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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30권, 순조 29년 6월 13일 을해 1번째기사 1829년 청 도광(道光) 9년

영흥 궁달리에 비를 세워 사적을 기록하게 하다

영흥(永興) 궁달리(宮闥里)에 비(碑)를 세워 사적(事蹟)을 기록하도록 하령(下令)하였다. 예조(禮曹)의 신목(申目)으로 인하여, 묘당(廟堂)에서 복달(覆達)하기를,

"성조(聖祖)의 국양지지(鞠養之地)를 지금에 이르기까지 찾아내지 못한 것은 실로 궐전(闕典)이 되는 것이었으나, 《능전지(陵殿誌)》 및 떠돌아 내려오는 전설(傳說)이 모두 이 터를 말하고, 많은 선비들의 상언(上言) 또한 반드시 근거가 있는 것이니, 조정에서 이미 이 말을 들은 후에 어찌 그대로 민멸(泯滅)케 하여 전(傳)함이 없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궁터가 반드시 모방(某方)에 있을 것이니, 다시 탐색할 필요는 없습니다. 용흥강(龍興江) 북쪽으로 준원전(濬源殿)과 서로 마주보는 곳에, 흑석리(黑石里)의 예에 따라 비를 세워서 사적을 기록하여, 그 땅을 알리게 하는 것이 진실로 사의(事宜)에 합당할 것입니다. 비문(碑文)을 예문관(藝文館)으로 하여금 찬진(撰進)케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326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乙亥/令永興宮闥里立碑紀蹟。 因禮曹申目, 廟堂覆達言: " 聖祖鞠養之地, 迄玆湮晦, 實是關典, 而《陵殿誌》及流來傳說, 皆云是基, 多士上言, 亦必有據, 朝家旣聞之後, 豈可使遂泯無傳乎? 今則宮基之必在某方, 不必更爲搜覓, 就龍興江濬源殿相望處, 依黑石里例, 立碑紀蹟, 以識其地, 允合事宜。 碑文令藝文館撰進。" 依之。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326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