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헌종실록 4권, 헌종 3년 11월 25일 기해 1번째기사 1837년 청 도광(道光) 17년

영의정 이상황이 대왕 대비의 오순의 예를 거행하자고 아뢰다

시임 대신(時任大臣)·원임 대신(原任大臣)·예조 당상(禮曹堂上) 및 풍은 부원군(豐恩府院君)희정당(熙政堂)에서 불러 보았는데, 【봉조하(奉朝賀) 남공철(南公轍)·영의정(領議政) 이상황(李相璜)·영부사(領府事) 심상규(沈象奎)·좌의정(左議政) 박종훈(朴宗薰)·풍은 부원군(豐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예조 판서(禮曹判書) 김유근(金逌根)·참의(參議) 김경선(金景善)이다.】 청대(請對)하였기 때문이다. 이상황(李相璜)이 말하기를,

"오늘은 곧 명년(明年)의 아세(亞歲)입니다. 명년은 곧 우리 대왕 대비 전하(大王大妃殿下)께서 영광스럽게 오순(五旬)이 되시는 해입니다. 삼가 방례(邦禮)를 상고해 보건대, 자성(慈聖)께서 오순이나 육순이 되시는 해에는 옥책(玉冊)을 바쳐 헌수(獻壽)하고, 위에 고하고 아래에 반포하는 것이 마침내 이전(彝典)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 등이 오늘 등대(登對)한 것은 장차 성명(成命)을 우러러 청하여 거행하는 바탕으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하니,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지난번의 존호(尊號)는 국전(國典)이 될 뿐만이 아닌데, 아들과 손자가 이미 대위(大位)에 올랐으니, 이는 상천(上天)께서 돌보아 주신 인애(仁愛)와 조종(祖宗)께서 쌓으신 음덕(蔭德)이므로, 비록 마음속에 쌓여온 아픈 회포와 몹시 비통했던 심정을 두루 생각하여 청종(聽從)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지금 청한 일은 과연 어찌 감당하겠는가?"

하였다. 이에 여러 대신(大臣)들이 번갈아 겸양(謙讓)하는 뜻이 온당하지 못함을 아뢰니,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대전(大殿)의 처지(處地)로 말한다면, 오늘날은 일마다 진실로 내가 지도(指導)하는 데 따라서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비록 춘추(春秋)가 한창때라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자손이 되어서 부모(父母)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것이 곧 대효(大孝)가 되는 것인데,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반드시 억지로 하고자 하는 것이 어찌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으며, 어버이의 뜻을 어기는 것이 과연 노인을 봉양하는 도리가 되겠는가? 대전은 반드시 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할 것이니, 경들은 다시 많은 말을 하지 말도록 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나로 하여금 기필코 받게 하려는 것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듯하나, 이것이 어찌 나를 기쁘게 하는 도리이겠는가? 또 나의 뜻은 대전의 춘추가 한창이고, 나라도 태평(太平)하고, 나 또한 연수(年壽)가 6,70세가 되어서 대전이 이 일을 하려고 한다면 정리(情理)가 있는 바 나도 굳이 사양할 마음은 없다."

하고, 또 하교하기를,

"만약 내 말을 온당하지 못하다고 여긴다면 모름지기 써서 후세에 전하기를,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여군(女君)이 사체(事體)를 알지 못하여 온당하지 못한 고집(固執)을 세웠다.’고 하면 훗날 상고하는 자 또한 나의 고집을 웃고 마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니, 어찌 성효(聖孝)에 휴손(虧損)됨이 있겠는가?"

하고, 또 하교하기를,

"내가 본래 격화(膈火)가 많이 있어서 마음에 맞지 않으면, 울화(鬱火)가 끓어 오를 뿐만 아니라, 화기(火氣)가 문득 상승하여 진실로 감내(勘耐)하기 어렵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존호(尊號)를 올리고 잔치를 바치는 일은 자교(慈敎)가 이와 같이 지극히 간절하시니, 감히 받들어 좇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 고하고 아래에 반포하는 의절(儀節)은 삼가 정묘조(正廟朝) 갑인년068) 의 전례에 의거하여 거행하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454면
  • 【분류】
    왕실(王室)

○己亥/召見時原任大臣禮堂及豐恩府院君熙政堂 【奉朝賀南公轍、領議政李相璜、領府事沈象奎、左議政朴宗薰、豐恩府院君、趙萬永、禮曹判書金逌根、參議金景善。】 請對也。 相璜曰: "今日, 卽明年之亞歲也。 明年, 卽我大王大妃殿下光躋五旬之歲也。 謹按邦禮, 慈聖五旬六旬之年, 進冊稱觴, 上告下布, 遂成彝典。 臣等之今日登對, 將以仰請成命, 以爲擧行之地矣。" 大王大妃敎曰: "向來尊號, 非但爲國典, 子與孫旣升大位, 此上天眷顧之仁, 祖宗積德之蔭, 雖以予積傷之懷, 絶悲之情, 不能不周思而聽從, 今玆所請之事, 果何所當乎?" 諸大臣迭奏其不當謙抑之義, 大王大妃敎曰: "以大殿處地言之, 今日則每事固當隨予指導而爲之。 而雖春秋鼎盛之時, 予所不欲爲之事, 爲子孫而承順父母之志, 是爲大孝, 必欲强予之不欲爲者, 豈悅於予心? 而違親之志, 是果爲養老之道理乎? 大殿必當體予之心, 卿等更勿多言。" 又敎曰: "所不欲爲之事, 必欲使之受之者, 似欲爲悅予而然, 而是豈爲悅予之道乎? 且予之志, 大殿春秋鼎盛, 國家太平, 予亦壽躋六七十歲, 而大殿欲爲此擧, 則情理所在, 予且無斷斷必辭之心矣。" 又敎曰: "如以予言爲不當, 則須書以傳後曰, ‘有如此如此之事, 女君不識事體, 立其不當之固執’ 云爾, 則後考者, 亦不過笑予之固執而已, 有何虧損於聖孝乎?" 又敎曰: "予本多膈火, 心不合則非但過於沸鬱, 氣輒上升, 實難堪耐矣。" 上曰: "上號進饌, 慈敎如是懇惻, 不敢不承順。 而告布之節, 謹依正廟甲寅已例擧行。"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454면
  • 【분류】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