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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실록 8권, 헌종 7년 3월 15일 경자 1번째기사 1841년 청 도광(道光) 21년

우의정 조인영이 소장의 서계와 감부하지 못한 수령의 문제를 아뢰다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우의정 조인영(趙寅永)이 아뢰기를,

"도왜(島倭)의 접대에는 본디 약조가 있으므로 털끝만큼이라도 어기는 것은 마땅하지 못한데, 연전에 대찰(代察)의 서계(書契)025) 를 아뢴 것은 매우 외람됩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당해 수령(守令)을 문비(問備)026) 하고, 인하여 효유(曉諭)하여 물리쳐 보내게 하기를 청하기까지 하였었습니다. 이제 4년 뒤에 또 번거롭게 아뢰면서 전에 듣지 못한 소장(少將)이 서계한 것으로 거듭하니, 변방(邊方)의 체례(體例)로 생각하면 아주 놀랍습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대찰의 서계는 약조에 어그러지기는 하나 이미 아뢰었고, 차왜(差倭)가 오래 지체하는 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특별히 먼 데 사람을 회유하는 뜻으로 받아들이도록 허락하였으나, 별폭(別幅)은 더욱 거론하는 것이 마땅하지 못합니다. 소장의 서계에 이르러서는 곧 약조에 실려 있지 않은 것이므로 대찰의 서계와 같은 예(例)로 논할 수 없습니다. 이 뜻으로 해부(該府)에 분부하여 하나는 허락하고 하나는 허락하지 않는 사리(事理)를 관왜(館倭)에게 상세히 칙유(飭諭)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적법(糴法)이 아주 무너진 것이 이미 말할 수도 없어서 전에 수시로 폐단을 바로잡을 뜻으로 적곡(糴穀)을 받아들이지 못한 수령(守令)을 차례로 감등(減等)하는 율(律)을 청하기까지 하였었습니다. 근래에 잔폐(殘弊)한 국지(局地)에서는 오로지 면하려고 꾀하는 것을 일삼아, ‘당년에 감부(勘簿)027) 하지 못하면 그 죄가 작으나 뒷날에 드러나는 것이 있어서 죄가 되는 것은 크다.’ 하여 모두 편리한 방법을 가리는 버릇을 부려서 체임(遞任)되기를 꾀하는 계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근일에 김포(金浦)·풍기(豐基) 두 수령의 일을 보더라도 그 말은 실속을 힘쓰는 듯하나 그 일은 실로 규피(規避)하는 데로 돌아갑니다. 대저 겨울을 지내도 감부하지 못한 것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부터 이후로 감부하지 못한 수령은 한결같이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율에 따라 시행하는 것으로 정식(定式)하고, 제도(諸道)·제도(諸都)에 공문을 보내어 알리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5책 8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485면
  • 【분류】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 / 구휼(救恤)

  • [註 025]
    서계(書契) : 주로 일본과의 교린 관계(交隣關係)에 대한 문서를 말하는데, 일본 사행(使行)의 임무 내용, 사절(使節)과 상왜(商倭)의 구별, 왜구(倭寇) 여부의 식별 등 다양한 역할을 했음. 이의 발신인은 우리 나라의 경우 국왕을 비롯하여 예조 판서·참판·참의와 동래 부사 등이 막부 장군(幕府將軍)·대마 도주·거추(巨酋) 등에게 보내는 것으로 대별되고, 일본의 경우는 막부 장군 등 국가에서 보내 오는 공신(公信)으로서의 서계와 거추 등이 보내 오는 사신(私信)으로서의 서계로 대별됨.
  • [註 026]
    문비(問備) : 관원에게 비위(非違)의 혐의가 있을 때 사헌부에서 글로 묻고, 힐문받은 자가 승복하거나 변명하는 사연을 갖추어 답하는 것. 사헌부에서 힐문하고 피의자가 답하는 글은 함서(緘書)로 왕래하므로, 함문·합답이라 함.
  • [註 027]
    감부(勘簿) : 실물과 장부를 맞춤.

○庚子/上御熙政堂, 引見大臣備局堂上。 右議政趙寅永啓言: "島接待, 自有約條, 不宜一毫違越, 而年前代察書契之登聞, 極爲猥屑。 故伊時至請該倅問備, 仍令曉諭退送矣。 今於四年之後, 又煩仰徹, 而重之以前所未聞之少將書契者, 揆以邊體, 萬萬駭然。 第念代察書契, 雖非約條, 旣經登聞, 差之許久留滯, 亦不可不念, 特以柔遠之意, 許令捧納, 而別幅尤不宜擧論。 至於少將書契, 卽約條之所未載, 不可與代察書契, 一例論也。 以此分付該府使, 使之以一許一否之事理, 詳細飭諭於館處。" 從之。 又啓言: "糴法之蕩然, 已無可言, 而前以隨時捄弊之意, 至請未捧糴守令, 挨次減等之律矣。 近來殘局(弊)〔弊〕 地, 專事規免, 以爲 ‘當年不勘其罪也小, 他日有現爲累則大,’ 擧售占便之習, 看作圖遞之計。 雖以近日金浦 豐基兩倅事觀之, 其言似若懋實, 其事實歸規避。 大抵經冬不勘, 卽與全未捧一也。 自今以後, 不勘簿守令, 一依全未捧律施行事, 定式, 請行會諸道諸都。" 從之。


  • 【태백산사고본】 5책 8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485면
  • 【분류】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