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에서 평안도의 환곡 폐단에 대해 아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지난번에 관서의 환곡(還穀)에 대한 폐단을 제거할 방도를 도신(道臣)에게 널리 문의하여 등문(登聞)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연석에서 아뢰었습니다. 방금 해당 감사 홍우길(洪祐吉)의 장계를 보니, ‘첫째는 환곡을 완전히 받아들인 다음에 총 수량을 줄이는 것이고, 둘째는 값을 줄여서 입본(立本)하는 것이며, 셋째는 환곡을 거두는 것을 중지하고 급대(給代)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곡을 전부 받아들이거나 입본하거나를 막론하고 원래의 수량을 다 채워 넣기 전에는 모곡(耗穀)을 취해서 경비로 쓰던 것을 우선 중지하지 않을 수 없으니, 다른 데에서 급대하는 방도는 오직 민호(民戶)나 전결(田結)에서 거두어들이는 것뿐입니다. 도내의 전결이 8만 4,000여 결이니 결당 쌀 5두(斗) 씩을 거두어들이면 도합 2만 8,000여 석(石)이 됩니다. 이것을 매년 환곡에서 이자로 나오는 수량인 8만 4,000석과 비교하면 모자라는 수량이 5만 5,000여 석입니다. 이를 다시 호적의 총수인 21만 호에 배비(排比)하여 호당 쌀 4두(斗) 씩 거두면 모자라는 숫자를 넉넉히 채울 수 있습니다. 또 영읍(營邑)에서 해마다 녹봉의 일부를 내놓게 할 경우 합친 수량이 몇천 몇백 석은 될 것이니, 각 호당 배비하는 수량을 얼마쯤 더 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폐단을 일체 바로잡기에는 부족하나 그래도 어느 정도 임시 방편의 조처는 될 것입니다. 그러나 환곡과 양향곡(糧餉穀)을 그대로 두느냐 바꾸느냐에 대한 문제와 민호와 전결을 한 곳에만 배정하느냐 모두 거행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그 사이에서 망녕되게 논의할 수 없는 것이니, 묘당으로 하여금 결론지어 품처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천하의 국가들에서 재용(財用)이 나오는 곳은 토지가 아니면 백성입니다. 환곡을 내어주었다가 받아들였다 하면서 모곡을 취하여 경비로 쓰는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는데,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겨나기 마련으로 이 백성들이 이로 인해 도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폐단이 생기는 법을 고수하여 마침내는 빈 장부를 살피고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정사를 행하면서도, 이것은 기본 제도이니 폐지할 수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름과 실제가 부합되지 않는 것입니다.
전결에서 거두어들인다는 말과 민호에다 배비한다는 말을 피하기 위하여 이렇게 생판으로 마구 징수하기 보다는 차라리 토지에서 거두고 민호에다 배정하여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하게 해 꾸밈이 없게 하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겠습니까? 도신이 논한 바 민호에 배당시킨다는 것은 바로 백성에게 배당하는 것이고, 전결에다 배당시킨다는 것은 토지에 배당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상호 참작해 응당 써야 할 수를 모으고 거기에 영읍에서 덜어낸 녹봉으로 보충하면 어느 정도 백성들의 힘을 펴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환곡에 이르러서는, 바로 나라의 불의의 사변에 대처하기 위한 비축으로, 나라에 비축이 없다면 변란이 생겼을 때 무엇을 믿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크게 경장(更張)하는 시기에 만약 채워 넣는 것만을 일삼는다면 민호별로 납부하고 전결당 납부하는 백성들이 잔뜩 상을 찡그리는 것이 종전에 환곡으로 인해 고통받던 때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선 환곡에 대한 정사가 이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좋은 쪽으로 계품하여 시행하게 해야 합니다.
각 산성(山城)의 양향곡은 하루라도 정지시키지 못할 저축이니 법대로 거두고 내어주게 하되, 각읍(各邑)에 남아 있는 환곡은 돈으로 바꾼 것까지 모두 각 읍에 남겨두게 하고 절차가 정해지기를 기다려서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변통한 다음에 마치 불 속이나 물 속에서 사람을 구하듯이 조금도 늦출 수 없는 것은 바로 이자를 가볍게 하는 것과 양향곡을 늘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막론하고 일체 탕감해 주어 서쪽 지방 백성들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다만 그 중에도 또한 수습할 만한 것이 없지 않을 것이니, 장부를 철저히 조사하여 성책(成冊)하여 보고하게 해야 합니다.
화전세(火田稅)도 상정가(詳定價)로 대전(代錢)하도록 하면 바로 또한 고질병을 치료하는 한 가지 대책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런 뜻까지 절목을 만들어 올려 보내게 하여 다시 수정해서 계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방금 개성 유수(開城留守) 김영작(金永爵)의 보고를 보니, ‘관서의 소미(小米) 2만 석에 대한 올해의 모조(耗條) 2,000석을 전례대로 급대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지방(支放)을 급대하는 것이 연례(年例)로 되었으니, 본사에서 구관하는, 해서(海西)에 있는 곡식 중에서 이 숫자만큼 획급(劃給)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 【원본】 5책 1권 8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61면
- 【분류】재정-전세(田稅) / 농업-개간(開墾) / 금융-화폐(貨幣)
議政府啓: "頃以關西還弊矯捄之方, 令道臣博採登聞之意, 筵奏矣。 卽見該監司洪祐吉狀啓, 則以爲: ‘一曰, 完糴而減總; 二曰, 減價而立本; 三曰, 停還而給代。 毋論完糴與立本, 原數未完之前, 取耗經用, 不得不姑停, 則從他給代, 惟有敷斂於戶與結而已。 道內田結八萬四千餘結, 每結出米五斗, 共爲二萬八千餘石。 以此較準於年例還耗八萬四千石, 則餘數五萬五千餘石, 排比於籍總二十一萬戶, 戶收四斗米, 優可取盈。 而又自營邑, 課歲捐俸, 湊合幾千百石, 則戶排之數, 當爲減却幾分。 此不足爲一切釐革, 猶可謂方便措處。 而至若還餉之仍貫、易轍, 戶結之單擧、竝行, 不可妄議於其間, 請令廟堂指一稟處’矣。 爲天下國家, 財用所出, 非土地則民人也。 糶糴之取耗經用, 其來已久, 而法久弊生, 致斯民於塗炭, 而墨守已弊之法, 畢竟按虛簿而行奪財之政, 而曰: ‘此, 經法也, 不可廢也’, 名實不副矣。 與其避結斂戶排之名而爲此白地濫徵, 曷若出之於土地, 匯之於民人, 名正而言順, 無所遮飭也。 道臣所論戶排, 卽民人也, 結排, 卽土地也。 參互通均, 以湊應用之數, 而營邑捐補, 亦足以紓幾分民力。 至於糶糴, 卽有國不虞之儲蓄。 國無所蓄, 緩急奚恃? 而今當大更張之會, 若一切以充完爲事, 則彼戶納、結納之民, 疾首蹙頞, 從前糶糴之苦, 將一般矣。 姑待還政釐正, 更爲從長啓稟施行。 各山城餉穀, 此非一日可停之儲蓄, 使之如法斂散, 而各邑餘存還穀, 竝執錢留置各邑, 以待節次知委。 若是變通之後, 則救焚拯溺, 不容少緩者, 卽輕殖也, 添餉也。 無論可捧不可捧, 惟當一切蕩減, 以謝西民之心。 而第其中, 亦不無可以收拾者, 則築底査簿, 修成冊報來。 火稅之許以詳定代錢, 卽亦砭焫膏肓之一對投也。 請竝以此意, 使之成節目上送, 更加刪潤, 以爲啓下何如?" 允之。 又啓: "卽見開城留守金永爵所報, 則以爲: ‘關西小米二萬石, 今年耗條二千石, 依例給代’爲辭矣。 支放給代, 便成年例, 以海西所在本司句管穀中, 準此數劃給何如?" 允之。
- 【원본】 5책 1권 8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61면
- 【분류】재정-전세(田稅) / 농업-개간(開墾) / 금융-화폐(貨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