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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실록 10권, 철종 9년 6월 25일 기사 1번째기사 1858년 청 함풍(咸豊) 8년

영희전에 한 칸을 증축하여 순조의 영정을 모실 것을 청하는 지사 윤정현의 상소

지사(知事) 윤정현(尹定鉉)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순조 대왕(純祖大王)께서는 성인(聖人)으로서 성인을 계승하였으므로, 중광(重光)027) 이 누차 흡족했습니다. 바다처럼 대단히 깊은 효도는 추모하기를 종신토록 하면서 미치지 못한 듯하였고, 하늘을 섬기는 대월(對越)의 정성은 조심하는 마음이 혼자 있는 곳에서도 간단(間斷)이 없었으며,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리기를 좋아하여 차마 한 물건도 손상시키지를 않았고 공검(恭儉)한 자세로 절용(節用)하여 천승(千乘)의 임금이 부유한 것임을 몰랐습니다. 34년 동안 재위(在位)하였는데, 그 성덕(盛德)은 전대(前代)에 뛰어났고 풍공(豐功)은 영원한 후세에 전하여질 것입니다. 태조(太祖)께서 전하여 준 모훈(謨訓)을 준수하고 정묘(正廟)께서 행한 의리(義理)를 발휘(發揮)하여 음양(陰陽)과 선악(善惡)을 조기에 변별(辨別)하는 정사를 시행해서 부정(不正)을 바로잡았고, 우로(雨露) 같은 은혜와 상설(霜雪) 같은 위엄으로 병행하여 토죄(討罪)함에 있어서는 형벌을 가할 적에 형벌이 없게 되기를 기약했습니다. 양교(洋敎)를 물리침에 있어서는 뿌리를 통렬히 단절하여 사설(邪說)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으며, 토적(土賊)을 평정함에 있어서는 협박에 의해 따른 사람은 다스리지 않아 큰 교화가 크게 새로워졌습니다. 천덕(天德)과 왕도(王道)를 위에서 몸소 행하니, 민이(民彝)와 물측(物則)이 저절로 중도(中道)에 맞게 되었으며, 주야로 국가의 기명(基命)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으므로 우리의 크나큰 기업(基業)을 공고하게 만들어 오늘의 아름다움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우리 성상(聖上)께서는 큰 서업(緖業)을 이어받아 효성이 끝이 없어,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누차 추상(追上)하여 올렸고 묘호(廟號)를 조공(祖功)으로 높였으니, 그 드러내어 천양(闡揚)하는 도리가 극진하였습니다. 그런데 진용(眞容)028) 을 봉안(奉安)한 것이 구중 궁궐의 깊숙하고도 근엄한 곳에 있을 뿐 별전(別殿)이 없어 신민(臣民)들이 우러러 사모할 장소가 없으니, 어찌 아직 거행하지 않은 결전(缺典)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우신(愚臣)의 천견(淺見)에는 새로 터를 점거하여 터를 닦고 집을 지을 필요 없이 옛날 겸허하였던 성의(聖意)를 체득하여, 단지 영희전(永禧殿)에 나아가서 한 칸을 더 증축하여 오실(五室)의 다음에다 제배(躋配)하면, 신리(神理)에도 진실로 맞고 인정과 예문이 둘 다 극진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신의 사언(私言)일 뿐만이 아니라 곧 온 나라 사람이 같은 목소리로 원하고 있는 것으로, 이에 대한 이의(異義)가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조정의 신하들에게 하순(下詢)하시어 조속히 성대한 의식(儀式)을 거행하여 성효(聖孝)를 빛내시고 여정(輿情)에 부합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영전(影殿)은 곧 원묘(原廟)029) 의 제도인 것으로, 뜻은 있었으나 미처 거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경의 소장을 보니, 창연(愴然)한 마음이 배나 간절하다. 청한 것은 삼가 따르도록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0권 7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627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註 027]
    중광(重光) : 현명한 임금이 계속 뒤를 이음.
  • [註 028]
    진용(眞容) : 임금의 영정.
  • [註 029]
    원묘(原廟) : 본디 있는 정묘(正廟) 이외에 더 지은 종묘(宗廟)를 말한 것으로, 한 혜제(漢惠帝) 때 숙손통(叔孫通)의 건의로 처음 세웠음.

○己巳/知事尹定鉉, 上疏略曰:

洪惟我純祖大王, 以聖繼聖, 重光累洽。 準海隆深之孝, 追慕靡逮於終身, 事天對越之誠, 小心罔間於幽獨, 惻怛好生, 不忍一物之有傷, 恭儉節用, 不知千秉之爲富。 在宥三十四年, 盛德軼於前代, 豐功被於永世。 遵守乎太祖所貽之謨訓, 發輝乎正廟所秉之義理, 陰陽淑慝之早辨爲政, 而正其不正, 雨露霜雪之幷行討罪, 則刑期無刑。 闢洋敎而痛絶根株, 邪說不作, 平土寇而罔治脅從, 大化丕新, 天德王道之躬行於上, 民彝物則之自協于中, 夙夜基命宥密, 用鞏我丕丕基, 式至于今日。 休我聖上, 纉承洪緖, 孝思無極, 冊寶屢薦於追上, 廟號加隆於祖功, 其尊顯闡揚之道, 至矣盡矣。 而眞容妥奉, 惟在於九重深嚴, 未有別殿, 爲臣民瞻慕之地, 豈非缺典之猶有未擧者乎? 臣愚淺見, 不必新占基址, 創始營搆, 以體昔日謙沖之聖意, 只就永禧殿, 增拓一間, 躋配於五室之次, 則神理允叶, 情文兩盡。 此非獨臣之私言, 卽擧國所同聲之願, 而無異辭者也。 伏乞詢于在庭, 亟擧縟儀, 以光聖孝, 以副輿情焉。

批曰: "影殿, 卽原廟之制也, 有其志而未及擧矣。 今見卿疏, 倍切愴廓, 所請敬依。"


  • 【태백산사고본】 6책 10권 7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627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