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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실록 15권, 헌종 14년 10월 10일 경술 1번째기사 1848년 청 도광(道光) 28년

정원용이 여섯 가지를 진면하니 비답을 내리다

임금이 중희당(重熙堂)에 나아가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備局堂上)을 인견(引見)하였다. 영의정 정원용(鄭元容)이 여섯 가지를 진면(陳勉)하니, 비답(批答)하기를,

"보감(寶鑑)을 친히 올려 성모(聖謨)를 크게 찬양하였으니, 어찌 경행(慶幸)하지 않겠는가? 문모(文謨)·무열(武烈)은 모두 나 소자(小子)가 본받을 일인데 이제 경(卿)이 여섯 가지를 아뢴 것이 모두 지극하니, 어찌 명심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정원용이 아뢰기를,

"평안 감사 조두순(趙斗淳)이 장계(狀啓)한 평양부(平壤府)의 유망(流亡)한 자의 환곡(還穀) 가운데에서 6만 석(石)은 우선 봉납(捧納)하지 못한 것으로 현록(懸錄)038) 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서쪽 백성의 폐단이 이토록 지극하기에 이르렀으니, 공곡(公穀)을 어찌 아까워할 것이 있겠는가? 봉납하지 못한 것으로 현록할 것이 아니라 특별히 탕감하여 국가에서 서쪽 백성을 사랑하고 돌보는 뜻을 보이되, 앞으로 폐단을 막을 방도를 묘당(廟堂)을 시켜 조사(措辭)하여 엄히 신칙(申飭)하게 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경기 감사(京畿監司) 김기만(金箕晩)이 장계하여 청한 적성현(積城縣)의 공사 포흠(公私逋欠) 가운데에서 지적하여 거둘 곳이 없는 가장 오래 된 것은 쌀로 쳐서 1천 2백 석을 특별히 탕감하도록 허가하고 그 나머지 7천 석은 올해부터 힘이 있는 대로 봉납하되 모곡조(耗穀條)는 5년 동안만 특별히 멈추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르고, 각릉(各陵)의 가관(假官)이 체직(替直)하는 폐단을 신칙하였다. 좌의정 김도희(金道喜)가 입지(立志)에 힘쓰기를 아뢰니, 비답하기를,

"‘입지’ 두 자는 매우 좋으니 명심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532면
  • 【분류】
    왕실(王室) / 재정-국용(國用) / 구휼(救恤)

  • [註 038]
    현록(懸錄) : 장부에 올려적는 것.

○庚戌/上御重熙堂, 引見大臣備局堂上。 領議政鄭元容, 六條陳勉, 批曰: "寶鑑親上, 聖謨丕揚, 豈不慶幸? 文謨武烈, 無非予小子監法之事, 而今卿六條所陳, 俱爲切至, 寧不銘念乎?" 元容啓言: "平安監司趙斗淳狀啓, 平壤府流亡還中六萬石, 請姑以未捧懸錄。" 批曰: "西民之弊, 至於此極, 則公穀有何惜乎? 不必以未捧懸錄, 特爲蠲蕩, 以示朝家愛恤西民之意, 而來後防弊之道, 令廟堂, 措辭嚴飭。" 又啓言: "京畿監司金箕晩狀啓, 請積城縣公私逋中, 指徵無處之最久條, 折米一千二百石, 特許蠲蕩, 其餘七千石, 自今年隨力隨捧, 而耗條限五年特停", 從之, 飭各陵假官替直之弊。 左議政金道喜, 陳勉立志, 批曰: "立志二字, 甚好, 當銘念矣。"


  •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532면
  • 【분류】
    왕실(王室) / 재정-국용(國用)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