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 한식림이 진달한 글 중에 망발한 것으로 파직하다
승정원에서 계달하기를,
"지평 한식림(韓植林)이 진달한 글이 승정원에 도착하였는데, ‘대신(大臣) 조태억(趙泰億)의 건백(建白)’이라는 귀절이 있었습니다. 조태억이 저지른 범죄가 어떤 것이고, 그 죄명이 어떤 것인데, 주달하는 내용에 그의 관직과 성명을 거침없이 쓴 것은 만번 놀라운 일입니다. 그 원본은 방금 물리쳐 보내었습니다마는, 엄중히 처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명령을 내려 그 원본인 글을 받아 들이라고 하령하였다. 그 글의 대략에 이르기를,
"함흥(咸興)에 있는 증 판서(贈判書) 유응수(柳應秀)의 창의사(彰義祠)와 영흥(永興)에 있는 증 판서 김응복(金應福)의 정충사(精忠祠)와 경성(鏡城)에 있는 증 지평 이붕수(李鵬壽)의 창렬사(彰烈祠)는 이미 은액(恩額)을 내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길주(吉州)의 명천사(溟川祠)는 적개 공신(敵愾功臣) 효장공(孝莊公) 허유례(許惟禮)의 사우(祠宇)인데, 허유례는 저 멀리 광묘(光廟)정해년061) 이시애(李施愛)의 역란(逆亂) 때 사옹원 별좌(司饔院別坐)로 있으면서 서울에 있다가 그 아비가 역적에게 붙잡혔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가겠다고 청하니, 왕이 허락하였습니다. 그런데 역적은 이미 험준한 지세를 점령하고 있어 그 형세를 당할 수 없었으므로, 허유례는 곧바로 역적의 진중에 들어가서 간곡한 말로 유인하여 그 아비를 풀어주게 하였습니다. 경성(鏡城) 운왜원(雲倭院)에 이르러 기묘한 계책으로써 역적이 술에 취하여 조는 틈을 이용하여 장막의 새끼줄을 끊어 그를 덮어씌우고 이어 결박하여 베어 죽였습니다. 그리하여 큰 난리가 평정되고 승전 소식을 아뢰자, 그를 길성군(吉城君)으로 봉하고 옥새(玉璽)를 찍은 문서로 그 훌륭함을 포창하기를, ‘이미 그 아비를 죽을 땅에서 탈출시키고 또 나에게 반역(叛逆)한 자를 대적하여 난리를 평정한 그 절개는 충효(忠孝)를 모두 보전(保全)하였다.’하였는데, 영묘(英廟)정미년062) 에, 대신 조태억의 건백(建白)에 의하여 판서를 증직하였고 효장으로 시호를 내렸습니다. 임진년063) 왜군이 침입하였을 때에는 허유례의 증손 허진(許珍)과 현손 허대성(許大成)이 적과 싸우다 죽음으로써 순절(殉節)하였으며, 갑자년064) 에 이괄(李适)의 변란에는 허유례의 5대손 허수민(許秀敏)과 6대손 허성일(許誠一)이 훈적(勳籍)에 이름이 실렸으니, 그들의 정충(貞忠)이 대대로 두드러져서 임금의 포상이 여러번 내렸습니다. 숙묘(肅廟)기해년065) 에 원우(院宇)를 훼철(毁撤)하라는 명령이 있었으나, 길성군의 사우는 그 공이 사직을 보존하는데 있다고 하여 특명으로 그냥 두었습니다. 포장(褒奬)의 융숭함은 마땅히 유감스러울 것이 없으나 은액(恩額)을 아직까지 내리지 않았으니 흠전(欠典)이라고 이를 만합니다. 신은 생각건대 특별히 사액(賜額)하는 은전을 시행하시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요즈음에 들어서 감시(監試)066) 때마다 재산이 많고 무식(無識)한 무리들이 과시(科試)에 함부로 부정 합격을 하고, 빈한한 집안의 재주 있는 선비들은 거의 낙방하고 말으니, 학문을 일으키고 배양하는 도리에 매우 한심한 일입니다. 올 가을 본도(本道) 식년 과시(式年科試)의 출방(出榜)할 때를 기다려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면시(面試)로 취재(取才)하여 회시(會試)067) 에 응시하게 하고, 문필(文筆)이 보잘것 없는 자는 군대에 보충시켜 징계하게 하소서.
북관(北關)은 땅이 기름져서 곡식이 천하고, 남관(南關)은 땅이 메말라서 곡식이 귀합니다. 이리하여 혹 흉년을 당하게 되면 북쪽의 곡식을 남쪽에 옮겨다가 구제하는데 이는 진실로 흉년을 구제하는 정사입니다. 그러나 풍년이 들면 백성의 굶주림을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데, 오히려 북쪽에서 온 곡식이라고 하여 남쪽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간특한 아전의 무리들이 그것을 빙자하여 곡식이 귀한 지방에서 이익을 도모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환곡(還穀) 외에 환곡이 점점 갑절로 늘어나서 고독하고 잔약한 백성들의 집에 환곡이 자그마치 10석이나 되고 그외의 다른 곡식도 역시 5석 정도쯤 되니, 고독하고 잔약한 백성은 파산(破産)하고 직업을 잃습니다. 또 각읍에서는 읍창(邑倉)과 산창(山倉)이 있는데, 산창의 곡식은 거칠고 읍창의 곡식은 정실(精實)합니다. 그리고 해마다 가을에 거두어 들일 때를 당하면 곡식이 정실한 창고에서는 모곡(耗穀)을 절급(折給)하지만, 곡식이 거친 데에서는 모곡과 함께 창고에 보관합니다. 해마다 이와 같이 하여 산(山)마을에서는 읍창으로 납부하고 들에서는 산창의 곡식을 받아 그들의 교묘한 농간이 무상(無常)하니, 백성이 어떻게 생활을 영위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도신에게 분부하여 이른바 북쪽에서 가져오는 곡식을 흉년이 아닐 때는 일체 엄금하게 하시고, 각읍의 산과 들에서 옮겨가고 옮겨 바치는 폐단을 일일이 혁파하소서."
하니, 대답하기를,
"사액(賜額)하는 것은 금령이 있으며, 면시(面試)에 대한 일은 창졸간에 할 수 없는 일이다. 환곡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도(道)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먼 북쪽 지방에 가장 고질적인 폐단이 있으니 곧 내가 매우 근심하는 바이다. 묘당에서 본도 도신에게 행회(行會)하여 특별히 바로잡도록 하라. 너의 글 가운데에 망발(妄發)한 것이 있는데, 먼 지방의 사람을 심히 나무랄 필요는 없으니 파직하는 율로 시행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276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왕실-사급(賜給) / 재정-국용(國用)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법-탄핵(彈劾)
- [註 061]정해년 : 1467 세조 13년.
- [註 062]
정미년 : 1727 영조 3년.- [註 063]
임진년 : 1592 선조 25년.- [註 064]
갑자년 : 1624 인조 2년.- [註 065]
기해년 : 1719 숙종 45년.- [註 066]
감시(監試) : 생진시(生進試), 곧 사마시(司馬試)인데, 팔도(八道)의 거자(擧子)가 모두 서울에 집중(集中)하면 그 폐단을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초시(初試)는 각도(各道)에서 보이고 회시(會試)는 서울에서 보였음.- [註 067]
회시(會試) : 중앙과 지방에서 초시에 합격한 사람을 서울로 모아 2차로 보이는 시험.○己丑/政院達言: "持平韓植林, 陳書到院, 而有大臣趙泰億建白之句。 泰億之負犯何如? 罪名何如? 而章奏之間, 乃以官職姓名, 肆然書之者, 萬萬駭惋, 原書纔已退却, 而不可不嚴處, 令原書捧入, 其略曰: ‘咸興之贈判書柳應秀之彰義祠, 永興之贈參判金應福之精忠祠, 鏡城之贈持平李鵬壽之彰烈祠, 已賜恩額。 而吉州之溟川祠, 乃敵愾功臣孝莊公 許惟禮之祠宇也。 惟禮, 粤在光廟丁亥施愛逆亂之時, 以司饔別坐, 在京聞其父陷賊, 請往, 上許之。 賊旣負險, 勢莫能抗, 惟禮直入賊中, 緩辭以誘, 乃釋其父, 至鏡城 雲倭院, 設奇策乘賊醉睡, 絶幕繩覆而掩之, 縛而斬之, 大亂遂定, 捷奏封吉城君。 璽書褒美曰, 旣脫父於將亡。 又敵予之所愾, 夷險一節, 忠孝兩全。 英廟丁未, 因大臣趙泰億建白, 贈判書諡孝莊。 壬辰倭寇, 惟禮曾孫珍及玄孫大成, 死敵殉節, 甲子适變, 惟禮五代孫秀敏及六代孫誠一, 載名勳籍, 貞忠世著, 天褒屢降。 肅廟己亥, 有院〔宇〕 毁撤之命, 而吉城君祠宇, 則以功存社稷, 特命仍存。 優奬之盛, 宜無所憾。 而恩額未揭, 可謂欠典, 臣以爲特施賜額之典宜矣。 挽近以來, 每當監試, 則饒財蔑學之類, 橫竊科試, 貧寒才學之士, 擧皆見落, 其於作成培養之道, 誠極寒心。 自今秋本道式科, 待其出榜, 令道臣面試取才, 許赴會試, 其無文筆者, 充軍以懲, 北關地饒穀賤, 南關土瘠穀貴, 或値饉荒, 則移北穀賙濟之, 此實出於救荒之政也。 豐年則無關於憂民之饑, 而猶且稱之以北來穀, 而分還於南民者, 奸吏輩因緣釣利於穀貴之地故也。 緣此而還外之還, 次次加倍, 殘獨之戶, 還米多至十石, 各穀亦幾五石, 孤殘之民, 破家失業, 至於各邑有邑倉ㆍ山倉, 而山倉穀麤, 邑倉穀精, 則每當秋捧之時, 折耗於穀精之倉, 至其麤處則竝耗留庫, 年年如之, 自山納邑, 自野受山, 幻弄無常, 小民何以聊生? 伏願分付道臣, 所謂北來穀, 如非凶歉, 則一切嚴禁, 各邑之山野移受移納之(弊)〔弊〕 , 一一痛革。" 答曰: "賜額有禁, 面試非倉卒可行事也。 至於還穀事, 何道不然? 而深北之最尤痼(弊)〔弊〕 , 卽余所深憂者, 自廟堂行會本道道臣, 使之另加釐革。 爾書中有妄發, 遠人不必深責, 施以罷職之典。"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276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왕실-사급(賜給) / 재정-국용(國用)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법-탄핵(彈劾)
- [註 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