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가 차대하다
왕세자가 차대를 행하였다. 좌의정 이상황(李相璜)이 아뢰기를,
"관(官)을 세워 덕(德)에 힘쓰며, 과거를 설행하여 인재를 모으는 것은, 임금이 세상을 제어(制馭)하는 권병(權柄)이며 마려(磨礪)하는 도구입니다. 만약 이러한 일들을 신중하게 다루지 않고 함부로 처리하며, 공정하게 하지 않고 사사로움에 빠진다면, 장차 사람들이 영예로움을 알지 못하게 되고, 영예로움을 알지 못하면 장차 사람들이 힘쓸 바를 알지 못하게 되며, 힘쓸 바를 알지 못하면 위에서 말한 마려(磨礪)하는 정치가 베풀어질 곳이 없게 되고, 명예와 절조(節操)가 없어져서 시끄럽게 분경(奔競)이 일어날 것이니, 세도(世道)의 근심이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재화(財貨)는 민생의 근본이니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재화가 고갈되고서 백성이 궁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백성이 궁하고서 국가가 위태롭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재화가 고갈되었다고 하는 것은 생산을 넓히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쓰는 것을 절약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근도(謹度)194) 에 유의(留竟)하고자 한다면, 궁·부(宮府)가 나누어 있다고 하여 그 재화를 달리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내탕고에 보관해 쌓아둔 재화가 언뜻 보기에는 비록 주상의 사유(私有)와 같다하더라도 그 실상(實狀)은 모두가 똑같이 백성들의 고혈(膏血)에서 나온 것입니다. 재화를 마련하기가 이와 같이 어려운데도 용도를 절약하지 않아 지급(支給)하는 데에 부족하다면, 그 추세는 반드시 외부(外府)에 파급될 것이고, 외부에서 부족하다면 그 유폐(流弊)가 반드시 아랫 백성들에게까지 파급될 것입니다. 교묘하게 취하고 구차히 거두어 이익을 구하여 마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이니 나라가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옛날 사람의 치도(治道)를 말하는 자는 반드시 요행(僥倖)을 억제하고 화리(貨利)를 멀리 하므로서 큰 목표로 삼았는데, 요행을 바라고 이익을 말하는 자가 대다수인데도 나라가 나라 꼴이 되는 것을 신은 혹시나마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요행의 문이 한번 열리면 요행을 얻는 자는 반드시 한두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닌데, 한 사람이 이와 같으면 곁에서 보고 요행을 바라는 자가 많아 질 것은 그 형세가 뻔한 것입니다. 요행심이 이미 생겨나면 처음에는 분수에 넘치는 것을 바라고, 다음에는 연줄을 타서 출세하려 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구차히 얻을 것을 도모하여 장차 못하는 짓이 없을 것입니다. 요행이란 〈자기의〉 분수로는 얻을 도리가 없는데 얻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요행의 문이 한 번 열림으로 인하여 드디어 전후 좌우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분수에 넘치는 마음을 축적시키게 한다면, 이는 실로 난리를 부르는 단계가 되는 것이니, 일시(一時)의 인심(人心)이 복종(服從)하지 않을 뿐만이 아닙니다. 비록 근일(近日) 역적의 공초(供招) 가운데 범행에 관련된 여러 놈들로 말하더라도, 그 요행의 문이 있기 때문에 분수에 넘치는 일을 넘보는 마음이 싹텄으며 연줄을 타서 출세해보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경영(經營)하고 인재를 수람(收攬)하는 것은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려는 데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를 빙자해서 미쳐 날뛰며 마침내는 은연중(隱然中) 돌아갈 것이 있는 것처럼 하여, 요사하고 괴상한 일들을 꾸며내어 못하는 짓이 없었으니, 드디어 국가의 위신이 날로 떨어지고 민심이 날로 현혹되는 데 이른 것입니다. 이러한 부류들이 전후에 만든 나쁜 선례(先例)가 이제 모두 저하가 보시는 앞에서 폭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서 발각된 자가 우연히도 이 몇 놈에 그치는 것뿐이었으니, 몇 놈 이외에 잠복해서 숨어있는 몇 놈이 어찌 또 없겠습니까? 남은 걱정이 그치지 않으니 아직도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신은 그윽이 생각건대 이것이 두렵기가 적국에 의한 외환(外患)과 환부(萑苻)·황지(潢池)195) 의 무리보다도 더욱 무섭게 여겨집니다. 이번에 이른바, 이두(利竇)196) 라는 것도 또한 요행의 문[倖門]에서 발단된 것으로, 그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목전(目前)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나, 결국에 가서는 드디어 수백 수천의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병폐를 안겨다 주게 됩니다. 좌우에서 교활하게 잇구멍을 경영하지 않는 일이 없어서, 경외(京外)의 오랜 생업(生業)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근심어린 원망을 일으키고 식견 있는 사람들은 거개가 우려와 비탄을 품게되였으니, 예로부터 인심(人心)이 이반(離反)하는데 나라가 위태롭고 또 망하게 되지 않는 경우는 없는 것입니다. 간혹 위에 진언(進言)하는 자가 있어서, ‘백성들에게 병폐가 되지 않고 공변됨에 해를 끼치지 않고도 생재(生財)의 도리가 있다." 고 말한다면, 이는 곧 기망(欺罔)과 간롱(奸弄)이 심한 자일 것이니, 세상에 어찌 이치 밖의 일이 있겠습니까? 설마 있다고 할지라도 또한 필시는 교악하게 이끗을 추구하고 은밀히 수탈하려는 것이니, 차마 감히 이로써 위에 말씀 드릴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먼저 한두 사람을 취하여 드러나게 배척해서 준엄하게 법으로 다스려, 본연(本然)의 공변됨을 보인 연후에야, 여러 나쁜 싹들을 잘라낼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의 원망을 늦출 수 있는 것입니다. 신은 감히 이것 이외에 다른 근심이 다시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더욱이 시우(時憂)에 관계된 다급한 일이므로 감히 구구하게 아뢰는 것이오니, 바라건대 저하께서는 유념하소서. 오늘날 치홀(治忽)과 안위(安危)가 실로 여기에 달려 있어서 그 사이에 털끝도 용납할 수 없는데, 알고도 말하지 않는 것은 신이 감히 못하는 바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진달(陳達)한 바가 절실하고 충성스러우니, 마땅히 마음 속에 갚이 간직하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지금 막 내수사(內需司)에서 보고 한 것을 보니, 하나는 강령현(康翎縣)의 등산진(登山鎭)·순위도(巡威島)에 있는 사산(四山)의 소나무와 잡목(雜木) 및 염전(鹽田)·어전(漁箭)197) , 온량(溫梁)과 옹진부(瓮津府)·장구항(長臼項) 등지를 해사(該司)에 획속(劃屬)시키는 일이고, 하나는 구(舊) 풍덕(豊德)에 소재한 은신 군방(恩信君房) 사패 전답(賜牌田畓)의 민간(民間)에 잃어버린 것을 일일이 도로 찾는 일이며, 하나는 안주(安州)의 박비도(博飛島) 갈대밭[蘆田] 및 박천(博川)의 남신동(南新洞) 등지에서 작폐(作弊)한 일반인들을 형배(刑配)시키는 일인데, 모두가 달하(達下)하여 이보(移報)한 것들입니다.
내수사 수본(手本)은 번번이 외람된 것이 많기 때문에, 민읍(民邑)에서 받는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멀리는 무진년198) , 가까이는 정해년199) 에 계하(啓下)하거나 달하(達下)하여 신칙함이 매우 엄하였는데, 끝내 고칠 줄을 모르고, 또 이렇게 오류를 답습(踏襲)한 보고가 있으니, 진실로 행여나 조정에 기강이 있음을 알고 묘당(廟堂)의 신칙을 가벼이 보는 데 이르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습관은 결코 키워서는 않됩니다. 해도(海島)의 산 소나무[生松] 및 어염세(魚鹽稅) 등을 여러 궁방(宮房)과 각 아문(衙門)에 획속(劃屬)시키지 못하게 함은 사목(事目)이 지극히 엄중하고, 전토(田土)를 추심(推尋)하는 것은 스스로 연한(年限)이 있으며, 허다(許多)한 백성들이 매매하여 대대로 전해온 땅을 궁답(宮畓)이라 지목하여 말하는 것은 법전(法典)에 위배되는데, 더구나 전후의 도신(道臣)이 조사하여 판결한 송안(訟案)이 있는 경우이겠습니까? 양읍(兩邑)의 갈대밭[蘆田]을 점유하고 세금을 책징(責徵)하는 것은 백성들과 이(利)를 다투는 꼴이 되니, 일의 체면상 더욱 그럴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 본도(本道)에서 조사 보고한 것을 보니 지극히 상세한데, 모든 것이 내수사의 보고와 상반(相反)되고 있습니다. 본실(本實)이 어떠한지 깊이 따져 보지도 않고 어려움 없이 위에 보고한 것은 지극히 놀랄 만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그치지 않는다면, 조도(刁徒)의 무리가 고소(告訴)하여 법령을 농간하고 모점(冒占)의 금지를 범하도록 길을 열어주어, 내후(來後)의 폐단이 장차 이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될 것이니, 이는 아울러 그만 두어야 합니다. 이후에는 일이 긴급하고 중요하여 입달(入達)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아닌데도 오히려 다시 전과 같이 남잡(濫雜)한 일이 있다면, 당해 중관(中官)을 종중 과단(從重科斷)으로 엄히 감죄(勘罪)해야 합니다. 청컨대 이런 뜻으로 거듭 밝히는 분부를 내리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6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37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재정-상공(上供)
- [註 194]근도(謹度) : 《효령(孝經)》의 제절 근도(制節謹度)에서 온 말로, 알맞은 정도를 지키어 비용을 절약함을 뜻함.
- [註 195]
환부(萑苻)·황지(潢池) : 환부(萑苻)는 갈대풀이 많이 난 물가이므로 후세에 도적들이 숨어서 암약하는 소굴로 뜻이 바뀌었음. 황지(潢池)도 물이 괴어 있는 못의 명칭으로 《한서(漢書)》에 도적의 소굴로 일컬어 졌음.- [註 196]
이두(利竇) : 잇구멍.- [註 197]
○庚午/王世子行次對, 左議政李相璜達言:
"建官而懋德, 設科而蒐俊, 卽人君御世之柄而磨礪之具也。 若於此, 不能愼而流於濫, 不能公而涉於私, 則將人不知爲榮, 不知爲榮, 則將人不知所勸, 不知所勸, 則上所云磨礪之政, 無所於施, 名檢敗而囂競興, 世道之憂, 容有其極? 財是生民之本, 從古以來, 未有財竭而民不窮, 民窮而國不殆者。 財竭云者, 非謂生之不廣, 卽謂用之不節也。 苟欲留意於謹度, 則不可以宮府之有所分, 而異視其財。 今夫帑藏所積, 驟看, 雖若人主之私有, 然其實則均是生民膏血中來。 來處之不易如是, 而用之不節, 至於不給, 則其勢必浸及於外府, 外府又不給, 則其流之害, 必浸及於下民矣。 巧取苟辦, 求益不已, 民不堪命, 國將疇依? 古人之語治道者, 必以抑僥倖遠貨利, 爲大目, 望倖言利者衆, 而國能爲國, 臣未之或聞也。 倖門一開, 倖得者必非一二人而止, 一人如是, 傍觀而望倖者隨多, 其勢必至倖心旣生。 則始而覬覦, 繼而夤緣, 圖所以苟得者, 將無所不至倖者, 非分所當得而得之之謂也。 若因倖門之一開, 遂使前後左右之人, 皆蓄非分之心, 則此實召亂之階也, 非但一時人心之不厭而已。 雖以近日賊招中干連諸漢言之, 以其有倖門也, 故萌覬覦之心, 生夤緣之計。 經營搜剔者, 出於濟其所欲, 而藉賣跳踉, 則竟乃隱若有歸, 興妖作怪, 無般不有, 遂至國威日替, 民聽日惑。 此類之前後作俑, 今皆畢露於离照之下, 然因事而現發者, 偶止此數漢而已, 數漢之外, 亦豈無潛伏冥冥之幾漢乎? 餘憂未已。 尙有懍然, 臣竊以爲此之可畏, 有甚於敵國外患, 萑苻潢池之類也。 今所謂利竇云者, 亦從倖門中來, 求其始不過一二人目前之利, 而要其歸, 遂貽百千人無窮之病。 左右刁鑽, 無事不營, 使京外之有宿業者, 皆興愁怨, 有見識者, 擧懷憂歎, 從未有人心離而國不危且亡者也, 或有進言於上者以爲 ‘不病於民無害於公而有可以生財之道’ 云爾, 則此卽是欺罔奸弄之甚者, 世安有理外之事乎? 設使有之, 亦必是巧征而陰奪也, 忍敢以是聞之於上乎? 先取一二人, 顯斥而痛繩之, 以示本然之公, 然後群萌可折, 衆怨可弭矣。 臣非敢曰外此更無他憂, 而此尤係時憂之急者, 故敢控區區, 惟邸下, 念哉。 今日之治忽安危, 實在於此, 間不容髮, 知而不言, 臣所不敢也。"
答曰: "所陳切實, 忠款當服膺矣。" 又達言:
卽見內需司所報, 則一是康翎縣 登山鎭 巡威島四山松雜木, 及鹽田、漁箭, 溫梁、與瓮津府 長臼項等地, 劃屬該司事也, 一是舊豐德所在, 恩信君房賜牌田畓之見失於民間者, 一一還推事也, 一是安州、博飛島、蘆田及博川、南新等洞作弊民人, 刑配事也, 而俱是達下移報者矣。 以內司手本之輒多猥越, 民邑受弊。 往在戊辰, 近而丁亥, 以啓以達, 申飭截嚴, 而終不知悛, 又有此襲謬之報, 苟或知有朝綱, 不至輕視廟飭, 則寧有是也? 此習決不可長。 海島生松及魚鹽等稅之無得劃屬於諸宮各衙, 事目至嚴, 田土推尋, 自有年限, 許多民人買賣傳世之物, 指謂宮畓, 有違法典, 而況有前後道臣之査決訟案者? 至於兩邑蘆坰之占土於責稅, 係是與民爭利, 事面尤爲不然。 況今本道査報, 極其纖悉, 一切與司報相反。 不究本實如何, 無難登聞, 誠極可駭。 如是不已, 則啓刁徒陳告之奸, 干國典冒占之禁, 來後之弊, 將無所不至, 竝置之。 此後則如非事關緊重, 不得不入達者, 而猶復如前濫雜, 則當該中官, 斷當從重嚴勘。 請以此意, 申明分付。"
從之。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6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37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재정-상공(上供)
- [註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