賀)를 받고 사령(赦令)을 반포하였다. 교문(敎文)에,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정사를 펼침으로써 온 나라에 어질고 효성스러운 행실을 장려하게 되었으며, 존호를 추상(追上)하거나 가상(加上)하는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삼실(三室) 삼전(三殿)의 아름다운 공을 드러내게 되었다. 옥첩에 아로새기고 종묘에서 음악을 올려 칭송하고 역사서에 써서 노래부르게 하였다. 당요(唐堯)우순(虞舜)의 정사는 말로 이루 다 형용할 수 없건만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방훈(放勳)’이니 ‘중화(重華)’니 하는 칭호로써 표시하고 태임(太任)태사(太姒)의 덕행에 대해서는 시인(詩人)이 사제장(思齊章)에서 사휘(嗣徽)라고 지칭하여 찬미하였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익종 체원 찬화 석극 정명 성헌 영철 예성 연경 돈문 현무 인의 효명 대왕(翼宗體元贊化錫極定命聖憲英哲睿誠淵敬敦文顯武仁懿孝明大王)의 금옥처럼 빛나는 덕은 또한 하늘에 해처럼 뚜렷하다. 태어나면서부터 훌륭한 덕을 지녔고 총명하고 슬기로움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큰 계책을 실시하니 예악(禮樂)과 문물(文物)을 빛나게 계승하였다. 하루에 세 차례씩 아버지에게 문안을 간 것은 문왕(文王)왕계(王季)에게 한 것과 같았고 오랫동안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푼 것은 하우(夏禹)의 대를 이은 계(啓)와 다름없었다.

아! 모든 경서(經書)에서 익힌 도리로써 부군(父君)을 대신하여 정사를 보살피었다. 성인의 훈계에 따라 ‘혼자 조용히 있을 때에 삼가라’고 한 말을 명심하였고 사치스러운 것은 모두 물리치면서 더욱더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간직하였다. 스스로 자신을 경계하기 위하여 ‘근본에 힘쓰라’는 편액을 걸어놓고 〖화공(畵工)에게〗 밭을 갈고 길쌈하는 그림을 그리게 하여009) 항상 백성들의 고난을 생각하였다.

구작(九爵)을 올리고 완염(琬琰)이 높이 드러나니 효성스러운 마음은 무자(戊子), 기축(己丑)에 매우 빛났고, 사당에 제물을 받들어 생황과 경쇠를 울리면서 봄가을의 제례(祭禮)를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은혜로운 덕화는 백성들에게 두루 미쳤으니, 아! 그 도야말로 지극히 착하여 큰 명(命)을 열어주고 도와준 은혜를 잊을 수 없다. 우리 후손이 이전의 영왕(寧王)의 업적을 계승하여 복을 누리고 있다.

우리 효유 헌성 선경 정인 자혜 홍덕 순화 대왕대비 전하(孝裕獻聖宣敬正仁慈惠弘德純化大王大妃殿下)는 훌륭한 따님으로 성인(聖人)의 배필이 되었고, 어진 마음을 지니고 어진 정사를 베풀었으며, 큰 계책을 결단하여 사직(社稷)에 큰 공적을 쌓았다.

우리 순원 왕후(純元王后)는 큰 계책을 이어받아 훌륭한 법을 실시하여 백성들에게 혜택을 입혔으며, 옛날의 선인 왕후(宣仁王后)의 어진 규범을 따라 임금을 도운 것이 깊고 이룩한 것이 원대하였다. 50년 동안의 거룩한 공적은 이루 다 쓸 수 없는데, 부유하면서도 검박하였고 존귀하면서도 부지런하였으니 옛 중국의 삼대(三代)의 현비(賢妃)도 이보다 더 어진 이는 없었다.

4년 동안 수렴청정(垂簾聽政)하면서 실낱같이 위태롭던 나라를 태산이나 반석과 같이 튼튼히 다져놓았다. 이단을 물리치고 바른 학문을 보위하였으며 탐오한 행위를 징계하고 청렴한 품행을 장려하였다. 모든 관리들에게 제 직책을 잘 수행하도록 타일러 주었고 법과 기강을 세워 풍속을 바르게 이끌었으며, 재물이 넉넉할수록 비용을 절약하도록 하였고 앞으로 많은 공적을 이룩할 수 있도록 힘써 고무하여 주었다. 하늘같이 높은 어머님의 은혜를 우러르기 위해 자주 행차하였고 봄볕같이 따사로운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즐거운 얼굴색으로 잘 봉양하였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헌종 체건 계극 중정 광대 경문 위무 명인 철효 대왕(憲宗體健繼極中正光大經文緯武明仁哲孝大王)은 대를 이어 나라를 거듭 빛내고 덕화가 흡족하게 미치게 한 왕업을 이어받아, 안으로는 성인이 되기 위한 마음의 수양을 다하고 밖으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서 왕도를 극진히 하였다. 성정(誠正)을 근본으로 삼았고 공리(功利)는 말단(末端)으로 여기면서 경서(經書)를 탐독하였고, 내시(內侍)나 궁인(宮人)들을 가까이 하는 때는 적었으며 어진 선비들을 대하는 자리가 많아서 은(殷) 주(周) 때의 제도를 강론하였다.

뒤이어《국조보감(國朝寶鑑)》 3편을 속간(續刊)하니 넓고 큰 책략이 드러났고 좋은 묘지를 선택하여 선친의 능을 옮김으로써 아름다운 기운이 성대하게 어리도록 하였다. 위엄을 떨칠 때에는 우레가 치는 듯하였지만 너그러운 덕을 나타낼 때에는 해와 달이 비치는 것 같았다.

옥책(玉冊)과 옥배(玉杯)를 대비(大妃)께 바치면서 오래오래 장수하기를 축원하고 감실(龕室)에 수놓은 비단 휘장 안에서 생시의 의관을 우러러보았다. 이슬이나 서리가 떨어지는 곳과 배와 수레가 통하는 곳 그 어디를 막론하고 은혜를 입고 감격해하지 않는 곳이 없었으니, 역사서에 쓰고 쇠와 돌에 새긴들 그것으로써 어찌 그 빛나는 공적을 다 드러낼 수 있으랴.

단성 경혜 정순 효현 왕후(端聖敬惠靖順孝顯王后)는 혁혁한 충신의 집안에서 태어나 곧고 얌전한 성품을 지녔으니 훌륭한 분의 배필이 될 만 하였다. 거처하는 방에 상서로운 기운이 뻗침은 왕비가 될 징조를 일찍부터 보인 것이고, 어린 나이에 벌써 착한 성질이 화기롭게 나타났으니 움트는 싹이 은혜를 입었다. 닭이 홰를 치면 남보다 먼저 일어나서 정복 차림을 갖추어 입은 일은 궁인(宮人)들에게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으며 대단히 검박하게 의복을 입은 일도 궁중의 기록에 실려 있다.

생각하건대, 우리 명헌 숙경 예인 정목 홍성 왕대비 전하(明憲淑敬睿仁正穆弘聖王大妃殿下)는 왕비의 에 부합되는 인품을 타고난 분이다. 대대로 나라를 위하고 충성스런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안부인들이 갖추어야 할 예절을 다 갖추었으며 왕실 안의 여러 빈(嬪)들이 다 예교(禮敎)에 복종하였다. 온화한 교화가 멀리까지 미치게 되었다. 외가에는 사사로이 은혜를 베풀지 않았으니 이는 후한(後漢)시대의 일을 경계한 것이요, 은밀히 임금을 도와준 공적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 이에 대해서는 여러 책문에 나타나 있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철종 희륜 정극 수덕 순성 문현 무성 헌인 영효 대왕(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은 신비로운 자질을 갖춰 삼종(三宗)의 왕통을 훌륭하게 계승하였다. 일찍부터 으뜸가는 성인의 품행을 갖춤으로써 옛적의 이름난 임금들처럼 고명하였는데 초년(初年)에는 험난하고 시련도 겪었다. 은 나라의 고종(高宗)이 황하(黃河)나 박(亳)의 옛 땅으로 다니면서 수고한 덕에 은 나라가 태평하였고, 한 나라의 선제(宣帝)는 오랫동안 북호(北鄠)의 민간에 있었기 때문에 전한(前漢)이 흥성해졌다. 4조항으로 된 교훈과 부모의 뜻을 순종하는 정성에서 인자함과 효도함을 인륜의 가장 지극한 것으로 여겼으며, 하루 세 번 강론하는 규정과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도록 하려는 생각을 정사의 가장 선차적인 일로 내세웠다. 왕실의 계보를 지극히 밝힌 것은 선조(宣祖)영조(英祖)의 뜻을 계승한 것이며, 종묘의 제도를 거듭 보충함으로써 순종(純宗)과 헌종(憲宗)의 공덕을 영원히 밝혔다.

15년 간 사람들에게 미친 은혜는 매우 깊어서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많은 혜택을 두루 입었으며, 만백성들이 높이 추대하려는 소원은 하늘에 뜬 구름처럼 여겼다.

생각하건대, 우리 명순 휘성 대비(明純徽聖大妃) 전하의 어질고 자애로움은 타고난 것으로 정숙하고도 명철하다는 아름다운 소문이 자자하였다. 충효와 절의가 그 집안 대대로 드러났으며, 왕비의 덕은 도산씨(塗山氏)태사(太姒)에 비길 만하였다. 경서들과 역사책에서 배운 법도를 그대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소행은 마황후(馬皇后)010)등황후(鄧皇后)011) 에 비길 만하였으며 그 은택이 칡넝쿨마냥 널리 미쳤다. 대궐 안 사람들을 잘 다스려서 그 덕화가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으며, 왕비의 도리를 다하고 훌륭하게 보좌하여 나라를 흥성하게 하는 복의 기반을 만들었다.

다행히 왕모(王母)에 대한 떳떳한 의식을 거행하여 올리게 되었으니, 마땅히 성대한 의식을 다같이 차려 세 대비전의 뛰어난 덕을 높이 칭송함으로써 종묘 사직(宗廟社稷)에 대왕대비들의 크나큰 복이 영원히 전해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뭇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대왕대비들을 칭송하는 글을 추모하여 지어올리고 문화와 제도를 상고하여 더 높이는 규례를 적용한다. 규벽(奎璧)을 모방하여 글을 써서 크게 나타내고 훌륭히 계승하며, 형황(珩璜)에 맞게 찬양하였으니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착하도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크나큰 보살핌을 받으면서 입은 혜택이 더없이 많으니 어찌 감히 조금이나마 그 은혜에 보답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주면(珠冕)으로 가례(嘉禮)의 의식을 거행하였으며 좋은 때를 만나서 종묘 사직의 왕업을 잇고, 아름다운 복을 한껏 받게 되었다.

이어 올해 4월 3일에 익종 대왕(翼宗大王)에게는 ‘융덕 순공 독휴 홍경(隆德純功篤休弘慶)’, 헌종 대왕(憲宗大王)에게는 ‘지성 광덕 홍운 장화(至聖廣德弘運章化)’, 효현 왕후(孝顯王后)에게는 ‘수원(粹元)’, 철종 대왕(哲宗大王)에게는 ‘흠명 광도 돈원 창화(欽命光道敦元彰化)’라는 존호를 올렸다.

그리고 4일에는 대왕대비전에 ‘문광(文光)’이라는 존호를, 왕대비전에게는 ‘장순(章純)’이라는 존호를, 대비전에 ‘정원(正元)’이라는 존호를 더 올렸다. 덕을 높이 드러내는 존호를 올림으로써 지난날의 공적을 빛내고 후손에게 드러내니 문물제도가 찬연히 빛을 발하였다. 지난날의 일들을 그리며 슬퍼하고 오늘날의 경사를 맞이하여 기뻐하노라. 그리하여 이번에 교서(敎書)를 널리 반포하니 온 나라의 모든 백성들은 이제부터 함께 영원히 태평 시대를 누리며 즐겁게 지낼 것이다. 사령(赦令)을 반포하는 교문을 내린 날부터 모든 죄인들은 다같이 용서받으며 온 나라 삼천리에 따사로운 혜택이 널리 미치게 될 것이다.

이달 4일 날 새벽 이전에 잡힌 잡범으로서 사형죄 이하는 모두 용서해 주도록 하라. 아! 우리나라를 더욱 번창하고 융성하도록 보하는 것은 왕위에 오른 초기에 훌륭한 인재를 맞이하는데 달려 있다. 날로 새로워지는 덕과 융성한 왕업의 훌륭한 운수가 바야흐로 돌아오고 있으며 여러 가지 복을 내려주는 물(物)이 상서로운 일들을 초래할 징조가 화기(和氣) 속에서 서로 호응하고 있다. 이에 교시(敎示)하니 마땅히 자세히 알지어다."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정기세(鄭基世)가 지었다.】

하였다.


  • 【원본】 7책 3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16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역사-고사(故事) / 어문학-문학(文學) / 왕실-국왕(國王)

  • [註 009]
    밭을 갈고 길쌈하는 그림을 그리게 하여 : 익종(翼宗)이 화공(畵工)을 시켜 밭을 경작하고 길쌈하는 것을 병풍에다 그리도록 하여 농사짓는 일이 어렵다는 뜻을 마음에 두었다는 것을 말함. 순조 30년 7월 15일의 시책문 및 지문.
  • [註 010]
    마황후(馬皇后) : 후한(後漢) 시대 마원(馬援)의 딸로, 명제(明帝)의 후비(后妃)가 되었음. 부덕(婦德)이 높아 사가(私家)의 일로써 조정에 관여하지 않았음.
  • [註 011]
    등황후(鄧皇后) : 화제(和帝)의 황후.

初四日。 御仁政殿, 親上大王大妃殿、王大妃殿、大妃殿冊寶, 仍受賀, 頒赦。

敎文若曰: 敷建極錫極之治, 興仁孝於一國一家, 擧追上加上之儀, 闡徽烈於三室三殿。 雕牒象朱絃之倡歎, 鏤簡編彤管之詠歌。 帝堯帝舜之無能名, 而史氏紀放勳重華之號; 太任大姒之維德行, 而詩人贊思齊嗣徽之稱。 恭惟翼宗體元贊化錫極定命聖憲英哲睿誠淵敬敦文顯武仁懿孝明大王, 金玉其章, 天日之表。 生而有聖德, 聰明睿知足以臨。 施之爲洪猷, 禮樂文物煥可述。 日三問御者, 朝王季姬文; 澤久施下民, 繼大禹 。 猗歟! 九經之傳心法, 迺有萬幾之任憂勤。 聖訓佩愼獨之銘, 屛棼華而益加恐懼戒謹; 自警揭務本之扁, 繪耕織而常念疾苦艱難。 進九爵而琬琰賁隆, 孝思冞光於戊己; 奉峨璋而笙磬咸協, 享儀匪懈於春秋。 惠化浹洽民心, 於戲! 道至善, 不能忘景命啓佑。 我後其于前寧王攸受休。 粤我孝裕獻聖宣敬正仁慈惠弘德純化大王大妃殿下, 聖女而配聖人, 仁心而行仁政, 決丕策而功存社稷。 嗣我純元母宏謨, 布良法而澤被生民, 邁古宣仁后哲範, 助之深成之遠。 五紀懿烈之不勝書, 富而儉, 貴而勤, 三代賢妃之未有盛。 四載御簾惟而抗裘冕, 宗國回綴旒而奠泰磐。 厥惟闢異衛正懲貪奬廉, 飭諭我凡百有位。 若夫立綱導俗裕財節用, 勉勵以將多前功。 慈天彌高, 鑾司之新命光大; 春暉正永, 長樂之隆養怡愉。 恭惟憲宗體健繼極中正光大經文緯武明仁哲孝大王, 拊重熙累洽之基, 統內聖外王之道。 以誠正爲本, 功利爲末, 玩賾河洛之圖書。 親宦妾時少, 賢士時多, 講論之冕輅。 續三編於《寶鑑》, 洋洋聖謨; 遷先寢於珠岡, 蔥蔥佳氣, 威斷若風雷之振厲, 光顯如日月之照臨。 玉冊瑤觴, 東朝獻岡陵之祝; 繡龕寶㡠, 兩室奉衣冠之遊。 凡霜露所墜, 舟車所通, 莫不含恩而戴渥。 雖竹帛之載, 金石之被, 曷以摛輝而摸光? 亦粤端聖敬惠靖順孝顯王后, 貞靜君子之逑, 顯奕忠臣之閥。 蟠瑞彩於居室, 曾沙叶徵; 藹仁端於沖齡, 萌芽沾惠。 鷄籌聽鳴珮之響, 宮媛尙傳; 繭館進練綈之衣, 女史攸載。 惟我明憲淑敬睿仁正穆弘聖王大妃殿下, 稟合坤順, 性由天成。 家世之克篤忠貞, 嘉則夙就, 嬪御之咸服禮敎。 柔化遠覃, 恩澤不到外家。 流水游龍之存戒, 陰功必有顯報, 泥金檢玳之屢膺。 恭惟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 洪緖祇承三宗, 神姿夙稟上聖。 若古王高明廣大之業, 或初年險阻艱屯之餘。 高宗河亳舊外之榮而有底于嘉靖; 宣帝北鄠民間之久而前漢所以興隆。 四條之訓, 順志之誠, 慈孝爲人倫之至; 三講之規, 安民之念, 修治乃王政之先。 璿牒克昭, 宣祖英宗之志事是述; 廟制彌重, 純考憲室之功德永彰。 十五載入人者深, 方庶物之霑時雨, 億兆民戴己之願, 遽太虛之過浮雲。 惟我明純徽聖大妃殿下, 仁愛本於生知, 淑哲著于令聞。 忠孝節義之世顯, 毓祥; 詩禮圖史之躬行, 媲美。 恩逮樛葛, 內治宣及遠之風; 警獻珥簪, 良佐基興邦之祚。 幸慈衷勉膺彝典, 宜縟禮竝擧丕稱, 三后之世德作求, 垂佑宗祏, 王母之介福玆受。 齊祝宮闈, 雅頌著追述之文, 典章稽加隆之制。 像圭璧而載筆, 丕顯哉丕承哉; 協珩璜而颺言, 盡美矣盡善矣! 顧藐躬誕受洪庇, 而隆恩, 敢云少酬? 珠冕行舟梁之儀, 正値嘉會; 龍旂承宗宮之事, 聿受純禧。 乃於本年四月初三日, 追上翼宗大王尊號曰‘隆德純功篤休弘慶’, 憲宗大王尊號曰‘至聖廣德弘運章化’, 孝顯王后尊號曰‘粹元’, 哲宗大王尊號曰‘欽命光道敦元彰化’。 仍於初四日, 加上大王大妃殿尊號曰‘文光’, 王大妃殿尊號曰‘章純’, 大妃殿尊號曰‘正元’。 巍乎顯章, 光前裕後, 燦然物采, 愴昔欣今。 播告用脩, 咨爾八方有衆, 自今伊始, 同我萬世太平。 金鷄唱竿, 赦書日行程五百; 丹鳳銜綍, 沛澤春環城三千。 自本月初四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保東方俾熾俾昌, 在初服命哲命吉。 日新之德, 富有之業, 熙運方回; 諸福之物, 可致之祥, 和氣相應。 故玆敎示, 想宜知悉。

【藝文提學鄭基世製】


  • 【원본】 7책 3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16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역사-고사(故事) / 어문학-문학(文學)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