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 대비가 시·원임 대신을 소견하여 임금의 학업 증진에 대해 의논하다
대왕 대비(大王大妃)가 희정당(熙政堂)에서 시·원임 대신(時原任大臣)을 소견(召見)하였다. 【영부사 조인영(趙寅永), 판부사 정원용(鄭元容), 원상(院相) 권돈인(權敦仁), 좌의정 김도희(金道喜), 판부사 박회수(朴晦壽), 도승지 홍종응(洪鍾應), 기사관(記事官) 홍종운(洪鍾雲)·서익보(徐翼輔)·남병길(南秉吉)이다.】 대왕 대비가 이르기를,
"오늘 주상께서 대명(大命)을 받게 되었으니, 이는 종사(宗社)의 무궁한 복이라 하겠소. 그러나 주상에게는 시초가 되는데 군덕(君德)의 성취는 오직 강학(講學)이 있는 바 임금이 배우지 아니하면 어떻게 정사를 하겠소? 군신 상하가 한마음으로 힘써 기어코 덕성(德性)을 보도(輔導)해야겠는데, 이 일을 깊이 여러 대신들에게 기대하는 바이오. 나는 여러 차례 상척(喪慽)을 당하여 정신이 혼미(昏迷)한 터에 또 이러한 차마 보지 못할 일을 당하였으니 어떻게 강작(强作)하겠소만, 종사는 지극히 중하고 주상은 새로이 사위(嗣位)하게 되었으니, 또다시 경 등을 불러 포유(布諭)하는 바이오. 이 뒤로 보도하는 책임은 오직 여러 대신들에게 있다고 여기오."
하니, 조인영(趙寅永) 등이 일제히 아뢰기를,
"신 등은 마땅히 정성과 심력을 다하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마는, 이 일은 역시 태모 전하(太母殿下)001) 께서 안에서 이끌어 주시기에 달렸다고 봅니다."
하였다. 대왕 대비가 이르기를,
"오늘은 주상께서 등극하신 첫날이오. 그래서 나는 백성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배우며 근검 절약할 것과 군신들을 예우하고 대신을 공경할 것 등 여러 조목으로 먼저 교유(敎諭)하고 여러 대신들을 불러 방청케 하는 것이니, 주상께서 후일 일거 일동이라도 이 훈계에 어긋난 바 있으면 대신들은 모름지기 오늘 내가 한 말로 책난(責難)함이 옳을 것이오."
하니, 정원용(鄭元容)이 아뢰기를,
"자성(慈聖)께서는 지금 거듭 사직(社稷)을 안정시킨 공이 있으신데 또 이렇게 군덕(君德)에 대하여 면계(勉戒)하시고 신 등에게도 칙유(飭諭)하시니, 위국 일념(爲國一念)이 참으로 측달(惻怛)하시고 간지(懇摯)하십니다. 주상께서도 어떻게 공경스레 받들고 힘써 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였고, 권돈인(權敦仁)은 아뢰기를,
"언문 교지(諺文敎旨)를 읽고 성충(聖衷)을 헤아려보면 역시 면려(勉勵)하고 조심하여 치법(治法)과 모유(謨猷)는 탕(湯)임금의 반명(盤銘)에 있는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日日新 又日新]’는 말보다 훨씬 더하시니, 신은 경축 만만(萬萬)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였으며, 조인영은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이 언문의 면계(勉戒) 일편(一編)만을 항상 읽고 마음에 새겨 조심스레 행하면 이로써 자성(慈聖)의 뜻에 앙답할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삼가 이대로 봉행(奉行)하겠소."
하였다. 정원용이 아뢰기를,
"전하의 이 대답은 참으로 종사(宗社)와 생민(生民)의 복이옵니다."
하였고, 김도희(金道喜)는 아뢰기를,
"지금 자성 전하께서 내리신 언문 교지를 보니, 우리 전하에게 훈계한 바가 글자마다 간측(懇惻)하고 말씀마다 절당(切當)하여 신은 반절도 채 못읽어서 감격한 눈물이 앞을 가리움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언교(諺敎) 안의 ‘백성을 사랑하고 절검하라’는 말씀과 ‘경사(經史)를 토론하여 부지런히 본받으라’는 말씀 등 앞뒤 몇가지 일들은 우리 전하께서 명심하고 행할 바 아님이 없으니, 빨리 이 언교대로 새겨서 행하시면 후일 전하의 치공(治功)과 선화(宣化)가 여기에서 기초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정원용이 아뢰기를,
"옛사람이 일찍부터 태자(太子)를 가르치는 도리를 논하여 이르기를, ‘전후 좌우가 정인(正人) 아닌 사람이 없어 날마다 바른 말을 듣게 하고 바른 일을 행하게 해야 한다.’ 하였는데, 이는 조신(朝臣)들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이제는 필연코 좌우에서 복사(服事)할 사람들을 새로 두어야 할 터인데, 역시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대왕 대비가 답하기를,
"참으로 그렇소. 사람이란 상하 귀천을 막론하고 각자 부성(賦性)이 있기 때문에 비록 미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충성스럽고 정직한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오. 사대부들은 걸핏하면 현사 대부(賢士大夫)라 일컬어지고 있지만 그중에 더러는 그릇된 도리로 임금을 보도(輔導)하다가 끝내는 허물이 임금에게 돌아가게 하니, 어찌 한탄할 일이 아니겠소? 이렇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귀천이 따로 없고 가려 쓰기 여하에 달릴 뿐인 것이오."
하였다. 정원용이 아뢰기를,
"신은 이틀 동안 모시고 오면서 전일에 무슨 책을 읽으셨는지 알고 싶었으나 노차(路次)라서 감히 여쭈어 보지를 못했었는데, 이제는 여쭈어 볼 수 있습니다."
하니, 권돈인이 아뢰기를,
"이제부터는 여러 대신들이 아뢴 뒤에는 꼭 대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하매, 임금이 답하기를,
"일찍이 《통감(通鑑)》 두 권과 《소학(小學)》 1, 2권을 읽었었으나, 근년에는 읽은 것이 없오."
하였다. 조인영이 아뢰기를,
"독서와 강리(講理)는 참으로 성덕(聖德)을 이루는 근본이 됩니다. 만약 이미 배운 몇 편에 항상 온역(溫繹)을 더하여 힘써 행하고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옛부터 지금까지 성현(聖賢)의 천언 만어(千言萬語)가 어찌 《소학》 한 편의 취지에 벗어남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그러나 어렸을 때에 범연히 읽어 넘겼으니, 지금은 깜깜하여 기억할 수가 없소."
하였다. 대왕 대비가 이르기를,
"만일 글을 읽는다면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하겠소?"
하니, 정원용이 아뢰기를,
"시작은 《사략(史略)》으로부터 하여 조금 문리(文理)를 이해케 된 뒤에 계속하여 경서(經書)를 배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고, 또 아뢰기를,
"지금 내리신 언문 교지를 승지더러 번역케 하여 1통은 어람(御覽)토록 올리게 하고 조보(朝報)002) 에도 반포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대왕 대비가 이르기를,
"그렇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54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大王大妃殿, 召見時原任大臣于熙政堂。 【領府事趙寅永, 判府事鄭元客, 院相權敦仁, 左議政金道喜, 判府事朴晦壽, 都承旨洪鍾應, 記事官洪鍾雲、徐翼輔、南秉吉】 大王大妃殿曰: "今日主上, 誕受大命, 卽宗社無疆之福。 且主上之厥初也。 君德成就, 惟在講學, 人君不學則何以爲政事乎? 君臣上下, 一心交勉, 期於輔導德性, 深有望於諸大臣矣。 予屢經喪戚, 精力澌綴, 今又當不忍見之境, 何以强作, 而宗社至重, 主上新嗣, 又此召卿等布諭。 此後輔導之責, 惟在諸大臣矣。" 寅永等齊聲曰: "臣等固當殫竭誠力, 以爲一分裨補之地, 而亦惟在太母殿下, 自內提撕之如何耳。" 大王大妃殿曰: "今日, 主上御極之一初也。 予以愛民勤學節儉禮群臣敬大臣諸條, 先爲敎諭, 而召諸大臣傍聽者, 主上他日一動一事, 若有違於此訓, 則大臣, 須以予言, 責難可也。" 元容曰: "慈聖, 今又有重安社稷之功, 而又此勉戒君德, 飭諭臣等者, 爲國一心, 惻怛懇摯。 主上豈不敬受而力行乎?" 敦仁曰: "伏覩諺敎, 伏想聖衷, 亦必淬勵警惕, 而治法政謨, 不啻若湯盤之 ‘日新,’ 臣不勝慶祝萬萬矣。" 寅永曰: "臣謂只以此一編諺戒, 銘心常目, 慥慥力行, 則此可以仰答慈意矣。" 上曰: "謹當依此奉行矣。" 元容曰: "殿下此答, 宗社生民之福也。" 道喜曰: "卽伏覩慈聖殿下內下諺敎, 所以訓戒我殿下者, 字字懇惻, 言言切當, 臣奉讀未半, 而自不覺感淚之橫流也。 至若諺敎中 ‘愛民節儉,’ 與 ‘討論經史, 孜孜聽從,’ 首尾三四件, 無非我殿下所宜服膺而力行者也, 亟取此諺敎而紬繹之, 體行之, 則他日之聖神功化, 其基於此矣。" 元容曰: "古人論早諭太子, 之道曰, ‘左右前後, 罔非正人, 日聞正言, 日行正事,’ 此則指朝臣而言也。 今必新置左右服事之類, 亦爲愼擇好矣。" 大王大妃殿曰: "果然矣。 夫人, 無論上下貴賤, 各自有賦性, 雖微賤之人, 亦不無愚忠正直者矣。 士大夫則輒稱賢士大夫, 而其中亦或有以非道導其君, 而竟使歸過於君上, 豈不可歎哉? 此所以人無貴賤, 惟在擇用而已。" 元容曰: "臣陪從二日, 而雖欲知前日之魯讀何書, 然路次不敢仰問, 今可以言矣?" 敦仁曰: "自今諸大臣仰奏之後, 必爲賜答焉。" 上曰: "曾讀《通鑑》二卷, 《小學》一二卷, 而近年則無所讀矣。" 寅永曰: "讀書講理, 固爲作聖之基。 若於此已學之數編中, 常加溫繹, 力行而不倦, 則自古聖賢千言萬語, 豈有外於《小學》一書乎? 上曰: "然而兒少時泛忽讀過, 今則黯黯不能記憶也。" 大王大妃殿曰: "若始讀則當自何書爲可乎?" 元容曰: "始讀則自《史略》, 而稍鮮文理後, 繼讀經書好矣。" 又曰: "今下諺敎, 使承旨翻繹一通進覽, 又頒布於朝紙好矣。" 大王大妃殿曰: "依此爲之。"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54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