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언군의 신유년의 죽음을 변무하는 주문
은언군(恩彦君)007) 의 신유년의 일008) 을 변무(辨誣)하는 주문(奏文)에 대략 이르기를,
"신(臣)의 아비 선각왕(宣恪王)은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었는데 영의정 심환지(沈煥之)가 어려운 때를 당해 위복(威福)을 마음대로 하는 권병(權柄)을 훔쳐 국가에 변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이 때를 틈탈 만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듬해 신유년에 신의 본생조(本生祖) 은언군(恩彦君) 인(䄄)이 제일 먼저 그 칼날을 받았는데 그때 우리 나라에는 불행하게도 사학(邪學)009) 의 옥(獄)이 있게 되었습니다. 심환지의 무리들이 신의 본생조도 역시 사교(邪敎)에 물들었다고 말하면서 감히 천만 이치에 닿지 않는 지목(指目)을 하고, 천만 이치에 맞지 않는 죄를 씌워 이 옥사에 몰아 넣어 싸잡아 죽임을 당하였으니, 공의(公議)가 아직껏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온 나라가 그를 위해 슬퍼하자 급히 겸제(箝制)010) 하여 감히 의논하지 못하게 하고, 그후에 또 반드시 천청(天聽)에 알려 천하에 폭로하고자 하여 마침내 무함하여 주문(奏聞)하는 일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 나라에서 전후 주어(奏御)한 글 역시 내부(內府)의 편집(編輯)하는 반열(班列)에 갖추어져 있으니 일의 허실과 주문의 진위(眞僞)는 오로지 우리 나라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만약 단지 신유년의 무함한 주문만을 의거하여 말한다면, 효경(梟獍)011) 이 되고 귀역(鬼蜮)012) 이 되었으니 비록 헌경(軒鏡)013) 이 높이 달리고 우정(禹鼎)014) 이 모습을 드리우더라도 어떻게 남김없이 다 통촉하시겠습니까? 감히 신의 본생조(本生祖)가 신유년에 망극하게 무함 당한 것을 가지고 눈물을 뿌리며 진문(陳聞)하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서기순(徐箕淳)이 지어 올린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560면
- 【분류】왕실(王室) / 사법-치안(治安)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07]은언군(恩彦君) : 사도 세자(思悼世子)의 서자.
- [註 008]
신유년의 일 :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이 순조(純祖) 원년(1801) 천주교(天主敎) 박해 때 신자로 몰려 배소(配所)에서 죽은 일. 신유년은 1801 순조 원년.- [註 009]
사학(邪學) : 천주교(天主敎)를 말함.- [註 010]
겸제(箝制) : 꼼짝 못하게 함.- [註 011]
효경(梟獍) : 효는 어미를 잡아 먹는 올빼미, 경은 아비를 잡아 먹는 파경(破獍)이라는 짐승. 흉악하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임.- [註 012]
귀역(鬼蜮) : 귀신과 물여우. 물여우가 모래를 입에 물고 있다가, 물에 비치는 사람의 그림자에 뿌리면 그 사람이 병에 걸리는데, 물여우는 귀신과 같이 그 형태를 볼수 없다 함. 한편으로 음흉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도 쓰이는데, 여기에서는 이러한 뜻으로 쓰였음.- [註 013]
헌경(軒鏡) : 헌원경(軒轅鏡)을 말함이니 황제 헌원씨(皇帝軒轅氏)가 서왕모(西王母)와 만나 큰 거울 12개를 만들어 달마다 바꾸어 사용했는데 이것이 거울을 만든 시초가 됨. 《비사유편(稗史類編)》에 보임.- [註 014]
우정(禹鼎) : 우(禹)임금이 구주(九州)의 쇠를 거두어 구주를 상징해 만들었다는 아홉 개의 솥.○恩彦君辛酉事辨誣奏文, 略曰:
"臣之父宣恪王, 沖齡嗣服, 領議政沈煥之, 當艱虞之會, 竊威福之柄, 幸國家有變, 謂此時可乘。 翌年辛酉, 臣之本生祖恩彦君 稛, 先受其鋒, 伊時小邦不幸, 有邪學之獄。 煥之輩, 謂臣本生祖, 亦染邪敎, 敢以千萬不近之目, 被之千萬不近之地, 驅入此獄, 混被其殺, 公議尙有未泯。 擧國爲之齎悲則急欲箝制, 使不敢議其後, 又必欲達之天聽, 暴之天下, 竟至有誣奏之擧。 第以小邦前後奏御之文, 亦備內府編輯之列, 事之虛實, 奏之眞僞, 傳係於小邦。 今若只據辛酉之誣而爲辭, 則爲梟爲獍, 爲鬼爲蜮, 雖軒鏡高懸, 禹鼎垂象, 亦何由悉燭無餘乎? 敢將臣本生祖辛酉罔極之誣, 瀝血陳聞, 冀垂照察。" 【大提學徐箕淳製進。】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560면
- 【분류】왕실(王室) / 사법-치안(治安)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