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원의 입진을 행하고, 불랑국의 글과 김대건 문제를 의논하다
임금이 중희당(重熙堂)에 나아가 약원(藥院)의 입진(入診)을 행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불랑국(佛朗國)의 글을 보았는가?"
하자, 영의정 권돈인(權敦仁)이 말하기를,
"과연 보았는데, 그 서사(書辭)에는 자못 공동(恐動)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또한 외양(外洋)에 출몰하며 그 사술(邪術)을 빌어 인심을 선동하며 어지럽히는데, 이것은 이른바 영길리(英咭唎)와 함께 모두 서양의 무리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김대건(金大建)의 일은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하자, 권돈인이 말하기를,
"김대건의 일은 한 시각이라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사교(邪敎)에 의탁하여 인심을 속여 현혹하였으니, 그 한 짓을 밝혀 보면 오로지 의혹하여 현혹시키고 선동하여 어지럽히려는 계책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술뿐만 아니라 그는 본래 조선인으로서 본국을 배반하여 다른 나라 지경을 범하였고, 스스로 사학(邪學)을 칭하였으며, 그가 말한 것은 마치 공동(恐動)하는 것이 있는 듯하니, 생각하면 모르는 사이에 뼈가 오싹하고 쓸개가 흔들립니다. 이를 안법(按法)하여 주벌(誅罰)하지 않으면 구실을 찾는 단서가 되기에 알맞고, 또 약함을 보이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처분해야 마땅하다. 이재용(李在容)의 일로 말하더라도 추후에 들으니, 이재용은 실제로 그런 사람이 없고 바로 현석문(玄錫文)이 이름을 바꾼 것이라 하는데, 이제 현석문이 이미 잡혔으니, 이른바 이재용을 어느 곳에서 다시 잡겠는가?"
하자, 권돈인이 말하기를,
"이른바 이재용이 성명을 바꾸고 성안에 출몰한다 하는데, 추포(追捕)하는 일은 진위(眞僞)가 가려지지 않았으니, 포청(捕廳)의 일이 또한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처분이 있어야 마땅하다."
하였다. 임금이 또 하교하기를,
"내년 봄에 반드시 소요가 있을 것이다."
하자, 권돈인이 말하기를,
"내년 봄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도 소요가 있습니다. 항간에 사설(邪說)이 자못 많은데, 이것은 오로지 그 글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의혹하여 현혹됨이 있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빨리 그 글을 내려서 사람마다 보게 하소서. 그런 뒤에야 절로 의혹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내 생각으로는 주문(奏聞)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임진년(壬辰年)045) 에 영길리의 일 때문에 주문한 일이 있는데, 이것과 다를 것이 없을 듯하다."
하니, 권돈인이 말하기를,
"이것은 임진년과 차이가 있습니다. 영길리의 배가 홍주(洪州)에 와서 정박하였을 때에는 10여 일이나 머물렀고, 그들이 교역(交易) 따위의 말을 하였으나 사리에 의거하여 물리쳤으며, 또 곧 정상을 묻고 그 동정을 상세히 탐지하였으므로, 주문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번에 불랑선(佛朗船)이 외양(外洋)에 출몰하였을 때에는 섬 백성을 위협하여 사사롭게 문답하고, 그 궤서(櫃書)를 반드시 바치게 하려고 말끝마다 반드시 황제를 칭탁한 것은 이를 빙자하여 공갈할 계책을 삼은 데 지나지 않을 따름인데, 어찌 이처럼 허황된 말을 문득 주문할 수 있겠습니까? 연전에 양인(洋人)을 죽였을 때에 이미 주문하지 않았는데, 이제 갑자기 이 일을 주문하면 도리어 의심받을 염려가 있습니다. 바깥에서는 혹 이런 의논이 있으나, 신의 생각에 주문하는 일은 실로 온당하지 못할 것으로 여깁니다. 다만 의논들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과연 의심받을 염려가 없지 않다. 이는 반드시 조선 사람으로서 맥락이 서로 통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이 어떻게 살해된 연유를 알겠으며, 또 어떻게 그 연조(年條)를 알겠는가?"
하자, 권돈인이 말하기를,
"한 번 사술(邪術)이 유행하고부터 점점 물들어 가는 사람이 많고, 이번에 불랑선(佛朗船)이 온 것도 반드시 부추기고 유인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할 수 없으니, 모두 내부의 변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13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51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 외교-구미(歐美) / 사상(思想)
- [註 045]임진년(壬辰年) : 1832 순조 32년.
○戊戌/上御重熙堂, 行藥院入診。 上曰: "佛朗國書見之乎?" 領議政權敦仁曰: "果見之, 而其書辭, 頗有恐動底意。 且出沒於外洋, 藉其邪術, 煽亂人心, 此與所謂暎咭唎, 皆是西洋之類矣。" 上曰: "金大建事, 何以處之乎?" 敦仁曰: "金大建事, 不可一刻假貸矣。 自托邪敎, 誑惑人心, 究厥所爲, 專出疑眩煽亂之計, 而非特邪術而已。 渠本以朝鮮人, 背本國而犯他境, 自稱邪學, 其所云云, 有若恐動者然, 思之不覺骨顫而膽掉。 此若不按法誅之, 則適足爲藉口之端, 而又不免示弱矣。" 上曰: "當處分矣。 雖以李在容事言之, 追後聞之, 則所謂李在容, 實無其人, 而卽玄鍚文之變名者也, 今玄已就捕, 則所謂李在容, 何處更捕乎?" 敦仁曰: "所謂李在容, 變幻姓名, 出沒城闉云, 而追捕之政, 眞僞莫辨, 捕廳事, 亦不成說矣。" 上曰: "當有處分矣。" 上又敎曰: "明春, 必有騷屑矣。" 敦仁曰: "不待明春, 今亦有騷屑。 閭巷之間, 邪說頗多, 此專由於不見其書, 而有此疑眩也。 伏願亟下其書, 使人人見之, 然後自可以釋疑矣。" 上曰: "予意則奏聞似好。 壬辰年, 以暎咭唎事, 有奏聞之擧, 與此似無異矣。" 敦仁曰: "此與壬辰有異。 暎咭唎船之來泊洪州也, 至於十餘日留住, 渠有交易等語, 而旣據理斥之, 又卽問情, 詳探其動靜, 故至有奏聞之擧矣。 今此佛朗船之出沒於外洋, 威脅島民, 私相問答, 期欲納其樻書, 而言必稱皇帝者, 卽不過藉爲恐喝之計而已, 豈可以如此荒誕之辭, 遽爾奏聞乎? 年前殺洋人時, 旣不奏聞, 而今忽以此事奏聞, 則反有見疑之慮。 自外或有此議, 而臣意則奏聞一款, 實爲未穩, 第未知諸議之如何矣。" 上曰: "果不無見疑之慮。 此必有朝鮮人, 脈絡相通者矣。 不然則渠何以知見殺之由, 又何以知其年條乎?" 敦仁曰: "一自邪術之流行, 人多漸染, 而今此佛朗船之來, 未必不由於慫慂誘引之致, 皆是蕭墻之變矣。"
- 【태백산사고본】 7책 13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51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 외교-구미(歐美) / 사상(思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