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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7권, 순조 25년 11월 19일 임인 1번째기사 1825년 청 도광(道光) 5년

우의정 심상규가 만백성의 고통을 헤아려 달라는 장문의 상소를 올리다

차대하였다. 좌의정 이상황이 아뢰기를,

"이에 앞서 재세(災歲)에 곡식을 허비하는 것 때문에 주금(酒禁)의 영을 반포해 행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소민(小民)은 범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두려워할 줄을 아는데, 반호(班戶)는 전혀 법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범한 자가 날로 들립니다. 법사(法司)의 이례(吏隷)가 수색하러 들어가면 번번이 등위(等威)가 있다고 하면서 마음대로 묶어 때리고, 혹은 일찍이 법관(法官)을 지냈다는 것으로 친당(親黨)을 비호하기도 하여 금리(禁吏)를 제거하는 일까지 있으니, 이는 거의 조령(朝令)을 이기려는데 가깝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이후에는 반호(班戶)가 이 죄과(罪科)를 범하면 일체 형배(刑配)하고, 일찍이 법관을 지낸 자로 금리를 제거한 자는 현고(現告)를 받아서 나감(拿勘)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우의정 심상규가 한 장의 글을 올려 말하기를,

"고 상신(相臣) 김육(金堉)의 사면(辭免)하는 글 가운데 ‘직(職)이란 몸을 위한 것이며 말이란 나라를 위한 것이니, 신(臣)의 몸을 위한 직을 버리더라도 신의 나라를 위한 말을 쓴다면 신이 물러나더라도 관직은 빈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는데, 직을 행함은 그대로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신이 바라는 바도 실로 이와 같고, 또한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용루(庸陋)하여 중임(重任)을 감당하지 못하는 정상을 깊이 통촉하시고, 일찍이 척면(斥免)하여 오랫동안 성간(聖簡)의 누(累)가 됨이 없게 한다면 국사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신은 가만히 생각건대 하늘이 이 백성을 내어 임금을 세워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으니, 이 임금은 백성을 위해서 세운 것이지 임금을 위해서 백성을 준 것이 아닙니다. 세대를 계승(繼承)한 임금에 있어는 이 백성이 또 모두가 조종(祖宗)께서 남겨 주어 우리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고로 성철(聖哲)한 임금은 하늘이 백성을 위해서 임금을 세운 것임을 알고, 천심(天心)이 매우 백성에게 은혜롭고 사랑함을 알아서 반드시 하늘을 받들고 백성을 길렀으니, 바로 《서경(書經)》에 이른바, ‘오직 하늘은 백성에게 은혜로우니 임금은 하늘을 받들어야 한다.’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덕(德)으로만 선정(善政)을 할 수 있고, 정사는 백성을 기르는 데 있다.’고 하였는데,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덕은 한갓 선(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땅히 그 정사를 선하게 해야 하며, 정사는 한갓 법만이 아니라 그 백성을 기르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이 육부(六府)가 되고,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이 삼사(三事)가 되는데, 모 백성을 기르는 정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무릇 요령 있게 잘 성취하여 그 지나친 것을 제어하고 보상(輔相)하여 그 미치지 못한 것을 보충하는 것은 또 모두가 백성에게 좌우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임금의 직분은 오직 백성을 보양하는 것으로써 천록(天祿)을 누리고 천위(天位)를 보존하는 것은 민심을 얻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주역(周易)》 박괘(剝卦)의 상(象)에 말하기를, ‘산(山)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박(剝)이니, 위에서 아래를 후(厚)하게 해야 그 거처함이 편안하다.’고 하였고, 익괘(益卦)의 단(彖)에는 말하기를, ‘익(益)은 위를 덜어 아래에 보태는 것이니, 백성들의 기뻐함이 끝이 없다.’고 하였는데, 주자(朱子)는 해석하기를, ‘산이 땅에 붙어 있는데, 오직 땅이 두텁기 때문에 산이 편안하게 붙어 있어 흔들리지 않는다. 인군(人君)도 아래를 두텁게 하여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그 지위 역시 편안해서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위를 덜어서 아래에 보태는 것이 익(益)이며, 아래를 덜어서 위에 보태는 것을 손(損)이라 하는데, 그렇게 된 까닭은 나라의 근본이 후하면 나라가 편안하고 임금도 편안하기 때문에 익이 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이와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대개 산의 높음이 땅에서 나온 것이지만 도리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마치 임금이 백성들의 위에 자리하지만 도리어 백성에게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이 임금된 까닭은 백성이 있기 때문이니, 임금이면서 백성이 없다면 어디에 의지해서 임금 노릇을 하겠습니까? 임금된 자가 참으로 그 지위를 편안하게 함이 백성이 있음으로 말미암은 것을 안다면 백성의 삶을 후하게 하여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익(益)이라는 말은 증가하는 바가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이제 손(損)인데도 익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위에서 자신을 검약(儉約)하여 남을 여유 있게 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기뻐하여 위를 받들 것이니, 어찌 익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자기를 후하게 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위를 배반하게 될 것이니, 어찌 손이라 말하지 않겠습니까? 위를 덜어서 아래를 후하게 하는 것이 익이 되고 편안함이 되니, 인군이 백성에게 이렇게 하기를 힘쓰는 것은 그렇게 함이 스스로 익이 되고 스스로 편안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개 외로운 한 몸이 억조 백성 위에 붙어 있는데, 참으로 덕정(德政)으로 이 억조의 백성을 길러서 생업(生業)에 편안하고 즐겁게 하여 그들 마음을 후히 맺어 두지 않는다면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의 말을 이끄는 것도 그 위태로움을 비유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런데 혹 이 억조의 백성을 자기를 받드는 자들로 여겨서 그 위에서 함부로 하고 돌볼 줄을 모른다면 반드시 위태롭고 망하게 됨은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舜)임금이 우(禹)임금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해야 할 자는 백성이 아니겠는가?’ 하였고, 소공(召公)성왕(成王)에게 경계하기를, ‘백성들의 어려움을 돌보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였으며, 오자(五子)는 노래를 지어 황조(皇祖)의 훈계를 계술하기를, ‘백성은 가까이는 해도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되며,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하였고, 무왕(武王)은 군사들에게 맹세하면서 고인(古人)의 말을 인용하기를, ‘우리를 어루만져 주면 임금이요 우리를 학대하면 원수이다.’고 하였으며, 맹자(孟子)·주(桀紂)의 일에 대해 말하기를, ‘·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 백성을 잃었다는 것은 그 마음을 잃은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인군은 지극히 높고 소민(小民)은 지극히 낮으며, 인군은 지극히 강하고 소민은 지극히 약해서 임금이 백성을 살리고자 하면 살릴 수가 있고 죽이고자 하면 죽일 수도 있으니, 이는 두려워할 자로서 임금보다 더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순임금은 말하기를 ‘두려워할 자는 백성이 아닌가?’고 하였고, 소공은 말하기를, ‘백성들의 어려움을 돌보고 두려워해야 합니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백성은 두렵고 험(險)함을 알면 스스로 길러 편안하게 해주고 은혜로써 온화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감히 쉽게 여기거나 소홀하게 할 수 없고 더욱 감히 학대하거나 괴롭게 할 수 없습니다. 명주(明主)는 그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암주(闇主)는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두려워하게 하는데,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그 백성을 두려워하는 자는 창성(昌盛)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자기를 두렵게 하는 자는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임금과 백성은 세력으로 말하자면 하늘과 땅처럼 현격하여 짝이 될 수 없으나 정으로 말하자면 신체(身體)가 서로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형세가 성글게 되면 헤어지고 정이 친하면 합하게 되는데, 친하기 때문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요, 성글기 때문에 낮추어 본다고 말한 것이니, 친하게는 해도 성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데, 근본이 튼튼하지 못한 것을 선유는 말하기를, ‘비록 강함이 진(秦)나라와 같고, 부(富)함이 수(隋)나라와 같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멸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고인(古人)의 말이란 바로 선민(先民) 사이에 전해온 말인데, 무왕(武王)이 인용하며 백성들의 상정(常情)이 이와 같음을 밝힌 것이니, 군민(君民)의 분의에 있어 어찌 나를 학대한다고 하여 마침내 원수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군민의 분의는 믿을 수 없고 백성들의 상정은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임금은 배가 되고 백성은 물이 되는데, 물은 배를 떠다니게 하지만 역시 배를 뒤엎기도 하니,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배는 군도(君道)요 물은 민심이다.’고 하였습니다. 배가 물의 도리에 따르면 뜨지만 어기면 침몰하듯이 임금이 민심을 얻으면 굳게 되지만 잃으면 위태롭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성왕(聖王)들은 그 마음으로 천하의 마음을 따르고 감히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욕심을 따르게 하지 않았으며, 두려워하고 조심하면서 감히 스스로 높은 형세를 믿지 않고 오직 하민(下民)들의 마음을 혹시라도 잃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경전(經傳)의 뜻과 성철(聖哲)의 가르침이 정녕 돈독하여 권계(券契)처럼 미덥습니다. 이제 우리 전하의 인성(仁聖)하심으로 조종(祖宗)의 큰 유업(遺業)을 받아 생민의 임금이 되셨는데, 덕(德)이 선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도 정사에 혹 법(法)이 없고, 정사에 법이 없으므로 백성 기름이 잘못되어 육부(六府)가 닦이지 않고 삼사(三事)를 모두 빠뜨리어 마침내는 팔도의 백성으로 하여금 곤췌(困瘁)함이 자심하게 하여 신음하는 소리가 여기 저기 들립니다.

경도(京都) 백성으로 말하자면 직임(職任)이 있는 자에게는 녹봉(祿俸)이 있고, 이서(吏胥)가 된 자에게는 늠료(廩料)가 있으며, 군오(軍伍)에 소속된 자에게는 요포(料布)가 있고, 상인은 이익을 남기며, 공작(工作)하는 자는 역역(力役)을 업으로 삼습니다. 또 한잡(閑雜)한 무리는 아침에 모이고 저녁에 흩어져 동쪽 서쪽으로 떠돌면서 경작(耕作)하지 않고 먹으며, 베를 짜지 않으면서 옷을 입는 자가 무려 수십 만이 됩니다. 공인(貢人)과 시인(市人)에 이르러서는 바로 양민(良民) 가운데서 가장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자들인데, 대대로 상업(常業)을 지켜 오기 때문에 열심히 봉공(奉公)하고 집에 항산(恒産)이 있기 때문에 삼가선 법을 두려워 합니다. 물건을 쌓아 놓고 판매하여 위의 쓰임에 이바지하고, 관역(官役)에 응하여 재화(財貨)의 경중은 나라 경용(經用)의 다과(多寡)에도 영향이 미칩니다. 그러므로 조가(朝家)에서 도민(都民)을 진휼(軫恤)함에 있어 반드시 이 무리들에게 먼저 했습니다. 지금은 진배(進排)하는 사비(私費)가 배나 넘고 짐짓 흠을 잡아내어 열에 아홉은 점퇴(點退)해서 반드시 구렁 같은 욕심을 채워 옛날에는 수량(銖兩)이던 것을 지금은 균석(勻石)으로 값을 받고, ’정채(情債)를 가하며 시일을 끌고 조종하여 순월(旬月)을 지연(遲延)시켜 반드시 주머니를 털게 합니다. 옛날에는 1, 2이던 것이 지금은 7, 8이 되어 후한 이익은 모조리 소비되는 데로 들어가고 넉넉한 값이 도리어 낙본(落本)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각사(各司)의 침어(侵漁)가 또 전전(輾轉)하여 더 넓어지니, 이에 공인(貢人)·시인(市人)의 생업이 날로 군색해 이에 예매(預賣) 대하(貸下)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도성 백성들이 먹고 사는 것이 공미(貢米)에 의지함이 많기 때문에 저자의 쌀값이 거기에 따라 내려가고 오르는 것인데, 한 번 예매한 후에는 다른 공물(貢物)을 아울러서 성책(成冊)하고 인하여 거기에 해당하는 상하(上下)039) 가 없으므로 장안의 쌀이 날로 귀해 공인들의 피해가 살을 깎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시민(市民)의 이익을 오로지 예측(預蓄)해 두고 때를 기다리기 때문에 목전이 급해 앞으로의 일을 따지지 않고 모두 대하(貸下)하기를 원하여 햇수를 나누어 계산해서 제하는데, 겉으로는 비록 관(官)에 해가 없는 듯하나 3년으로 분배한 것이 5년에 이르기도 하고, 5년으로 분배한 것이 10년에 이르기도 하며, 혹은 응공(應供)으로 계산해 제할 숫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고 당납(當納)이 도리어 부족한 조목으로 들어가 상당한 숫자를 맞추지 못해 받아들이지 못할 염려도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관(官)에서 또 부득이 다시 대하(貸下)하여 결말을 짓고자 하지만 필경에는 세월을 끌다가 건몰(乾沒)040) 하고 맙니다. 그래서 호조(戶曹)와 선혜청(宣惠廳)의 재화가 부족해지고 시인(市人)의 피해가 거의 발이 빠진 것과 같아서, 공권(貢券)을 바치며 물리기를 청하기도 하고 전(廛)의 문을 닫고 판매를 그만두기까지 하니, 그 형세가 반드시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외읍(外邑)의 백성으로 말하자면 농사는 곡식을 생산하는 것인데, 지력(地力)이 반드시 날로 메말라 가는 것도 아니요 수원(水源)이 날로 고갈된 것도 아닌데도 수확이 점차 감소되어 백 년이나 십 년 전에 비하면 거의 반감(半減)되고 있습니다. 1결(結)에서 바칠 전세(田稅), 대동미(大同米), 삼수량(三手粮), 아록(衙祿)의 밑천이 영남·호남은 매 결에 쌀이 혹 7, 80두(斗)에서 혹은 5, 60두이며 기전(畿甸)의 가장 적은 곳도 오히려 30여 두입니다. 그밖에 결전(結錢)이며 신포(身布), 연호역(烟戶役)이 있고, 또 족징(族徵)·동징(洞徵)이 있으며, 향청(鄕廳)·작청(作廳)·장청(將廳)·노령청(奴令廳)·면임(面任)·이임(里任)의 수렴(收斂)이 서로 다투어 빼앗고, 혹 무단(武斷)과 토호(土豪)들이 따라서 벗겨 먹습니다.

군정(軍丁)의 폐단에 이르러서는 또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 무릇 백성 가운데서 약간 초실(稍實)하고 교활(狡猾)한 자들은 대부분 도피(圖避)합니다. 관(官)에는 투속(投屬)한 군관(軍官)이 있고, 향교(鄕校)에는 투속한 교생(校生)이 있으며, 역(驛)에는 투속한 역리(驛吏)가 있고, 그 다음에는 각청(各廳)에 보직(保直)이며 서원(書院)의 예인(隷人)이 있어 각종 명색(名色)이 한둘이 아니며 수목(數目)이 매우 많습니다. 또 당상관의 첩문(帖文)을 사들이고 반호(班戶)의 종이란 이름을 무릅쓴 자도 있어 천만 가지 계책으로 벗어나지 않으면 그만두지를 않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곤궁(困窮)하고 고할 곳이 없는 자가 처음부터 군정(軍丁)에 뽑혀 군병이 됩니다. 군병이란 안을 호위하고 밖을 막는 사람으로서 장차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전쟁터로 갈 자들이니, 이들에게는 마땅히 양식과 병기를 넉넉히 주고 요역(繇役)을 면제해야 하는데, 지금은 도리어 그들에게서 많은 전포(錢布)를 거두어 경비로 쓰고 있으니, 이런 일은 예로부터 어떤 나라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장정이 되면 군적(軍籍)에 실리고 이미 늙으면 면제하며, 죽으면 대신해 채우는 것은 본디 바꿀 수 없는 법인데, 오직 가장 곤궁하여 고할 곳이 없는 자들은 죽거나 늙어도 정채(情債)가 없기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어 백골(白骨)이 된 후에 오히려 군포(軍布)를 거두며, 어린 아이인데도 연줄을 타지 못하기 때문에 면하지 못해 황구(黃口)가 모두 군정에 충정(充定)됩니다. 또 지적해서 받을 곳이 없는 자는 친족에게서 받아들이고, 친족도 없으면 이웃과 마을에서 받아들이는데, 옛날에는 친족에게 받고 마을에서 받은 것이 백에 1, 2를 차지하던 것이 지금은 친족과 마을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10에 4, 5를 차지합니다. 군병이 이와 같아서 백성들이 더욱 지탱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몸뚱이로서 이미 농사에 피곤하고 또 군병으로 지쳐 두 가지가 다 손상되고 다 피폐한데, 어떻게 곤궁하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바닷가 백성으로 말하자면 균역법(均役法) 이전에는 어염(魚鹽)이 매우 천하였는데, 지금은 매우 귀하게 된 것은 물에서 고기가 산출하지 않음이 아니요, 개펄에서 소금이 생산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에는 물고기가 모여드는 물을 따라서 어전(漁箭)을 설치하고, 소금이 나는 곳을 따라서 염분(鹽盆)을 열어서 이익이 있는 곳을 따라 모두 달려가 생산하는 것이 많아 본디 천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어전 하나와 염분 하나도 모두 관(官)에 매어 있어 비록 어족(魚族)이 이동하고 염조(鹽潮)가 변천하더라도 한 마리를 잡거나 한 웅쿰의 소금도 구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관에 내는 세는 전과 같으며, 혹 잠시 설치한 어전이나 겨우 남아 있는 염분이 있더라도 또 ‘무취(貿取)’라고 이름하여 거저 빼앗는 것과 다름이 없어 날로 채찍질을 가하고 붙잡아 가는 것이 서로 잇달아 어느 곳에나 걱정거리가 되어 모두가 피해가서 생산하는 것이 적으니, 어염이 귀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바닷가 개펄은 염분이 많아 농사짓는 사람의 이익이 적어 이미 살아갈 수가 없고, 해금(海禁)이 또 이와 같으니 의식(衣食)의 근원이 막혔습니다. 해척(海尺)과 포작(浦作)하는 호(戶)에 이르러서는 더욱 가련합니다. 한겨울에 전복을 캐고 한추위에 미역을 채취하느라 남자와 부녀자가 발가벗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 떨면서 물결에 휩싸여 죽지 않은 것만도 참으로 요행이며, 해안에 불을 피워놓고 바다에서 나오면 몸을 구워 피부가 터지고 주름져서 귀신처럼 추한데 겨우 몇 개의 전복을 따고 어렵게 몇 줌의 미역을 따지만 그 값으로는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감고(監考)의 억지 징수와 별무(別貿)의 늑매(勒買)로 회초리와 욕이 낭자(狼藉)하며, 매양 진상(進上)할 때를 당하면 반드시 퇴짜를 놓아 물리치기를 일삼으며 대전(代錢)으로 받아 이익을 삼으려고 하면 아전들이 다투어 움켜가는데도 관에서는 모른 체하니, 불쌍한 이 하민(下民)들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그리고 변방의 백성으로 말하자면 해연(海沿)과 영애(嶺隘)에 진보(鎭堡)가 줄지어 있고 장수와 군졸이 방어하여 파수하면서 외적의 근심을 방비합니다. 이른바 진장(鎭將)이란 안으로는 경군문(京軍門)에서, 밖으로는 각 영곤(營閫)에서 오랫동안 부지런히 벼슬한 자를 차출해 보낸 자들로 대부분 빈궁하고 또 전도(前途)가 없어서 평생 동안의 소망이 이 한 진(鎭) 뿐인데, 부임할 때 이미 산처럼 많은 빚을 지고 있으나 진름(鎭廩)이 아주 박하고 진민(鎭民)이 아주 적어서 한 섬의 쌀이나 한 꿰미의 돈도 달리 나올 곳이 없으므로, 사생(死生)은 따지지 않고 번번이 벗겨먹는 것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에 얼마 안 되는 백성이 더욱 괴로운 피해를 입는데, 양료(糧料)를 깎고 환곡을 지나치게 받아들이는 등 하지 못할 짓이 없습니다. 주진(主鎭)의 관리가 또 침해해 억눌러서 혹은 편복(蝙蝠)의 역(役)041) 을 책임지우기도 하여 쌓인 두려움이 이리와 호랑이보다 더 심함이 있으니, 이것이 또한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불쌍하고 호소할 곳이 없는 것들입니다.

무릇 이 백성들은 모두 위에 하늘을 이고 있는 전하의 적자(赤子)로서 전하를 천지처럼 우러러보고 전하를 부모처럼 바라보고 있으므로, 아주 어리석은 듯해도 아주 영험해서 하루 조석 사이라도 역시 길러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제 기르는 것이 이처럼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조(晁錯)042) 가 말하기를, ‘기한(飢寒)이 몸에 절박하면 염치를 돌보지 않으며, 배가 고픈데도 먹지 못하고 살갗이 추운데도 옷을 입지 못한다면 비록 자모(慈母)라도 그 자식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불행함이 이와 같으니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른바 정사에 법(法)이 없어 백성들을 기르는 바를 잃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안에는 유사(有司)가 있고 밖에는 목수(牧守)가 관직을 나누어 맡았으니, 이들은 모두 전하께서 임명하여 백성을 다스리게 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비단 기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학대까지 하니, 그 학대함이 비록 내가 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백성을 다스리라고 임명한 자가 한 것이니, 이는 내가 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전하에게는 안찰(按察)하는 신하가 있고 규핵(糾劾)하는 관원이 있는데, 학대함이 있는데도 안찰하지 않고 규핵하지 않아서 그들로 하여금 기탄없이 자행하게 하니, 이는 또 내가 알고서도 그냥 두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들이 아주 영험하기 때문에 혹 감히 원망하지는 않고, 지극히 어리석기 때문에 감히 원망하기도 하는데, 원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은 것을 자신이 모두 스스로 풀어 줄 수가 없으니, 매우 걱정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마음은 사람마다 같으니, 전사(銓司)에서는 차제(差除)하기 전에 마땅히 잘 살펴야 하고, 감사(監司)의 자거(刺擧)043) 와 대간(臺諫)의 논열(論列)이 마땅히 그후에 엄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이는 기강이 떨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또 사람들 모두가 곤란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도 한 종류의 곤란 겪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기회를 틈타서 간리(姦利)를 노려 속이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교활하고 흉악하여 위를 능멸하고 아래를 잔혹하게 하기를 능사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향리(鄕里)의 좀벌레요 선량한 자의 원수인데, 이런 무리들이 번성해서 관가(官家)의 학정(虐政)에 견디지 못하는 백성들이 또 사적(私賊)에게 상하고 있으니, 이렇게 하기를 마지 않는다면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이 또한 기강이 떨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덕(德)과 예(禮)로써 가지런히 인도하는 것은 오히려 논할 것도 없고 형정(刑政)의 권징(勸懲) 역시 거행되지 않아서 풍속이 거기에 따라 무너지고 세교(世敎)가 날로 글러집니다.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고 조정은 더욱 심하여 사방에서 본받고 한 세대가 우러러보는 것은 위미(委靡)044)염희(恬嬉)045) 에 불과합니다.

묘당(廟堂)의 자리에 신도 역시 무릅쓰고 있지만 물의(物議)에 부끄러워 스스로 말할 수가 없으며, 대각(臺閣)의 위는 신도 또한 일찍이 역임(歷任)하였지만 곧은 논의를 듣지 못하였으니, 어찌 비난하겠습니까? 대관(大官)과 비직(卑職)이 마치 한 수레 자국을 따라가듯 하여 좌기(坐起)는 해학(諧謔)과 우스갯 소리하는 장소가 되었고, 묘사 유퇴(卯仕酉退)는 맞이하고 보내는 곳이 되었으며, 논사(論思)하는 부서는 부질없이 이불[被]을 가지고 숙직(宿直)하는 데 지나지 않고, 의언(議讞)046) 하는 자리는 오직 위패(違牌)만을 일삼았으며, 총부(摠府)는 독직(獨直)하는 무신(武臣)에게 맡기고, 사관(祀官)은 매양 잔약한 음관(蔭官)만 치우치게 차출하는 것을 고상(故常)으로 여겨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으니, 위저(位著)의 풍속이 이러합니다. 유사(有司)의 직임에 있는 자는 전수(典守)를 중히 여기지 않아 공화(公貨)는 간리(奸吏)의 모리(牟利)로 돌아가서 겉으로는 대출(貸出)을 받는 것처럼 하였고, 관물을 친지(親知)에게 생색내는 것으로 만들어 허척(虛尺)047) 으로 미봉(彌縫)하여, 한 번 나가면 들어오지 않아서 그대로 포흠(逋欠)이 쌓이고, 받아들일 물건이 없어 한갓 빈 장부만 끌어안게 되어 국재(國財)가 탕갈되는데도 돌보지 않으며 경비를 함부로 써서 절약하지 않는 것이 이미 예사가 되어 다시 비난하는 자가 없으니, 관부(官府)의 풍속이 이러합니다.

사대부(士大夫)는 나라의 원기(元氣)인데도 가정에는 책을 읽는 자식이 없고 세상에는 자신을 단속하는 사람이 없어 창피(昌披)를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해학을 기리며, 옥송(獄訟)을 소개(紹介)하여 문득 뇌물을 받고, 과장(科場)에서 농간을 부려 공공연히 뇌물이 행해지며, 법 범하기를 좋은 곳에 가는 것처럼 여기고 순실(醇實)함을 가리켜 반드시 어리석은 자라고 비웃는데, 아비도 금하지 않으며 형은 혹 서로 돕기까지 하니, 가정의 풍속이 이와 같습니다.

병이(秉彛)가 훌륭한 데는 귀천의 차이가 없는데 하류(下流)와 필서(匹庶)는 분의(分義)와 상도(常道)를 없애버려 조금도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리석게 스스로 날뜁니다. 향당(鄕黨)에는 완모(頑侮)만 일삼고 가항(街巷) 사이에는 사치(奢侈)가 풍습을 이루며, 젊은 사람이 어른을 능멸하고 가난한 자가 모두 부자를 본받아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길에서 싸우거나, 도박(賭博)을 일삼아서 가산을 탕진하며, 빈 것을 추려 모아 넉넉하게 뽑아 내어 간위(奸僞)가 갖가지로 나오며, 송사(訟事)를 사주하고 싸움을 일으켜 갖가지 계책으로 속이기에 헌령(憲令)이 금할 수가 없고 형벌로도 제지하지 못하니, 여리(閭里)의 풍속이 이와 같습니다. 풍속이 이토록 무너졌기 때문에 백성은 더욱 괴로우니, 괴로운 자는 원망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한(漢)나라 노공(魯恭)이 말하기를 ‘만민(萬民)이란 하늘이 내었는데, 하늘이 그 낸 바를 사랑함이 부모가 그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아서 한 사람이라도 제 자리를 얻지 못하면 천기(天氣)가 어긋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재이가 자주 나타나니 하늘이 노한 것이며, 위란(危亂)의 조짐이 날로 나타나니 전하께서 참으로 근심하고 계실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안위(安危)란 것은 사람의 살찌고 마른 것과 같고 기강(紀綱)이란 맥락(脈絡)과 같은데, 맥락이 병들지 않으면 비록 말랐다 하더라도 해롭지 않으나 맥락이 병들면 살찐 자라도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이미 위란의 조짐이 있어 나라의 형세가 크게 깎임이 마치 사람이 마르고 맥락이 또 병든 것과 같을 뿐이 아니니, 참으로 빨리 이미 무너진 기강을 떨쳐서 바로잡지 않으면 역시 반드시 망하게 될 뿐입니다. 주자(朱子)가 그의 임금에게 기강에 대한 설로써 말하기를, ‘사해(四海)의 넓은 땅과 억조(億兆)의 민중(民衆)이 사람마다 각기 뜻이 있어 사(私)를 행하고자 하는데, 잘 다스리는 자는 이에 능히 총섭(總攝)하고 정제(整齊)해서 각기 이치를 따르게 할 것이니, 먼저 위에서 기강을 지켜야 합니다. 무엇을 기강이라고 하는가 하면 현부(賢否)를 구별하여 상하의 구분을 정하고 공과 죄를 조사하여 상벌(賞罰)을 공정하게 시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강이 떨쳐지는 것은 재상(宰相)이 법을 지키면서 실수하지 않아야 하고, 대간(臺諫)은 살펴서 사(私)를 씀이 없어야 하며, 인주(人主)는 대공 지정(大公至正)한 마음으로 위에서 자신을 공손히 하여 조림(照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자(賢者)는 반드시 윗자리에 있게 되고 불초(不肖)한 자는 반드시 아래에 있게 되며,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이 있고 죄가 있는 자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 만사를 통리(統理)함에 빠뜨림이 없어야 합니다. 참으로 성상의 뜻을 결단하고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 크게 경칙(警勅)해서 대소의 신하로 하여금 각기 그 직무를 거행하게 하여 출척(黜陟)을 밝히고 상벌(賞罰)을 공정하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미 무너진 기강을 떨치겠습니까?’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기강은 스스로 설 수가 없어서 반드시 인주(人主)의 심술(心術)이 공평 정대하고 편당(偏黨)과 반측(反測)의 사(私)가 없이 된 연후에야 기강이 매인 데가 있어서 서게 될 것이며, 임금의 마음은 스스로 바르게 될 수는 없어서 반드시 현신(賢臣)을 친하고 소인(小人)을 멀리하여 의리(義理)로 돌아가기를 강명(講明)하고 사사(私邪)의 길을 막은 연후에야 이에 바로 될 수가 있습니다.’고 하였는데, 신 역시 이 말을 외어 전하에게 올립니다.

참으로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성지(聖志)를 분발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시어 현부(賢否)를 구별하고 출척(黜陟)을 밝히시며, 공과 죄를 조사하여 형상(刑賞)을 공정하게 하시며, 대공 지정(大公至正)의 마음을 넓히시고 편사 사설(偏私邪屑)의 해를 끊으시며, 충성스럽고 곧은 신하를 가까이하여 의리를 강명하고 자신이 조심스럽게 조림(照臨)하여 크게 경칙(警勅)하소서. 먼저 궁중의 환첩(宦妾)과 설어(暬御) 등 좌우에서 받드는 무리와 액례(掖隷)·금병(禁兵) 등 부리는 무리들부터 모두 충근 외신(忠勤畏愼)해야 보존되고, 방자하고 범람하면 반드시 죽을 것을 환히 알게 하며, 궐문 안팎을 엄히 하여 문지기는 출입(出入)의 금지(禁止)를 조심스럽게 하고,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을 통개(洞開)하여 감히 엿보거나 가리지 못하게 하며, 옛날 물든 것을 통렬하게 고쳐서 일체 숙청(肅淸)해야 하니, 이것이 안에서 기강이 선다는 것입니다.

조정에 있어서는 일백 관원이 서로 배우고 본받아 각기 그 직을 거행하여, 대신은 감독하는 책임을 다하고, 소신(小臣)은 부지런히 일하는 정성을 다하며, 전형(銓衡)을 맡은 자는 잘못 천거하여 사(私)를 따르면 반드시 화를 속히 부름을 알아서 견별(甄別)048) ·격양(激揚)하고 공도(公道)를 넓히는 데 힘쓰며, 출납(出納)을 맡은 자는 의위(依違)049) 하여 구차히 따르기만 하면 반드시 처벌이 있음을 알아서 가부를 반복하여 따져 소임(所任)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언책(言責)에 있는 자는 입을 다물고 머뭇거리며 눈치만 보다가는 반드시 허물을 얻는다는 것을 알아서 바른말로 규탄(糾彈)해서 강직하여 숨기는 일이 없을 것이며, 강토(講討)하는 관원은 노망(鹵莽)050) ·천솔(淺率)하면 반드시 책임을 등진 것임을 알아서 간절하게 진달하여 계옥(啓沃)하는 직임에 부지런히 하고, 재부(財賦)를 관장하는 자는 비용을 지나치게 써 절약하지 않으면 반드시 견책 당할 것을 알아서 전수(典守)를 단속하여 회계(會計)를 정당하게 하고, 형옥(刑獄)을 주관하는 자는 죄를 그릇되이 낮추거나 올리면 반드시 죄를 입을 것을 알아서 잘 심리(審理)하고 흠휼(欽恤)하며 청명(淸明)하기를 스스로 힘쓸 것이니, 이것이 기강이 위에서 선다는 것입니다. 방백(方伯)이 된 자는 관리들의 치적을 안찰(按察)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물어서 출척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회유(懷綏)051) 를 잘하지 못하면 반드시 감핵(勘劾)을 면치 못할 것을 알 것이므로 탄압(彈壓)함에 있어 여토(茹吐)를 하지 않고 일을 조처함에 있어서는 더욱 이폐(利弊)를 강구할 것이며, 수령이 된 자는 신명(神明)처럼 되기를 마음먹어 정사(政事)에 감싸 보호하는 것을 먼저하여 칠사(七事)가 거행되지 않고 백리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폄척(貶斥)을 면치 못할 것을 알 것이므로 탐묵(貪墨)이 청렴 결백(淸廉潔白)으로 변화되고 가학(苛虐)이 모조리 순량(循良)이 될 것이니, 이것이 기강이 밖에서 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향당(鄕黨)과 주려(州閭)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각기 분발하고 다시 서로 권면(勸勉)하여 완악하고 비루함은 인간에 끼지 못함을 알아서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며, 집에 있으면서는 근본이 착실한 생업에 종사하고 밖에 나와서는 효제(孝悌)하는 행실에 부지런하면 점차 예의(禮義)의 풍습이 일어나고 염치의 풍속으로 크게 변할 것이니, 이것이 기강이 아래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외와 상하의 사람들이 반드시 이러함을 알지 못하는 자가 없은 연후에야 이러한 효과가 있게 되며, 만일 그중 하나라도 이러함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역시 그러한 효과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니, 이는 성상의 뜻을 어떻게 분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크게 분발하면 크게 떨치게 되어 제대로 되지 않는 정사가 없을 것이며, 항상 분발하면 항상 기강이 서서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어 백성들이 즐거운 삶을 누리고 하늘이 영원한 명(命)을 내릴 것이니, 오늘날 상하가 함께 걱정하고 애태우며 날로 위망(危亡)이 닥치는 것과는 그 거리가 어찌 서로 멀지 않겠습니까?

다시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하늘의 은혜롭고 사랑하는 마음을 받들고 조종(祖宗)께서 부탁하신 큰 기업을 생각하시어, 육부 삼사(六府三事)의 정사를 닦고 요령 있게 잘 성취하고〈천지(天地)의 마땅함을〉 보상(輔相)하는 술책을 강구하시며, 아래를 후히 하면, 안정되게 거하는 상(象)을 보고 자기를 검약하여 남을 넉넉하게 하는 뜻에 힘쓰소서. 백성을 두려워할 줄을 알고 근본을 튼튼히 하기에 힘쓰기를 도모하고, 백성들의 상정(常情)을 살펴 물이 배를 뒤엎는다는 경계를 두려워 하소서. 민심을 얻고 하늘의 마음을 누려 만세의 자손에게 끝없는 아름다움을 남겨 주시려면 비록 성상의 마음이 분발하고자 하지 않으려 해도 되겠습니까? 힘쓰고 힘쓰실 것이며 깊이 생각하시어 홀만히 하지 마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써서 올린 말을 보건대 모두 오늘날의 고폐(痼弊)와 나에게 좋은 잠계(箴戒)가 아님이 없으며 간절하게 걱정하는 정성이 매우 감탄스럽다. 무릇 이런 여러 폐단은 일조 일석(一朝一夕)에 모조리 제거할 수 없으니, 지금 이후부터 오직 유사(有司)의 신하들은 각기 마음을 다하여 그 직임을 받들고, 경들은 또 나를 보좌하여 백료(百僚)를 감독하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라. 내가 비록 덕이 없으나 편안히 바로 보필해서 치리(治理)를 도모해 주기를 원한다. 이 기록을 묘당에서 베껴서 제사(諸司)에 나누어 주어 각기 마음을 써서 바로잡을 것을 강구하여 시행하고 종이 위의 공문(空文)이 되지 않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25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사법-법제(法制) / 식생활-주류(酒類) / 재정-국용(國用) / 재정-역(役) / 재정-공물(貢物) / 군사-군역(軍役)

  • [註 039]
    상하(上下) : 위에서 아래에 지출(支出)하는 것.
  • [註 040]
    건몰(乾沒) : 댓가 없이 그냥 차지함.
  • [註 041]
    역(役) : 편복은 박쥐로 어떤 때는 새의 행세를 하고 어떤 때는 짐승의 행세를 하는데, 한 몸으로 두 가지 구실을 한다는 뜻임.
  • [註 042]
    조조(晁錯) : 한 경제(漢景帝) 때 사람.
  • [註 043]
    자거(刺擧) : 죄상을 조사하여 검거함.
  • [註 044]
    위미(委靡) : 쇠약해짐.
  • [註 045]
    염희(恬嬉) : 직무를 게을리 함.
  • [註 046]
    의언(議讞) : 죄를 평결함.
  • [註 047]
    허척(虛尺) : 헛문서.
  • [註 048]
    견별(甄別) : 명확하게 가림.
  • [註 049]
    의위(依違) :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함.
  • [註 050]
    노망(鹵莽) : 소홀하고 거침.
  • [註 051]
    회유(懷綏) : 어루만져져 달램.

○壬寅/次對。 左議政李相璜啓言: "前此以災歲靡穀, 請行酒禁頒令矣。 小民非曰無犯, 而猶或知畏, 班戶則暋不畏法, 犯者日聞, 法司吏隷之入搜也。 輒曰等威, 惟意縛打, 亦或以曾經法官, 庇護親黨, 至有禁吏除汰之擧, 是不幾於角勝朝令乎? 請此後班戶之似此犯科, 一切刑配, 以曾經法官而除汰禁吏者, 捧現告拿勘。" 從之。 右議政沈象奎, 書進一紙言: "故相臣金堉辭免之章, 有曰, 職者, 爲身也。 言者, 爲國也。 去臣爲身之職, 而用臣爲國之言, 則身退官非曠也, 言行職如存也, 臣之覬願, 實亦如此, 亦望聖明, 深燭庸陋不堪重任之狀, 早賜斥免, 無令久爲聖簡之累國事爲幸, 臣竊以天生斯民, 立君而牧之, 是君爲民而立也, 非爲君而與之民也, 其在繼世之君, 則是民也。 又皆祖宗之所遺, 而託付于我者。 是以, 自古聖哲之主, 知天爲民而立君也。 知天心甚惠愛乎民也, 必奉天而養民, 卽《書》所云, ‘惟天惠民, 惟辟奉天,’ 是也。 又曰, 德惟善政, 政在養民, 朱子以爲德非徒善而已, 惟當有以善其政, 政非徒法而已, 在乎有以養其民, 水火金木土穀之爲六府正德, 利用厚生之爲三事, 無非所以養民之政, 凡其財成以制其過, 輔相以補其不及。 又無非所以左右乎生民者, 則人君之職, 其惟養民而享天祿, 保天位在乎得民之心而已。 《易》剝之象曰, 山附於地剝, 上以厚下安宅, 益之彖曰, 益, 損上益下, 民說無疆, 朱子解之曰, 山附於地, 惟其地厚, 所以山安其居而不搖, 人君厚下而得民, 則其位亦安, 而〔不〕 搖, 損上益下曰益, 損下益上曰損, 所以然者, 邦本厚則邦寧而君安, 乃所以爲益也。 否則反是, 蓋山之高, 出於地而反附着於地。 猶君, 居民之上, 而反依藉於民, 君之所以爲君, 以其有民也。 君而無民, 何所依而爲君哉? 爲人上者, 誠知其得以安其位者, 由乎有民, 可不思所以厚民之生, 而使之得其安乎? 益之爲言, 有所增加之謂也。 今以損焉而乃謂之益者何哉? 上約己而裕於人, 人必悅而奉上矣, 豈不謂之益乎? 上奪人而厚諸己, 人必怨而叛上矣, 豈不謂之損乎? 損上厚下, 爲益爲安, 人君之於民, 務必如此者, 乃所以自益自安也, 蓋以眇然一身, 寄於億兆之上, 苟無德政, 養此億兆之民, 使之安生樂業, 厚結其心, 則朽索六馬, 不足以喩其危也。 而有或視此億兆之民, 以爲是奉己也者, 肆於其上, 不知恤焉, 其必危亡, 又不待言而知也, 是故, 之告, 則曰可畏非民, 召公之戒成王, 則曰用顧畏于民碞, 五子作歌, 述皇祖之訓則曰, 民可近不可下, 民惟邦本, 本固邦寧, 武王誓師, 引古人之言則曰, 撫我則后, 虐我則讎, 孟子之事則曰, 之失天下也, 失其民也, 失其民者, 失其心也。 人君, 至尊也, 小民, 至卑也, 人君, 至强也, 小民, 至弱也, 君之於民, 欲生則生之, 欲死則死之, 是則可畏者, 莫如君也。 而乃則曰, 可畏非民, 召公則曰, 顧畏民碞, 誠知民之可畏, 而險則自不能不養而安之, 惠而和之, 而不敢易之忽之, 尤不敢虐之苦之, 明主, 畏其民, 而闇主, 使民畏已。 先儒以爲畏其民者, 昌, 使民畏已者, 亡, 且君之與民, 以勢而言, 則如霄壤之相懸而不侔, 以情而言, 則猶身體之相資而爲生, 勢踈則離, 情親則合, 以其親故謂之近, 以其踈故謂之下, 言其可親而不可踈也。 民者, 國之本, 本不固者, 先儒以爲雖彊如富如, 終亦滅亡。 古人之言, 卽先民流傳之說, 武王引之, 以明民之常情如此, 若君民之分, 豈以虐我而遂讎之哉? 然君民之分, 不可恃, 而民之常情則不可不察也。 喩君爲舟, 喩民爲水, 水能載舟, 亦能覆舟, 先儒以爲舟卽君道, 水卽民心, 舟順水之道乃浮, 違則沒, 君得民之心乃固, 失則危。 是以, 古先聖王, 必以其心, 從天下之心, 而不敢以天下之人, 從其欲, 兢兢業業, 不敢自恃崇高之勢, 惟懼或失下民之心也。 經傳之旨, 聖哲之訓, 丁寧諄復, 信若券契, 今以我殿下仁聖, 而受祖宗之大遺, 爲生民之君主, 德非不善而政或無法, 政之無法而民失所養, 六府未修, 三事俱闕, 遂使八域有衆, 困瘁〔滋〕 甚, 嚬呻相聞, 以言乎京都之民, 則有職任者有祿俸焉, 爲吏胥者有稍廩焉, 隷軍伍者有料布焉, 裨販者資贏利, 工作者業力役。 又若閑雜之類, 朝暮聚散, 東西流逐, 不耕而食, 不織而衣者, 無慮累數十萬, 而至於貢人市人, 卽良民之最有根着者也。 以其世守常業, 故恪而奉公, 家有恒産, 故謹而畏法, 居積貿販, 供上用而應官役, 財貨輕重, 與國贏絀, 是以, 朝家軫恤都民, 必先此輩, 今則進排之私費倍溢, 吹覓撏撦, 十點九退, 而必充谿壑, 昔之銖兩者, 今爲勻石受價, 而情債驟加, 遷延操縱, 淹旬閱月, 而必罄囊橐, 昔之一二者, 今至七八, 厚利盡入於消折, 優價反歸於落本, 而各司之侵漁, 又從而輾轉增廣, 於是乎貢市之人, 生業日窘, 則乃有預賣貸下之弊, 都民仰哺, 多靠貢米, 故市上米直, 隨等低昻, 而一自預賣之後, 竝借他貢成冊, 仍無當等上下, 則長安之米日貴, 貢人之害無異剜肉, 市人之利, 專在預蓄而俟時, 故急於目前, 不計來頭, 皆願貸下, 排年計除, 外面雖若無害於官, 而三年之排, 至於五年, 五年之排, 至於十年, 或有應供, 未及於計除之數, 當納反歸於不足之條, 無以準折相當, 致有難捧之慮, 則自官又不得不更爲貸下, 以倖其收殺, 而畢竟年引歲拖, 因循乾沒, 則戶惠之財仍欠, 而市人之害殆同溺足, 至有納貢券而請退, 閉廛門而撤賣, 其勢必無以支保矣。 以言乎外邑之民, 則農者, 所以生穀, 而地力未必日瘠, 水源未必日涸, 而所收漸少, 比之百十年前, 幾至減半, 而一結所納田稅大同三手之糧衙祿之需, 嶺湖則每結米或七八十斗, 或五六十斗, 而畿甸之最薄者, 猶爲三十餘斗, 其外結錢也身布也, 烟戶之役也, 又有族徵洞徵, 鄕廳ㆍ作廳ㆍ將廳ㆍ奴令廳ㆍ面里任之收斂, 喙喙爭嘬, 而武斷土豪, 又從而剝割之, 至於軍丁之弊, 又不可勝言, 凡民之稍實與少黠者, 擧皆圖避, 於官則有軍官之投屬焉, 於校則有校生之投屬焉, 於驛則有驛吏之投屬焉, 其次各廳之保直也, 書院之隷人也, 各色不一, 數目甚多, 又有買堂上之帖文者, 冒班戶之奴名者, 千方百計, 不脫不已, 其最窮而無告者, 始簽於丁而爲之兵, 兵者, 所以內衛而外禦, 將使冒矢石而赴湯火, 是宜資給糧械, 復除〔繇〕 役, 而今反厚徵其錢布, 以爲經用。 此已自古有國所未有之事, 若夫及丁而簽, 旣老而除, 有死而代, 自是不易之典, 而惟其最窮而無告也。 死與老而無情債, 故不得頉而白骨猶徵, 兒與弱而無攀援, 故不得免而黃口皆充。 又有指徵無處者, 則徵之親族, 無親族則徵之隣里, 昔之族徵里徵, 百居一二, 而今之族徵里徵, 十居四五, 兵之如此, 民益難支, 一人之身, 旣困於農, 又瘁於兵, 兩傷而俱弊, 如之何其不窮且死也? 以言乎海澨之民, 則均役之前, 魚鹽甚賤, 而今也甚貴者, 非水不産魚, 鹵不出鹽也。 前則隨魚所聚之水而設箭, 隨鹽所發之地而開盆, 所在逐利, 擧皆趨之, 生之者衆, 固其賤也。 今則一箭一盆, 皆籍於官, 雖魚族流徙, 鹽潮變遷, 無片鱗之捉, 勺滷之煎, 籍官之稅, 自如, 或有暫設之箭, 僅存之盆, 則又名曰貿取。 無異白奪, 鞭扑日加, 追捕相屬, 所在爲患, 擧皆避之, 生之者寡, 宜其貴也。 海濱斥鹵, 農者少利, 已不足以爲生, 而海禁又如此, 衣食之源絶矣。 至於海尺浦作之戶, 尤爲可憐, 隆冬採鰒, 盛寒刈藿, 男婦赤裸, 泅入海底, 戰兢波吒, 不死誠幸, 火岸上, 出而灸身, 膚裂皮皴, 醜黑如鬼, 僅摘數枚之鰒, 艱得數掬之藿, 其得價本, 無以資其餬活, 而監考之抑徵, 別貿之勒買, 箠罵狼藉, 而每當進上之時, 必事退却, 期捧代錢, 以爲利柄, 吏手競攫, 官耳如褎, 哀此下民, 將何爲生耶? 以言乎邊徼之民, 則海沿嶺隘, 列置鎭堡, 有將有卒, 防禦把守, 以備外虞, 而所謂鎭將, 內而京軍門, 外而各營閫, 積仕久勤, 差送者也類多貧窮, 又無前程, 平生顒望, 止此一鎭, 赴任之時, 已負債山, 而鎭廩至薄, 鎭民至尠, 斛米緡錢, 他無可出, 是以, 不計死生, 輒事椎剝, 以至尠之民, 被尤苦之害, 糧料之剋減也。 還穀之濫捧也, 無所不爲, 主鎭官吏, 又皆侵壓疊役, 或責蝙蝠, 積畏有甚狼虎, 此又民之絶可矜悶, 而最無告訴者矣。 凡此首黔而上戴者, 皆殿下赤子, 仰殿下如天地, 望殿下如父母, 至愚而至靈, 一朝夕之頃, 亦莫不有養而爲生, 今所以養之者, 若是之闕然, 晁錯之言曰, 飢寒切身, 不顧廉恥, 腹飢不得食, 膚寒不得衣, 雖慈母不能保其子, 不幸如此, 將亦奈何? 此臣所謂政之無法, 民失所養者, 而內而有司存, 外而牧守分職, 是皆殿下之任以民功者, 今不惟不能養之, 又或虐之, 其虐之也雖非吾爲之, 吾之所任以民功者爲之, 是與吾爲之, 何異哉? 殿下, 有按察之臣焉, 有糾劾之官焉, 則其有虐之而不察不劾, 使之無忌而卒逞, 是又與吾知之而縱之, 何異哉? 彼其至靈也。 故或不敢怨, 至愚也故敢怨, 敢怨與不敢怨, 吾俱無以自解也。 不亦憂惋之甚, 而此心人必同之, 則銓司之差除, 宜審於前, 監司之刺擧, 臺諫之論列, 宜嚴於後, 而未必其然, 式至于今, 是則綱紀之不振而然也。 又於人皆困瘁之中, 有一種不以困瘁爲憂, 而乘以爲姦利欺謾者, 此皆頑猾兇惡, 上淩下殘, 作爲能事, 乃鄕閻之螟螣, 良善之讎賊, 如此之類, 徒亦寔繁, 民不堪於官虐者。 又創於私賊, 若此不已, 其豈孑遺, 是又綱紀之不振而然也。 德禮之道齊, 尙矣無論, 而刑政之勸懲, 亦且不擧, 風俗隨壞, 世敎日訛, 民不免恥, 朝廷爲甚, 四方之矜式, 一世之瞻聆, 不過是委靡恬嬉, 廟堂之座, 臣亦冒據, 有愧物議, 無可自言, 臺閣之上, 臣亦曾歷, 不聞儻論, 何以非諸, 而大官卑職, 如循一轍, 坐起爲諧笑之場, 卯酉爲迎送之所, 論思之署, 輒空持被, 議讞之地, 惟事違牌, 摠府一任武臣之獨直, 祀官每歸殘蔭之偏差, 視若故常, 不以爲怪, 位著之風俗如此, 有司之任, 不以典守爲重, 公貨歸於奸吏之牟利, 而外受挪貸, 官物作爲親知之生色, 而虛尺彌縫, 一出不入, 仍成積逋, 有捧無物, 徒擁空簿, 國財蕩竭而莫恤, 經費汗漫而不節, 已似例事, 無復非者, 官府之風俗如此, 士夫爲有國之元氣, 而家無讀書之子, 世尠飭已之人, 昌披不愧, 謔浪是譽, 紹介訟獄, 輒干貨賄, 揣摩科場, 公行關節, 犯刑憲如就樂地, 指醇實必嗤蠢物, 父亦不禁, 兄或相助, 家庭之風俗如此, 秉彝之良, 不以貴賤有間, 而下流匹庶, 蔑棄分常, 暋不畏法, 愚而自肆, 鄕黨之中, 頑侮是事, 街巷之間, 侈濫成習, 少輒淩長, 貧皆效富, 麯櫱是耽, 酗鬨載路, 賭博爲賢, 傾蕩破家, 撮空抽豐, 奸僞百出, 嗾訟興戎, 誣罔萬計, 憲令之所不能禁, 刑罰之所不能制, 閭里之風俗如此, 俗旣此壞, 民則益苦, 苦者不能無怨, 魯恭有言曰, 萬民者, 天之所生, 天愛其所生, 猶父母之愛其子, 一物有不得其所者, 則天氣爲之舛錯。 今災異之數見, 天固怒之矣, 危亂之日兆, 殿下誠憂之矣。 臣聞之, 安危者, 〔猶〕 人之肥瘠, 綱紀者, 脈也, 脈不病, 雖瘠, 不害, 脈病而肥者死矣。 今危亂已兆, 國勢大削, 不啻如人之瘠, 而脈又病, 苟不能亟振已頹之綱紀而張理之, 其亦必亡而已矣。 朱子告其君以綱紀之說曰, 四海之廣, 兆民之衆, 人各有意, 欲行其私, 而善爲治者, 乃能總攝而整齊之, 使之各循其理者, 則以先有綱紀以持之于上也。 何謂綱紀? 辨賢否以定上下之分, 核功罪以公賞罰之施也, 然綱紀之所以振, 則以宰執秉持而不敢失, 臺諫補察而無所私, 人主又以其大公至正之心, 恭己乎上而照臨之, 是以, 賢者必上, 不肖者必下, 有功者必賞, 有罪者必刑, 而萬事之統, 無所闕也, 苟非斷自聖志, 灑濯其心, 而有以大警勑之, 使小大之臣, 各擧其職, 以明黜陟, 以信? 栢椔 則何以振已頹之綱紀哉? 又曰, 綱紀不能以自立, 必人主之心術, 公平正大, 無偏黨反側之私, 然後綱紀有所繫而立, 君心不能以自正, 必親賢臣遠小人, 講明義理之歸, 閉塞私邪之路, 然後乃可得而正也。 臣亦以是誦而獻於殿下, 誠願殿下, 奮發聖志, 勉勉不已, 辨賢否而明黜陟, 核功罪而信刑賞, 恢大公至正之心, 絶偏私邪屑之害, 親近忠讜, 講明義理, 恭己照臨, 以大警勑之, 先自宮禁宦妾暬御左右供奉之輩, 掖隷禁兵趨走使令之類, 莫不曉然知忠勤畏愼之可保, 而縱恣踰濫之必誅, 梱限截內外之嚴, 閽守謹出入之禁, 宮府洞達, 莫敢覬蔽, 痛革舊染, 一切肅淸, 是爲綱紀之立於內也。 其在朝廷百僚師師, 各擧其職, 大臣盡董率之責, 小臣效奔走之誠, 任銓衡者, 知失擧循私之必速咎, 而甄別激揚, 務張公道, 司出納者, 知依違苟順之必致罰, 而覆難可否, 思盡惟允, 居言責者, 知緘默顧瞻之必獲愆, 而謇諤糾駁, 剛直不諱, 官講討者, 知鹵莽淺率之必負責, 而數陳剴切, 勉任啓沃, 掌財賦者, 知濫費不節之必得譴, 而句檢典守, 會計是當, 主刑獄者, 知循枉低昻之必冒罪, 而審克欽恤, 淸明自殫, 是爲綱紀之立於上也。 爲方伯者, 按察吏績, 廉訪民隱, 知黜陟之不明, 懷綏之未善, 必不免勘劾, 則彈壓不爲, 茹吐厝施, 益究利弊矣。 爲守令者, 意慕神明, 政先字恤, 知七事之不擧, 百里之不治, 必不免貶斥, 則貪墨可化, 廉白苛虐, 盡爲循良矣, 是爲綱紀之立於外也。 以至鄕黨州閭, 人各奮矜, 更相勸勉, 知頑鄙之不齒以去惡而從善, 居處敦本實之業, 出入勤孝悌之行, 漸煽禮義之風, 丕變廉恥之俗, 是爲綱紀之立於下也。 然而內外上下之人, 無不知其必如此也, 而後可以有如此之效, 而若其一或有不如其所知者, 亦必一無如此之效, 此在聖志奮發之如何耳。 大奮發則大振, 而政無不得矣, 常奮發則常立, 而治無不成矣。 民可樂生, 天其永命, 其與今日之上下同憂, 恤恤憫憫, 日迫危亡, 其去豈相萬萬已哉。’ 更願殿下, 奉上天惠愛之心, 思祖宗託付之大, 修六府三事之政, 究財成輔相之術焉。 觀厚下安宅之象, 勉約己裕人之義焉, 知民之畏碞, 而務固本之圖焉。 察民之常情, 而懍覆舟之戒焉。 得民心以享天心, 以貽萬世子孫無疆之休, 雖聖志之無欲奮發得乎? 懋哉懋哉! 深念毋忽焉," 敎曰: "覽此書進之言, 無非今日之痼弊, 寡躬之良箴, 拳拳憂愛之誠深庸感歎, 凡此諸弊, 非一朝一夕所可盡祛。 自今以往, 惟有司之臣, 各盡其心, 以奉其職, 卿等又左右予躬(蕫)〔董〕 飭百僚, 以正厥事, 予雖否德, 願安匡弼, 以圖治理, 此錄自廟堂謄頒諸司, 俾各惕念, 可以釐革者講究施行, 母爲紙上之空文。"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25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사법-법제(法制) / 식생활-주류(酒類) / 재정-국용(國用) / 재정-역(役) / 재정-공물(貢物) / 군사-군역(軍役)