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의정 홍석주가 문과의 증광·식년·별시 및 정시에서 역서하는 규정을 혁파할 것을 아뢰다
좌의정 홍석주(洪奭周)가 아뢰기를,
"문과(文科)의 증광(增廣)·식년(式年)·별시(別試) 및 정시(庭試)에서 역서(易書)061) 하는 규정이 있는 것은 간사한 것을 방지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법을 설치한 본뜻은 오로지 주사(主司)하는 자가 거자(擧子)의 필적(筆跡)을 볼 수 없게 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지금의 이른바 역서란 다만 글 첫머리의 몇 줄만 등사(謄寫)하는지라 고교(考校)할 즈음에 그 본초(本草)를 어렵지 않게 취해 보니, 일의 성실하지 못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한결같이 구례(舊例)에 의해 전편(全篇)을 다 등사하려고 한다면, 오늘날의 한 과장(科場)의 대책문(對策文)이 걸핏하면 수천 장에 이르기 때문에 이를 등사하고, 고준(考準)할 즈음에 장차 수십 일을 끌어감을 면하지 못할 것이며, 또 그 사역(寫役)이 이미 적지 않아서 서수(書手)도 또한 더욱 많아야 할 것이니, 잠겨진 원(院) 안에 허다한 한잡인(閑雜人)을 첨가해 놓고 그 청숙(淸肅)하기를 구한다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외읍(外邑)에 이르러서는 역서에 대한 폐단이 더욱 심합니다. 글씨에 능한 아전을 두루 열읍(列邑)에 배치해야 하고 종이와 먹의 비용도 모두 과렴(科斂)해 내야 할 것이니, 소민(小民)에게 해를 끼침도 더욱 고려해야 마땅합니다. 폐일언하고 혁파(革罷)함이 옳은 것은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혹 유래(流來)된 성전(成典)이라 하여 하루아침에 다 혁파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면, 먼저 초시(初試)와 전시(殿試)부터 그 역서하는 것을 제거하면 또한 구장(舊章)을 존속시키고 유폐(流弊)를 제거하는 뜻이 둘 다 행해지고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규(科規)를 변통하는 것은 사체(事體)가 가볍지 아니하니, 청컨대 널리 물어서 처리하게 하소서."
하였다. 대신과 예조(禮曹)와 관각(館閣)의 당상(堂上)들에게 수의(收議)한 바 모두가 같음으로 인하여 초시(初試)·회시(會試)를 논하지 말고 모두 아울러 혁파할 것을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439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註 061]역서(易書) : 시관(試官)이 시험 답안지에 쓴 응시자(應試者)의 필체(筆體)를 알아보고 사정(私情)을 둘까 염려하여 다른 사람을 시켜 모든 답안(答案)을 개서(改書)하게 하는 일. 이 역서한 답안을 가지고 시관이 채점(採點)함.
○左議政洪奭周啓言:
"文科增、式年、別試及庭試之有易書, 蓋欲以防奸也。 設法本意, 專欲使爲主司者, 不得見擧子之筆跡, 而今之所謂易書, 只謄篇首數行, 及其考校之際, 無難取看其本草, 事之不誠, 莫此爲甚。 如欲一依舊規, 盡謄全篇, 則見今一場對策之文, 輒至累千張, 謄寫考準之際, 將不免拖到屢旬, 且寫役旣甚不些, 書手亦當益多, 鎖院之內, 添却許多閑雜之人, 求其淸肅, 又安可得? 至於外邑, 易書其弊尤甚。 能書之吏, 遍排列邑, 紙墨之費, 皆出科斂, 貽害小民, 尤所當恤。 蔽一言曰可罷無疑。 如或以流來成典, 有難一朝盡罷, 則先從初試殿試, 而除其易書, 亦足使存舊章革流弊之意, 兩行不悖。 而科規變通, 事體不輕, 請博詢處之。" 因大臣禮曹館閣堂上收議僉同, 命毋論初會試, 一倂革罷。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439면
- 【분류】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