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가 다시 정월 초 하루 즉위 30년을 기념하는 예의 거행 허락을 상소하다
왕세자가 또 상소하였는데, 이르기를,
"신이 인자(人子)로서의 끝없는 정성으로 지난 역사에 드물게 보는 경사를 만났으니, 비록 신으로 하여금 노래자(老萊子)084) 와 같이 색동옷을 입고 날마다 장수(長壽)의 술잔을 올리며, 균천(勻天)의 광악(廣樂)085) 을 연주하면서 늘 만세를 부르짖더라도, 오히려 마음 속의 정성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구구히 헤아려 보건대, 항상 우리 성상의 공순하고 검소한 덕이 요·우(堯禹)를 능가(凌駕)하므로 감히 풍성한 잔치를 베풀 계획은 생각지도 못하였으며, 오직 경사를 반포(頒布)하고 축수(祝壽)의 술잔을 드리기 위하여 글을 올려 진청(陳請)하였으며, 마침내 비지(批旨)를 받자오니 과연 겸손하신 뜻이 선왕(先王)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훌륭하신 말씀이 흉년으로 검소하여야 함을 깊이 경계하셨습니다. 신은 말씀을 받들고 머리를 조아리며 흠앙하고 칭송하기에 겨를하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다시 다른 말이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의 마음이 더없이 서운하여 실망(失望)한 것은 우선 논할 것도 없고, 삼가 생각건대, 성상께서 끝내 사양하는 것은 하늘의 사랑을 앙답하는 것이 아니며, 인정을 굽어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왜 그런가 하면 복록은 하늘이 준 것이므로 요순도 사양할 수 없으며,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를 이루는 것이니 신자된 자가 그만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무릇 그만 둘 수 없는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사양할 수 없는 복록을 송축하려는 것은, 역시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에 당연한 바입니다. 하물며 열성조(列聖祖)께서 행하던 바로써 이미 만세의 규범이 된 것이겠습니까? 성상께서 어찌 굳이 사양하며 그것을 받으시지 않을 것이며, 신도 어찌 한번 청하여 보고는 그냥 중지하고 말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올가을의 농사 일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3남이 애초에 흉년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전 도내(道內)가 큰 흉년이 든 것과는 다르니 진대(賑貸)와 관휼(寬恤)하는 정책으로서 백성을 돌보아주고 안접(安接)하도록 한다면, 남쪽 지방을 걱정하는 마음을 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진찬(進饌)하는 일은 또 진연(進宴)하는 것과는 달라서 의식 절차가 간소하고 물품이 아주 간략합니다. 간소하므로 크게 베푸는 것에 관계되지 않고, 간략하므로 경비에 손해가 없으니, 밝고 검소한 성덕(盛德)에 누를 끼치는 데에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흉년을 핑계로 하여 사양할 수가 없으며, 신은 감히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서 합당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감히 문자를 거듭 다듬어 간곡한 마음을 우러러 호소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하늘의 돌보심을 생각하시고, 우러러 바라는 하찮은 정성을 살피시어 윤허하시는 말씀을 빨리 내려 주시어서 소청을 들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너의 정성이 이와 같으니 모두 마땅히 따르도록 하겠다. 그러나 저 굶주린 백성을 생각하니 실로 매우 불안하다. 너는 모름지기 나의 이 뜻을 본받아 여러 가지 의물(儀物)들을 한결같이 간소하게 줄이도록 하라, 그렇게 한 연후라야 더욱 뜻을 받드는 효도가 될 것이다."
하고, 이어서 지신(知申)을 보내어 전유(傳諭)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1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농업-권농(勸農)
○庚申/王世子又上疏曰: "臣以人子不匱之誠, 値前牒罕覯之慶, 雖使臣被老萊之綵日衣, 上長樂之壽, 張勻天之廣樂, 日擧嵩山之呼, 猶未可以自盡於心。 區區忖量, 亦常仰我聖上恭儉之德, 軼美堯禹, 故不敢思豐亨豫大之圖, 惟以頒慶祝觴, 拜章陳請, 及伏奉批旨, 果然撝謙之意, 不欲比觀於先王太哉之言。 深示存儆於儉歲。 臣手擎首頓, 欽仰讃誦之不暇, 固不當復容他說。 然臣心之觖然失圖, 姑置勿論, 竊敢謂聖上之克讓, 非所以仰答天眷, 俯循人情也。 何者, 福祿, 天之所貺, 而堯、舜不得以辭, 愛敬, 人之所立, 而臣子不能以已。 夫以不能已之愛敬, 思頌不得辭之福祿, 亦天理人彝之所當然。 況列祖攸行, 已成萬世之彝典? 聖上安得固讓而不有也, 臣安得一請而遂止也? 雖以今秋穡事言之, 三南未始不失稔, 而旣異全省之大無, 賑貸寬恤, 庶可懷保而奠安, 以弭南顧之憂。 進饌之擧, 又異於進宴, 儀節旣簡, 品物太略。 簡則不涉於張大, 略則無損於經用, 恐不至貽累於昭儉之盛德, 聖上不足以歉年爲解, 臣不敢以將順爲當也。 玆敢申具文字, 仰控至懇。 伏望聖上, 念眷于之天意, 察顒若之微忱, 亟垂兪音, 俾準所請。" 批曰: "爾之誠忱如此, 竝當勉從矣, 然念彼飢氓, 實深不安。 爾須體予此意, 凡百儀物, 一從簡省。 然後尤爲養志之孝也。" 仍遣知申傳諭。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1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농업-권농(勸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