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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실록 8권, 철종 7년 10월 10일 갑오 3번째기사 1856년 청 함풍(咸豊) 6년

전 참판 김정희의 졸기

전 참판(參判) 김정희(金正喜)가 졸(卒)하였다. 김정희는 이조 판서[吏判] 김노경(金魯敬)의 아들로서 총명(聰明)하고 기억력이 투철하여 여러 가지 서적을 널리 읽었으며, 금석문(金石文)과 도사(圖史)에 깊이 통달하여 초서(草書)·해서(楷書)·전서(篆書)·예서(隷書)에 있어서 참다운 경지(境地)를 신기하게 깨달았었다. 때로는 혹시 거리낌 없는 바를 행했으나, 사람들이 자황(雌黃)076) 하지 못하였다. 그의 중제(仲弟) 김명희(金命喜)와 더불어 훈지(壎篪)077) 처럼 서로 화답하여 울연(蔚然)히 당세(當世)의 대가(大家)가 되었다. 조세(早歲)에는 영명(英名)을 드날렸으나, 중간에 가화(家禍)를 만나서 남쪽으로 귀양가고 북쪽으로 귀양가서 온갖 풍상(風霜)을 다 겪었으니, 세상에 쓰이고 혹은 버림을 받으며 나아가고 또는 물러갔음을 세상에서 간혹 송(宋)나라의 소식(蘇軾)에게 견주기도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608면
  • 【분류】
    인물(人物)

  • [註 076]
    자황(雌黃) : 옛날 시문(詩文)의 오기(誤記)된 부분에 자황을 칠하여 정정(訂正)하였는데, 시문의 첨삭(添削) 또는 변론의 시비를 이름.
  • [註 077]
    훈지(壎篪) : 훈(壎)과 지(篪). 형제간의 화목함의 비유.

○前參判金正喜卒。 正喜, 吏判魯敬子, 聰明强記, 博洽群書, 金石圖史, 窮徹蘊奧, 艸、楷、篆、隷, 妙悟眞境。 時或行其所無事, 而人不得以雌黃。 與其仲弟命喜, 塤箎相和, 蔚然爲當世之鴻匠。 早歲蜚英, 中罹家禍, 南竄北謫, 備經風霜, 用舍行止, 世或比之於有蘇軾


  • 【태백산사고본】 4책 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608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