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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3권, 고종 3년 1월 11일 신미 2번째기사 1866년 청 동치(同治) 5년

우변 포도청에서 사교를 전파한 서양인을 체포하였다고 보고하다

좌변포도청(左邊捕盜廳)과 우변포도청(右邊捕盜廳)에서, ‘이달 9일 유시(酉時)에 수상한 놈을 체포하였는데 키는 7, 8척(尺) 쯤 되었고 나이는 50여 세 정도 되었으며 눈은 우묵하게 들어가고 콧마루는 덩실하게 높았는데, 우리나라 말도 잘 하였습니다. 입은 옷들을 보면 모포천으로 만든 두루마기를 걸쳤는데 그 안에는 양가죽을 댔으며 무명 저고리에 무명 바지를 입었고 우단(羽緞)으로 만든 쌍코신을 신었습니다. 엄하게 조사하여 공초(供招)를 받으니, 그의 공초에, 「저는 프랑스〔佛浪國〕 사람으로서 병진년(1856)에 조선(朝鮮)에 와서 홍봉주(洪鳳周)의 집에 거주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울과 지방을 자주 왕래하였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홍봉주의 공초에, 「양인(洋人) 장경일(張敬一)과 5, 6년간 함께 살았는데 교우(敎友)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두 기억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함께 체포된 이선이(李先伊)의 공초에, 「대평동(大平洞)에 있는 장 주교(張主敎)의 집 사랑채에서 3, 4년 동안 살았는데, 왕래한 사람들에 대해서 비록 일일이 다 기억해낼 수는 없지만 이름은 알 수 없는 남 승지(南承旨)라는 사람과 종종 서로 만나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기해년(1839)과 경자년(1840)에 얼마나 엄하게 처단하고 징계하였습니까? 그런데 또 이렇게 사교(邪敎)를 다시 제멋대로 퍼뜨리고 있으니 진실로 몹시 통탄할 노릇입니다. 세 놈을 신의 포도청에 엄하게 가두어 놓고 다시 더 엄히 조사하겠습니다.’

아뢰었다. 하교하기를,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를 드나드는데 어찌 우리나라 사람의 호응이 없었겠는가? 데려온 자초지종에 대하여 끝까지 엄하게 조사하여 실정을 캐내도록 하라."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적발되어 붙잡힌 여러 놈들을 우선 포청(捕廳)에 가두고 남종삼(南鍾三)을 잡아온 다음 함께 국문(鞠問)하라."

하였다.


  • 【원본】 7책 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05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외교-프랑스[法] / 사상-서학(西學) / 사법-재판(裁判)

    左右捕廳以"本月初九日酉時, 捉得殊常之漢, 長可七八尺, 年可五十餘, 目深準高, 能通言語。 所著氈周衣, 內供織羊皮, 木襦木袴, 羽緞雙鼻鞋。 嚴覈取招, 則供以: ‘渠本佛浪國人, 丙辰年來朝鮮, 住洪鳳周家, 傳以聖敎, 出沒京鄕’云。 洪鳳周供以: ‘與洋人張敬一, 五六年同居, 多少敎友, 不能盡記。’ 同爲現捉之李先伊供: ‘廊居於大平洞 張主敎家三四年, 往來之人, 雖不面面記得, 名不知南承旨, 種種相從’云。 己、庚懲創, 何等嚴重, 而又北邪敎更肆, 萬萬驚惋。 三漢嚴囚臣廳, 更加嚴査啓。" 敎曰: "異國人之出來, 豈無我國人之和應也? 率來源委, 到底嚴覈得情。" 又曰: "現捉諸漢, 姑囚捕廳, 南鍾三拿來後, 同爲鞫問。"


    • 【원본】 7책 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05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외교-프랑스[法] / 사상-서학(西學) / 사법-재판(裁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