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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권, 고종 3년 2월 10일 경자 1번째기사 1866년 청 동치(同治) 5년

대왕대비, 왕대비, 대비에게 존호 옥책문과 인장을 올리고 진하를 받다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왕대비전(王大妃殿)·대비전(大妃殿)의 존호(尊號)에 대한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친히 올렸다. 이어 진하(陳賀)를 받고 사면(赦免)을 반포하였다. 교문(敎文)에,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차례를 계승하는 것은 선대를 잊지 않으려고 생각함이니 칠묘(七廟)에 신위를 합사(合祀)하는 제사를 거행하였으며 우리 가례(家禮)에 본래 있는 바 삼전(三殿)의 존호가 더욱 높아졌으니, 어찌 나 한 사람의 지극한 정성이겠는가? 너희와 온 나라가 함께 경축할 일이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효유 헌성 선경 정인 자혜 홍덕 대왕대비(孝裕獻聖宣敬正仁慈惠弘德大王大妃) 전하는 우리나라의 태임(太任)이나 태사(太姒)이며 여자들 가운데서 빛나는 공적을 이룩하였다. 성인과 같은 훌륭한 덕을 지니고 존엄있는 성인의 배필로 되어 중궁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였으며 태모(太母)의 공적을 계승하여 태모와 같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하루에 온갖 정사를 다 처리하였다. 위험한 속에서도 나라를 안정시켰으니 임금을 대신하여 나라의 계책을 정하였고 어리석은 나를 도와 밤낮없이 부지런히 걱정하였으니 수렴(垂簾)하고서 정사를 보았다. 배알하는 이에도 따뜻한 윤음을 자주 내리시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게 되었고 나를 돌보고 길러주시는 이에 선왕(先王)의 덕화를 묵묵히 펼쳐 대궐 안에 넓은 은혜가 두루 퍼졌다.

아, 우리 명헌 숙경 예인 정목 왕대비(明憲淑敬睿仁正穆王大妃) 전하는 부드러운 하교로 화목한 기풍을 널리 펴며 조용히 임금을 도우신 숨은 공로는 더없이 크다. 덕은 훌륭한 집안을 받들어 도산(塗山)에서 선(善)함과 경사스러움을 길렀고 길함은 중전에 부합하여 사록(沙麓)에서 복(福)됨과 상서로움을 응하였다. 왕대비로 책봉된 것은 풍속과 교화의 훌륭함에 기초하였으니 노래에 담아 전해지게 되었고 대왕대비에게 언제나 기쁨을 드렸으니 온갖 행동이 도리에 맞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계책은 내칙(內則)의 절도에 맞고 아름다운 칭송은 올바른 의식(儀式)에서 나타났다.

또한 우리 명순 대비(明純大妃) 전하는 훌륭한 덕과 넓은 도량을 타고났고 대대로 문학과 예의를 공부한 집안의 교훈을 이어받았다. 임금의 훌륭한 교화를 도와 10명의 어진 신하들과 함께 일컬어지고 일찍부터 왕실의 훌륭한 일을 계승하였기에 모든 행동의 근원이 일찍부터 드러났다. 누에를 길러서 길쌈 공적을 이었으니 현담(玄談)을 장식하는데 정성을 바쳤고 왕실에서 직조를 하여 외가(外家)에 사사로운 은혜를 베푸는 것을 경계함으로써 역사에 기록되어 칭찬이 자자하였다.

왕비의 하교가 한창 왕성할 때에 갑자기 임금이 세상을 떠나는 크나큰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생각건대 못난 내가 외람되이 왕위를 이어받아 나라의 큰 계책에 대해서는 자성 전하의 보살핌을 힘입었다. 언제나 밝고 길하게 명하시니 대왕대비전의 복을 이어서 받았다. 또한 만수무강하시기를 걱정하고 축원하니 선군(先君)을 생각하면 더욱 열심히 힘쓰게 된다. 선군이 돌아가신 슬픔을 위로할 길이 없는데 세월은 흘러가고 높이 드러내어 찬양하려는 성의가 더욱더 깊어가니 자성 전하의 빛이 오래도록 머무른다.

거상(擧喪)이 끝난 오늘날에 이르러 대비전의 아름다움을 밝히는 일을 어찌 늦출 수 있겠는가? 일은 어버이를 높이는 일보다 큰 것이 없으니 훌륭한 공적을 비길 데가 없고, 제향은 물질보다 의식을 중요시하니 선현의 법을 비춰볼 만하다. 나를 키워준 사랑은 바다의 깊이와 산의 높이에 비길 만한데 어찌 그 사랑에 보답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식을 성대하게 거행하더라도 오히려 정성스러운 마음을 조금만 폈다 할 것이다.

삼가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받들어 대왕대비전에는 ‘순화(純化)’라는 존호를 가상(加上)하고 왕대비전에는 ‘홍성(弘聖)’이라고 존호를 가상하며 대비전에는 ‘휘성(徽聖)’이라는 존호를 더 가상하였다.

뭇 사람들의 마음은 옛 임금들을 생각하여 슬퍼하고 오늘의 경사를 맞아 기뻐하니 나라에서는 큰 의식을 벌여 위로는 종묘(宗廟)에 고하고 아래로는 여러 백성들에게 교서(敎書)를 반포한다. 훌륭한 공적과 아름다운 행실을 만 분의 일이나마 표현하려고 하며 대모로 장식한 판에다 책문을 올리는 것은 영원히 그 공적이 빛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즐거워야 이에 큰 혜택이 널리 퍼질 것이며 큰 덕을 일컬어 ‘생(生)’이라고 하였으니 실로 숨은 덕화를 고루 입은 것이다.

이달 10일 새벽 이전의 잡범(雜犯)으로 사죄(死罪) 이하를 모두 사면하라.

아, 봄철을 따라 경사로운 의식을 거행하고 혜택을 널리 베푸니 하늘이 내려준 복에 대응하여 조화로움을 인도하고 상서(祥瑞)가 나타날 것이다. 천 년 만 년 더욱 더 번성해 나가 다같이 장수를 노래하며 즐겁게 지내니 모든 백성들이 그 덕을 입게 되어 영원히 복을 누릴 것이다. 그리하여 이에 교시(敎示)하니 마땅히 잘 알도록 하라."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김세균(金世均)이 지었다.】


  • 【원본】 7책 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0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왕실-비빈(妃嬪)

初十日。 詣仁政殿, 大王大妃殿、王大妃殿、大妃殿, 尊號冊寶親上, 仍受賀, 頒赦。

敎文若曰: 繼序思, 不忘七廟之升祔載擧。 我家禮自有三殿之晉號冞隆, 豈亶予一人至忱? 率與爾多方同慶。 恭惟我孝裕獻聖宣敬正仁慈惠弘德大王大妃殿下, 我東, 女中。 以聖人德, 配聖人尊, 重坤六五, 纘太母烈, 居太母位, 一日萬幾。 奠宗社於呼吸風雷, 代邸定策, 翊寡昧而憂勤宵旰, 延和御簾。 溫綸屢頒於隔幷, 溝壑轉爲袵席, 化樞默運於煦育, 雨露遍于帡幪。 猗! 我明憲淑敬睿仁正穆王大妃殿下, 柔敎穆宣, 陰功峻茂。 德承華冑, 毓善慶於塗山; 吉叶黃裳, 膺休祥於沙麓。 長秋基風化之美, 琴鍾登詩; 東朝奉晨夕之歡, 珩珮中度。 徽猷合內則之節, 懿聞著中正之儀。 亦我明純大妃殿下, 德成含弘, 訓襲詩禮。 贊宸極之盛化, 十亂之佐竝稱; 嗣京室之徽音, 百行之原夙著。 養蠶繼西陵之績, 玄紞供誠; 濯龍戒外家之私, 彤管播譽。 翟衣之敎方鬯, 烏弓之慟遽纏。 惟藐躬叨承丕基, 而引猷仰賴慈覆。 罔不在命哲命吉, 王母福受玆, 亦無疆惟恤惟休。 先君思以勖, 慨廓之衷莫慰, 梧雲寢遐, 顯揚之誠彌深。 萱暉長駐, 逮當縞纖之終制, 詎緩琬琰之闡徽? 事孰大於尊親? 盛烈無競, 享多儀於及物, 先憲可監。 霑鴻造於海山深崇, 曷云報效之斯在? 率彝典於天日摹盡, 尙或忱恂之少伸。 謹奉冊寶, 加上大王大妃殿尊號曰‘純化’; 王大妃殿尊號曰‘弘聖’; 大妃殿尊號曰‘徽聖’。 輿情愴舊而慶今, 邦典告上而布下。 巍勳懿範, 若爲萬一分形容, 玳檢瑤鐫, 庶冀千百代照耀, 群物皆樂, 爰有霈澤之旁流。 大德曰生, 寔惟陰化之普被。 自本月初十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順春令而行慶施惠, 對天休而導和發祥, 萬有千歲俾爾昌。 頌魯壽於燕喜, 群黎百姓徧爲德, 錫箕福於龜疇。 故玆敎示, 想宜知悉。

【藝文提學金世均製】


  • 【원본】 7책 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0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